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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탄생 기록들, 왜 이토록 다른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에 관한 기록은 네 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나온다. 동정녀 탄생은 사도신경에서도 언급될 만큼 아주 중요한 교리인데도 불구하고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나오지 않는다. 특히 공관복음이라고 부르는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에 관한 기록이 비슷하다고 말하는데, 왜 동정녀 탄생이 마가복음에는 나오지 않는가? 그리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두 가지 예수님의 탄생기록이 아주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성서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두 복음서에 기록된 동정녀 탄생 이야기에서 예수님의 출생 연대가 서로 다르다고 한다. 예수님이 헤롯 왕 시대에 태어난 것으로 언급된 마태복음에서는 헤롯이 기원전 4년에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기원전 4년 이전에 태어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구례뇨가 기원후 6년에 총독에 임명되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모가 구례뇨 총독의 호구조사 명에 따라 베들레헴에 올라갔다고 하는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은 기원후 6년 이후에 출생했다. 일반 독자들이 이 출생 연대의 차이를 간파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두 가지 예수님의 출생기록에는 독자들이 쉽게 그 차이를 알아볼 수 있는 것이 많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예수님을 처음 경배한 사람들의 차이다. 마태복음에는 동방박사들이 별을 보고 예수님을 경배하러 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목자들이 예수님이 출생했다는 천사들의 노래를 듣고 아기를 경배하러 왔다. 동방박사들은 아기에게 경배하고 세 가지 귀한 예물을 드렸지만, 목자들은 빈 손으로 와서 출생한 아기가 구주라는 천사들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살던 곳과 아기가 출생한 장소가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마태는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집에서 예수님이 태어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누가는 예수님의 부모가 나사렛 사람들인데, 호구조사 때문에 베들레헴에 갔다가 거기 마구간에서 아기를 낳아서 말구유에 눕혔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이 탄생한 직후 두 복음서에 기록된 요셉과 마리아의 행적이 전혀 다르다. 마태복음에는 헤롯이 아기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에 그들이 애굽으로 피신했다가 헤롯이 죽은 다음에 헤롯의 아들 아켈라오의 눈을 피해서 그들이 살던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나사렛으로 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는 예수님에 대한 헤롯의 적의가 언급되어 있지 않고, 예수님의 부모가 정결예식을 위해서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는 요셉이 중심 역할을 하는데, 누가복음에서는 마리아가 중심에 있다. 마태는 주의 사자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마리아가 성령에 의해 잉태할 것이라고, 그 아기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고 말한다. 그리고 동방박사들이 돌아간 후 다시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해서 애굽으로 피하라고 말하고, 헤롯이 죽은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요셉에게 알려준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그녀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고한다. 그리고 마리아가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올린다. 목자들이 아기를 경배하러 와서 천사들이 구주가 나셨다고 한 말을 전할 때, 그 말을 마음에 새기는 사람은 마리아다.

두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탄생 이야기가 이토록 서로 다른 것을 보면, 이 두 이야기를 기록한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의 탄생 기록과 결부시켜서 두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족보를 살펴보지 않을 수 없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예수님 가문의 족보가 나오는 자리가 다르다는 점이다. 마태복음에서는 맨 첫머리에 족보가 언급되어 있고, 누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세례를 받는 장면 직후에 나온다. 그러나 족보가 나오는 자리가 다르다는 것은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족보의 나열 순서도 두 복음서의 기록이 각각 다르다. 마태복음에서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식으로 맨 위의 조상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 예수님이 언급된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역순으로 아래서부터 이름이 나열되어 있다.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로 시작해서 ‘그 위는 아담이요 그 위는 하나님이시니라’고 끝난다. 이렇게 순서가 반대로 기록된 것이 이상하게 보이지만, 그렇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주 이상한 것은 족보에 언급된 많은 인물의 이름이 다르다는 점이다. 마태복음에는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로 되어 있는데, 누가복음에는 예수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그 위는 맛닷이요 그 위는 레위요’로 되어 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에 언급된 예수님의 조부, 증조부 등이 누가복음에 나오는 조부, 증조부 등과 다르다. 그 두 가지 족보에 아브라함, 야곱, 이삭, 다윗, 요셉 등 주요 인물들은 공통으로 언급되어 있지만, 사람들의 이름이 대부분 같지 않다.

한 사람이 이렇게 다른 두 가지 족보를 작성했다고 볼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다른 족보의 작성자는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리고 두 복음서에 나오는 탄생 기록의 문체가 다르다. 마태복음에서는 아기가 성령으로 잉태된 사실을 간결하게 기록하면서 천사가 요셉에게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알려준다. 그리고 마태는 42대에 걸친 족보를 14대씩 세 부분으로 질서 정연하게 나누었다. 여기서 그의 문체가 논리적이고 이성적이고 산문적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태어날 아기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해줄 뿐 아니라, 마리아의 찬가, 천사의 찬송, 시므온의 찬송을 통해서 예수님의 영광과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노래하기도 한다. 그래서 누가복음에서는 구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축제 분위기가 연출되어 있다.

사람마다 문체가 다르기 때문에, 두 글의 문체가 다르면 그 글들은 각각 다른 사람이 쓴 것이라고 판단한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문체가 다른 것을 보면 두 복음서의 기록자가 다른 것이 분명하다.

이제 마리아가 구주 예수를 성령으로 잉태했다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서 왜 마태와 누가가 이렇게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좀 더 분명한 답을 찾아야 할 차례다. 우리는 지금까지 두 사람이 그 사건을 기록했기 때문이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소위 공관복음이라는 범주에 드는 복음서들이다. 공관복음이라는 단어는 그 두 복음서에서 드러나는 관점이 같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두 사람이 기록했더라도 그들의 관점이 같다면, 두 복음서가 같게, 혹시 다르더라도 아주 비슷하게 기록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실상 예수님에 대한 마태와 누가의 관점은 아주 다르다.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유대인의 왕으로서의 예수님을 부각시키려 했고, 누가는 소외된 자의 편에 선 예수님을 나타내려 했다. 위대한 왕으로서의 예수님과 소외된 자들의 친구로서의 예수님을 부각시키려는 그 두 기록자의 노력이 동정녀 탄생에 관한 두 복음서의 기록 곳곳에서 발견된다.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마태는 이스라엘의 왕으로 구성된 족보를 열거했고, 소외된 자들의 친구로 오신 예수님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누가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구성된 족보를 만들었다. 그리고 예수님이 권위 있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다고 믿은 마태는 요셉이 수태고지를 받은 것으로 기록함으로써, 사회적 강자인 남성을 중심에 세웠다. 그러나 예수님이 소외된 자들의 편에 섰던 분이라고 믿은 누가는 약자인 마리아가 수태고지를 받은 것으로 기록했다.

마태는 유식하고 부유한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를 찾아와서 값비싼 예물을 드렸다고 기록한 반면, 누가는 무식하고 가난한 목자들이 빈 손으로 와서 천사의 기쁜 소식을 전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는 아기가 베들렘에 있는 부모의 집에서 출생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누가복음에는 마구간에서 출생했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탄생 장소를 마구간으로 설정함으로써 누가는 예수님이 소외된 사람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동방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묻자 헤롯왕이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예수님을 죽이려 했다고 기록된 것을 보면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탄생은 왕과 왕의 대결로 그려지고 있다. 이 대결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신해야 했다. 그러나 누가는 요셉과 마리아를 시골 마을 나사렛에서 산 사람들로 설정해서 그들이 소외된 자들이라는 것을 드러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기록자가 각각 자기가 생각하는 예수님 상에 맞게 인물, 장소, 사건을 설정한 것을 보게 된다. 따라서 복음서들이 객관적인 역사적 기록이 아니고 기록자들의 주관이 반영된 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즘 신학자들이 성경을 문학작품으로 보는 이유가 여기서 드러난다.

지금까지 우리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탄생 기록이 아주 다르다는 것과 두 복음서의 기록이 다른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예수님의 두 가지 탄생 기록이 이토록 다른 것은 두 사람이 그 복음서들을 기록했기 때문이고, 특히 그들의 예수님에 대한 관점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 예수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것은 그 복음서들을 기록한 사람들이 동정녀 탄생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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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석  jschoi@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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