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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교회를 등진 후 보이는 것들[인터뷰] 코어 커뮤니티 교회 김원기 목사

[미주뉴스앤조이 = 경소영 기자] 교회에서 가장 곤란한 문제 중 하나가 목회자 퇴임이다. 교인이 좀 모인다고 하는 대형 교회라면 퇴임은 난제 중 난제라고 할 수 있다. 전별금이라 불리는 은퇴 비용으로 시작해 후임 목사와의 관계, 은퇴 후 교회와의 관계 등은 좀처럼 풀기 힘든 문제다. 

목회자에게도 퇴임은 쉽지 않다. 교인들과 함께 개척한 교회에서 수십 년 목회한 목사라면 교회에서 그냥 물러나기도 어렵다. 어떤 은퇴 목사는 ‘자신의 모든 것을 떠나 보내는 심정’이라고 표현했다. 지역 사회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대형교회 담임이라면 퇴임하고 싶지 않다는 게 본심일 것이다. 

은퇴 시기도 되지 않았는데 퇴임해야 한다면 어떨까. 지역에서 손으로 꼽히는 규모의 교회로 성장하게 했고, 20년 이상 목회하며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다고 자부했던 목사가 스스로 사임했다면, 더구나 오랜 기간 양육해 온 교인들과 대립하게 된 상황이라면 그 심정은 어떠할까. 교회가 분쟁으로 치닫는 상황에 놓인 목회자라면 어떤 마음일지 더욱 궁금하다. 

“막상 우리 교회에서 일이 터졌을 때 처음에는 자존심도 상하고 많이 힘들더군요. 평소 저는 ‘만약 나 때문에 교회 분쟁이 일어나면 어떻게 하지’ 하고 생각하고 했습니다. 그래서 분쟁하고 있는 한국 교회들을 보면서 저 자신을 비추어 보곤 했어요. ‘내가 저 상황이었다면 어떤 결정을 할까’하고 말이지요. 그런데도 상황이 닥치니 고통스러운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메릴랜드에서 2,000여 명이 모이는 대형 교회를 담임했던 김원기 목사의 말이다. 현재 80여 명이 모이는 코어 커뮤니티 교회에서 목회하는 김 목사는 3년 전까지만 해도 대형 교회 목회자였다. 23년 전 교인들과 메릴랜드 휄로십교회를 개척했다. LA나 뉴욕처럼 한인이 많은 지역이 아니었는데도 교회는 2년 만에 수십 배로 성장했다. 1,000명 이상 모이기까지 긴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순풍에 돛단배처럼 교회는 빠르게 성장해 지역에서 가장 큰 대형교회가 됐다. 

폭풍우를 만나다

그런 교회가 김 목사를 둘러싼 소문으로 인해 분란에 휩싸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그것도 그가 1년 동안 선교지로 안식년을 떠났던 지난 2013년에 문제가 일어났다. 목회 리더십과 목회 활동비 등을 두고 장로들이 의문을 제기했고, 재정 비리가 있었던 것이 아니냐는 소문까지 퍼지며 교회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김 목사는 “이 문제를 두고 싸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고 회고했다. 그는 “4일간 기도했어요. 처음에는 너무 억울하고, 안타까웠지요. 선교지에서 교회로 돌아가 당회원들에게 한소리해야겠다고 생각도 했다”고 털어놨다. 

모든 분야에서 당당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교회가 나뉘어 싸우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다고 마음먹었다. 결국 그는 이런 이야기 하나 나오는 것도 모두 목회자 문제라고 생각해 교회에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23년간 헌신했다고 생각했던 교회를 떠났다.

“솔직히 말하자면 장로들이 저 때문에 힘을 못썼던 건 인정해요. 제가 카리스마가 좀 있거든요. 선한 독재자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웃음) 제가 이민교회를 35년 정도 하다보니 이민교회에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러다보니 제 영향력이 엄청났던 것 같아요. 

밖에서 봤을 때는 교회가 크니까 부러움을 샀지만 사실 거기에 따르는 댓가가 있었던거죠. 그러나 제가 평생 일군 교회에서 싸우고 싶지 않았습니다. ‘싸움은 없다’고 제 자신에게 단호히 선언했어요.”

59세의 목사, 로망을 꿈꾸다

사임 당시 김 목사의 나이는 59세였다.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억울하다고 여길만한 나이에 퇴임해야 했다. 다른 사람처럼 전별금 논쟁도 벌이지 않았다. 하나도 가지고 나온 게 없었다. 오명이 자신의 목회 경력을 덮을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잘못됐던 오해는 풀렸고 교인들에게 격려도 많이 받았다. 

그가 교회를 떠날 수 있었던 용기는 기도하던 중 들었던 마음에서 우러났다. 너무 갑자기 성장해 미처 실현하지 못했던 목회자의 꿈이 떠올랐던 것이다. 각 교인들의 가정에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작은 규모의 교회를 이루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은퇴를 바라볼 나이에 공동체를 하겠다고 나섰다. 그것도 작은 공동체, 전직 대형교회 담임목사의 어떤 로망같은 것이 아닐까. 그러나 김 목사는 휄로십교회 사임이 하나님이 주신 기회인 것 같이 느껴졌다고 했다. 모두가 큰 교회가 못 되어 안달인 시대에 작은 공동체 세우는 것을 기회라고 표현하는 게 모순처럼 들린다.

“스물 일곱 살 때부터 워싱턴의 한 교회에서 담임목사를 했어요. 제가 부임했을 때 이미 그 교회에는 성도가 매우 많았어요. 이후 휄로십교회 개척을 했을 때도 교인 15명으로 시작해서 2년만에 600명이 됐어요. 갑자기 커진거죠. 주위에서 많이 부러워들 했어요.”

그가 개척한 휄로십교회는 교인이 더 늘어나 600명에서 2천 명이 되었다. 그곳에서 20여 년간 담임목사로 지낸 그에게 작은 교회란 현실이 아닌 ‘추억’ 정도였을게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큰 교회 시절이 추억이 되었고, 작은 교회가 바로 그의 현실이다.

'작은 공동체' 씨앗을 뿌리던 시절 

김 목사는 불교 가정에서 자라 고등학교 2학년 때 홀로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그때가 1971년인데 한국 사람도 거의 없던 시절이라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우울증에 시달려 자살까지 생각한 적도 있다고 덤덤히 고백하는 김 목사, 그는 히피처럼 살다가 대학교 4학년 때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다. 당시 미국에 ‘지저스 무브먼트’가 있었는데, 마약하며 방황하던 많은 젊은이들이 갑자기 예수님을 만나고 인생이 변화되는 엄청난 성령체험을 하던 시기였다.

그때 함께 일어났던 운동이 커뮤니티, 즉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었다고 한다. 많은 청년들이 ‘사도행전을 보면 초대 교회 사람들이 다 공동체로 살았는데 우리는 왜 사도행전처럼 살지 않는거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실제로 같이 살고 수입도 동등하게 나누며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의욕만 가지고 하다보니 결국 오래가지 못했다. 그래도 김 목사는 그 공동체 정신에 매우 영향을 받았다.

“15명으로 시작한 휄로십교회가 순식간에 몇 백명, 몇 천명이 되어 23년간 큰 교회 담임을 했지만, 작은 커뮤니티에 대한 목마름이 늘 있었어요. 처음 예수님 만나고 초대 교회 같은 공동체를 경험했던 기억을 잊을 수 없었죠. 그러니까 사임 후 코어 커뮤니티 교회 개척이 저에겐 ‘기회’였다고 말할 수 있는거예요.”

출발선에서의 고백

김 목사의 자아 성찰은 곧 대형교회에 대한 고뇌였다. 휄로십교회 사임 후 얼마동안은 교회 개척보다는 오히려 사업을 하고 싶었다는 김 목사, 목회를 하며 힘든 부분 중 하나가 교인들의 헌금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었다고 고백한다. 대형교회는 건물과 직원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정기적인 재정에 대한 압박이 있다. 그는 때때로 헌금에 대한 설교도 해야 했고, 헌금으로 교인을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돈을 좀 벌어보고 싶었다며 너스레를 떨며 웃는 그의 말에 여러 의미가 담겨있는 듯했다. 

“돕고 싶은 사람도, 하고 싶은 사역도 많았는데 재정적인 제약이 많았던 게 한이 되었나봐요.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마음을 접었어요. 교회를 나오고 깨달은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죠. 제가 사람들과 마주보고 이야기하는 것을 너무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된거예요.

사임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본 몇몇 교인들이 저와 함께 교회를 나왔어요. 처음에는 그분들과 만나고 교제만 했어요. ‘우리 그냥 서로 위로하자’라는 마음으로요. 제게도 위로가 많이 필요했었던 시기였지요. 그 모임 가운데 교회를 믿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다시 들기 시작했어요.”  

눈시울이 붉어진 그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3년이 흘렀지만 그때 동일한 심정으로 서로를 보듬던 교인들에겐 지금도 한없이 고마운 마음이다. 홀연히 교회를 떠나왔지만 사임 당시에 받은 상처가 꽤 깊었다. 그래서 다시는 목회를 안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런데 이들과 사랑을 나누다보니 행복했고 그저 모이는 것이 좋았다. 그것이 자연스럽게 공동체가 되었고 교회로 이어진 것이다. 다시는 비본질적인 것으로 싸우기 싫어 본질적인 것에만 집중하자는 의미로 교회 이름도 코어(CORE)로 지었다고.

대형교회 담임을 하며 느낀 비극이 하나 있다며 김 목사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휄로십교회에 있을 때는 일주일에 새신자가 30명 정도 몰려왔던 시기가 있었다. 7주간 훈련이 끝나고 마지막 주에만 담임목사가 처음 그들을 만나는데 그때마다 했던 말이 있다고 했다.

“‘우리 교회는 크기 때문에 작은 교회처럼 담임목사가 심방하는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만약 제가 여러분에게 심방을 간다면 장례나 병원 입원 중일 때일 것입니다’ 라고 막 큰 소리 뻥뻥쳤어요. 이런 점이 싫으면 다른 교회 가라고 그랬어요. 근데 그렇게 말하고 돌아서면 너무나 허전했어요. ‘난 관계가 좋은데, 대체 이게 뭐하는 거지?’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가족같은 교회 공동체 코어 커뮤니티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좋은 일이 있으면 파티도 하며 내 일처럼 기뻐한다. (김원기 목사 페이스북 캡쳐)

우리교회 자랑 좀 할게요

지금은 교인들이 귀찮아 할 정도로 심방을 많이 간다는 김 목사. 그가 말하는 코어, 즉 본질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두 가지다. 성경적인 신앙, 사람답게 사는 삶이다. 코어 커뮤니티 교회에는 매주 약 85명이 모여 함께 예배한다. 서로서로 모두 기억할 수 있는 숫자이다. 그가 늘 상상했던 숟가락, 젓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의 작은 교회의 모습이다. 대형교회에 있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던 것이다. 교회 이야기를 시작하니 눈빛이 살아난 김 목사, 영락없이 천성 목회자다.

“2년 전, 한 교인이 딸의 결혼식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저에게 주례를 부탁하고 싶은데 결혼식 시간이 교회 예배 시간이랑 같아서 주례 부탁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제 마음에 계속 결혼식 주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거예요. ‘우리 교회는 교인이 몇 되지 않으니까 예배 시간을 옮기는 것에 모두 동의를 하면 가능하지 않을까?’하고 말이지요. 게다가 그 결혼식 신랑이 베트남 출신에 불교라고 하니, 이번 기회에 전도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결국 교인들의 동의를 얻어 예배 시간을 옮겼다. 결혼식 주례를 볼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그 부부의 카운슬링까지 하게 되었다. 교제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베트남 출신의 신랑이 예수님을 받아들여 지금은 두 부부가 교회에서 믿음 생활 잘 하고 있다고 한다. 좋은 결실을 맺었다. 김 목사는 예배 시간이 비본질적인 요소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이같은 일은 교회가 소규모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이후에도 몇 번 예배 시간을 옮겼다. 어느 교회의 개척예배에 갈 일이 생기면 교인들이 선뜻 예배 시간 변경에 동의해주었다. 어렵게 교회 개척한 분들에게 힘이 되어주라고 조언도 잊지 않는다. 김 목사는 매번 교인들에게 감동을 받는다. ‘가족이란 게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한다.

코어 커뮤니티 교회는 가족이 다함께 인도 단기선교를 떠난다. 아이, 어른 다 함께 선교를 가도 교인들 모두 가족같아서 서로서로 돕고 아이도 함께 돌볼 수 있다. (김원기 목사 페이스북 캡쳐)

코어 커뮤니티 교회는 어린아기부터 성인까지 모두 함께 예배를 같이 드린다. 아이들 봄방학 기간에는 가족이 다 같이 인도 단기선교를 가는 것에 도전했다. 김 목사는 본인의 자녀들과 함께 선교 나갔던 경험을 들어 교인들을 설득했다. 부모가 선교 나가면 왜 행복해 하는지 자녀가 눈으로 볼 수 있으니까 부모 자식 간의 관계도 풀어진다는 것이다. 올해는 38명의 교인이 단기선교를 떠났다. 가족 단위로 아이, 어른 모두 함께하는 선교였다.

“평소 예배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함께 드리니까 가능한 일이었죠. 늘 보던 아이들이니까 다 내 자식같고 내 손주 같은 거예요. 그러니까 선교지에서도 서로 돌아가면서 아이들 봐주고 밥은 교대로 먹고 그럴 수 있죠. 아이들은 본인을 사랑해주는 사람에게 정을 금방 줘요. 한 열흘 간 같이 지내니까 정이 듬뿍 들어 애들이 부모 아닌 어른도 잘 따르고 그래요.”

코어 커뮤니티 교회에서는 가족 모두 함께 인도 단기선교를 간다. 가장 연장자이신 만 78세 서종수 아버님의 간증 모습이다. 손자, 아들 본인까지 3대가 인도 선교를 다녀왔다.

교회 공동체, 가족이 되는 기쁨

코어 커뮤니티 교회는 주일 예배와 김 목사 집에서 하는 수요 모임 외에는 공식적인 예배나 모임이 없다. 그러나 교인들끼리는 예배 외 시간에 더 자주 만난다. 물론 그 만남에는 늘 김 목사도 함께 한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문화 활동에 소외되기 쉬운 교인을 위해 야구장이나 영화관에도 같이 간다. 먹고 사느라 바쁜 한인들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 부족하다. 코어 커뮤니티에서는 아이와 어른이 같이 예배를 드릴 뿐 아니라 야구장도 함께 가니, 교회를 통해 가족끼리 더 친밀해 질 수 있다. 

코어 커뮤니티 교회는 어른, 아이 모두 함께 예배를 드린다. 대형교회에서는 세대별로 따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가족이 교회에 와서도 떨어져 있어야 한다. 김 목사는 가족이 함께 드리는 예배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김원기 목사 페이스북 캡쳐)

김 목사는 가족과 함께 드리는 예배를 중요하게 여긴다.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세대별 예배를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았다. 예배의 분리가 편리함을 추구하는 대형교회의 생리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였다.

“엄마 아빠와 아이는 교회에 와서까지도 따로 떨어져 있어야 하죠. 가족이 각자의 부서에서 예배드리는 시스템은 교회가 편리한 대로 가려고 하기 때문에 생긴거예요. 설교 시간에 아이가 울고 보채면 엄마는 불편하잖아요. 실제로 저희 코어 커뮤니티 교회에서 그런 일이 있었어요. 아이들과 함께 예배를 하다보니 어수선한 분위기가 있는데 몇몇 가정이 적응 못하고 떠났거든요. 마음이 아팠죠.”

김 목사는 그동안 몰랐던 작은 교회의 현실에 대해 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말로만 듣던 이야기가 본인에게 현실로 다가오니 작은 교회 목회자들의 아픔을 이제야 알 것 같다고 했다. 교인이 넘쳐나던 교회에만 있었던 그는 이제 교인 한 명, 한 명의 삶에 영향을 받는 진짜 목회자로 살고 있다.

“큰 교회에 있을 때와 비교해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예요. 아이들에게 주는 사랑은 절대 작은 교회를 당해내지 못합니다. 자녀와 함께 예배를 드리다보면 애들한테 신경 쓰느라 부모는 설교에 완전히 집중하지는 못하죠 그러나 제 설교를 모두 다 안 들어도 괜찮아요. 단 십 분만이라도 제 이야기를 들어주어도 저는 감사해요. 설교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작은교회는 실패가 아니다

한국 교회는 지난 몇 십 년간 성장을 향해 달려왔다. 그 결과 교회 수도 많아지고 특히 대형교회가 성공한 교회의 모델이 되었다. 다수의 목회자들이 교회에 교인이 많이 모이지 않으면 목회에 실패했다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김 목사는 작은 교회가 절대 목회의 실패가 아니라고 단언한다. 

“시골에는 작은 교회가 많죠. 7,80년 대에 미국도 그랬어요. 제 친구 감리교회 목사가 그러는데 인구가 적은 시골에는 세 교회 당 한 명의 목회자가 있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고요. 미자립교회라고도 하죠. 세 교회에 돌아가면서 설교를 하지만 목양은 다 가능해요. 교인 수가 적으니까요. 그러나 그것을 우린 독특한 목회라고 생각했지 실패한 목회라고 여기진 않았어요.”

그는 세월이 가면서 한국 교회가 병이 들어간 것이라고 말한다. 목사도 교인도 교회가 작으면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머리에 박힌 것이다. 그러나 김 목사는 ‘이 시대에 교인 수가 유지되는 것 자체가 기적인데 오히려 대형교회가 비정상이 아닐까?’라고 반문한다.

대형교회가 성공의 모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자녀가 유명 대학을 가지 못하면 교육에 실패했다고 여기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지적하는 김 목사, 그는 그것이 잘못된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생각이라고 말한다. ‘작은 교회는 강하다’라는 슬로건이 여기저기서 나오기도 하는데 그것도 어패가 있다고 그는 생각한다. 큰 교회도 속을 들여다보면 약한 부분이 많다. 

“작은 교회의 목사와 교인 모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해요. 재정이 부족하면 작은 교회끼리 연합할 수 있어요. 작은 교회도 무엇이든 할 수 있어요.”

김 목사는 코어 커뮤니티 교회의 교인 수가 늘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고 전도와 교회 성장을 포기하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교인이 많아지면 분립 개척을 할 것이다. 그가 그토록 원했던 관계적인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교인 수의 한계도 중요하다는 것을 큰 교회를 하면서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민교회의 태생적인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민자로 살아가면서 받은 상처가 각 교인들 마음에 가득하다. 자존감이 약해지고 상한 마음으로 교회에 오는데, 교회에서만큼은 상처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 마음들이 교회에서 부딪히고 폭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어렵다는 이민교회를 하면서 그래도 전 순탄했잖아요. 대형교회에서 안정적으로 목회를 오래했으니까요. 그래서 생긴 질문이 있었어요. ‘하나님, 제가 목회가 잘 되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거 아닐까요? 어려움이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안 사랑할 사람이 있을까요?’”

김 목사는 대형교회를 사임한 후 3년간 코어 커뮤니티 교회를 일구는 과정에서 그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있었다고 한다. 작은 교회를 하면서 더 큰 행복을 느낀다고 고백하는 그의 얼굴은 확신에 차있었다.

“코어 커뮤니티 교회를 하면서 제가 은혜를 많이 받아요. 교인들과 매우 가까이 있으면서 깨닫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죠. 수천 명 앞에서 일방적인 설교를 할 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요. 제 자신에게 확신이 생겼어요. ‘난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구나. 교회에 교인이 많이 모이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구나’하고요. 전 대형교회 목사가 아닌 지금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고백이 나왔어요. 이것이 저에게는 천하를 얻은 것과 같아요.”   

경소영  soyoung@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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