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8.8.14 화 12:27
상단여백
HOME 칼럼·오피니언 컬럼 오피니언
송사를 포기하라
사진 출처: 법률신문

송사를 일삼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내 말이 아니라 성서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래서 송사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은 더 이상 교회가 아닌 교회에 정력을 낭비하지 말고 예수가 말한 새로운 세상을 향해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것은 송사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모습으로 스스로 교회임을 부인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결코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내세우는 이유들이 있다. 좀 유치한 이유는 자기네 목사의 설교가 좋다는 것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신앙은 단순하다. 자신이 은혜만 받으면 된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의 신앙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일 뿐이다. 성서는 그런 사람을 가리켜 배만 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신앙은 올바른 신앙이 아니다.

그 다음으로 내세우는 것은 신실함이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신실하신 분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교회를 다니지만 신실하다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를 대는 분들에게 나는 이렇게 질문하고 싶다. 꼭 그 교회를 다녀야 그런 분들의 신실함이 이어지는가. 그분들의 신실함은 그 교회 안에서만 가능한가. 또 그들이 내세우는 신실함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냥 선하게 사는 것인가. 그렇다면 기독교가 선하게 살라는 종교인가. 그리스도인이 선하게 살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기독교의 기독은 예수다. 그러니까 기독교는 예수가 중심이고 예수를 따르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를 따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간단하다. 너무도 명료하다. 성서는 그것을 이렇게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으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을지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10:42-44)

이 말씀에는 예수님의 염원이 담겨 있다. 그분의 염원은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새로운 나라인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서도 이루어져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가장 인간답게, 그리고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진정한 평화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그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관의 전복이다. 세상에서 힘은 지배의 수단이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 힘은 섬김의 도구가 된다. 아무리 지배하는 세력이 바뀌어도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힘에 대한 생각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다. 힘의 無力化야말로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가장 현저한 특징이자 키워드이다.

그래서 그분은 가장 비천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먹이통에 누이셨다. 평생을 집 한 채 없는 가난한 삶을 사시다 가장 비천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리고 가장 낮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그분은 죄인들의 친구가 되셨다. 물론 가끔 상류층의 사람들이나 부자들도 그분의 식탁에 함께 했지만 그들 가운데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게 되는 자들은 거의 없었다.

게하르트 로핑크는 자신의 책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에서 그것을 이렇게 말한다.

“교회가 그 (어디까지나 필요하고도 정당한) 권위를 걸핏하면 지배에 의하여 확보하려 한다는 것은, 교회 본연의 모습을 흐리게 하는 가장 큰 비극의 하나다. 실은 이렇게 할 때에 바로 교회의 권위 자체가 실추되고 복음이 막중하게 손상된다. 진정한 권위는 지배를 단념하고 무력해졌을 때라야 빛이 나는 법이다. 이것이 십자가에 못 박힌 분의 권위다.”

내가 어떤 교회들을 더 이상 교회가 아니라고 말하는 이유는 그런 교회들이 예수의 정신을 붙들지 않고 따르지 않아서이지 설교를 못한다거나 신실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니다. 예수님 자신이 직접 말씀하셨듯이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 전해진다. 물론 가난의 신비도 있다. 하지만 가난이 강조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가난이야말로 힘이 무력화된 가장 분명한 상태이며 그럴 때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기 때문이다.

신실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교회를 떠나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는 그 사람들 역시 힘을 추구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힘은 부와 명예와 지배라는 세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들이 신실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것들에 함몰된 사람들이다. 결국 그들이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힘이다. 그들이 힘을 포기하고 예수의 정신에 따라 새로운 가치관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 건설에 참여하게 되기를 나는 진정으로 바란다.

최태선 목사  tschoi45@hanmail.net

<저작권자 © M 뉴스앤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의견나누기(0개)
코드를 입력하세요!   
0 / 최대 3200바이트 (한글 1600자)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상세보기]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