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원폭 피해자 방미증언단 대표 이대수 목사 인터뷰
‘신앙은 역사와 고통에 관계가 없는가?’ 질문 던지며 기독교인 동참 촉구

[뉴스M=마이클 오 기자] 전쟁은 승자와 패자가 정해지면서 끝이 난다. 하지만 승자와 패자 아래 깔려 억압받던 이들의 고통은 끝이 없이 지속된다. 원폭 투하 78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지옥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는 한인 원폭 피해자들의 처절한 현재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 방미증언단 대표 이대수 목사 (뉴스엠)
한국인 원폭 피해자 방미증언단 대표 이대수 목사 (뉴스엠)

고령의 1세 피폭자와 그 피해를 고스란히 몸에 새긴 2세 3세 증언자를 이끌고 온 ‘한국인 원폭 피해자 방미 증언단’ 이대수 대표(아시아평화시민넷)를 만났다. 11월 13일부터 12월 3일까지 시애틀, 샌프란시스코, 엘에이, 워싱턴, 뉴욕 등을 돌며 생생한 증언을 들려주며 연대를 요청하는 강행군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인 원폭 피해자들은 왜 이곳에 와야 했는지, 그리고 78년 전 그 원폭이 오늘을 살아가는 미주 한인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물어보았다.

한인 원폭 피해자들의 상황은 어떤가?

"올해로 원폭 78년이 되었다. 당시 피폭자는 70만 명에 이르렀고 이 중 10%인 7만명 가량이 조선인이었다. 20만명이 현장에서 즉사했으며, 이중 4만 명은 조선인이었다. 하지만 조선인은 피폭 후 구호와 치료 과정에서 철저하게 차별당했으며 이로 인해 더욱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다.

결국 45년 8월 종전 후 2만 3천명의 피폭 조선인은 조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해방 조국은 만신창이가 이들과 그 피해를 고스란히 이어받은 가족을 반겨주지 않았다.

오늘날까지 한국 정부는 끊임없는 무관심과 냉대로 일관하고 있으며, 이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힘겹기는 마찬가지다. 낯선 땅이 되어버린 조국에서 이들은 또 다른 이방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또한 원폭으로 인한 후유증과 트라우마는 당사자뿐만 아니라 자손에게까지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 당장에 겪는 몸의 고통보다 자녀들에게 드러나는 원폭의 그림자는 영혼까지 남김없이 갈아먹는 악몽 그 자체다.

원폭 피해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이 희박한 탓에 기본적인 진료나 치료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잦은 후유증으로 취업이나 다른 사회생활도 여전히 어려운 문제다.

이런 이중 삼중의 고통과 어려움을 겪는 동안 일본이나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 정부도 아무런 대책이나 책임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한국 정부는 이들의 존재를 끊임없이 은폐하고 있으며, 70년이 훌쩍 넘은 2016년에서야 겨우 “한국인 원폭 피해자 지원법”을 제정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원폭 피해를 고스란히 물려받은 2세, 3세는 포함하지도 않았다.

한국의 시민단체와 원폭 피해자들의 노력으로 그나마 지방정부 6곳에서 원폭 피해자 1세와 후손인 2, 3세를 피해자로 인정하는 “원폭 피해자 지원 조례”를 제정하여 실태조사와 일부 지원을 시작해 희망을 품고 있다.

현재 1세 생존자는 1800여명이며, 2세와 3세 등록자는 3천명 정도 된다. 하지만 실제 피폭자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사회적 편견과 수치심으로 인해 피폭자 등록을 하지 않고 사는 분들도 많기 때문이다.

이들 피해자는 특히 후손들에 대한 걱정으로 침묵하고 있으며, 뒤늦게 부모로부터 피폭 사실을 듣거나 인지한 이들조차 그저 천형으로 여기며 살아가고 있다."

“아들은 대인기피증 환청 등 정신 질환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현재까지 개인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으며 취업하지 못한 상태다. 질환이 가족들 탓이라고 생각해 가족들과 소원해지고 만나는 것을 꺼리고 있다.” - 1세 피폭자 강윤자 증언

강윤자 1세 원폭 피해자의 증언 (뉴스엠)
강윤자 1세 원폭 피해자의 증언 (뉴스엠)

한국인 원폭 피해자 방미증언단의 이번 방문 목표와 기대는 무엇인가?

"우선 한인 원폭 피해자들이 대를 이어 겪고 있는 고통과 처절한 삶을 미국에 사는 한인과 미국인에게 알리고자 한다. 또한 원폭 투하 당사국인 미국에 책임을 묻고 사과를 요구할 것이다. 나아가 평화를 염원하는 미국인들에게 함께 핵(무기)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연대를 촉구하려고 한다.

미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주도하는 등 겉으로 보이기에는 핵무기 확산을 저지하고 비핵화에 앞장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실상은 전면적인 핵무기 금지 조약인 TPNW 가입을 거부하는 한편 시민적 저항이 적은 신형 핵무기를 연구 개발하는 등 핵 주도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저위력 핵무기 연구를 마치고 이미 실전배치 가능한 수준으로 끌어올린 사실이 이를 반영한다.

이런 정책 방향은 단순히 핵위험을 증가시킬 뿐만 아니라 미국 경제에 막대한 재정 적자와 납세 부담을 가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 유권자가 적극적으로 나서 이런 정책 방향을 저지할 필요가 드러나는 지점이다.

한국 원폭 피해자들의 증언은 단순히 한국사의 비극적 단면만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핵 위험의 세계사적, 그리고 보편적인 실상을 보여주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특히 세계 각지에서 전쟁이 터지고, 이로 인해 수많은 인명이 희생당하는 상황에서 국가의 경계를 떠나 시민적 차원에서 힘을 모아 평화 구조를 만들어 내야 한다. 누구나 핵(무기)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함께 그 위험을 막아야 한다. 우리가 방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저의 경우를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빈혈과 잦은 코피 그리고 위장 장애로 무척 힘든 유년 시절을 보냈습니다. .. 2005년 결국 저에게도 하늘이 무너지는 위암 판정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아버지께서 대상포진으로 몸져누워 계시다 이듬해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아버지께서는 원폭으로 인한 유전성으로 자녀의 건강 문제와 직장 및 결혼 등 걱정을 안고 사셨기 때문이라고 느꼈습니다… 아직도 한국의 많은 원폭 피해자 1세분들은 이러한 사회적 편견과 자녀들의 직장 및 결혼 문제 등으로 걱정하시고 주위에 알려지는 것을 꺼리고 있습니다.”

 

 “2, 3세들이 원폭의 후유증으로 고통을 않고 살아가고 있다는 증언을 통하여 원폭 피해는 피해자 1세만의 문제가 아니라 2, 3세들이 현재에도 그 고통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호소.. 합니다.” - 한인 원폭 피해자 2세 이태재 증언

이태재 피해자 2세 증언(뉴스엠)
이태재 피해자 2세 증언(뉴스엠)

원폭이 있은지 78년, 세월이 상당히 지났다. 이제야 활동이 시작된 이유는?

"78년 전 일어났던 원폭 투하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처절한 비극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비극의 무게는 오늘도 세대를 넘나들며 신음조차 허락하지 않는 침묵으로 내려앉았다. 그들 스스로 이 비극을 알리고 정당한 보상과 처우를 외치기에는 그 고통의 무게가 너무나도 크고 잔인했다.

그나마 피폭자들이 하나둘씩 모여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 최근 상황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1세대가 사라져가면서 직접적인 증언자의 목소리가 줄어들고 있다.

이런 상황을 접하고 핵무기 및 핵 일반의 해악을 알리고자 하는 분들이 동참하여 좀 더 조직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 이 운동의 발단이다.

더불어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와 핵무기 금지 조약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 등으로 인해 이런 사안에 대한 관심이 조금 더 높아지고 있어 한편으로는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태내 피폭자였던 오빠는 피폭 후유증으로 1년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6남매를 낳았으나 단 한 명의 자녀도 건강하지 않았습니다. 첫째와 둘째는 뇌경색을, 셋째와 다섯째는 무혈성 괴사증으로, 넷째는 심근경색 협심증을, 여섯째는 젊은 나이에 치아가 다 빠져 버렸습니다.

저는 육 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다리에 힘이 없어 잘 넘어지고 했는데 20대가 되어서는 다리의 통증으로 생활하기가 힘들었고, 제대로 걷지도, 앉지도 서지도 못했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첫 아이를 낳았는데 하늘이 무너질 만큼 충격이 왔습니다. 아이가 뇌성마비를 갖고 태어난 것입니다.

 

저희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양쪽 다리 대퇴부 무혈성 괴사증으로 고관절이 괴사되어 인공관절을 삽입하는 수술을 하였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자궁근종 수술, 담낭 제거 수술, 발목 수술 등 65세인 지금까지 12차례의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제는 병원에 가는 것도 너무 힘듭니다. 이 모든 질병의 원인은 원폭을 당한 부모로부터 태어난 것밖에 없습니다.” - 한국 원폭 피해자 2세 환우회 회장 한정순 증언

한정순 피해자 2세 증언 (뉴스엠)
한정순 피해자 2세 증언 (뉴스엠)

이번 증언단의 미국 방문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10년 계획의 시작이라고 했다.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가?

"일시적인 방문과 노력으로 피폭자에 대한 정의 회복과 핵 종식이라는 거대한 염원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지속적인 증언과 연대를 통해 진실을 알리고 공감대를 넓혀가려고 한다.

굳이 10년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기 보다 개인적으로 건강과 힘이 닿는 만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그 후에라도 계속 함께 뜻을 모은 사람들이 이어 나가기를 바라고 있다.

핵무기 사용 100년이 되는 2045년에는 핵 없는 세상을 꿈꿔보자고 다 함께 다짐하며 나아가고 있다."

“모친의 마을은 폭심지에서 직선으로 4킬로 거리에 있었습니다. 마을은 처참했습니다. 대부분의 집은 기왓장이 거의 날아가 반파된 상태였습니다. 이웃들은 피투성이가 된 채집에서 기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지옥이 있다면 그날 아침 히로시마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모친은 폭격 후 마주친 일본 여인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고운 기모노를 입은 여인이 정신 나간 모습으로 걸어오고 있는데, 그 소매 사이로 보이는 피부가 피폭으로 녹아 늘어져 내리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그 여인의 모습이 악몽이 되어 나타나곤 했다고 합니다.

저는 1남 2녀 중 맏이로 태어났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유독 허약하여 병치레가 잦았습니다. 유년 시절, 모친처럼 등에 반점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두려워서 병원에서 진찰받지는 못했습니다. 일본과 한국에는 아직도 저처럼 고통받는 2세, 3세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분명한 사실은 한국은 일본에 이어 지구상 두 번째로 원자폭탄 피해국이라는 사실입니다." - 한국 원폭 피해자 2세 김미미 증언

원폭 피해자 2세 김미미 증언 (뉴스엠)
원폭 피해자 2세 김미미 증언 (뉴스엠)

시민 단체 대표이자 목회자라고 들었다. 이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나 계기가 있는가?

"평소 역사와 평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활동해 오고 있었다. 2009년 일본과의 역사 문제와 지방 자치에 관련해서 양국 간의 교류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와 동일한 역사를 반복하지 말자는 뜻을 두고 한일 100년 네트워크를 만들어 진행하고 있었다. 이런 활동 가운데 원폭 피해자 문제를 접하게 되었고, 합천에 원폭 피해자 쉼터를 방문하면서 심각성을 실감하게 됐다. 그 이후 지속적으로 이 문제를 알리고 원폭 피해자 처우 개선을 위해 매진하고 있다.

나뿐만 아니라 기독교계에서도 핵 반대와 평화 문제에 있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특히 WCC는 이차대전 이후 끊임없이 선지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몇 차례 미국 방문을 통해 미국 현지에서도 미국 장로교(PCUSA)나 연합감리교(UMC)에서 연대를 약속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수립하기로 했다.

평화는 신앙과 직결되는 문제다. 특히 원폭 피해자 문제는 이런 평화와 관련된 투쟁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운동이다. '신앙이 역사와 인간의 고통에 무관할 수 있는가?' 묻고 싶다. 보다 많은 교회와 신앙인이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얼마 전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오펜하이머’란 영화가 개봉되었습니다… 포스터는 불타오르는 화염을 배경으로 서있는 주인공의 뒷모습입니다. 그날 불의 지옥을 겪은 당사자들에게 그 한 장의 포스터는 얼마나 끔찍한 기억을 소환시켰을지 모르겠습니다. 영화에서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개발한 신형폭탄의 파괴력을 확인하고 싶어 합니다. 평평한 지형인 히로시마를 직접 선택한 사람도 바로 오펜하이머였습니다. 저는 그 부분을 보고 전율했습니다. 물론 오펜하이머는 훗날 자신의 결정을 후회합니다.

저는 오펜하이머 박사에게 묻고 싶습니다. 핵폭탄의 후유증이 피폭자뿐 아니라 후대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더라도 과연 당신은 핵 개발을 할 수 있었을까요? 당시 히로시마에 살고 있던 한국인 약 8만 명 중 약 5만 명이 방사선에 노출되었고 3만 명(한국 쪽 추산)이 사망했다는 사실을 당신과 미국인들은 알았는지요?” - 한국 원폭 피해자 2세 김미미 증언

한국인 원폭피해자 방미증언단 자료집(뉴스엠)
한국인 원폭피해자 방미증언단 자료집(뉴스엠)

미주 한인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이번 방문을 통해 미국 현지에 계시는 분들의 관심과 애정을 확인했다. 깊은 감사를 드린다. 미국에 계신 분들과 함께 진정한 평화를 이루는 일에 힘써 후손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물려주기를 바란다. 특히 소중한 독립 정신을 되살려 아름다운 미국과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다시 한번 환대에 진심으로 감사를 전하고 싶다.

11월 18일 한국인 원폭피해자 방미증언단 엘에이 간담회 (뉴스엠)
11월 18일 한국인 원폭피해자 방미증언단 엘에이 간담회 (뉴스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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