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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포기 못하고 저것도 사랑하고
사진출처: 웰리빙 미디어(http://well-living.kr)

“가정을 포기할 수 없었고, 성작가도 진심으로 사랑했다.”

불륜이 드러나 교회를 사임하게 된 어떤 목사의 말이다. 이혼할 것이라고 말하고 다른 여인과 불륜을 이어오다 여자가 자신들의 관계를 공개하겠다고 하자 신속하게 회개를 한 후 교회 관계자들 앞에서 한 말이란다.

그의 말은 사실이다. 그는 가정을 포기할 수 없었고, 불륜관계도 포기할 수 없었다. 그에게는 가정도 중요하고 성작가도 중요했다. 둘 다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는 두 관계 모두를 포기할 수 없었을 뿐이다. 그런 그에게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을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모습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오랜 전통을 가진 유대기독교의 관행이다. 유대기독교의 선배라고 할 수 있는 유대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했다. 그리고 세상의 풍요 역시 사랑했다. 그들은 그 어느 것도 소홀히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산당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끝까지 함께 한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믿고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포기하시고 버리셔야 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한 견해를 밝히셔야 했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예수님께서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사랑할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과 재물을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섬김의 대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사랑이란 한 주인을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고 말씀하셨다.

사랑은 상대방을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상대방은 단순히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주인이 된다. 주인이 된다는 것의 의미는 그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사랑을 받는 자가 주인이 되는 관계가 성서가 말하는 사랑이다.

주님을 사랑하면 모든 주도권을 주님께 내어드려야 한다. 그 사실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맘 나의 몸 주께 드리오니 주 받으옵소서.”라는 찬양을 드린다. 그리고 어느 정도 그렇게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찬양을 드리며 간과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재물을 미워하는 것이다. 주님을 섬기겠다는 것은 동시에 재물을 미워하겠다는 선언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재물을 경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을 보라.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재물을 미워하고 경히 여기는 사람들은 볼 수 없다. 그래서 돈으로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돈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전부다. 돈이 없으면 하나님을 위해 일할 수 없고, 돈이 없으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과부의 두 렙돈을 칭찬하신 예수님은 어리석은 경제학자일 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아흔아홉 마리 양을 버려둔 채 길 잃은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서는 예수님은 어리석은 목자일 뿐이다.

복음대로 살려는 이들은(그리스도인들이라고 쓰면 될 것을 굳이 이런 표현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개탄스럽다) 돈을 미워해야 한다. 돈을 가볍게 여겨야 한다. 돈이 모든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돈에게 절대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스스로 자신의 주님에 대한 사랑을 부정하는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십일조 논쟁을 하지 않는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헌금 없는 교회를 말하지 않는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 이야기 자체를 하지 않는다. 돈을 미워해야 하고 돈을 경히 여겨야 하기 때문이다. 돈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은 돈을 중요하게 여기고 돈을 섬기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돈 많이 번 것을 자랑하고, 돈 많은 교회를 자랑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면 쓰레기를 쌓아놓은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겨야 한다. 주님은 오늘도 동전 두 닢을 드리는 가난한 과부에게 모든 사람들보다 많이 넣었다고 선언하신다.(노파심 - '더 많이'라는 단어에 현혹되지 말라. 가난이 섬김이다!!)

최태선 목사  tschoi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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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az Kim (107.XXX.XXX.250)
2018-07-18 04:43:17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가난이 섬김이다!" 라고 선포하셨는데...묵상하시면서 가난한 자 또는 가난의 기준을 어떻게 설정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하나님이 평강이 목사님께 늘 함께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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