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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자의 망언에서 '사랑'을 봤다

이순자님이 자신의 남편이 ‘민주주의의 아버지’라고 주장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망언이라며 흥분했습니다. 그리고 나아가 살인자 전두환을 사면해준 김대중 전 대통령이 매우 치명적인 실수를 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순자님은 정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철면피이고 비이성적인 사람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겠습니다. 그러면 남편을 그렇게 바라보는 이순자님의 시선은 잘못된 것일까요. 그분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고 매우 합리적인 이야기입니다. 이순자님은 누구보다 남편의 인간됨과 남편이 행한 모든 일들의 상황을 가장 소상히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 이해를 바탕으로 그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그분으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분은 남편을 사랑하고 남편의 우국충정을 이해할 뿐입니다. 그것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국민들이 그분의 입장에서는 매우 아쉬울 것입니다.

저는 이순자님의 망언에서 사랑을 보게 됩니다. 사랑은 그렇게 비합리적입니다. 비이성적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음은 물론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을 전적으로 지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지고한 사랑입니다. 전두환님은 그런 아내 한 사람만으로도 인생이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역설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어법으로 그 부부를 비꼬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분들의 그런 모습에서 저는 성서가 말하는 서로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

이순자씨와 전두환씨(사진:SBS 영상 갈무리)

그런데 우리는 바로 이 지점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부부의 사랑이 자신들만의 사랑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의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 사랑이 아니라 자신들만을 위한 사랑이라는 말입니다. 이런 사랑은 사랑하는 당사자들 외에 다른 것들을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바로 이런 사랑이 이기적인 사랑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자신들의 모든 것은 다 이해하면서도 다른 이들의 입장은 헤아릴 줄 모르는 이 같은 이기적인 사랑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비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그분들의 사고가 광주사태(문맥상 광주 민주화 운동보다 이 단어가 더 적절해 보임)와 같은 비극적인 희생의 역사를 애국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도 사랑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런 이기적인 사랑은 인류와 사회와 다른 이들을 위해 아무런 공헌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리스도인들이 바로 이 점을 보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당신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은 바로 이런 세상의 이기적인 사랑이 모든 불행의 근원임을 바라보고 계셨다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불행은 이처럼 이기적인 사랑이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을 때 시작됩니다. 귀족들의 사치를 위해 노예가 필요하고 착취와 수탈이 질서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류역사의 가장 일반적인 특징이기에 마크스 보그와 같은 신학자는 그것을 ‘문명의 정상성’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제가 이 말을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의 하나님 나라 이해를 위해 이 ‘문명의 정상성’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부동산투기나 주식투자와 같은 것을 재테크라고 말하면서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런 일들을 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돈을 벌면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자랑하면서 헌금으로 그러한 자신의 이해에 인印을 칩니다. 이처럼 불행한 일도 없고, 이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습니다. 부동산투기와 주식투자와 같은 것은 ‘문명의 정상성’의 일부입니다. 마치 제로섬 게임과 같이 자신의 이익은 다른 이들의 손해와 직결됩니다. 그런데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런 일들이 참으로 참람한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그런 행동을 하는 분들은 그게 실력이고 경쟁은 당연한 것이라는 말을 합니다. 그분들의 생각은 충분히 합리적입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생각이 바로 이순자님의 망언과 같은 논리라는 것을 깨닫기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런 행동이 이기적이 자기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기란 어렵습니다.

성서가 말하는 그리스도인이 지향해야 할 사랑은 세상의 그런 이기적이고 자기애적인 사랑이 아니라 ‘아가페’를 지향하는 ‘필레오’의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자기를 부인한 사람의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결코 자기의 유익을 구할 수 없습니다. 만일 자기의 유익을 구한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 됨에 실패하는 것이며 성서가 말하는 사랑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돈에 의미를 부여하느라 그리스도인 됨과 성서가 말하는 사랑에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순자님의 망언을 보며 나도 그분처럼 망언을 일삼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바울처럼 자신에게 케이오 펀치를 날리는 삶을 살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를 쳐서 복종시킬 때 우리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입니다.

최태선  tschoi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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