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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목사와 우상숭배
'금송아지 숭배' 17세기 니콜라 푸생 작

아주, 아주 오래 전 일이다. The young ones. Evergreen trees 등의 곡으로 유명한 가수 클리프 리차드가 서울 시민회관에서 방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그때 내게 기억에 남는 일은 여성 팬들이 팬티를 벗어 무대로 던졌다는 사실이다. 당시의 성도덕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정말 엽기적인 일이다.

내게 이 생각이 떠오른 것은 온누리교회 정재륜 목사의 불륜기사에서 그 이전 전병욱 목사 이야기가 나왔고, 전목사가 아이돌 같은 목사라는 내용을 읽었기 때문이다. 정재륜 목사 역시 아이돌 같은 스타 목사였다고 들었다.

오늘날 사람들은 아이돌이라는 말을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그것도 좋은 의미로 사용한다. 그래서 누구든 아이돌이 되고 싶어 한다. 자신이 아니라면 자식들이라도 아이돌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아이돌이라는 말의 원래 의미가 무엇인가. 우상이다. 그렇다. 오늘날 사람들은 자신이 대중의 우상이 되기를 원한다. 그런데 아무리 시대의 흐름이 그렇다 하더라도 소위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이라면 이 단어를 거절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최소한 거리낌을 느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아예 한 걸음 더 나아가 교회 안에서 아이돌을 찾고 아이돌을 만든다는 이 기막힌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그러니 교회가 커질 수밖에 더 있는가. 그런 교회가 계속해서 더 커지려 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누가 더 큰가 비교하고 이겨야 하지 않는가. 하나님이 최고니까 자신들의 교회 역시 최고가 되고 전능해져야 하지 않는가.

교회가 본질에서 벗어나는 것은 그러므로 당연한 일이다. 우상을 만드는 교회는 이스라엘의 산당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이스라엘은 산에다 그런 우상들을 모시는 곳을 따로 세웠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는 그럴 필요가 없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더 이상 성전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걸림돌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당을 세워놓고는 그것을 교회로 착각하는 것이다. 그곳에는 스타 목사가 필요하다. 그리고 스타 목사는 아이돌이 된다. 이 얼마나 아구가 들어맞는 일인가. 목하 우리는 바로 그러한 현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온누리 교회 교인들은 정재륜 목사를 청년 예수라고 불렀다고 한다. 예수님마저 그곳에서는 우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청년 예수는 스타이다. 아이돌이다. 사람들은 우상들에게 무엇이든 바칠 각오가 되어 있다. 자기의 가장 내밀한 것, 가장 중요한 것을 기꺼이 던질 각오가 되어 있다. 이 한 몸 바치는 것 정도는 우상에 대한 기본이다. 아이돌에게 불륜은 없다. 그것은 자연의 순리일 뿐이다.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성서가 예언하고 있는 예수의 모습이다. 그분은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으시다. 그분은 그래서 스타가 될 수 없다. 그래서 그분은 아이돌이 될 수 없다. 그분은 평범하다. 아니 평범한 사람도 어느 구석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 그러나 그분은 그런 구석조차도 없다. 성서에 예수의 외모를 기록하고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그리스도는 스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돌이 되어서는 더더욱 안 된다. 그러면 아무도 그분처럼 될 수가 없다. 아무도 그분을 따를 수가 없다. 그래서 그분은 비우는 것으로 모자라 낮아지고 또 낮아지셔야 했다. 그분이 가장 낮은 곳에 계셔서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그분처럼 될 수가 있게 된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따를 수 없는 것은 그분이 스타이고 아이돌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분이 가장 낮은 곳에 계시는 흠모할 아름다움이 없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누구라서 자신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겠는가. 누구라서 자신의 자녀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하겠는가. 그래서 오늘날 교회는 망했다. 대신 그들은 우상에게 환호하는 산당을 만들어놓고 자신들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확신하고 자신들이 구원을 받았다고 쾌재를 부른다.

오래 전 키에르케고르는 이런 교회의 모습을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경고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말을 하는 키에르케고르만 모진 고생을 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날 수 있는 날개를 가진 새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뒤뚱거리며 걷는 거위가 되었다. 누구를 비난해야 하는가. 정재륜인가. 성작가인가. 아니다 뒤뚱거리며 걷고 있는 자신이다. 눈을 들어 우상을 바라보지 말고 가장 낮은 곳에 계시는 흠모할 아름다운 것이 없는 예수를 바라보자.

최태선 목사  tschoi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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ㅡㅡㅡ (174.XXX.XXX.208)
2018-08-31 07:20:59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그 작가도 결코 순수해 보이지 않았어요. 작품들 한번 찾아 보세요 꿈에 나올ㄲ 무삽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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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70.XXX.XXX.237)
2018-07-27 15:13:58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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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99.XXX.XXX.141)
2018-07-25 17:01:16
찬성:6 | 반대:14 찬성하기 반대하기
목사님, 그만하세요. 본인은 지금 얼마나 괴롭겠어요. 목사님 같은 분이 직간접으로 손가락질 하지 않아도 그 분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 충분합니다. 기도해 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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