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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슬픈 찬양을 부르지 않을까?
사진은 본문 기사와 직접 관계없음(사진 출처: 힐송 워십 유투부 캡처)

[미주뉴스앤조이=신기성 기자] 허리케인 마이클이 쓸고 간 마을들은 말 그대로 쑥대밭이 되었다. 하룻밤 사이에 모든 걸 잃은 사람들의 절망에 빠진 모습이 계속 보도되고 있고, 어느 신문은 21세기 개척자들이 되었다고 헤드라인을 뽑고 있다.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사람들의 절규도 들린다.

몇 년 전 허리케인 샌디가 뉴욕 뉴저지를 강타했을 때가 떠오른다. 마을은 2주 정도 정전이 되었었고 늦가을 마지막 낙엽이 날리던 밤 퇴근길은 불빛하나 없는 어두움을 가르던 바람 소리만 황량했었다. 어두운 길을 가는 두려움 때문에 그나마 사람의 윤곽이 조금이라도 보일까 싶어 차도 한 가운데로 걸어서 집으로 오곤 했었다.

주유소 마다 2시간, 심지어는 5시간이나 줄을 서서 기다려야 기름을 채울 수 있었고, 대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주정부에서는 자동차 번호판 홀짝제를 실시했다. 태풍이 한 번 지나간 2주 동안은 그런 혼란을 겪어야 했다. 목숨을 잃고 재산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사람들에 비하면 그런 불편쯤은 차라리 사치에 가까웠다.

최근에만 해도 사우스/노스 캐롤라이나를 지나간 허리케인 플로렌스가 쏟아낸 폭우로 주 전체가 물에 잠기다시피 했다.

우리는 매일 특정 지역에 가해지는 엄청난 고통의 소식을 듣는다. 태풍, 화재, 지진 등 천재지변에 의해 파괴된 삶터를 바라보며 절망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본다. 총기사고 등 증오에 의한 인재도 드문 일이 아니다. 태풍이나 화재조차도 천재지변이라 하기엔 인간의 책임이 너무 크다.

애가를 부르지 않는 이유

Religion News Service(RNS)의 마티 듀렌(Marty Duren)은 오늘 날 교회가 애가(哀歌)를 잃었다고 지적한다. 유배된 이스라엘 사람들로부터 흑인 노예들에 이르기까지 성경과 교회의 전통이었던 애가들이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찬양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통으로부터 구하셨음을 기뻐하고, 애가는 우리의 고통의 순간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고백하는 노래이다. 하지만 지금 미국 개신교 예배 중에는 거의 이런 애가가 불리지 않는다는 것이 듀렌이 지적하는 바이다.

찬양 라이선스 기관인 CCLI가 집계한 현재 미국 개신교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찬양 100곡 가운데 신실한 자들의 슬픔과 고통을 노래하는 찬양은 손에 꼽을 정도이다.

ccli가 집계한 인기 찬양 100곡 중 1-7위 곡들(사진 출처:songselect.ccli.com)

기독교인들이 애가를 잃어버렸기 때문에 삶에 갑자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오면 자신들의 슬픔, 한탄, 아픔의 감정들을 표현할 노래들을 잘 알지 못한다고 듀렌은 지적한다.

RNS의 보도에 의하면, 싱어송 라이터이자 워십 리더인 산드라 맥크레켄(Sandra McCracken)은 수백명의 목회자와 예배 인도자가 모인 테네시 네쉬빌의 예배 컨퍼런스에서 “우리 삶을 돌아볼 기회가 별로 없는 속전속결형의 문화가 그 한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맥크레켄은 현재 많은 미국인들이 침묵하고 사색할 수 있는 여유가 거의 없는 산만한 삶을 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인 중 26%는 거의 하루 종일, 그리고 75%는 매일 인터넷에 접속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인들은 예배 중에 설교나 성가대의 찬양 사진을 인터넷에 올리고 있으며 설교 도중에 성경 앱과 소셜 미디어를 번갈아가며 접속한다고 한다. 주중에는 거의 계속해서 음악, TV, 소셜미디어 등에 접속되어 있다.

우리가 애통하기 위한 첫 번째 단계는 침묵을 유지하는 것입니다.”라고 맥크레켄은 말한다.

찬양 작곡가 케이스 게티(Keith Getty)는 교회 음악 비즈니스 분야에도 책임이 있다고 말한다.

“솔직히 우리를 기분 좋게 만들어 주는 노래를 찾는 비즈니스 영향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찬양이나 교회 서비스의 역할이 사람들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도록 하는 현대 교회의 상업적 접근 방식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는 또한 교회가 대체로 가벼운 수준의 찬양들을 즐겨 부르지만 슬픈 찬양은 더 이상 가벼울 수만은 없는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고도 말했다.

아픔에 대한 공감도 상실

사우스이스턴 침례신학교(Southea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의 조지 로빈슨 교수는 개신교의 불건전한 예전을 그 원인으로 진단한다. 그는 “애가의 필요성이 교회 예전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애가는 우리가 하나님께 접근하는 중요한 도구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어려운 순간에 빠졌을 때 우리의 슬픔을 주님께 토로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찬양 작곡가 앤 스틸레(Anne Steele)는 “애가가 사라진 교회에서 우리는 예수께서 비탄에 잠긴 사람들에게 다가 오신다는 예배에 관한 하나의 중요한 진리를 잃게 됩니다. 우리가 곤경에 빠졌을 때 그 분께서 우리에게 오기를 거부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므로 우리는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가질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라고 말했다.

애가를 잃어버림으로 인해 우리는 자신의 곤경과 아픔을 찬양으로 표현하는 법을 잊어버림과 동시에 이웃의 아픔을 기억하는 일에도 소홀하게 되었다. 이웃이 태풍과 지진과 화재와 사고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순간에도 자신의 안전과 축복을 인해 감사하고, 감격하고, 기쁨에 젖은 찬양만을 부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문제다. 우리는 이웃의 아픔에 대해 너무 둔감해진 것은 아닌지 반성도 필요하다.

이웃 사람들이 홍수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허리케인이 내 지역을 벗어났다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며,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감사하며, 안전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높이던 유명 설교가의 모습이 떠오른다.

늘 슬픈 노래만 부를 수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되겠지만 적어도 요즘처럼 사람과 자연세계의 울부짖는 고통의 소리를 들을 때엔 상하고 통회하는 심정으로 아픔을 나누고, 함께 울 수 있어야 하겠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롬 12:15)

신기성  shin@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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