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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주 교수, "말씀은 구체적 현실 가운데"김근주 교수 인터뷰 '오늘날의 교회, 말씀의 보편성만 붙들어'

[미주뉴스앤조이(LA)=마이클 오 기자] 광막함. 오래전 성경의 저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신비와 사랑의 크기를 담아낼 그릇으로 쓰였음직 한 이 표현은, 오늘날 말씀과 현실이라는 섬 사이에 놓여진 바다를 그려내는 슬픈 형용사가 되었다. 하지만 신학자 김근주 교수는 오히려 이 아득한 바다를 향해 뛰어드는 것이 신앙이며, 말씀으로부터 수여받은 진리의 보편성과 현실의 구체성이라는 두 노를 사용해 힘차게 전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실 가운데 숨겨진 말씀의 힘과 가능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기 위해 엘에이를 찾은 김근주 교수를 만나, 그가 바라보는 오늘날의 신앙 가운데 말씀의 위치와 방향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김근주 교수 <페이스북>

먼저 사람 김근주에 대해서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대구에서 자랐다. 고 1때 친구의 전도로 예수를 믿게 되었다. 커서 보니 아주 보수적이었던 한 장로교회에서 신앙교육을 받았고, 대학 졸업후 목회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에도 보수적인 신앙과 성령사역으로 유명했던, 당시 출석하던 교회의 담임목사님의 권유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전반적으로 보수적인 분위기 가운데 삶과 신앙이 성장하였고, 지금도 이러한 신앙적 보수성은 유익하고도 중요한 뿌리로 자리하고 있다. 

이와함께 대학 이후 신학을 하면서 경험한 자유로운 학문적 분위기와 환경도 중요한 역할을 한것 같다. 장로회 신학 대학원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자유로운 학문의 여정으로서의 신학 연구는 유학을 거쳐 현재 기독연구원 느헤미아까지 이어졌다. 

느헤미아에서 동료 학자들과 나누는 연대의 깊이가 갈수록 깊어지는 이유도 이러한 신앙적 보수성과 자유로운 학문의 공통기반 위에 함께 서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와 더불어 진보적 정치성향 또한 이러한 연대의 중요한 매개이며 김근주라는 사람을 설명하는 데 빠질수 없는 술어라고 생각한다. 한국 근현대사의 거친 파도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특별히 지난 10여년 동안의 엄혹한 세월을 지내면서 신앙과 학문의 의미와 역할이 현실 가운데 무엇인지 많은 고민을 한 것 같다. 

이렇게 보수적 신앙과 자유로운 학문 추구, 그리고 정치적 진보성이라는 세가지 키워드로 사람 김근주를 요약할수 있을것 같다. 

몸 담고 있는 기독연구원 느헤미아는 어떤 곳인가? 

2010년경 시작되었다. 아마 당시 이명박 정권이 있었던 시기로 기억한다. 각자가 자신의 영역에서 활동하던 신학자들과 운동가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다들 암울한 현실 문제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가운데, 신앙이 현실 사회 문제 앞에 아무런 답도 없이 그저 교회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만을 키워내고 있다는 문제의식과 한국 교회가 지나치게 목회자 중심이라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대화는 곧이어 이러한 현실에 맞서 무언가 해보자는 결의로 발전되었고, 당시의 8명이 모여서 ‘하나님의 온 백성의 손에 신학을’, ‘한국 기독교의 재구성’, ‘한국 사회에 응답하는 신학’ 이라는 느헤미야의 세가지 지향점에 대한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하나님의 온 백성의 손에 신학을’은 그동안의 신학교육이 지나치게 목회자 중심의 전문적 교육과 개인적 적용에 촛점을 맞춘 성경공부 수준의 평신도 신학교육에서 탈피하자는 반성을 담고 있다. 

‘한국 기독교의 재구성’이란 한국 교회 전체를 바꿀수는 없지만, 구원과 영생 등의 기독교 핵심 개념이 사후 세계에 관한 믿음으로 전락해버린 이원론적 신앙과 예수를 따르고 믿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말이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세계 가운데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고민과 재정립을 소망하고 있는 표현이다. 

‘한국 사회에 응답하는 신학’은 당시의 이명박 시대의 갑작스런 민주주의의 후퇴와 쌍용자동차 사건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난 노동문제 등의 사회적 문제, 그리고 이러한 현실 앞에서 끊임없는 교회 건축과 세습등의 반 사회적 문제등을 어떻게 해석하고 해답을 제시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다짐하는 표현이라고 할수 있다. 

결국 제대로 된 신학을 모든 교우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서 구약, 신약, 조직신학, 기독교 윤리, 교회사 등 흔히 목회학 과정이라고 불리우는 신학교육을 평이하지만 진지한 언어로, 그리고 현실의 문제와 사회적 맥락을 유지하면서 진행하고 있다. 

대부분의 한국 신학교는 특정 교단이나 개인 혹은 소수의 이사회에 소속된 형태로 존재한다. 다시말해 이들 신학교는 교권이나 금권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기독교 신학과 신앙이 특정 교단이나 개인 혹은 단체의 이해관계나 이권에 제한될수 없다는데 있다. 

느헤미야는 이러한 한계로부터 자유로운 신학과 교육을 지향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다양한 교단과 전통의 신학을 균형있게 가르칠뿐만 아니라, 후원제도 등을 도입하여 소수의 영향력 있는 개인이나 단체에 흔들리지 않는 재정구조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800여명의 후원자가 돕고 있으며, 안정적인 교육과 운영을 위해 1000명의 후원자를 목표로 노력하고 있다. 

현재 평신도 과정, 목회자들을 위한 월요 목회자 재교육 과정, 그리고 5년전부터 시작한 목회학 과정등이 개설되어 있다.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http://www.nics.or.kr/vision>

구약학자 김근주에게 구약은 어떤 책인가? 예수님과 신약의 그림자 가운데 가려진 책으로 인식되거나, 무분별한 성직자의 권위를 옹호하는 등 왜곡된 신앙의 근거로 쓰이는 경우도 있다. 어떤 말을 할수 있는가? 

무엇보다 구약은 예수님과 바울의 책이었다. 뿐만 아니라 바울의 서신서와 복음서가 인정된 2세기 중반 이전까지 성경책은 구약을 의미했다. 이 당시에는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이었으며, 초대 교회와 사도들 모두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구약을 읽었다. 

구약은 그 자체로 완결성을 가지고 있으며, 예수님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이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살아왔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의 복음과 바울의 메시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구약의 수많은 선지자들의 비판과 소망과 구원에 대한 염원위에 오신 분이며, 구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 다음, 그 예언의 실현으로 오신 분이다. 예수님의 복음과 하늘나라에 대한 이해는 구약의 맥락 밖에서는 가능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복음의 토대를 잃어버린다면 우리는 전혀 말씀과 상관없는 복음과 메시지를 가질 위험에 처하게 된다. 전형적인 예가 바울이 외쳤던 ‘믿음으로 인한 구원’ 개념에 대한 오해이다. 수많은 교회와 강단에서 구원을 내세와 연관된 개념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바울이 외쳤던 구원의 개념의 원천인 구약에서는 구원이란 말이 한번도 내세와 연관된 적이 없다. 바울은 구약의 구원 개념 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이땅에서나 죽어서나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개념으로 구원을 외쳤지만, 이러한 맥락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린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오직 죽음 이후의 구원, 반쪽짜리 구원에 메달리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구약 성경, 어떻게 볼것인가? <느헤미야 페이스북>

구약 성서와 예수님의 복음이 이 땅과 관계없는 내세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는 구체적인 시대와 역사 그리고 이땅의 삶에 관한 것이라면, 그 구약을 포함한 말씀은 오늘날의 현실 세계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가? 또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성경에는 하나님의 보편적인 지가 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메시지는 성경 전체를 관통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가르침이다. 문제는 이런 보편적인 메시지는 구체성이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런 말씀을 가지고 우리 곁에 있는 난민들이나 외국인 노동자를 어떻게 대할것인가 묻는다면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러한 보편적인 메시지는 각 시대와 장소의 구체적 맥락과 결합되어야지, 그 의미를 찾을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성경을 다시보면 보편적인 가르침이 그 시대의 구체와 특수를 통해 표현되었다는 것을 발견할수 있다. 

예를 들어 이사야 1장 1절은 ‘웃시야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이사야가... 본 계시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여기서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가 왜 언급되었을까? 이것이 바로 구체와 특수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보편적인 메시지가 웃시야부터 히스기야까지 구체적인 시대와 특수한 상황 가운데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언자가 달라지고 시대가 달라지면, 그에 따라 하나님의 보편적인 메시지 또한 새롭고도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한편 이런 보편과 구체가 결합된 이사야의 말씀은 우리에게 직접 주신 메시지가 아니다. 이사야 말씀은 하나님의 보편적인 메시지가 이사야의 구체적인 시대와 특수한 상황을 통하여 나타난 그들의 메시지 인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말씀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한다는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사야의 구체와 특수를 통해서 주신 보편적인 메시지를 발견하고, 그것을 우리의 구체와 특수 가운데 적용할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의 구체성 가운데 발견된 하나님의 보편적인 메시지를 다시금 우리의 구체적 시대와 특수한 상황 가운데 해석하고 적용해야 하는 과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은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구체를 보편으로 착각함으로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오해하게 되고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가령 성경에서 해가 이쪽에서 떠서 저쪽으로 진다는 표현이 있다고 할때, 이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구체를 빌어 표현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보편으로 받아들이게 될 경우 천동설을 믿게 되는 황당한 결과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교회 또한 보편만을 주장하고 가르칠수 없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시대와 상황과 동떨어진 메시지는 공허하고 왜곡되기 쉽다. 보편만 주장하며 되풀이 하는 이들을 가리켜 꼰대라고 한다. 이 시대에 교회가 꼰대의 오명을 벗고 진정으로 의미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시대의 구체성과 특수성 가운데 끊임없이 보편을 해석해 내어야 하며, 또한 그러한 해석된 보편 역시 영원한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구체와 특수 가운데 변화될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김근주 교수 저서 <http://m.mall.godpeople.com/?G=1379990270-1>

우리 시대에 처한 신앙과 말씀을 향하는 도전은 무엇이라고 보나? 

앞에 이야기한 맥락과 같은 선상에서 신앙과 말씀의 구체성이 상실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오늘날의 교회와 신앙인들이 말씀의 보편성만 붙들고 구체적인 시대와 현실 가운데 말씀을 해석하지도 않고, 참여하지도 않으려는 현상이 나타난다. 

사도행전 17장 11절에 표현된 뵈뢰아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바울이 전한 메시지를 ‘간절한 마음으로’ 받았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 말은 그들이 진리에 대한 진지한 자세가 있었다는 뜻으로 해석할수 있다. 경험에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인생을 냉소하지 않으며 진리 앞에 진지하게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 (investigate)’하였다는 표현이 뒤를 따른다. 이 ‘상고’라는 표현은 진리에 대한 비판적 자세로 풀이할수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진리에 대한 진지함은 있지만, 이 비판적 자세는 부족하다고 할수 있다. 우리는 오래동안 성경의 진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아래 질문과 비판을 통제하는 버릇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자세로는 성경이 가지고 있는 신비롭고도 풍성한 진리를 제대로 알수가 없다. 진리에 대한 진지함은 지키되 비판적 자세로 다가서는 태도가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소망을 알려주신다면?

구약학자이자 선생으로서 계속 예언서를 공부하고 있는데, 언젠가 에스겔서를 본격적으로 연구해보고 싶다. 또한 마태복음을 구약의 눈으로 연구하여 주석을 써 볼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다. 

다니엘서에 관한 책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왔다. 전문적인 주석이라기 보다는 일반분들도 쉽게 볼수 있도록 쓴 책이다. 

마이클 오  michaeloh@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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