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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너무 고단해요. 쉴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Q. 아기 엄마인데 남편하고 대화할 시간도 없이 아기에게만 집중합니다. 삶이 너무 고단해요. 저도 남편도 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A. 아기를 돌보는 일은 정말 수고로운 일이지요. 특히 영아기 때는 밤에도 몇 차례씩 수유하고 재우고 하는 일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대화는커녕 수면부족을 호소하게 되는 것은 또래의 엄마 아빠들의 정상적인 일상인 줄 압니다. 

그러나 뒤집어 생각하면 그만큼 신생아-영아기 시절의 육아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막중하고 거룩한 사명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지요. 한 사람이 태어나서 제대로 인격을 갖추기까지 장구한 세월이 필요하다지만, 0-3세 사이는 신체발육상으로나, 지적발달은 물론, 신뢰 관계형성을 위해서도 사람이 되기 위한 기본이 형성되는 시기라 부모 특히 엄마라고 하는 존재는 아이에게는 거의 절대자 즉 신적인 존재(母神)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결혼하여 남편과 아내가 되는 것은 전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와 의지에 달렸지만, 자녀를 출산하여 부모가 되는 것은 두 사람이 임의로 결정할 수 있는 일만은 아니며, 일단 자녀를 출산한 경우는 그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일종의 위탁-창조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책임이 생기는 법입니다. 비록 과정상으로는 두 사람의 결혼(결합)을 통해 자녀가 생산되는 것이지만, 개념상으로 보자면 자녀는 두 사람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두 사람의 [사랑의] 울타리를 [잠시] 빌어서 하나님 당신의 창조 작업을 하시는 셈이라 하겠습니다. 산고를 겪고 사춘기 자녀로 인해 마음고생 할 일을 생각하면 이는 부부 간의 관계와는 별도의 과외 수고로 볼 수 있지만, 생명의 탄생과 그 생명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장성해 가는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뭔가 영향력을 미치고 선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 세상에서 이만한 특권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히 하나님됨의 그 특권의 일부를 우리에게도 나누어 주신 셈이지요.

이렇게 보면 출산-육아의 전 과정은 하나님의 창조 시간표에서 가장 마지막 정점이었던 엿새째 날의 창조 역사에 참여하는 것인 만큼 그만큼 전심을 다해야 하는 일이며 또 동시에 이보다 더 신기한 일도 더 위대한 일도 이 세상에서는 다시 없다 할 것입니다. 오죽하면 출산과 육아의 즐거움을 인해 다시 또 그 산고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출산할 마음을 먹겠습니까?

세상에 뭐든 거저 되는 것이 없으며, 뿌린 대로 거두는 원리는 하나님의 형상 곧 창조자의 반열에 든 '인간' 존재에게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라 할 수 있을 터인데(비교컨대 짐승들에게는 대부분의 것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 있어서 요행에 의존하는 것이 상당 부분 정당화될 수밖에 없을지라도, 인간은 그 누구의 요행에 손 벌리고 기대기보다는 자신의 손으로 상황을 바꾸고 창조하는 존재입니다), 이리도 소중한 '마지막' 절정의 창조 작업에 참여하는 일이 어찌 수고롭지 않을 것이며, 심신의 에너지를 소진할 정도로 긴장을 요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해서 어린 영아의 육아는 제 부모가 아니면 쉽사리 감당하지 못한다 하지 않습니까? 똥 기저귀로부터 시작해서 안 먹을 새라, 아플 새라, 다칠 새라, 맘 고생할 새라, 그야말로 제 분신처럼 일심동체 마음을 조리고 보살피는 일은 화폐가치로 환산될 수 없는 그렇기에 환산되어서는 안되는 '사랑[의 수고]'이며,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소명(창조명령) 가운데 으뜸가는 소명일 것입니다.

한 마디로 부모가 되기로 결정하는 것은 숭고한 일이며, 하나님의 창조 역사에 참여하는 거룩한 사명입니다. 비록 수고가 힘에 지나칠 때는 장래의 보람을 생각하기보다 당장의 고생스러움을 모면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겠지만, 돈 버는 일을 포함하여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수고하면 수고한 대로 그 만큼 더 소출을 기대할 수 있다고 할진대, 장성한 자녀를 통해 얻게 되는 '성취감' 내지 보람은 내 손으로 일군 그 어떤 성취와는 또 다른 차원의 기쁨이며 자랑이오 면류관이 될 것입니다.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부모의 역할을 잘 감당했으니, 내 [창조의] 즐거움에 함께 참여할지어다'하는 말씀의 울림은 그 어떤 심쿵함보다 더 설레고 떨리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육아의 소임이 이리도 막중하다보니 자연히 부부간의 관계보다는 아기와의 관계가 더 우선시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밖에 없겠지요. 신생아를 둔 부부들이 서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따로 확보하는 것이 당분간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결혼 여정의 지극히 '정상적인' 전환기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대개 신혼기에는 가급적 두 사람이 서로에게 집중하기 위해 출산을 보류하도록 권하는 것이겠지요.

 어차피 절대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에 피로에서 해방되고 부부애도 더해갈 수 있는 왕도가 따로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고단함을 함께 나눌 수 있는(줄일 수는 없다 해도) 방안을 몇 가지로 강구해 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원리를 먼저 말씀드리자면, 식상할 정도로 뻔한 얘기이겠습니다만, 우선 이렇게 노동집약적이고 또 다른 사람과 그 노동을 분담하는 것이 자유롭지 않은 육아의 시기는 우선/그나마 영아기 때임을 기억하십시오. '이 또한 지나갈 것이며' 그나마 아직은 한 살이라도 더 젊음이 살아 있을 때에 자녀를 출산하게 된 것을 감사하십시오.

둘째, 할 일은 많고 시간이 부족하다면 당연히 일의 수선순위를 조정하고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시간과 겨루어 이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다만 그 제한된 시간에 맞추어 일을 조정해야 합니다.

셋째, 반드시 직접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도록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모유 수유를 제외하면 남편이 대부분 분담할 수 있는 일이며, 심지어 모유의 경우에도 미리 짜서 얼려 놓았다가 젖병을 이용하여 남편이 대신 수유할 수도 있습니다. 당분간은 시댁 일이나, 대인관계 등을 최소화하고 육아에 전념하도록 시간을 조정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전 세종 대왕 때에 노비들(남녀 모두)에게 산후 휴가를 허락했던 것은 의미심장한 조처였다 하겠습니다. 또한 육아 이외의 부엌일이나 집안일을 거들어 줄 사람을 시간제로 구하는 것도 보완책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이따금씩은 부부간에만 질적인 대화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남편과 육아를 함께 해 가는 것 자체가 이제는 부부애를 확장할 수 있는 주요 원천임을 명심하시고 가능한 대로 육아 자체를 함께 즐기고, 거기서 얻은 통찰력이나 지혜를 공유하도록 하십시오. 도저히 대책이 안 서는 경우 때로는 수입을 줄이고 씀씀이를 줄여서라도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아이를 성심으로 대할 수 있도록 우선순위를 과감하게 조정하는 것도 멀리 보면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라 도리어 [앞으로 밑지고 뒤로는] 크게 남는 장사일 수 있음을 유념하십시오. 마지막으로, 모든 상황이 다 우리의 통제가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이 일을 맡기신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 우리의 처지를 다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해서 때로는 "enough is enough"라고 [아기에게나 또 자신에게나, 나아가서 하나님께] 말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또 뒷감당해 주실 것입니다. 

육아의 부르심에 충성하려는 가정/사회는, 그 어떤 다른 것들에 풍성하고 화려해 보여도 육아를 둘째 순위 내지 과외의 일로 치부하는 사회보다도 훨씬 더 건강한 사회일 것입니다. 출산과 육아는 부부의 일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먼저는 [대대로 인류를 창조하시고 유지해 가시는] 하나님의 일이며, 따라서 이 소명에 기꺼이 응답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보호해 주시고 대대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사족: 결혼과 출산/육아는 반드시 한 쌍으로 붙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했다고 해도, 심지어 자녀를 원한다고 해도 때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을 수도 있으며, 또 어떤 이들은 특별한 부르심에 따라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기도 합니다. 결혼을 신중하게 생각하고 결정하듯이 출산과 육아 또한, 그 의미를 곰곰 묵상해 보고 또 그 과정에 따르는 사랑의 수고를 감당하기 위해 헌신할 수 있을지 신중하게 결단하는 일이 선행해야 한다고 봅니다. 7포 시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는 뜬구름 잡는 것처럼 동떨어진 얘기일 수도 있으나, 이럴 때일수록 후세대에 이런 모순과 혼란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출산과 육아의 부르심에 기꺼이 응답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권영석  newsnjoy@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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