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 군인의 하루 품삯도 아니었다.
“데나리온(denarius)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 또는 “로마 군인의 하루 품삯”? 성경을 읽고 가르치는 이들은, 예수 시대를 소개하면서, 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다고들 말한다. 나도 그렇게 배웠고 가르쳤다. 더하여 로마 군인의 하루 품삯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1 데나리온의 가치, 노동자의 하루 품삯, 로마 군인의 하루 품삯 등에 대해 짚어보자.
1 데나리온의 무게?
데나리온? 데나리온이 로마 세계에서 표준 일당이었던 적이 없다. (*Taylor Halverson, Was the Denarius a Daily Wage? A Note on the Parable of the Two Debtors in Luke 7:40-43. Interpreter: A Journal of Latter-day Saint Faith and Scholarship 36 (2020): 139-144. 142,)
1 데나리온의 가치는 대단했다. 고대 로마의 곡물가를 기준으로 최저 생계비를 추산하는 방식을 사용한 학자들이 있다. 이들 가운데는, 4인 가족 기준으로 팔레스타인의 연간 최저 생계비로 70 데나리온을 꼽기도 한다. 그 추정에 따르면 한 데나리온은 5일 치 또는 한 주 생계비에 해당하는 셈이었다.
몇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예수 시대는 화폐 경제였나? 노동의 대가로 화폐가 아닌 곡물 등으로 받는 경우가 더 일반적이지 않았을까? 노동자의 하루 치 품삯(어느 지역의, 어떤 직종의, 어느 국적과 신분의 노동자였을까?)이었다고 일컬어지는 한 데나리온(은화), 이 돈을 한 번도 손에 쥔 적이 없는 가난한 백성도 있었을 것 같다. 100달러 지폐 한 장, 5만 원 권 지폐, 10만 원권 수표 한 장을 죄어본 적도 써본 적도 없는 서민이 존재하는 것처럼, 그때도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날의 예를 들어 보자. 오늘, 미화 1달러, 1달러의 경제 가치는 얼마나 될까? 같은 시대를 살아도, 나라와 지역에 따라 달러의 환율은 물론이고 구매력은 다르다. 같은 나라라도 하여도 시대와 직업, 직책, 직위 등에 따라 받는 월급이나 일당은 다르다. 한국에서 대학졸업자 월급이 20만 원을 넘었을 때가 80년에 들어서이다. 1990년에는 41만 원, 1996년 125만 원, 2000년 144만 원, 2010년 258만 원, 2020년 262만 원이었다. 한국은 같은 직위였어도 학력에 따라, 남녀에 따른 임금 차별이 존재했다. 미국은 2020년 대졸자 초봉이 4,600달러 정도였다. 2020년 그 해의 평균 환율 1,179원을 적용한다면? 월 550만 원 정도였다.
1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
로마 제국을 지배를 받던 1세기 초, 노동자의 하루 품삯은 얼마였다? 1데나리온? 아니다.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던 땅, 고대 이스라엘 지역(학자들은 로마 팔레스타인 Roman Palestine으로 지칭한다.) 그것도 예루살렘 밖에서 막노동하던 이들이 있다. 1세기 초반이나 후반, 로마의 식민지 이스라엘에 살던 노동자들은, 로마나 로마제국의 주요 도시에 살던 이들이 받던 것보다는 더 낮은 일당을 받았을 것이다. 그것은 1데나리온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었을 것이다.
“예레미아스(J. Jeremias)가 언급했듯이, 당시 일일노동자들은 그 수가 노예들보다 훨씬 많았고 먹여주는 것 외에 평균 1데나리온을 받았지만, 일거리를 구할 수 없는 열악한 상황에 종종 직면했다.”(*전병희. "포도원 주인의 비유와 마태의 의도." 신약논단 24.2 (2017): 203-236. 208.) “노동자들은 온종일 일하고서 통상적인 일당이었던 한 데나리온을 받았다“(*George Eldon Ladd, A Theology of the New Testament, 1993. 132.) “노동자의 평균 일당은 한 데나리온이었다.“(*Joachim Jeremias, Jerusalem in the Time of Jesus. S.C.M. Press, London, 1969. 102.) ”일용직 노동자는 노예보다 더 많았다... 이들은 하루에 한 데나리온을 벌었다(마 20:2, 9)”(*Joachim Jeremias, Jerusalem in the Time of Jesus. S.C.M. Press, London, 1969. 111.). ”한 데나리온은 일용직 노동자의 통상적인 최소 일당이었다”(*Richard Q. Ford, Jesus' Parables Speak to Power and Greed, Confronting Climate Change Denial, 2022. 60. Craig A. Evans, Matthew, New Cambridge Bible Commentar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2. 350. De Boer, Martinus C. “Ten Thousand Talents? Matthew’s Interpretation and Redaction of the Parable of the Unforgiving Servant (Matt 18:23-35).” The Catholic Biblical Quarterly 50, no. 2 (1988): 214–32. 228. Arland J. Hultgren, The Parables of Jesus: A Commentary, W.B. Eerdmans, 2000. 23.)
그런데 이런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자연스럽지 않다. 여러 질문이 떠오른다.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라는 표현에 등장하는 예수 시대 당시에 노동자는 누구를 뜻하는 것일까? 그 시대는 노동의 종류와 정도, 특성과 관계없이 같은 품삯이 제공되었다고 봐야 할까? 로마인과 비로마인, 식민지 백성 사이, 남자와 여자 사이, 노예와 시민, 외국인 사이에 차이나 차별 없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로마 본토와 식민지 사이에 같은 하루 품삯이 규정되어 있었다고 보는 것일까? 제국의 수도 로마와 제국 내 주요 도시, 농촌지역과 식민지의 대도시와 농촌 지역에 차별이 없었다고 봐야 할까? 노동하는 지역, 노동자의 신분, 경험, 노동의 종류와 강도 등에 차별 없이 같은 품삯이 제공되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렇게 볼 여지는 적다. 아니 없다. 2천 년 전 실제 노동자의 품삯은 얼마나 되었을까? 이 질문은 사실, 적절하지 않다. 예를 들자면, "2024년 한국 근로자의 하루 일당은 얼마인가?" 하는 질문처럼, 답이 없는 질문일 뿐이다. 같은 시간을 일해도, 같은 일을 해도 지역과 개인의 신분, 계급, 직급, 직위, 직책, 고용된 조직, 단체, 회사, 기관 등에 따라 제각각일 것이다.
사회경제사적 접근을 통해 고대 로마제국 시대의 물가와 임금 등을 추적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정확한 노동자의 품삯을 단지 추론을 할 뿐이다. 그럼에도 시대상을 짚어가는 것은 의미가 있다. 1세기 후반기의 로마 제국의 비숙련 노동자의 품삯은 3/4 데나리온에서 1데나리온 정도였다.(*Temin, Peter. The Economy of the Early Roman Empire,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Volume 20, Number 1?Winter 2006?133?151. 138.) 로마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로 꼽히는 폼페이가 있다. 폼페이가 무너지던 79년경의 기록에 따르면, 폼페이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1/2 데나리온 정도였다. 하루에 1/4 데나리온에서 1데나리온 사이였다.(*Vagi, David. Coinage and History of the Roman Empire, c. 82 B.C. - A.D. 480. 1 & 2-Routledge (2016) (vol. 2) 21.) 로마의 지배를 받던 알렉산드리아의 경우, 비숙련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1/4 데나리온 정도이거나 조금 높았을 뿐이라고 추론한다.(*Scheidel, Walter and Steven J. Friesen. “The Size of the Economy and the Distribution of Income in the Roman Empire*.” Journal of Roman Studies 99 (2009): 61-91. 71.)
식민지 고대 이스라엘의 품삯이 로마나 제국의 대도시보다 얼마나 더 낮았는지 알기 어렵다. 그렇지만, 로마제국의 수도 밖에서 더 낮았다는 것을 고려하여야 한다.(*Temin, Peter. The Economy of the Early Roman Empire,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Volume 20, Number 1 Winter 2006, 133-151. 135.) 로마 제국의 로마의 화폐가치와 점령지 알렉산드리아의 화폐 가치도 같은 것이 아니었다. 로마 제국의 이집트 지방의 품삯보다 로마 안에서의 임금 차이가 3, 4배가 되었다고 추론하기도 한다.(*Temin, Peter. The Roman Market Economy.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3. 254.)
78~79년 사이에 이집트의 농장 노동자 품삯이 1/4-1/2 데나리온으로 매달 13데나리온을 벌었다고 한다.(*Louis C. West, The Cost of Living in Roman Egypt, Classical Philology,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Jul., 1916, Vol. 11, No. 3 (Jul., 1916), 293-314, 304-305.) 75-125년 기간에 이집트의 농장 노동자들은 1/3-5/6(3-7 오볼) 데나리온을 받았고, 음식과 물을 받았다.(*W. Harl, Kenneth. Coinage in the Roman Economy, 300 B.C. to A.D. 700,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1996. 279.) 1세기 말에는 평균 노동자 수입을 253데나리온으로 추론하기도 한다.(*Bas van Leeuwen, Reinhard Pirngruber, and Jieli van Leeuwen-Li , The standard of living in ancient societies: a comparison between the Han Empire, the Roman Empire, and Babylonia. 4.)
1세기 초, 로마의 지배를 받던 예루살렘, 유대, 갈릴리 지역의 식민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은 얼마나 되었을까? 1세기 후반보다 임금이 더 낮았을 것을 고려한다면, 하루 1/4데나리온 이하로 볼 수 있다.
1 데나리온은 로마 군인의 하루 품삯?
1데나리온은 로마 군인의 하루 품삯이었을까? 아니다. 무엇보다도 ’로마 군인‘이라는 표현은 모호하다. 로마 제국의 보병, 기병, 창병, 사수 같은 역할의 구분과 백인부대, 대대, 군단 같은 편제상의 구분도, 그리고 일반 사병과 백인부대장(백부장), 수석 백부장, 군단장 같은 계급의 차이, 시리아, 이집트, 유대 지방 파견 군단 소속, 해군과 육군, 제국의 중심 로마를 수호하던 수비대 병사 등에 다른 차이가 존재했다. 그런 까닭에 ’로마 군인‘이라는 표현은 불분명하다. 로마 군인의 급여는 매년 세 차례, 1, 5, 9월에 제공되었다.
1세기 초, 예수 시대, 로마 시민과 비시민 사이의 급여 차이도 크게 존재했다.(Speidel, Michael. (1992). Roman Army Pay Scales. Journal of Roman Studies. 82. 87-106.) 보조병은 75데나리온, 시민 보병은 225데나리온을 연간 받았다. 1세기 후반에서 2세기 후반 사이, 로마 시민으로 구성된, 로마 군단병들은 1년에 300데나리온을 받았다. 백부장은 4,500데나리온을, 군단의 수석 백부장은 18,000 데나리온, 군단장은 5만 데나리온을 받았다. 이는 군단병 167명분의 임금에 해당한다.(개릿 라이언, (2022), <거꾸로 읽는 그리스 로마사>, 다산초당) 그런데 이 급여에는 음식비와 옷을 비롯한 장비 비용이 포함된 것이었다. 보병 기본 급여 가운데 연간 100데나리온이 공제되기도 했다.(Speidel, Michael. (1992). Roman Army Pay Scales. Journal of Roman Studies. 82. 87-106. M. A. Speidel. (2009), Heer und Herrschaft im Römischen Reich der Hohen Kaiserzeit, Stuttgart, 360)
정리
예수 시대,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도 로마 군인의 하루 급여도 아니었다.
로마의 지배를 받던 식민지의 백성에게 1데나리온의 가치는 결코 작지 않았다. 포도원 품꾼 비유가 새롭게 읽힌다. 포도원 품꾼에게 일한 시간과 관계없이 한 데나리온을 주는 포도원 주인의 이야기는 독특하다. 그것은 현실의 반영이나 풍자가 아니라 판타지로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