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무관학교의 설립 주축은 기독교인들

지난 2017 육군사관학교는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 특별 학술대회를 개최했었다. 학술대회의 취지는 독립군·광복군 정신을 계승하겠다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육사의 뿌리는 신흥무관학교라는 내용의 눈문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육사측은 교정에 있는 다섯명의 독립둔동가 흉상을 철거하겠다고 발표했다. 광복군의 계승이니 신흥무관학교가 뿌리라는 등의 모든 역사가 송두리채 부정된 것이다.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자였다는게 철거 이유지만 일제 강점기 당시 소련은 연합군의 일원이었다. 더군다나 나머지 4명은 공산주의와 관계도 없었다.

육사 교정에 있던 흉상은 홍범도 장군, 지청천 장군, 이회영 선생, 이범석 장군, 김좌진 장군인데 이들 모두 대한민국 독립에 대단한 공을 세운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직간접적으로 신흥무관학교와 연관이 있다. 육사는 육사의 뿌리가 신흥무관학교라는 주장도 폐기할 것이다. 대한민국육군사관학교가 아니라 황군 사관학교가 되어가는듯 하다.

1911 6 10 독립군 양성을 위해 만주 서간도에 설립해 1920 폐교될 때까지 3500명의 신흥무관학교 졸업생들은 만주·연해주 일대 항일투쟁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영화암살’(감독 최동훈, 2015)에서 조진웅 배우(극중 이름 추상옥- 김상옥 열사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인다) 신흥무관학교 출신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 독립운동가들 중에 기독교인들이 많았듯이 신흥무관학교 설립에 기독교인들의 공이 지대했다. 오늘날 우파의 기수 노릇을 하고 있든 대한민국의 기독교가 배워야 진정한 보수 우익의 모습이다. 배후에는 현재도 서울에 있는 상동감리교회가 있었다. 상동교회 부설인 상동청년학원에는 담임목사 전덕기와 이회영을 중심으로내로라 하는 인재들이 모여들었고 일제 당국은 이들을 '상동파'로 분류해 예의 주시했다.

박용만(훗날 미주지역에서 독립운동하면서 이승만과 대립), 남궁억(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작사가), 이동휘(전도사, 볼세비키 혁명에 관여), 이준, 윤치호, 이상설, 손정도(김일성을 양자처럼 키운 목사, 대한민국 최초의 해군제독 손원일이 그의 아들) , 장지연(시일야 방성대곡), 최남선, 이동녕, 김구 이루 말할 없이 많은 청년들이 뜻을 모으던 곳이었다. 그러나 선교사 스크랜턴(이화학당 창립) 반대로 상동청년학원은  해산하게 된다. 이에 국내 활동이 어렵다고 생각한 박용만은 미주로 떠났고 이동녕 이상설은 만주로 떠났다. 북간도 용정지역에 상동파는서전서숙 세워 이상설과 이동녕이 학교 관리를 맡았다. 그러나서전서숙 1년만인 1907년에 문을 닫는다. 해외거점이 필요하다고 느낀 이회영은 이상설과 블라디보스톡에서 만나 거점을 논의했다.

영화 '암살'에서 신흥무관학교 출신으로 설정된 조진웅 배우
영화 '암살'에서 신흥무관학교 출신으로 설정된 조진웅 배우

이회영은 국내로 돌아와 6형제가 뜻을 모으고 모든 재산을 정리한 가족 50명과 함께 1911 1 만주에 도착한다. 이회영 일가는 마주 유하현이라는 곳에 신한촌을 세우고 사관 양성기관으로 신흥강습소를 1911 5월에 열었다. 망명온지 4개월만에 이루어 일이다. 신흥강습소 신흥무관학교가 된다.

그러니까 육사의 뿌리가 신흥무관학교에 있다고 스스로 밝힌 육사 주최 학술회의에서 논의된 주인공 이회영의 흉상을 제거한다는 발표는 뿌리를 부정한다는 논리에 다름 아니다.

신흥강습소(新興講習所)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학교의 설립취지와 목적은 처음부터 독립군 양성 있었지만 학교 이름을 바로독립군 양성 설립취지를 드러내는무관학교 출발할 없었다. 신흥강습소는 후에 신흥무관학교로 개칭되었는데 처음부터 신흥무관학교라고 않고 강습소라고 것은 중국 토착민들의 의혹과 만주 군벌의 탄압을 피하기 위한 것이 었다. 이후 신흥무관학교는 1911년부터 1919 11월까지 지속하면서 3,500여명이라는 규모의 독립군을 양성하였다(서중석,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 역사비평사)

전통적인 소론 가문 출신의 이회영은 기독교로 개종한 신흥무관학교의 실질적인 창립자가 것이다. 이석영도 이동녕에게 땅과 집을 사서 기부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양반 가문 특성상 이회영의 형인  이석영의 재산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석영의 재정적 기여가 없었다면 신흥무관학교도 불가능했을 것다. 국정원장을 지낸 이종찬이 이회영의 손자다. 민주당에서 국회의원을 지낸 이종걸도 이회영의 손자로 이종찬과는 사촌간이다.

이종걸은 문재인 전대통령의 당대표 시절 사이가 좋았을 문재인의 고향 양산을 의식해신흥무관학교에서도 양산파가 문제였다는 발언을 적이 있다. 집안 어른들로 부터 들은 이야기일 것이기에 근거는 불투명하다. 다만 양산 안동 이런 출신의 사람들이 신흥무관학교에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지금 경상도 지역의 주민 성향과는 전혀 딴판이었던 것이다.

독립운동사에 그렇게 유명한 이름은 아니지만 김창환도 주목할만한 인물이다. 그는대한제국 군대 출신으로 을사늑약 이후 군대를 나와 상동파에 합류한 상동 청년학원에서 체육선생을 맡았었다.

1919 관동군 참보보 보통보(普通報) 김창환의 동향보고서를 다음과 같이 보고하고 있다.

통화현내 한족회에서는 목하 유하현 삼원포 恩陽(은사-기독교 학교로 추정됨)학교와 新興支(신흥무관학교)학교 생도로부터 신체건강한 학생 400명을 뽑아서 합니하(哈泥河) 있는 김창환이 주임이 되어 수명의 교사와 함께 군사교련 훈련에 임하고 있다. 이들 훈련생은 국제연맹회의 전후를 기해서 홍범도 등의 습격대와 상호응해서 도강하여 조선내지로 침입할 생각을 하고 있다

이처럼 홍범도 장군도 신흥학교 출신들과 긴밀한 연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이 관동군 보고서에도 나와 있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이회영을 이야기할 소론 출신의 유학자 집안이라는 점만 강조된다. 교회와 엮이면 그의 명성에 흠이 간다고 생각해서는 아닐까? 현재의 한국교회 위상을 생각해 추측가능한 지점이다.

신흥무관학교를 자랑스러워 하는 한국 교회가 있기는 할까? 역사가 부정되는데도 한마디 말이 없는걸 보면 없다고 결론 내릴 밖에 현실이 서글프다.

 

글은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서중석, 역사비평사) 서영석의 논문, ‘상동파의 구국운동과 신흥무관학교- 기독교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중심으로 참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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