넷플릭스 영화 ‘계시록’(감독 연상호)에 대한 반응이 시큰둥하다. 그동안 개신교를 다룬 영화들은 크리처물 ‘기생수’( 감독 연상호)이거나 참혹한 사건이 배경이 된 오컬트물인 ‘사바하’(감독 장재현) 같은 성격이었다. 이에 비해 ‘계시록’은 크리처도 없고 오컬트스럽지도 않은 그냥 개신교 날 것의 영화다. 그것이 시큰둥한 반응의 이유일 수도 있다. ‘계시록’은 ‘기도하는 남자’(감독 강동헌, 2020년)에 가깝다.

성민찬(류준열분)은 소도시에 교회를 개척해 열심히 목회하는 젊은 목사다. 어느날 전자 발찌를 찬 성폭행 전과자가 교회를 찾았는데 성목사는 개척교회 목사답게 그를 친절하게 대접했다. 동창모임에 간다는 아내를 태워다 주면서 성목사는 자신의 교회 근처에 대형교회 체인점이 들어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 교회를 짓는 시공자는 성목사가 부목사로 오랫동안 일했던 교회로 그가 이 소도시에 오게 된 것도 아버지처럼 ‘모시던’ SKY평안교회 정국환 목사의 지시 때문이었다. 그는 이 건축현장이 자신을 위해 예비되어 있는 섭리로 생각하고 그 교회를 찾았으나 정목사는 자기 아들을 보낼 계획을 갖고 있었다. 정목사의 계획 속에 성목사는 아예 없었던 것이다.

불편한 마음을 진정 못하던 때에 어린이집에 아이를 왜 안 데리러 갔냐며 아이가 사라졌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는다. 그 전화 한통에 성목사는 성폭행범 권양래를 이미 아이의 유괴범으로 확신했다. 목사실에서 그를 대접하는 동안 권양래는 어린이집 앞에서 찍은 성목사 가족사진을 봤을 것이며 발목에는 전자 발찌가 있었기에 모든 것은 단정의 증거가 되었다. 권양래의 주소를 알아낸 성목사는 권을 미행한다. 권을 유괴범으로 확신한 성목사는절벽앞에서 싸우다가 권양래를 밀어 버렸다.

(이후에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성목사의 아이는 친구 집에 가 있던 걸로 확인되었으니 그는 애먼 사람을 죽인 셈이다. 죄책감에 정목사를 만났으나 정목사는 오히려 아들에게 주려고 했던 교회를 맡아 달라고 부탁한다. 밤 사이에 아들 목사와 젊은 여신도간의 부적절한 관계가 교회 게시판에 올라왔던 것이다.

이 모든 것이 SKY 교회 지부를 맡기 위한 섭리였다고 확신한 성목사의 아들은 찾았지만 학생부 여학생 하나가 실종되었다는 신고가 들어 온다. 권양래를 죽인 것도 불안한데 여학생 하나의 실종 때문에 교회로 모든 관심이 집중되었고 수사망도 좁혀지는 듯 했다.

철거 건물 벽에 쓰여진 D24=7, 여기서는 Demolition의 D일 가능성이 높은데 성목사에게는 그것이 신명기의 D로 읽혔다.
철거 건물 벽에 쓰여진 D24=7, 여기서는 Demolition의 D일 가능성이 높은데 성목사에게는 그것이 신명기의 D로 읽혔다.

이튿날 성목사는 아내가 봉사하는 노인병원을 찾았다가 피투성이가 된 채 산에서 내려와 노인병원에 잠시 맡겨진 권양래를 발견한다. 성목사는 119 구급대가 오기 전에 권양래를 빼내 폐건물로 데려 간다. 권양래는 여학생의 납치범이 맞았다. 권은 아직 학생이 살아 있다며 자신을 풀어 주면 여학생 있는 곳을 가르쳐 주겠다지만 성목사는 권에 대한 자신의 행각이 드러날까 풀어 줄 수 없다. 권을 폐건물에 묶어 둔 채로 여학생을 위한 기도회로 나설 때 폐건물에 페인트로 쓰여진 D24=7이라는 표식을 본다. 폐건물이니 철거를 위한 작업자들의 표식일 수 있을 터, 그러나 그것이 성목사의 눈에는 신명기(Deuteronomy) 24장 7절이라는 계시로 읽혔다.

사람이 자기 형제 곧 이스라엘 자손 중 한 사람을 유인하여 종으로 삼거나 판 것이 발견되면 그 유인한 자를 죽일지니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성목사는 이 구절로 설교를 하면서 권양래를 죽이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자신을 정당화한다. 동시에 그는 여학생의 부모가 보는 앞에서 여학생의 죽음을 선포해 버린다. 자신의 살인은 ‘말씀’으로 정당화되고 학생의 죽음은 그 정당화를 위한 희생양으로 이용하는 최악의 논리를 전개했던 것이다. 권을 살려야 여학생의 위치가 확인되는데 그 순간 성목사는 애먼(적어도 자신의 아들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을 절벽으로 떠민 범죄자가 된다.

기도회 후에 다시 폐건물로 돌아가서 권을 죽이려 한다. 돌이켜보니 성목사는 요 며칠 사이에 계시를 한 두번 경험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범죄를 저지를 때 마다 하늘에서 십자가가 보이거나 천사가 보였다. 성목사에게는 확신을 뒷받침하는 증거였다.

우여곡절 끝에 권은 죽고 성은 구속된다. (권에 대한 증오가 깊은 여경사가 등장하는데 그와 관계된 에피소드가 전체 사건과 삐걱댄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권양래를 담당했던 정신과 의사는 성목사의 증상을 아포페니아로 분석했다.

아포페니아(Apophenia)는 서로 연관성이 없는 대상 사이에서 의미 있는 연결을 인식하는 심리적 경향이다. 원어인 독일어 'Apophänie'는 정신 분열증의 시작 단계에 관한 1958년 출판물에서 정신과 의사 클라우스 콘라드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그것을 "비정상적인 의미의 특정 느낌과 함께 (동반되는) 연결에 대한 무의식적인 보기"로 정의했다. 그는 망상적 사고의 초기 단계를 환각과는 대조적으로 자기 참조적이고 실제 감각 지각에 대한 과도한 해석이라고 설명했다.(나무위키)

구름이 만들어낸 자연현상인데 성목사는 그것을 계시로 이해했다.  D24=7의 D도 철거현장이므로 Demolition(철거)의 표식일 가능성이 높은데 성목사에게는 모든 것이 그를 위한 계시로 보였다.

성민찬은 목회에 열정을 쏟던 좋은 목사였다. 아내의 불륜을 모른척하며 괴로워 하던 여린 목사였다. 모든 계시가 성목사가 SKY교회 지부의 담임목사를 확증하는 쪽으로 흘러갈 때 아내를 ‘감히’ 용서한다. 왜? 아내의 불륜이 교회 부임에 걸림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용서가 아니라 이용이다.

아포페니아 환자가 어디 성목사 뿐이던가? 2025년 계엄과 탄핵 정국의 길거리에는 ‘반탄’(탄핵반대)을 외치는 아포페니아 환자들로 가득하다. 서로 관계가 없는 개별적인 현상들이 중국스파이와 간첩으로 둔갑하고 부정선거론으로 귀결된다. 또한 성목사가 경험한 거짓 계시처럼 모든 증상은 이재명 후보와 연결된다. 그들 스스로가 ‘이재명 만물 기원설’에 집착하는 추종자가 된다는 것을 자신들만 모른다.

권양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로부터 가정폭력을 당한 피해자였다. 그는 외눈박이 귀신을 환영으로 보면서 자신이 괴물이 되었다. 성목사에게는 그런 트라우마는 없었지만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외눈박이 귀신이기는 마찬가지였다. 또한 극우 아포페니아 환자들은 ‘국가 폭력’의 시대를 겪었으면서도 그것을 극복못하는 외눈박이 귀신에 종속된 자들이다.

철거 건물에 있던 창틀. 외눈박이 귀신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형사에게 좋은 단서가 된다.
철거 건물에 있던 창틀. 외눈박이 귀신으로 사건을 풀어나가는 형사에게 좋은 단서가 된다.

감옥에서 성목사는 곰팡이와 벽의 떼가 만들어낸 예수의 얼굴을 본다. 더이상 환영에 속지 않는 그는 예수의 얼룩을 힘겹게 지워 나간다.

2025년 아스팔트의 우파들에게는 힘겹게라도 그들의 망상을 지워야 한다는 생각조자 없다는 것이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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