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톺아보기)이종섭 때문에 다시 소환되는 호주와 죄수

레이디 줄리아나 호는 여성 죄수만 태운 선박이었다. 1788 영국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700 명의 영국 죄수를 비롯해 군인, 관리자 1,400명이 승선한 영국 1함대의 죄수 호송선이 지금의 보타니베이(Botany Bay) 거쳐 시드니 코브(Sydney Cove) 상륙했다. 영국은 식민지이던 미국을 독립전쟁으로 빼앗긴 때였고 프랑스는 영국보다 한걸음 늦게 호주에 도착해서 땅에 군침을 흘릴 때였다. 영국의 선점권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다. 본래1770 제임스 (James Cook) 선장이 보타니베이에 도착하고 주변 지역을 조사한 자신의 고향인 사우스 웨일즈(South Wales) 이름을 ‘뉴사우스웨일즈’(New South Wales) 불렀지만 대륙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았다. 든든한 미국이 식민지로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이 독립한 영국은 생각이 바꼈다. 결국 땅에 식민지 건설을 위해 필요한 인력을 죄수로 채우게 됐던 것이다. 1788126, 1534 죄수와 선원들은 호주 시드니 보타니만에 도착했고 죄수 호송의 역사는 1868 19 269명의 죄수 호송으로 완전히 막을 내렸다.

이런 죄수 호송의 과정에 알려지지 않은 다른 역사가 있으니 레이디 줄리아나 호가 나른 여죄수 호송 기록이다. 영국은 호송된 남죄수들을 위해 여죄수들을 호송하기로 결정하고 그들을 줄리아나 호에 태워 1789 7 주에 영국 해안을 떠났다. 남성 죄수들이 호주에 도착한 18개월 후에 떠난 이들은 10개월 간의 여정으로 시드니 코브에 도착했다. 죄수 호송선이 7개월이 걸렸던 것에 비해 3개월이 길린 항해였다. 여성들은 배의 밑창 바로 위인 올롭(orlop) 갑판에서 지냈다. 그곳은 음식 잔해, 배설물 등을 포함한 각종 쓰레기들이 모이는 곳이었다. 와중에서 항해 중에 승무원들의아내 여성들은 특혜를 누렸다. 심지어는 안에서 매춘업을 하는 죄수도 있었다. 남성죄수들을 태운 배보다 3개월이 걸린 것은 중간 기항지에서 승무원들과 죄수들이 함께 매춘업을 했기 때문이다.

레이디 줄리아나 호
레이디 줄리아나 호

 

200명이 넘는 여성과 안에서 얻은 7명이 신생아들이 시드니 코브에 도착했다. 200년이 지난 , 현대 호주의 여성이 그들의 조상들이 어떻게 레이디 줄리아나호에 탑승하게 되었는지를 밝혀냈다. 태즈메이니아 교구의 성공회 신부 헬렌 필립스는 매춘부 레이첼 호디의 후손이었다. 정부 고위 연구원인 델리아 드레이는 밀가루를 조금 훔친 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마쉬의 후손이며, 성공적인 은행 커뮤니케이션 매니저 메이건 벤슨은 다른 아이의 옷을 훔친 혐의로 사형 선고를 받은 빈민가의 11 거리 어린이 메리 웨이드의 친척이다. 메리 웨이드는 호송된 여죄수 가장 어린 11살이었다..

필립스, 드레이, 벤슨은 그들의 조상들이범죄자 낙인찍혀 추방되었지만 레이디 줄리아나호에 탑승했던 225명의 여성 많은 수가 호주의 건국 어머니들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출산을 돕는 조산사가 되어 나머지 형기를 마친 엘리자베스 바른슬리도 돈을 벌었고, 드레이의 조상 레이첼 호디는 유일한 여성 주점 운영자가 되어말과 신랑The Horse and Groom’ 운영했다. 마쉬는 파라마타 보트 서비스를 창립하여 호주 최초의 위대한 여성 기업가가 되었으며, 서비스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11 사형수로 호주에 건너 메리 웨이드는87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300명이 넘는 가족 구성원을 가진 다섯 세대의 가모장(家母長) 되었다.

호주 정부는 죄수들이 세운 나라가 아니라 관리들이 먼저 왔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죄수 건국론을 애써 부정하지만 민간에서는 죄수노동자의 역사를 추적하면서 그들이 호주 사회에 기여한 긍정적인 면을 찾는다. 남녀 모두 범죄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참정권을 요구한 차티스트chartist 운동의 가담자들, 노숙자, 죄수들의 엄마들이 자녀와 함께 경우도 있었다. 위에 소개된 여성들의 죄만 보아도 황무지(당시 기준으로) 보내져야 정도의 범죄는 아니었다. 매춘, 밀가루 도둑, 옷을 훔친 가난에 떠밀린 범죄다. 심지어 11살짜리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영국정부의 문제가 심각하다.

따라서 호주와 죄수를 연결짓는 일은 시대 착오적이다. 하지만 시대착오적인 인식이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다시 소환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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