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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이발소에서 배우는 교회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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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게 된 Old friend와 하는 일 가운데 하나가 머리를 깎는 일이다. 친구와 나는 함께 머리를 깎는다. 매주 촛불집회를 참가하면서 우연히 발견한 종삼의 싼 이발소를 들어가게 된 건 순전히 친구 덕이다. 아마도 혼자서는 용기를 못 냈을 것이다. 3천5백 원짜리 이발소에 첫 발을 디디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친구가 있어 가능했다.

어쨌든 우리는 두 달에 한 번 만나 머리를 함께 깎게 되었다. 머리를 감지 않으면 둘이 합쳐 7천 원이다. 그래서 먼저 끝나는 사람이 돈을 낸다. 희한한 것은 그곳에서는 머리를 감지 않고 강력한 진공청소기 같은 것으로 머리카락들을 빨아들이는데 머리를 감는 것보다 효과가 좋았다. 머리를 감으면 5백 원을 더 내야 하는 데 돈 때문이 아니라 간편함 때문에 그것을 택했다.

촛불 집회가 끝난 후에도 한동안 그곳에서 만나 머리를 깎았다. 머리를 깎는 시간도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아 너무나 좋았다. 그런데 촛불집회가 끝나니 딱히 우리가 종삼에서 만나야 할 이유가 사라졌다. 이발비가 싸다보니 전철비까지 계산하게 된다. 그러면 3천5백 원이 아니라 6천 원이 된다. 그래서 친구의 가게가 있는 영등포의 이발소를 가보게 되었다. 그곳은 이발비가 5천 원이다. 전철비를 빼면 비슷한 가격이 된다.

그런데 영등포의 이발소에는 이발사가 혼자다. 그래서 손님이 있으면 기다려야 한다. 종삼의 이발소들은 자리마다 이발사가 있다. 기다릴 필요가 없다. 더구나 같은 자리에서 깎으면 같은 이발사가 머리를 깎아준다. 나는 첫 번째 자리를 애용했는데 이발사가 나를 기억하고 말을 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스타일로 머리를 깎아주었다. 더구나 그분은 내 얼굴 모양과 머리카락의 특성을 파악해서 나에게 가장 적당한 스타일로 머리를 깎아주었다. 참 좋았다.

그런데도 영등포를 가보게 된 것은 시간이 걸렸지만 그래도 오가는 시간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머리를 깎고 보니 친구의 머리스타일과 내가 똑같았다. 친구에게는 어울리는 모양이었지만 내겐 어울리지 않는 스타일이다.

영등포의 이발사는 자기 방식대로 머리를 깎는다. 어떤 사람이 가도 머리 모양이 똑같아진다. 그런데 종삼의 이발사는 자기 방식이 아니라 고객에 맞는 방식을 찾아내서 각기 다른 방식의 스타일로 머리를 깎아준다. 다시 종삼의 이발소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생각을 하다 교회가 생각났다. 나는 교인에 따라 다른 모양으로 반응하는 교회를 본 적이 없다. 영등포의 이발사처럼 일률적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 신학교 때를 돌아보면 모두가 자신의 방식을 결정한다. 물론 나쁜 방식을 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목회철학이 결정되면 그 사람이 목회하는 교회의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따라야 한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큰 자가 작은 자를 섬겨야 하는 하나님 나라의 대의에 역행하게 된다. 그러니까 작은 자 중심의 하나님 나라의 방식이 아니라 큰 자가 다스리고 임으로 지배하는 세상의 방식이 자리하게 된다는 말이다. 나는 성서에서 가장 중요한 말씀, 아니 구절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씀을 꼽는다. 이것이 제자들의 사회, 다시 말해 하나님 나라의 가장 근본적인 특성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방식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다스린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방식은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따라 그를 대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그를 통치하는 것이 아니라 섬겨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교회의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에게 주어진 생명을 가장 생생하게 살아내게 하는 것을 목회의 목표로 삼는다. 그것이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영적인 예배라고 믿기 때문이다. 바울은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되었고,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다. 그 모습이 바로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는 말씀에 대한 바른 태도이며 실천이다.

나는 모든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양하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각자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새로운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에 따라 교회 전체의 모습이 달라지는 그런 교회를 보고 싶다.

최태선 목사  tschoi4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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