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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섬을 다녀간 도깨비

“목사님, 몸이 많이 나아지셨습니까? 얼굴은 전보다 더 좋아지셨던데요”

“파킨슨병은 나아지지는 않습니다. 약을 잘 쓰면 진도가 좀 느릴뿐이지요”

난 3년짜리 파킨슨 환자다. 시간이 갈수록 악화돼 간다. 난 파킨슨과 친해지려고 애쓴다. 내 몸 일부분으로 받아드린다. 매일 도파민약을 네 알 먹는다. 고급 인삼정과 흑마늘을 복용한다. 내 몸을 위해 먹는 게 아니라 파킨슨에게 대접하는 특별 메뉴로 생각한다. 아침에 일어나면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어준다. 명상과 독서를 끝내고 아침을 먹고 나면 왜 그런지 졸리다. 11시쯤 바닷가로 걸어 나간다.

나는 혼자서 걷는다. 누구와 함께 걷고 뛰고 떠들어대면 상대방에게 지장을 준다. 내 걸음과 말이 느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혼자 걷고 혼자 구경하고 혼자 사색한다. 그것도 천천히... 천하 우주를 혼자 독점한 자유인이 된 기분이다.

고향의 어린시절, 어머니는 우리 7남매에게 맛있는 음식을 나눠주셨다. 동생들은 맛있다고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난 천천히 오래오래 씹어 맛을 즐겨가면서 먹었다. 먼저 먹어치운 동생과 누나가 침을 질질 흘리면서 한숫가락 달라고 사정을 하면 그게 그렇게 고소했다. 바로 그거다. 혼자서 천천히 바다로 나간다.

서양 노인이 바닷가를 걷는 내 모습을 보고 감탄할 때도 있다.

“동양에서 온 도인의 모습입니다”

따끈따끈한 모래를 밟으며 바다를 행해 가슴을 연다. 돌섬의 푸른바다가 나를 향하여 파도로 밀려온다. 파도야 파도야! 파도는 내 앞에서 부서져 내리면서 하얀 거품을 만들어 놓고 물러간다. 거품을 밟고 뛰어다니다가 다시 달려드는 파도에 몸을 던진다. 파도에 얹혀진 내 몸은 두둥실 두리둥실 떠나가는 배가 된다. 집에서 나온지 한 시간이 그렇게 흘러갔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수야 없지’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20가에 있는 단골 던킨집을 들른다. 해즐너트 커피& 보스턴크림 도너츠를 주문하면서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를 긁던 아가씨가 훔칫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현금으로 3달러 2센트를 내던 내가 카드를 내는게 이상했나 보다. 생전 카드로 커피를 사 먹어 본적이 없는 나는 불안했다.

“What,s wrong?"

"No problem. That,s OK!"

아가씨는 예쁘게 웃으며 커피와 도너츠, 영수증을 건낸다. 3달러짜리 도너츠 커피인데 영수증이 아기목도리만큼 길다. 상품 쿠폰이라도 붙어있나? 살펴보다가 깜짝 놀랐다. 카드에 96달러 98센트가 잔고가 남아 있다고 적혀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가씨가 놀랐구나. 아가씨가 설명해줬다.

“할아버지는 올적마다 현금으로 3달러 2센트를 내고 커피를 마셨어요. 그런데 오늘은 카드를 긁으시는겁니다. 보통 커피카드는 50달러를 넘지 않아요. 맥시멈이 100달러이지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100달러짜리 던킨 카드를 내미셨으니 놀랄 수 밖에요.”

난 도깨비 방망이에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도깨비 방망이를 휘둘러대면서 금 나와라 뚝딱! 은 나와라 뚝딱 하면 부르는대로 대령했다. 이 카드를 내밀고 먹고 싶은 걸 주문하면 척척 나오는 것이다. 요술카드다. 아니 도깨비 방망이다. 나무하러 산에 갔다가 도깨비 방망이를 얻은 바보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다. 카드의 출처를 생각해 봤다. 한달 전 LA에서 찾아온 중산이 돌섬을 떠나면서 카드 두 개를 만들어줬다.

“목사님이 좋아하시는 해즐너트 커피와 보스턴크림 도너츠를 맘껏 잡수실 수 있는 던킨 카드입니다. 하나는 사모님께, 하나는 목사님께 드립니다”

커피 몇 잔이 들어 있을 테니 아껴뒀다가 중산이 보고 싶을때 사먹어야지. 한달동안 아끼고 쓰지 않았다. 대신 현금을 내고 커피를 마셨다. 중산이 LA로 돌아갔다. 떠나고 나니 그립다. 중산과 커피를 나누고 싶다. 옳지 그가 준 카드를 사용하자. 그런데 사용해보니 100달러짜리 두 장이었다. 써도 써도 남아도는 도깨비 방망이처럼 엄청나게 돈이 많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맞아! 이 커피 카드는 LA에서 온 도깨비가 주고 간 도깨비 방망이라구나!'

생각해 보면 중산은 처음부터 수상했다. 4년전 뉴욕에서 통일심포지엄모임이 있었다. 강사는 LA에서 온 시민논객. 강사는 이런 인사를 했다.

“LA에서 사는 김중산입니다. 제가 아무 쓸짝이 없는 정치외교학을 좀 공부했어요. 차라리 요리를 전공해서 여러분을 대접하는 게 좋았을 텐데....”

그리고 그는 25명 넘는 참석자들의 밥값을 내더니 강연은 한 마디도 안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5명 모임 8명 모임 4명 모임 4명 2명 또 2명... 모일 적마다 밥값을 냈다. 손님인데도 주인을 제치고 냈다. LA에서 사업을 하다 은퇴한 기업가라고 한다. 얼마나 돈을 벌어놨기에 뉴욕까지 와서 돈을 펑펑 쓸까? 몰래 뒷조사를 해봤다.

놀랍다. 사업가가 아니었다. 부자도 아니었다.

중산은 리커스토어 가게를 했다. 술취한 흑인 강도가 권총을 빼들고 달려드는 리커스토어. 23년 전에 산 차를 고치고 또 고쳐 끌고 다니는 짠돌이. 혼자 점심을 사먹을 때는 10불  이상을 써본적이 없는 자린고비. 그러나 남을 위해서는 아끼지 않았다. 빚을 내서라도 썼다. 중산! 부자도 아니면서 뉴욕에 와서 돈을 물쓰듯 쓰고 간 중산은 우리를 속인 사기꾼(?)이다. 나보다 더 낡은 자동차를 끌고 다니면서 나에게 100달러 짜리 커피 카드를 두 장 씩이나 주고간 중산은 도깨비다.

고향의 어린시절 밤이면 파란 불빛을 흘리고 날라다니는 개똥벌레를 꼬맹이들은 도깨비불로 알았다. 애들이 도깨비망망이를 달라고 쫓아다니면 도깨비는 은하수 속으로 날라가 버리곤 했다. 70년대까지만 해도 함석헌이란 도깨비가 있어 청와대가 벌벌 떨었다. 이제는 디지털 시대가 되어 도깨비들이 없다. 도깨비가 없는 세상이 얼마나 삭막한가. 그래도 LA에 김중산이란 도깨비가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통일 도깨비 동초 오인동 박사도 LA에 살고 있어 도깨비들이 외롭지 않을것 같다.

등촌 이계선 목사 / 제1회 광양 신인문학상 소설 등단, <대형 교회가 망해야 한국교회가 산다> 저자 

이계선  628595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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