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사가 멜기세덱을 소환한 이유-인문학으로 읽는 창세기(5)

아브라함으로부터 십일조를 받은 멜기세덱, 그는십일조 훗날 한국 교회에서 논쟁의 중심에 선다는 것을 알았을까? 그렇지 않다. 멜기세덱의 이야기에서십일조만을 집어 것은 목회자들의 작품이다.

멜기세덱은 신비의 인물이다. 중세의 탈무드 연구가들이 밝혔듯이 멜기세덱은 성서의 이야기에 갑자기 침입한 인물이다. 요즘 말로 하면 그의 등장은갑툭튀’(갑자기 튀어나온) 사건이다.

노아를 설명하기 위해 지루하게 이어지는 아담의 족보에 멜기세덱은 등장하지 않다가 창세기 14장에 와서야 이름이 처음 나온다. 창세기 12장부터 이전의 인물들을 모두 제치고 주인공으로 부상한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의 조우는 뜬금이 없다. 신약에서 유일하게 멜기세덱을 다루는 히브리서 저자도 이런 말로 자세한 설명을 회피한다.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말이 많이 있지만, 여러분의 귀가 둔해진 까닭에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히브리서 5:11)

 

아브라함 당시 가나안의 주류인 4부족(시날 아므라벨, 엘라살 아리옥, 엘람 그돌라오멜, 고임 디달) 맞서 5 부족(소돔 베라, 고모라 비르사, 아드마 시납과, 스보임 세메벨, 소알 왕으로도 불리는 벨라 ) 반란을 일으켰다가 패하고 소돔에 있던 롯마저 포로로 끌려 간다. 조카의 납치 소식을 알게 아브라함은 겨우 318명의 군사를 데리고 주류 부족을 추적해 그들을 물리치고 조카를 구해낸다. 반란군이 전쟁을 아브라함은 이겼다. 성서에 등장하는 전쟁들의 규모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승전의 기쁜 마음으로 돌아오던 아브라함과 살렘왕 멜기세덱의 조우에서 멜기세덱은 떡과 포도주로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아브라함은 그에게십일조 바친다.

정의와 평화를 의미하는살렘 실제 부족의 명칭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는가장 높으신 하나님( 엘리온) 제사장’(창세기 14:18)으로도 불리는데 멜기세덱이 제사장이 아니라 엘리온 자신이라는 해석도 존재한다. 사해 사본 일부에서 멜기세덱을 메시아의 속성을 가진 존재로 여긴다.

루벤스,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의 만남, 1625년
루벤스, 아브라함과 멜기세덱의 만남, 1625년

 

성서의 흐름만으로만 보면 엘리온의 제사장보다는 엘리온 맞다. 그가 제사장의 원형 이라면 창세기의 이후 이야기에서도 제사장이 언급되어야 한다. 하지만 창세기에서 여기 말고 처음으로 제사장이 언급되는 곳은 오히려 요셉의 장인 온의 제사장 보디베라(창세기 41:50) 경우다. 다시말해 이방종교의 제사장이 멜기세덱 이후 처음 등장한 제사장이다.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은 400여년이 훨씬 지난 출애굽기에서야 비로소 나온다. 멜기세덱이 제사장이라기 보다는 신적 존재 자체로 여기는 것이 설득력을 얻는게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이런 신적 존재가 아브라함에게 축복의 내용은 무엇이었을까?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인 파울로 코엘료의연금술사에는 멜기세덱이 아주 중요한 인물로 나온다. 연금술사에서 그의 등장은 창세기 만큼이나 뜬금없다. 양치기 산티아고가 보물을 찾아 여행을 시작하려던 무렵 멜키세덱(연금술사의 표기법) 나타나서 자기를 소개한다.

 

이보게, 나는 살렘의 왕이라네!”

세상엔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때로는 물과 먹이를 찾는 일에 만족하며 말없는 양들과 함게 있거나 원하기만 하면 언제나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들과 함께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 어떻게 대화를 이어나가야 할지 없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 이름은 멜키세덱일세. 헌데 자네는 양을 마리나 가지고 있나?” 노인이 말했다. "필요한 만큼 가지고 있습니다." 노인은 산티아고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하는 같았다.

"그렇다면 문제로군. 자네가 양을 필요한 만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자네를 도와줄 없으니 말이야”.산티아고는 화가 났다 '누가 언제 도와달라고 했나. 포도주를 청하고 말을 걸고 책에 관심을 보인 것은 정작 노인이 아닌가’.

책을 돌려주세요. 이제 양들을 찾아서 가던 길을 가야 하니까요.”

자네가 가진 양의 십분의 일을 내게 주게. 그러면 보물을 찾아가는 길을 자네에게 가르쳐 주겠네.”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문학동네)

창세기와 연금술사의 멜기세덱의 공통점은 십일조다.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목회자도 아닌데 굳이 십일조 이야기를 넣었을까? 그나마 창세기에서는 아브라함을 축복한 감사의 표시라는 인과관계라도 있지 연금술사에서는 길을 떠나는 가난한 양치기에게 확실하지도 않은 보물을 찾게 해주겠다며 십일조를 바치라고사기 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십일조의 비밀이 숨어 있다. 십일조는 1/10이라는 계량(計量)가능한 숫자로부터 오히려 벗어나라는 뜻이다. 멜기세덱은 승전 자신감으로 가득찬 아브라함에게 밑도 끝도 없이 복을 빌어 준다. 아브라함은겨우’ 10분의 1 바치지만 이것은 그의 실수였다.

실수를 금방 깨달은 아브라함은 그가 회수해 소돔왕의 소유물을 모두 돌려 준다.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사람들은 나에게 돌려 주시고, 물건은 그대가 가지시오."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말하였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가장 높으신 하나님께, 나의 손을 들어서 맹세합니다. 그대의 것은 실오라기 하나나 신발 하나라도 가지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 덕분에 아브람이 부자가 되었다고는 절대로 말할 없을 것입니다나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겠습니다. 다만 젊은이들이 먹은 것과, 나와 함께 싸우러 나간 사람들 아넬과 에스골과 마므레에게로 돌아갈 몫만은 따로 내놓아서, 그들이 저마다 몫을 가질 있게 하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4:20-24)

 

열의 하나의 비밀을 알게 아브라함은 소돔왕의 모든 것을 돌려 주었을 뿐더러 보상(십일조) 바라지 않는다. 바란다면 그가 소돔왕에게 증여(아브라함에게는 전리품이었으므로 증여가 맞다. 그래서 소돔왕도 물건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하고 있었다)했던 재물의 일부가 아브라함을 도왔던 부족의 병사들에게 다시 증여되기를 희망했다.

연금술사의 멜키세덱도 마찬가지다. 보물을 찾겠다는 양치기 산티아고에게자네가 () 필요한 만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는 자네를 도와줄 다고 말한다. ‘필요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계량(計量) 영역이다. '보물', '필요', '양의 마리수' 등 산티아고는 소유와 획득에만 관심이 있었으므로 멜키세덱은 더 이상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결국 보물을 얻지 못한 채 고향으로 돌아온 산티아고의 이야기는 '지금 있는 자리가 가장 소중하다'는 뻔한 결론이지만 멜기세덱을 소환함으써 코엘료는 상투성을 비켜간다.

파울로 코엘료야 말로 어느 성서학자도 해내지 못했던 멜기세덱의 열의 하나의 개념을 해석했다. 다시말해 사랑이 담긴 증여관계에서 숫자는 그냥 허수(虛數) 뿐이라는 진리 말이다. 창세기에서도 멜기세덱이 빌어준살렘(평화)’ 주제지열의 하나 허수, 영화 용어를 빌어 오자면 관객을 속이기 위해 배치한 맥거핀에 지나지 않는다.

 

그의 거의 모든 책이 번역되어 출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알려진 프랑스 사상가 조르주 바타이유는획득 아니라증여 문명의 생존 원리라고 주장한다. 과잉된 에너지가 쌓이면 사회는 파멸한다. 바타이유는이윤추구를 목적으로 잉여를 축적하기만 하는 탐욕적 자본주의, 과잉에너지를 특정 집단 조직에 강제적으로 귀속시키는 파시즘, 공동의 생존을 위해 잉여를 축적하는 것을 공산주의로 분류한다. 어떤 체제든 소비는 없고 축적만 있다는 지적이다.

나는 코엘료가 바타이유로부터 통찰력을 얻었다고 확신한다. 멜키세덱이 그 표증이다. 사랑도 전쟁도 종교도 모두 소비에 집중해야 한다는 바타이유의 입장에서 아브라함을 보면 소비하러 전쟁에 나간 것이 아니라 획득하러 나갔다. 살렘왕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굳건한 위치를 아브라함에게 보장해 주기 위해서라도 그를 만나야 했다. 하찮아 보이는 떡과 포도주를 줌으로써 소비와 증여의 의미를 아브라함에게 가르쳐 주었다. 감사 표시에서 아브라함이 서툴기는 했지만.

넷플릭스 드라마 '갯마을 차차자'에서 홍두식(김선호 ) 모든 이웃에게 자기 것을 내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는 명문의 학벌마저도 버렸다. 홍두식의 서재에는 바타이유의 저서 '에로티즘'이 꽂혀 있다. 드라마 작가는 홍두식의 삶의 방식을 바타이유에서 찾았다는 방증이다.  드라마는 영화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감독 강석범, 2004) 리메이크 것인데 오늘 영화제목이 멜기세덱에게 어울린다.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멜기세덱.’ 이렇게 갯마을 차차차와 바타이유, 그리고 연금술사, 멜기세댁은 '소비'라는 한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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