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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정의는 이민교회를 향한 선교적 명령다민족 컨텍스트에서의 신앙과 교회에 관한 이태후 목사 인터뷰
엘에이를 방문한 이태후 목사 <미주뉴스앤조이>

[미주뉴스앤조이=마이클 오 기자] 기독교 신앙의 심연에는 성육신이라는 깊은 샘이 자리잡고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희노애락의 인간으로, 가닿을 수 없는 저 하늘에서부터 낮고 낮은 이 땅으로 내려와, 힘이 아닌 죽음으로 해방과 구원을 이루셨다는 진리, 이 깊은 샘에서부터 기독교의 생명력과 신앙이 쏟구쳐 나온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 신앙은 다름 아닌 ‘여기’와 ‘지금’이라는 두 좌표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하나님이 창조하고 구원 하신 바로 그곳, 세계와 역사 가운데 신앙은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삶과 세계의 문제를 떠난 신앙은 기독교 신앙일 수 없으며, 교회 또한 참된 기독교 공동체가 될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미주 한인 교회가 위치해 있는 ‘여기와 지금’ 이라는 좌표지점은 어떤 곳이며, 어떤 곳이 되어야 할까? 

필라델피아의 가장 낮은 곳, 노스 센트럴에서 터를 잡고 빈민들과 함께 삶을 나누고 있는 이태후 목사는 미주 한인 교회의 좌표지점이 무엇보다도 다민족 사회에 위치해 있음을 강조한다. 그리고 다민족 사회 가운데 위치한 한인 교회의 삶에 있어 인종정의는 부인할수 없는 소명이라고 이야기 한다. 

오랫만에 엘에이를 방문한 이태후 목사가 바라보는 인종정의는 무엇이며, 미주 한인 교회는 이 거룩한 소명앞에 어떤 모습으로 서 있는지에 대해 들어 보았다. 

 

다민족 사회 가운데 한인 교회를 진단한다면? 

담론의 부재와 게토화

미주의 한인 이민 교회에서는 인종갈등과 다민족에 관한 담론 자체가 없다고 봐야한다. 

한인 교회는 단일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동질적인 문화와 생활 방식을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한인 교회에서 한발짝만 밖으로 나가면, 너무나도 다양한 인종과 문화, 그리고 생활 방식으로 이루어진 다민족 사회와 맞닿아 있다.

이 두가지 다른 세상은 교회의 벽을 두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마치 다른 해류가 만나는 지점처럼 저마다의 방향과 온도를 유지한채 섞이지 않고 있다. 

이런 괴리가 나타나는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한인 교회의 구성원들이 이민자로서의 정체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 한 이유이다. 실제로 미주 한인들은 백인, 흑인, 라티노 등의 주요 인구 구성에 포함되지도 않으며, 소수민족인 아시아인들 중에서도 중국, 인도, 필리핀, 베트남 등의 출신 이민자들보다도 적인 인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수많은 한인들은 자신을 이렇게 소수 이민자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백인 다음 쯤의 주류 혹은 이민자와는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이민자로서의 자신과 주변 이민자들의 삶에는 관심이 없으며, 오직 주류 백인들의 삶과 문화에 대한 동일시만을 꿈꾸고 있다. 

한인 1세들의 삶이 미국이라는 땅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적 배경은 여전히 한국이라는 점은 또 다른 이유이다. 

한국 드라마와 뉴스를 시청하며, 가까운 미국 사회의 이슈보다는 한국의 상황에 더욱 민감한 삶을 살고 있다. 특별히 미국 선거 참여도를 볼때, 한인 인구의 투표율이 현저히 떨어지는 현상 또한 이러한 괴리를 잘 보여준다. 

주변 사회와의 괴리현상은 한인 교회에서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상당기간동안 지적되어온 이민교회의 게토화 현상은 이러한 문제의 결과라고 봐야 할것이다. 한인 교회는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나 사회의 삶과 문제에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한인 교회의 문제는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심각한 의문을 품게 한다. 교회는 자신이 위치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그 가운데 영향력을 미치고 함께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현재의 이민교회의 상황은 이러한 교회의 소명과 본질을 실천하기에는, 지역사회에 대한 이해와 신학적 반응이 너무나도 미흡한것이 현실이다. 

 

이민교회가 속해있는 다민족적 상황을 돌아보았을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미국 사회의 흑인문제이다. 현재 상황과 이 문제에 있어 한인 교회와의 연관성에 대해서 설명을 부탁한다. 

미국의 흑인 문제는 기본적으로 인종차별의 문제이다. 인종차별이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은 피조물을 피부색, 종교, 언어 등으로 차별하는 죄악을 가리키는 말이다.

창세기 1장에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는 선언이 나온다. 인종차별은 이러한 신성한 하나님의 창조행위와 그 결과로서 빚어진 신성한 인간을 부정하는 심각한 죄일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창조주를 부인하는 행위라고 할수 있다. 

또한 요한계시록 6장에는 새하늘과 새땅에 대한 비전이 나타나있다. 새 예루살렘으로 표현되는 이상적인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열방의 언어가 모이고, 각자의 모습 그대로 어린양을 찬양하는 장면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종차별은 하나님의 구원과 회복의 사역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라고 할수 있다. 

따라서 인종차별은 매우 심각한 신학적 이슈이며 반신앙적인 행위라고 해야할것이다. 

흑인문제의 현실

오늘날의 흑인문제를 면밀히 살펴보면 그 실상은 참혹한 수준이다. 

흔히 미국의 흑인문제는 링컨의 노예해방과 민권운동의 결과로 해결되었다는 착각을 한다. 하지만 흑인 인종차별은 여전히 사회 깊숙히 뿌리내리고 있는 암덩어리이며, 지속되는 역사의 고통이다. 

“Rethinking Incarceration”

도미닉 길리아드는 그의 책 “Rethinking Incarceration” (IVP, 2018)에서 흑인 노예제도는 결코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통계로 보면 흑인 남자 3명중 1명은 언젠가는 감옥에 가게 되어있고, 미국 감옥의 40%이상은 흑인들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치는 미국 흑인 인구비율이 13%라는 사실과 비교해보면 더욱 경악스러운 수준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1년이상 수감생활을 하게 되면, 범죄기록이 영구적으로 남아 구직과 각종 사회생활에 끊임없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정부 지원 프로그램으로부터 제외됨으로서 온전한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삶을 회복할수 없게 된다. 

수감 기간에도 정부는 이들의 노동력을 수많은 기업에 값싼 가격(1일 75센트~1.17불)으로 제공하고 있으며, 캘리포니아에서는 산불진화등의 아주 위험한 작업에 차출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흑인들에게 가해지는 폭력과 억압 또한 정치적이며 구조적인 차별 가운데 이루어진다.

과거(1882~1968) 흑인들을 대상으로 가해진 린칭 사건이 확인된 것만으로도 4000여건이 넘지만, 처벌이 이루어진 사례는 한건도 없었다. 뿐만 아니라 1955년 시카고에서 발생한 흑인 청소년 구타 사망 사건에서 피해를 주장한 여성이 자신의 고백이 거짓이었다고 자백했지만, 이 사건에 대한 어떠한 처벌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민교회의 무관심, 이대로 좋은가? 

고통스러운 흑인의 역사 앞에 한인 뿐만 아니라 이민 교회는 무지와 무관심이 일반적인 반응이다. 

민권운동 당시 흑인 뿐만 아니라 모든 유색인종들이 이동의 자유가 없이 살아가야 했으며, 특히 남부지방에서는 인종간의 결혼이 법적으로 금지되는 상황까지 겪었다. 

오늘날에 와서도 동양계 미국인은 5, 6대가 지나도 미국인이라고 인식되기 보다는 이민자로 인식되는 것이 현실이다. 미국 주류 사회에 있는 뿌리깊은 인종차별을 피해갈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 가운데 한인들은 다른 소수 이민자들과 함께 같은 운명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그들과 함께 연대해야 한다. 특별히 흑인 뿐만 아니라 라티노와 아시안들과의 연대는 매우 중요하다. 

뿐만 아니라 한인 교회는 이러한 상황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결국 교회는 넒은 의미에서 지역 공동체와 사회의 문제 가운데에서 그 존재의미를 가질수 있으며, 이를 떠나서는 존재할수 없기 때문이다. 

흑인 린칭 엽서, 당시의 백인들과 교회들은 엽서를 만들어 돌려보았다. <위키피디아>

인종차별 문제를 신학적인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할수 있나? 

사도바울은 십자가의 의미가 화해, 막힌 담을 헐고 나누어진 것을 합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다. 오순절 사건 또한 바벨탑 이야기의 회복으로서, 죄의 결과로 나누어진 것을 성령의 임재를 통해 소통화고 화해하는 극적인 드라마라고 할수 있다. 

새로운 창조인것이다. 어둠과 혼돈 가운데 있던 세상이 성령의 임재를 통하여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고 회복되는 것이다. 

교회의 사명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새창조, 새예루살렘을 이루어 가는 사역에 동참하는 것이다. 갈등과 오해를 넘어 소통을 일으키고 나누어진것을 연결하며 회복시키는 것이 교회의 역할인것이다. 

이러한 역할은 우선 교회가 위치한 지역사회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 땅과 지역사회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하는 에이전트로서 교회가 역할을 다해야 한다. 

인종문제와 정의는 교회에게 가장 당면하고도 직접적인 선교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인종정의가 이민 교회에 중대한 선교적 명령이라는 관점과 현재 교회의 무관심과 무지의 상황을 함께 겹쳐놓고 본다면, 이민 교회는 어떤 것이 필요한가? 

결국은 내러티브

경직된 신학과 교리에서 벗어나 이야기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초대 교회의 교인들은 예수님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의 이야기를 바꾸어 갔고, 그로 인하여 삶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이민 교회와 성도들의 삶은 고되고도 척박한 것이다. 이들이 어떻게 자신의 힘든 삶을 바꿀수 있을까? 결국 하나님의 메타내러티브를 통해 자신의 삶을 다시 해석하고, 그 위에 삶을 다시 살아갈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야기의 변화와 재해석은 이러한 의미에서 목회자와 성도 개개인들에게 중대한 변화를 요구한다. 목회자의 입장에서는 목회의 방향과 목표가 딱딱한 교리의 주입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한 교회와 성도들의 삶에 새로운 이야기를 만나게 하고, 그 가운데 기존의 삶을 다시 해석할수 있도록 돕고 안내하는 역할이 필요할 것이다. 성도 개개인의 삶에서도 역시 이러한 새로운 이야기를 찾고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기존의 삶을 재해석하고 살아가는 새로운 영성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 교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것 중에 하나는 큐티운동일 것이다.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단점은 성경을 개인의 시각에서 읽게 한 것이다. 

성경은 공동체적인 책이다. 개인주의적인 시각에서는 해석될수 없는 공공성을 가지고 쓰여졌으며, 그 공공성을 바탕으로 읽혀져야 한다. 나아가 복음 또한 사적인 해석을 벗어나 공공성이 회복되어야 한다. 

이렇게 성경과 복음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읽고 받아들일 때 오히려 더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차원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실천에까지 나아갈수 있을 것이다. 

필라델피아 빈민들과 함께 하는 한인 교회 <이태후 목사 제공>

지역, 사회, 역사적 맥락을 배워라

목회자는 이러한 의미에서 성경과 복음을 지역적이고 사회적이며 역사적인 맥락에서 지속적으로 해석해야 하며 공동체의 삶 가운데 함께 나누어야 한다. 

따라서 올바른 성경읽기와 신앙을 위해서는 지역, 사회, 역사적 맥락에 대한 배움이 필수적이다. 성경과 복음을 해석하고 적용할 토대가 약하다면, 성경과 복음 역시 피상적인 것으로 전락할수 밖에 없다. 

이민 교회에게 이러한 지역, 사회, 역사적 맥락이란 다름아닌 이민자로서의 자의식과 다민족 사회에 대한 이해를 의미한다. 나아가 이 땅에서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는 인종차별의 실상과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고민을 포함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을 위해서는 책을 통해 공부를 하거나, 지역 사회의 리더를 초청하여 실제의 세상 이야기를 들어볼수도 있을 것이다. 또는 영화와 다큐멘터리 같은 미디어를 이용하여 다양한 자료와 정보에 접근할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인종정의와 지역 사회에 뿌리를 내린 신앙이 이민 교회 뿐만 아니라 모든 교회에 요구되는 선교적 명령이자 교회의 본질을 이루어가는 실천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기억하는데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마이클 오  michaeloh@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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