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색 옷은 황제의 색이었다.
로마의 신화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복음서를 읽는 것은 큰 유익이 있다. 예수의 비유는 단순한 시대적 서술이 아니다. 로마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할 때, 예수의 이야기를 듣던 절대 다수 청중이 느꼈을 공감을 상상할 수 있게 돕는다. 이 글은 누가복음 16:19-31절, 흔히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로 알려진 본문을 다룬다.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이 본문에 나오는 '자색 옷'의 '자색'은 황제의 색이었다. 자색 염료((Tyrian purple, royal purple, imperial purple, imperial dye 등으로 표현한다)는 오늘날 레바논 지중해변에서 채취한 바다 달팽이(뿔고둥)로 만들었다. 1그램의 자색 염료를 만들기 위해 바다 달팽이 약 1만 마리가 필요했다. 당시 1그램의 가치는 약 300만 원, 500그램이면 금 1.5kg의 가격에 해당했다. 결국 자색 옷 한 벌 값은 수억 원을 훌쩍 넘었다.
그렇다면 로마 귀족들이 즐겨 입던 폭넓은 토가를 전부 자색으로 물들였다면? 그건 사실상 황제만 입을 수 있는 옷이었다. 일반 귀족들도 토가의 테두리에만 자색을 넣는 것이 허락되었고, 완전한 자주색 토가는 황제나 개선장군의 특권이었다. ‘팍스 로마나’를 구현하고 돌아온 장군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예우였다.
그렇다면 예수의 이야기 속 ‘자색 옷을 입은 한 부자’는 청중들에게 누구를 떠올리게 했을까? 아마도 로마 황제나 최고위층 권력자였다. 그런데 그가 하데스(음부)에 내려갔다. 하데스의 권세를 이기지 못한 것이다. 이 장면에서 당시 청중들이 떠올린 그림은 오늘날 우리가 성경을 읽으며 상상하는 모습과 꽤 달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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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하데스(로마명 플루토 Pluto)는 지하 세계의 통치자이자 ‘부의 신’으로 여겨졌다. 땅속의 금속·보석과 곡물, 모든 지하 자원을 지배했기 때문에 Dis Pater(부의 아버지)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그의 세계는 스틱스(Styx), 아케론(Acheron), 코큐투스(Cocytus), 플레게톤(Phlegethon), 레테(Lethe)라는 다섯 개의 강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 강들은 맹세, 슬픔, 통곡, 불, 망각을 상징했다. 죽은 자는 이를 건너야만 저편 세계에 도달할 수 있었다.
예수의 비유 속 ‘한 부자’는 하데스의 감옥에 갇혀 있었다. 26절에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갈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는 ‘부의 신’에게 사로잡혀 있었고, 다섯 강 중 어느 것도 건널 수 없었다.
절대 권력자이자 부자가 지하 감옥에 갇힌 장면을 떠올려 보라. 로마 제국에서 신으로 숭배받던 황제가 그의 수호신 중 하나인 하데스에게 갇힌 상황은 청중에게 어떤 느낌이었을까? 그리스·로마 신화를 익히 알고 있던 당시 청중에게 이 장면은 단순한 종교적 비유가 아니라, 생생하고 현실감 있는 이야기였다. 오늘날 우리가 읽는 ‘부자와 나사로’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을 것이다.
‘하데스의 감옥에 갇힌 로마 황제’로 바꿔보고 싶은 이 이야기는, 하나님께서 고통과 가난 속에 있던 나사로가 황제보다 더 귀하게 높여주신다고 말하는 듯하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식민지 백성에게 현재의 절대 권력과 신성한 질서가 영원하지 않으며 결국 무너질 수 있다는 해방적 상상과 저항의 동력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