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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이라 믿었는데, 결과가...

Q.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 선택인데 결과가 안 좋아요. 결과가 안 좋은 선택이라면 하나님이 미리 막으실 수 없을까요?

A.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 선택이라면 때로 결과가 안 좋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결과에 관심이 있으신 것보다 우리 자신에게 더욱 지대한 관심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우선,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고 내린 결정/선택이라 했는데,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한 판단의 근거는 무엇이었는지요? 그리고 '결과가 안 좋다'고 했는데, 그 평가 기준은 또 무엇이었는지요? [만일 그 판단이나 평가가 지나치게 주관적인 기준에 기초한 것이라면 이 질문의 정당성 자체를 먼저 재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좋다' 또는 '안 좋다'는 판단은 결과를 말하기도 하지만, 동기나 과정을 다 함께 고려하여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판단의 진정성 내지 총체성이 있다 할 것입니다. 동기가 선하였고, 과정도 정의로웠지만, 결과는 예상만큼 아름답지 않을 때도 있을 것이며, 반대로 선한 동기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과정에서 불의와 타협도 했지만 예상보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동기가 순전하고 과정이 올바르게 진행되었다면 그 결과 역시도 좋게 나오는 것이 자연의 이치(順理)라고 하겠습니다.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기에 악을 심어서 선을 거둘 수는 없으며 반대로 선을 심어서 악을 거둘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선과 악이 공존하며, 정의와 불의가 공존하고 있어서 때로는 선을 심었는데 악을 거두기도 하고, 악을 심었는데도 선을 거두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답니다. [물론 악을 심어 놓고서 선을 기대하는 것은 마치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려는 것처럼 무모하고 어리석은 일이며, 요행심이나 사행심에 기대어 인생을 살려는 태도는 인간에게(만) 허락하신 의지적인 요소 곧 주체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자, 심하게 말하면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불신 내지 반역에 다름 아니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세상은 온통 '비정상의 정상화'가 만연하여 '뿌린대로 거둔다'는 기본 원칙조차 믿지 못/안 하는 어리석은 세상이 되고 말았다 하겠습니다.] 이 때문에 결과를 예측하는 것이 항상 간단명료하지는 않으며, 그렇기에 우리가 임의로 조종할 수 없는 결과보다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동기와 과정에 주목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에 만족/자족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신앙인의 자세인 셈이지요. 

다행히 우리가 고백하는 대로 이 모든 일의 전모/결말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평가/심판하실 터이며, 또 당장은 '정말 아닌 것'처럼 보여도 멀리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바루어/바꾸어 주실 것이기 때문에 당장의 불이익 내지 고난을 감내해 낼 수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사필귀정(事必歸正)'이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란 실은 이런 절대자이자 전능자이신 하나님(天)이 모든 것의 판단자이자 심판자이심을 전제로 한 신념 내지 삶의 태도를 일컫는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정녕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내린 결정이자 선택이라고 하면, 당장의 가시적인 결과가 어떻든 궁극적인 평가는 [어차피 우리 눈의 판단이 정확하다고 확신할 수 없기에 더더욱] 하나님의 판단에 맡길 수 있다고 봅니다. 심지어 때로는 혹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했다 해도(의도적으로 분별하지 않았거나, 역행한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더 나아가서 비록 하나님을 거역했다 하더라도 다시 뉘우치고 용서를 구한다면) 우리는 선하신 하나님의 사랑(교정 또는 징계 역시 사랑의 한 형태이다)을 얼마든지 믿고 의지할 수 있다고 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드러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과 우리를 향하신 그분의 사랑은 그야말로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고 아무런 조건이 없이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가 아니겠습니까? [아마도 이 우주만물의 중심은 바로 이 창조주의 긍휼과 사랑일 것입니다.]

다만, 유일한 단서조항이 있다면, 우리가 그분의 뜻을 의지적으로/계속적으로 거부하고, 그분의 사랑의 손길을 뿌리치고 하나님을 등진 채 돌이키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께서도 어찌하실 수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께서 어쩔 수 없어서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의 [자아의] 주체성/의지성을 존중하시기 때문에 그리 하시지 않으시리라는 것입니다. 순종이란 자발적이고 의지적인 것이 아니면, 이는 순종이 아니라 강요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우리의 모가지를 비틀어서라도] 당신의 목적을 관철하시려는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순종에 가장 큰 관심이 있으시며, 때로는 더디고 심지어 손해를 보시더라도 우리와 더불어 교제를 나누고 무엇이든 우리와 함께 해 가시는 것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실 뭔들 못하시겠으며, 굳이 우리의 지혜와 힘을 빌어야만 하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때로 하나님께서 마지막 순간에조차 간섭하시지 않는 것처럼 보여서 야속하게 느껴질 때가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연유로 즉각 개입하시거나 길을 막아서면서까지 우리를 '과잉 보호'하려 하시지 않으시는 게 아닐까요? 만일 하나님께서 그 때 그 때마다 빈번히 개입하신다면, 아마도 우리는 '뿌린대로 거둔다'는 기본 원리를 결코 배울 수 없을 것입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자라면서 자유[의지]의 공간을 넓혀 주지 않으면 그 아이는 결코 어른으로 성숙할 수 없는 것과 유사하다 하겠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패와 그로 인한 우리의 좌절, 더우기 애매한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 곁에서 동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이런 '애매한' 상황에 노출되도록 [소극적으로/적극적으로] '허용'하심으로써, 우리의 동기를 순전하게 하시며 우리의 지혜를 날카롭게 하시며, 무엇이 더 중한지 재고하게 하시기도 하십니다. [비유컨대, 자식이 행여 곁길을 선택하지 않을까 마음을 졸이면서도 자식에게 자발적인 선택을 배워나가도록 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자유를 부여해야만 하는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의 심정이 이러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일차적/우선적으로 유념해야 할 것은 결과가 아닙니다. 동기와 과정에서 혹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는 것이 먼저여야 하겠습니다. 동기가 순전하고 과정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이었다면, 결과는 훨씬 더 담대하게 하나님의 손에 맡길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것이 바로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의 삶의 자세이자 신앙 견증이었다 할 것이니, 그들은 결과가 도리어 자신들에게 고난과 핍박을 가져다주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임재와 사랑을 더욱 굳게 확신하면서 담대하게 제자의 길을 걸어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선, 동기점검(motive check)에서 시작해 봅시다. 어떤 일을 계획하거나 의사결정을 하려 할 때, 우리의 동기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한 마디로 왜 그것을 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지요. 모든 것을 자아실현/자기실현, 그것도 화폐가치로 모든 것을 환산해서 평가하는 이 시대에는 결국 어떻게든 돈을 많이 모으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선한 동기로 통용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동기를 굳이 점검해 볼 필요성도 못느끼게 되어버린 꼴이 되었습니다만, 이 동기가 제대로 점검이 안 된 채로는 [그 결과와 무관하게] 인생의 보람이나 의미를 언급할 수는 없으며, 인생의 목적이나 사명과 무관하게 성공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결국 자기에게 얼마나 이익[금]이 돌아오게 되었는지, 자신에게 만족감을 가져왔는지가 최고의 평가 기준이 되고 만 시대에는 [돈 말고 다른] 동기를 묻는 것 자체가 공허하고 낯선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되어서] 선택했다' 했는데, 과연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무엇을 기준으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분별/선택/결정할 수 있는 걸까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기준에 비춰 보는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말씀인 십계명에 비추어 분별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십계명을 [한 마디로] 요약하시기를 '경천애인'(敬天愛人)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웃 사랑의 실천적인 적용점으로 황금율('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왜 이 일을 하려고 하느냐, 나는 왜 이런 선택을 하고 이런 식으로 결정하려 하는가 하는 질문에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고, 이 길이 바로 이웃을 사랑하는 길'이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이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로 간주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경천애인보다는 그 결정/선택으로 인해 내게 돌아올 혜택을 먼저 고려한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내가 임의로 조종할 수 있는 것이 아나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렇기에, 만일 그것을 우선적인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를 축복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몫이라 하겠습니다. 만일 내가 목표로 삼고 올인한 결과로 얻어낸 성취라면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축복이라기보다는 내가 내 힘으로 노력한 결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반전/전도 현상이 도리어 정상이 되고, 요행심이나 사행심이 부끄러운 내색도 없이 버젓이 판을 치는 세상이기 때문에 사실 우리의 일차적인 동기는 성취 내지 성공 나아가서 출세 지향의 자기중심적인 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데도 아무 생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하겠습니다. 

게다가 기독교 신앙을 '개개인의 영혼 구원과 경건'을 위주로 생각하려는 주관주의적인 경향이 팽배하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나 '주되심'까지도 지극히 개인적이고 주관적으로 이해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개교회 중심적인 [제도적인] 교회의 가르침 역시 소위 '네 영혼이 잘 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게 되는 것'(요삼 2)이 곧 하나님의 축복이자 복음(Health and Wealth Gospel)이라고 가르침으로써 기독교 신앙이 기복신앙과 동일시되는 기괴한 현상이 만연하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가 제대로 씨를 뿌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과, 씨를 뿌리지도 않고 하나님의 은혜만을 기대한다거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하고 아예 씨를 뿌리지 않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얘기입니다. 

이런 기복신앙은 위에서 언급한 요행심 내지 사행심과 하등 다를 바 없다고 봅니다. 은혜란 결과를 돌아보면서 감사할 수 있는 것이지, 결과를 내다보면서 당연한 것인양 기대하거나 심지어 조종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간단한 질서/순서를 뒤섞거나 뒤바꾸어 놓게 되면 복음은 도리어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거나 중독/마비시키는 [curse-in-blessing으로 가장한] 반-복음으로 둔갑하고 말 것이며, 하나님은 주문만 제대로 외우면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는 도깨비방망이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이처럼 반-도덕적(a-moral)이고 비-윤리적인 모습을 띠게 된 주요 배경에는 목회자 개개인의 도덕성 문제보다 기독교 복음에 대한 개인주의적이고 기복적인 성공주의 내지 성장주의 프레임이 자리 잡고 있다 하겠습니다. 

해서 순전한 사랑의 동기와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 맞추어 공정한 과정을 밟아 최선을 다한다면 그것으로 나는 내 몫을 다한 것이며 [그렇기에 최선을 다한 것 자체가 나의 자랑이자 자긍심으로 내 안에 남을 것인 즉, 이 자체가 벌써 하나님의 보상인 셈이며], 나머지 결과는 이제 하나님이 책임질 것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내가 敬天愛人하려 애쓴 이상 담대하게 盡人事待天命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기다리는 당신의 백성을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실 것입니다. 혹 때로 인간적인 실망과 좌절이 엄습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실망과 좌절의 과정을 통해 도리어 우리로 더욱 주님을 닮아가며, 우리의 형상을 하나님처럼(godly) 다듬어 가실 것입니다. 고로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실패도 유익하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시고, 성령님께서 우리의 걸음을 [또 다시] 인도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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