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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 산선을 보며, ‘그래도 희망을 놓지 말자’영등포산업선교회 60주년 회갑(回甲) 기념사업을 바라보며

명성교회 세습이 본격화되던 시기에 한 평신도를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변호사로 일하면서 조그만 교회의 장로로 헌신하던 말 그대로 한국 교회의 ‘신실한 장로님’이셨다.

“이제 더이상 교회에 헌금을 내지 않겠다”

오늘날 교회의 부패는 헌금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넘쳐나는 강대상 위의 ‘파이’를 먹기 위해 너도나도 신학교로 달려들었고, 공장에서 물건 찍듯이 배출해낸 목사들이 오늘날 '교회의 위기'의 주범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교회의 진정한 위기는 ‘자기를 욕할 줄 모르는 기독교인’들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누군가를 욕하는 것은 인간 본성이고, 세상을 욕하지 않으면 굴복해서 살아야 하고, 자기를 욕하지 않으면 나쁜놈이 되어간다. 기독교인들은 비기독교인들을 실컷 욕하면서 자기를 욕할 줄은 모른다.”   

 

‘산선 60년, 다시 길을 묻다’

1958년에 출발해, 1977년 영등포구 당산동에 ‘노동교회’를 세우며 본격 활동에 들어갔던 영등포도시산업선교회(이하, 산선)이 올해로 만 60세 ‘회갑’(回甲)을 맞이했다.

‘회갑’(回甲)은 자신이 타고난 간지(干支)가 만 60년이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영등포산업선교회 60년 다시 길을 묻다’는 제목으로 오는 11월부터 진행될 산선의 기념사업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산선은 1970년대 말 불꽃처럼 일어난 노동운동의 울타리 역할을 했다. 그들은 YH무역, 원풍모방 등 소외된 노동운동의 현장을 찾아 수많은 ‘공순이’들의 권리를 지켜낸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1987년 9월18일 오전 전경련 회장실을 5시간 동안 점거해 노동운동 탄압을 규탄과 구속노동자 석방을 요구하며 농성하던 영등포산업선교회 목사 23명이 사복경찰에 연행돼 끌려나오고 있다. (중앙일보 자료사진)

당시 언론들은 ‘도산(도시산업선교회, 산선의 다른 이름)이 오면 도산(倒産)한다’고 매도하며, 용공 빨갱이로 몰아가며 집요한 공격을 쉬지 않았다. 하지만, 산선은 1970년, 80년대 열악한 노동현실을 깨우는 노동운동의 통로가 되었다.

<서울로 가는길>(형성사, 1982)의 저자이자 여성노동자인 송효순씨는 산선에서의 생활을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산선에서) 노동법도 배우고 문인이 와서 강의도 했다. 그것이 너무 좋아서 야간을 빼먹고 오기도 했다. 그 과정을 통해 생각이 변화됐다. 주눅이 들어있을 때인데 ‘너희들 노동자가 없으면 세상은 안 돌아간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자존감이 높아졌다.”

 

회갑을 맞은 산선은 스스로에게 ‘다시 길을 묻고자 한다.’ 대접받는 시대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를 향해 ‘욕’하는 시간을 갖겠다는 것이다.

영등포 산선의 총무인 진방주 목사는 “산선은 시대적 사명에 응답하기 위해 열심히 달려왔다. 이제 잠시 분주한 마음을 내려놓고 새로운 물음에 응답하려 한다”며 오는 11월부터 시작될 기념사업의 계획을 밝혔다.

성장을 위해 쉼없이 달려온 한국교회. 이제는 한번쯤 마음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실컷 욕하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화려하지는 않지만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교회’를 꿈꾸는 산선의 정신을 되새기면서.

양재영  jyyang@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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