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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광야: 은둔의 유다광야뉴하트선교교회 최긍렬 집사의 이스라엘 기행문 3번째

 화씨 109도, 섭씨 43도. 사해가 우리를 맞이한 날은 폭염이 절정이었다. 사우나 열탕의 온도가 100도를 약간 넘는 정도라니 우리는 이날 열탕에서 산 셈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 했던가. ‘내 생애 언제 이렇게 따뜻한 날을 맞으리’하는 생각으로 폭염을 즐겼다. 사실 온도가 높았지 습도는 낮기 때문에 그늘에 들어서면 견딜만 하다.

사해: 지중해 수면보다 4백미터가 낮은 사해는
소금농도가 일반 바다의 5배 정도 높다.

사해는 특별한 곳이다. 우선 물이 그렇다. 어디서 들어왔는지 물의 소금 농도가 25%나 된다. 일반 바다의 5배나 된단다. 그래서 히브리 성경에서는 ‘소금바다’라고 불렸다. 수영을 못해도 자세만 잘 잡으면 그냥 둥둥 뜬다. 미네랄 성분이 풍부해 피부미용, 무좀, 아토피, 관절염 치료에 좋단다. 만병 통치다. 단, 염도가 높기 때문에 눈이나 귀, 코에 물이 들어가면 곤욕을 치룰 수 있다.

사해는 지구에서 가장 낮은 낮은 곳이다. 사해의 수면은 해수면 보다 4백미터나 더 낮다. 예루살렘을 해발 900미터라고 하지만, 사해 해수면으로부터는 1300미터 고지가 된다. 사해는 낮은 자들의 은둔처다. 낮은 곳, 소외된 곳이라고 은혜가 없을 수 없다. 은혜는 낮은 곳으로 흐른다고 하지 않는가. 사해에 있는 동안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가장 낮은 자가 되었다.

이스라엘 역사는 광야와 함께 출발한다.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의 시대가 족장의 시대라면 하나의 민족이라는 개념이 싹 튼 것은 유월절과 출애굽 부터일 것이다. 출애굽 후 거쳤던 가네스바네아, 신광야(SIN광야와 ZIN광야), 바란광야 등에서의 고단한 삶은 이스라엘이라는 민족공동체를 형성해 가는 과정이었다. 그들의 정체성과 DNA에 광야가 자리잡고 있다.

유다광야: 예루살렘, 헤브론 등 이스라엘의 주요 도시가 있는 유다산지와 사해 사이에 유다광야가 위치해 있다. 마사다, 엔게디, 쿰란 등이 있다.

또 다른 광야가 있다. 유다광야라고 불리는 곳이다. 유다광야는 출애굽의 광야와는 지리적으로, 시기적으로 또 그 의미에 있어서 출애굽 광야와 사뭇 다르다. 출애굽 후 40년의 광야가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장소였다면, 유다광야는 힘있는 자들에게 반역으로 내몰린 삶들의 막장같은 곳이다. 사울에 쫒기던 다윗이 숨었던 엔게디가 그랬고, 마지막 한사람까지 죽음으로 로마에 저항했던 마사다도 그렇다. 부패한 유대교와 로마의 박해를 피해 성경를 필사하며 은둔했던 에센파 사람들의 쿰란동굴도 유대광야에 있다.

우리 일행이 먼저 들렀던 곳은 마사다.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 434미터 높이의 요새다. AD 70년 예루살렘성이 무너지면서 900여명의 유대인들은 끝까지 저항하며 마사다로 피한다. 9천여명의 로마군이 포위하며 공략했지만, 마사다는 난공불락이었다. 2년여 동안 헛심을 들이며 고민하던 로마군은 6천명의 유대 포로를 동원해 비교적 지형이 높았던 서쪽에 200여미터의 언덕을 쌓고 마침내 마사다 진입에 성공한다. 동족 유다 포로를 죽이고 싶지 않았던 마사다의 전사들이 저항을 포기한 까닭이다. 마사다에 들어선 로마군은 놀라운 광경에 전율을 느끼고 만다. 몇 명의 여인과 아이들을 제외한 900여명이 죽은 채로 있었기 발견되었기 때문. 마사다의 생존자로 알려진 유세푸스의 ‘유대전쟁사’ 따르면, 최후가 다가옴을 느낀 전사들은 비장한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전사들은 각자 집으로 돌아가 눈물로 가족들을 안으며 아내와 자식들을 죽인 후 다시 모인다. 제비로 10명를 뽑아 나머지 전사들을 죽이고, 10명도 차례로 목숨을 거둔 후 최후의 1인은 자살한다. 적에게 포로로 잡히지도, 적에게 목숨을 잃치도 않겠다고 죽음의 결의를 한 것이다.

마사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마사다로
후퇴한 9백여명의 이스라엘 전사들은 2-3년 후
이곳에서 장렬한 최후를 맞는다.

마사다에는 비장감이 흐른다. 지금도 이스라엘 군대의 마지막 훈련코스는 마사다에서 한다. 그리고 코스 마지막에 외친다. ‘마사다를 기억하라.’

마사다에서 사해를 따라 북쪽으로 6마일 쯤 가다 보니 제법 녹지가 보인다. 옛날에는 광야였으나 현 이스라엘 정부의 대추야자 녹지 사업으로 오아시스 같은 곳이 만들어졌다. 엔게디, 사울과 다윗이 쫒고 쫒기는 정적으로 마추친 고이다. 3천명의 정예병사를 이끌고 다윗을 추격하던 사울이 뒤를 보기 위해 혼자 들어간 동굴. 이 안쪽에는 반역자로 몰린 다윗 일행이 숨어있었다. 다윗에게는 무방비 상태인 사울을 죽이고 왕위를 차지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당장 죽이자는 부하들의 재촉을 뿌리치고 다윗은 가만히 사울의 겉옷 자락만 베고 사울을 보내준다. 겉옷 자락 벤 것도 마음이 찔린 다윗은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신앙고백을 한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사무엘하 24장6절)

내 뜻이 아니라 하나님 계획에 맡긴 것이다. 다윗의 진심을 안 사울은 울며 회개한다. 부하들도 분명 감동했으리라.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 먼저 순종하고 내려놓는 다윗은 분명 그의 자손 예수님을 닮았다. "오리를 가자하면 십리를 동행하라." 그러면 사람들이 감동하고 회개하고 돌아오지 않을까. 말 뿐 아니라 삶 전체로 전도하라는 명령일테다.

쿰란: 2천년전 필사된 성경이 발견된 쿰란 동굴들. 산중턱의 동굴들에서 에스더서를 제외한 구약성경 전체가 발견됐다.

쿰란은 사해 사본이 발견된 곳으로 유명하다. 예수님 탄생 전후시기 유대사회의 주류는 바리새파, 사두개파와 열성당. 경건과 극단적인 금욕을 중요시하는 에센파는 이들 주류 세력의 부정 부패를 혐오하며 세상과 담을 쌓고 은둔에 들어간다. 그래서 찾아들기 시작한 곳이 유다광야의 쿰란이다. 주전 3세기 부터 주후 1세기 까지 약 400년 넘게 한 자 한 자 성경을 필사하며 공동체 생활을 한다. 이들이 쓴 성경은 항아리에 넣어 쿰란의 건조한 동굴 이곳 저곳에 숨겨진 채 2천년간을 지내다 1947년 어느 이두메 목동에 의해 우연히 발견된다. 에스더서를 제외한 전체 구약이다.

사해사본이 발견되기 전까지 가장 오래 된 히브리어 성경은 주후 10-11세기에 필사된 마소라 사본. 사해 사본이 주전 3세기에서 주후 1세기에 쓰여진 것을 감안하면 마소라 사본과 1천년 이상의 시간 간극이 있다. 시간차에도 불구하고 두 성경 내용은 놀랍도록 일치한다고 한다. 똑같은 일을 두고도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다른 나에게 2천년전의 사해 사본은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하나님 말씀은 영원하다.

최긍렬 집사  newsnjoy@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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