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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 목사, 복채 교인최태선 목사 칼럼
미신적 교회, 과연 무당같은 목사만 문제일까? <네이버 블로그>

“무당끼 있는 사람은 제발 목회 좀 하지 마시기 바란다.”

오늘 아침 페이스에서 본 글이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목사가 무당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나는 다른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무당끼 없는 목사의 교회를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우선 왜 무당이 아닌 목사가 무당처럼 굴어야 할까를 생각해 보자. 그것은 암묵의 교환이다. 자연스런 균형이다. 교회에 나가는 대부분의 교인들은 목사에 의존한다. 마치 목사는 무슨 큰 영험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목사가 기도를 해주고, 축복을 해주길 원한다. 결정하기 곤란한 경우에도 목사가 대신 결정을 내려주고 양심에 걸리는 일도 목사가 괜찮다고 해주면 그때에야 비로소 안심을 한다. 자연스런 목회, 또는 목양의 모습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런 것들이 바로 목사를 무당처럼 행동하도록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그리고 또 목사는 그런 일을 함으로써 자기 교회 교인들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그런 일을 선호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런 일을 잘 하면 헌금이 늘어나기도 한다. 

이 얼마나 유치한 종교놀음인가. 하지만 이런 종교놀음을 하지 말라고 하거나 부정하면 더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성서가 말하는 자유란 성숙한 사람의 일종의 깨달음이다. 그런 자유가 성숙하지 않은 신앙인들에게는 무거운 굴레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목사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지고 교인들의 성숙도에 따라 상황별로 대처할 수 있는 가변적인 자세를 가져야 한다. 

나는 사람들이 내게 부탁하는 기도를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 한 번은 제주도의 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한 부부와 밤늦게까지 신앙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다음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쉽지만 대화를 끝내야 했다. 그런데 그 부부가 내게 목사님이 마무리 기도를 해주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나는 그러면 두 분 중에 한 분이 그 기도를 하시라고 하였다. 그러자 그 부부는 ‘아이 목사님이 계신데’ 하며 내 요구를 거절하였다. 나는 그 부부에게 내가 왜 기도를 거절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었다. 목사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목사는 모든 것을 주도하는 사람도 아니다. 목사는 섬기는 사람이다. 낮은 곳에 서야 한다. 마무리 기도는 대표적인 높은 자리이다. 내 설명을 듣고 우리는 그냥 웃으며 작별인사를 나누었다. 

한 번은 알고 지내는 이웃 그리스도인 가정의 아이가 자전거를 타다 팔이 부러졌다. 우연히 마주쳐 그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마침 잘 만났다고 기도를 부탁했다. 나는 그 기도를 거절했다. 그 아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이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가장 절실한 기도를 드릴 수 있다는 말씀을 드렸다. 당시는 조금 머쓱해했지만 후에 그 가족은 우리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그분들이 우리 교회에 출석하기 전 허락을 얻기 위해 그분들이 다니던 교회 목사에게 전화를 했지만 대형교회인 그 교회 목사와는 통화할 수가 없었다. 

또 한 번은 개혁을 외치는 분을 만났을 때이다. 그분은 아는 게 많다. 느헤미야 기독연구원에도 다니고 책도 많이 읽은 분이다. 그래서 대화하기가 참 어려웠다. 그분은 목사를 하찮게 여기는 분이였다. 치과를 하시는 분이었는데 자신을 만나려면 점심시간에 찾아오라고 했다. 자기는 다이어트 중이라 점심을 먹지 않는다고 했다. 이야기를 하고 점심시간이 끝나 일어나 돌아오려는데 그분이 목사님이 기도도 안하시냐고 물었다. 나는 목사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마무리 기도를 가능한 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그곳에서 나왔다. 마무리 기도도 안 하는 되도 않은 목사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이런 몸에밴 습관들이 목사를 무당으로 만드는 첩경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무당끼 있는 사람은 제발 목회 좀 하지 말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무당끼 없는 목사를 감당하지 못한다. 나는 그리스도인들이 성서가 말하는 자유에 이르기를 바란다. 하지만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에서 보듯이 모든 갈매기가 높은 창공을 나는 자유를 아는 갈매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자유를 향한 험난한 여정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똑같은 목표인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초대를 받았다. 목사는 그 일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그러니까 쓸데없는 말로 목사의 권위를 허무는 일을 하지 마셨으면 한다. 목사는 때로 무당끼를 부려야 할 때도 있다. 무당끼를 철저히 부정하는 나 같은 사람은 목회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최태선  tschoi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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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96.XXX.XXX.195)
2018-07-11 21:02:54
찬성:3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목사보다 교회 앞장선 직분자들이 목사를 그렇게 만들고있네요
모이는 곳마다 목사님이 목사님이 하면서 자기들은 그다음 서열이라는 계급을 만들고 대리만족을 하는 잔머리 잘 쓰는 사람들 하는 짖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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