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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하나님은 정말 늙은 창녀이신가?

오정현의 기사를 보았다. 이쪽저쪽에서 다시 하나님이 난무하신다. 도대체 하나님은 정말 늙은 창녀이신가. 이놈도 집적대고, 저놈도 집적대고 도무지 쉬실 틈이 없으시다.

애초에 나는 오정현에게 아무 기대도 안 했다. 그리고 그건 그를 추종하는 신도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대법원의 확정판결 아냐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아무 소용이 없다. 그들에게는 다만 이현령비현령일 뿐이다. 자신들의 믿음을 강화시켜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 모두에게 오정현은 우상이다. 그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 그들과 싸우는 이들 역시 오정현과 그의 추종자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그 교회를 떠나면 안 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건 오정현이 아니더라도 자신들의 교회, 혹은 전임 목사가 우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오정현 목사(미주뉴스앤조이 자료사진)

다시 공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공자는 제자들과 길을 가다 대로변에서 오줌을 싸는 사람을 꾸짖었다. 그러나 대로 한 가운데서 오줌을 싸는 사람을 보고는 그대로 지나쳤다. 왜 저런 인간을 그대로 두시느냐는 제자들의 질문에 저런 인간은 야단을 쳐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에서 대로 한 가운데서 오줌을 싸는 사람이 누구인가.

어렵지 않다. 영웅, 엘리트, 대인 등과 같은 성공과 권력을 탐하는 자들이다. 그들의 탐심이 곧 우상숭배이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백약이 무효하다. 하나님도 그런 사람들을 욕정대로 하도록 더러움에 그대로 내버려두신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며 끊임없이 죄의 유혹을 받는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이 보고 계심을 믿는다. 그걸 꼭 멋있게 ‘코람데오’라고 말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동시에 경외하면서 내가 인식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분의 뜻에 합당한 것이 되도록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이 참된 신앙이다. 그 길이 쉬워 보이지만 사실은 대단히 어렵다. 무엇이 어려운지 아는가. 비우고 낮아지는 것이다. 얼핏 쉬워 보이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비우고 낮아지는 것은 우리의 천성이 끝까지 거부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경쟁에서 이기려 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무언가 가시적인 성과를 추구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을 남과 다른 존재로 여기면서 다른 이들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에서 큰 기쁨을 느끼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로 알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 욕망의 춤이다. 욕망의 춤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비우고 낮아지는 것이다. 무명의 사람이 되고 작은 자가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오정현의 거짓에 분노한다. 그 분노는 정당한 분노이다. 그러나 분노하시는 분들도 정작 자신이 진짜 분노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거짓으로 드러나기 이전에 이미 오정현의 마음을 장악하고 있는 크고자 하는 욕망이다. 그는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여긴다. 그것은 주일 그가 식사하는 방식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을 그 위에서 내리치신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당신이 통치하시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평등해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높은 자는 낮은 자보다 더 낮아져서 낮은 자를 섬겨야 한다. 그렇게 섬길 때 그는 하나님의 손을 대신하여 비천한 자를 높이는 하나님의 도구가 된다.

오정현을 쫓아내고자 하는 분들이 하셔야 하는 일은 무명의 사람이 되고 작은 자가 되려는 사람을 자신들의 지도자로 선택하는 것이다. 주님의 양을 먹일 수 있는 사람은 화려한 스펙을 가진 뛰어난 엘리트가 아니라 베드로와 같이 산산이 부서진 심령이 되어 다른 사람들, 특히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이들에게도 양팔을 벌리고 이끌릴 수 있는, 평범하다 못해 고운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다.

세상에서는 오정현의 기사가 뉴스거리가 된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평범한 일탈에 지나지 않는다. 앞으로 펼쳐질 행보 역시 뻔하다. 그리고 그것에 일희일비하는 것은 교회를 건축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역할을 할 것이다. 교회가 건축을 하는 동안 교회는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게 된다. 건축을 마친 후 십여 년 동안에도 건축에 들어간 빚을 갚느라 교회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새 건물은 어느새 낡은 건물이 된다. 교회는 자신의 역량을 교회 건축에 쏟아 붓느라 하나님 나라 건설은 꿈도 꾸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다. 쫓겨나지 않으려는 오정현과 쫓아내려는 사람들 사이의 싸움은 지금까지도 길었지만 앞으로는 더욱 길어질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참여한 모든 분들은 안타깝지만 욕망의 춤을 추는 오정현과 함께 사단의 농락에 휘둘릴 것이다.

관심을 끄자. 하나님처럼 우리도 오정현과 그의 추종자들을 욕정대로 하도록 더러움에 그대로 내버려두자. 그리고 그런 그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하나님 나라 건설에 매진하자. 사랑하며 살아도 우리의 인생은 너무 짧다. 사도 요한의 간절한 외침이 절절하게 다가온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최태선  tschoi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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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184.XXX.XXX.86)
2018-12-06 13:17:41
찬성:9 | 반대:1 찬성하기 반대하기
제목이 너무 과한 것 같습니다. 사안의 심각성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라 보여지지만, 매우 부적절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생각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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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ark (175.XXX.XXX.137)
2018-12-07 12:52:52
찬성:3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변하지 않는 뜻 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이다.
그 거룩한 이름을 자기의 표현력을 나타내기 위하여 거룩한 성호를 욕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 뜻을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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