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진리와 사랑의 경계 위에 선 목회, 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 조선형 목사.
[시카고= 최병인 기자] 미국 시카고 지역,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가 깊이 스며든 이 도시에 102년의 시간을 품은 교회가 있다. 바로 '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Chicago First Korean United Methodist Church)'이다. 이 교회는 중서부 한인 이민교회 역사에서 ‘최초’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1923년 개척 이래 무려41년간 유일한 한인교회로 존재했으며 시카고 지역 한인 사회의 영적 중심이자 연합감리교단 내에서도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 매김 해왔다.
이 교회의 시작점은 남다르다. 초대 담임목사였던 고(故) 김창준 목사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으로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미국 땅까지 이어갔던 인물이다. 교회의 출발 자체가 이미 신앙과 민족의식을 품고 있었다 그런면에서, ‘어머니 교회’, ‘민족 교회’, ‘장자 교회’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영광의 역사 뒤에는 위기의 시간도 여러번 있었다. 최근 몇 년간 교회는 교단 탈퇴 및 동성애 이슈와 맞물려 내부적인 갈등으로 인해 큰 혼란을 겪었다. 이러한 때에, 이 교회에 새로운 담임으로 조선형 목사가 부름을 받았다. 조목사는 이 교회에서 2007년부터 4년 반 동안 전도사로 사역한 경험이 있다. 젊은 전도사로 찬양인도와 청년부 제자훈련, 행정 등 다양한 사역을 감당하며, 당시 3명뿐이던 청년을 30여 명 규모로 성장시키며 한어 청년 예배가 만들어지는 기적 같은 변화도 일구었다.
그로부터 십여 년 후, 12대 담임목사로, 교회가 100주년이 되는 해에 돌아왔다.
“이 교회에서 사역했던 경험으로 교회의 다이나믹을 잘 알고 있었기에 사실 그동안은 설사 담임목사로 초청이 온다해도 오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큰 아픔 속에 있게 된 소식을 듣고,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면서도 도 한편으로는 하나님께 이 아픔의 시기를 통해 교회으 마음을 낮추시고 부드럽게 하셔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 같다는 감동을 받고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조 목사는 교회의 분열과 아픔을 피하지 않았다. 부임 첫 주일 설교에서 자신의 부르심 이야기를 나누고 곧이어 가장 민감한 이슈였던 동성애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회피하지 않고, 그러나 누구도 정죄하지 않는 태도였다.
“누가 제게 동성애에 찬성인지 반대인지를 물으신다면, 저는 찬성하기도 하고 반대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만들어 한 몸 되게 하셨다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는 면에서는 반대가 맞습니다. 그러나 저도 다 알지 못하는 영역에서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 선교의 계획, 저들만의 숨겨진 고통과 아픔에 열려 있다는 면에서 찬성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찬반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이라면 그들의 겉과 속을 모두 사려 깊게 살피며 어떤 태도로 대하셨을 것인가에 대한 태도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누가 당신에게 동성애 찬성이냐 반대냐고 묻거든, ‘그 질문은 틀렸습니다’라고 답하십시오. 우리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위로 난 하늘길을 따라 사랑과 진리의 달음질을 하며 예수님의 발자취를 쫓아가는 교회일 뿐입니다.”
조 목사의 신학과 목회 철학의 핵심에는 감리교의 전통적인 두 축 즉 '개인 경건'과 사회 경건'이 자리한다. 그는 이를 ‘예배 사랑, 말씀 사랑, 교회 사랑, 이웃 사랑’이라는 네 가지 사랑의 언어로 표현했다. 이 네 가지는 그가 청년 시절부터 붙들어온 사역의 원리이며, 이전 담임교회(시카고 예수사랑교회)를 개척할 때도 적용되었던 DNA였다.
“하나님 사랑은 예배와 말씀으로, 이웃 사랑은 교회와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교회 안에만 머무는 경건은 불완전하고, 밖으로만 나가는 정의도 허약합니다. 두 축이 함께 가야 합니다.”
그는 시카고 예수사랑교회에서 10년간 목회하며 젊은 가정과 청년들 중심의 건강한 공동체를 일궜고, 연합감리교회 내 선교 모델로까지 인정받아 ‘브랜치 교회’를 세울 준비를 하던 중에 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로 파송되었다. 하지만 조 목사는 ‘시작이 달라야한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이 교회는 과거의 영광과 깊은 상처가 공존하는 그야말로 ‘겉과 속’을 모두 새롭게 치유해야 하는 공동체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철학은 101주년 창립주일에 드러난다. 많은 성도들이 역사적인 100주년 기념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아쉬움에 101주년에는 크게 셀러브레이션을 하기를 기대했지만 조 목사는 전혀 다른 제안을 했다.
“올해 창립주일엔 교회를 비웁시다. 아무도 예배당에 오지 마시고, 모두 흩어져서 다른 지역 교회에서 예배드리고 헌금도 그 교회에 드립시다.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첫 창립주일(101주년)에 예배당을 비우고 이웃 교회에 흩어져 예배하면서, 앞으로 겸손하게 건강한 주님의 교회가 되겠다는 우리의 고백으로 삼읍시다”
이 결단은 파격이었다. 그러나 성도들은 조 목사의 뜻을 따랐고, 흩어진 드린 예배는 곧 교회됨에 대한 깊은 고백이 되었다. 그리고 그날, 비어 있는 본당의 사진은 오히려 교회 회복의 상징이 되었다.
“교회의 분열과 혼란 이후, 최고령이신 여권사님께서 예배 후 본당 문을 나오시면서 두 손을 번쩍 드시고는 ‘우린 이제 살았다’하시는 외침을 듣는 순간, 우리 교회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와 같이 들렸습니다.”
재정적으로도 교회는 도전 앞에 섰다. 절반 가까운 성도들이 교단을 탈퇴하며 떠났고, 그 여파로 큰 예배당 건물 유지와 사역비, 교역자 사례등 반토막난 재정 상황으론 감당하기 쉽지 않았지만 교회는 흔들리지 않았다.
“돈은 줄었지만, 기쁨은 넘쳤습니다. 예배가 살아났고 공동체의 온기가 돌아왔습니다. 어쩌면 그 어느 때보다 ‘교회다운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교회의 리더들은 교회가 당한 어려움은 비록 고통스런 일이지만, 교회로서는 하나님 앞에 전화위복이 된것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조 목사는 이 모든 여정 속에서 ‘소문’과 ‘정죄’보다는 ‘관계’와 ‘공감’을 강조한다. 그는 연합감리교회의 교리와 장정을 토대로 신학적으로도 분명한 입장을 세우되, 성도들의 상황과 마음을 이해하는 목회를 이어간다. 그가 가장 자주 인용하는 구절은 바리새인들을 향한 예수님의 책망이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눅11:40)
그는 이것이 오늘날 교회의 가장 큰 도전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의 ‘속(사정)’을 살피려 하지 않고 법과 교리를 앞세워 ‘겉’만 서둘러 붙들려 할 때 주님의 몸인 교회는 자연스레 바리새인의 뒤를 따른다. 하지만 예수님은 겉과 속을 살피시며 율법을 온전케 하시는 분이시다. 예수님이 사람들의 속을 살피시기 위해 죄인, 세리, 창녀, 이방인, 문둥병자를 가까이 하시며 친구가 되신 것처럼, 교회도 그 길을 따라야 주님의 몸이다. 예수님이 그러셨듯 교회도 오해 받기 쉽고, 욕 먹기 쉬운 좁은 길로 다니는 것은 교회의 마땅한 정체성일 것이다.”
이런 신학과 목회의 중심에는 늘 진리이신 예수님이 있다. 그는 단언한다. “우리는 성경의 본문만이 아니라, 그 본문을 해석하는 나 자신도 오류 가능성이 있는 해석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겸손함이 교회를 살립니다.”
교회를 둘러싼 세상의 오해, 교단 내 복잡한 정치적 균열,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과 젊은 세대 간의 문화적 간극… 그 모든 것을 넘어, 조 목사는 지금도 십자가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중심축 삼아 목회 현장을 달리고 있다. 그는 지금의 교회를 ‘개척의 마음으로’ 다시 세워가고 있으며 매주 수요일마다 웨슬리 신학을 기반으로 한 ‘트리니티 성경공부’를 통해 신학과 목회철학을 성도들과 함께 나눈다.
마지막으로 그는 말했다.
“100년 넘은 교회가 새롭게 시작하는 건 기적입니다. 그러나 그 기적은 ‘한 사람의 희생’이나 ‘리더의 카리스마’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진리와 사랑 사이를 묵묵히 달릴 때 가능합니다. 저는 그 길을 기쁨으로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시카고한인제일연합감리교회는 새로운 백 년을 향해, 겉과 속을 함께 새롭게 하는 여정을 시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즐거운 표정으로, 겸손한 확신으로, 예수님의 길을 함께 걷고 있는 조선형 목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