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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 버려진 땅 선택받은 민족거룩한 땅의 아픔과 소망: 이스라엘 기행(2)
종교개혁지 탐방이나 성지 순례와 같은 류의 여행문과는 사뭇 다른 새로운 느낌의 성지순례기이다. 기자 출신 다운 예리한 관찰력과 분석을 겸한 기행문은 가는 곳마다 독자들이 구약 성경의 현장에 서 있는 듯한 사실감을 준다. 그 동안 익숙했던 성지순례기와는 색다른 이스라엘 기행문을 계속 연재한다. 저자: 최긍렬(뉴하트선교교회 집사, CBMC 회원) -편집자 주-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은 만물의 근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답을 찾고자 했다. 그 중 탈레스라는 소피스트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남쪽으로 가면 ‘만물의 근원이 물’임을 실감하게 된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물이 만물의 근원이 될 수도 있음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브엘세바는 구약성경의 이스라엘 최남단 지역. 브엘세바의 남쪽은 네게브사막이다.

오늘 여정은 브엘세바에서 출발한다. 브엘세바가 어딘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성경에 가끔 등장하는 문장이다. 단은 이스라엘 12지파 중 하나인 단 지파를 말한다. 원래 비옥한 땅 현재의 텔아비브 근처를 분배받았지만 효과적으로 가나안 토착민을 공략하지 못하고 유랑하는 신세가 된다. 살 곳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다 뿌리를 내린 곳이 단, 오늘날의 훌라 분지 지역이다. 갈릴리 북쪽 헤르몬 산 아래 쪽이다. 곧 이스라엘의 최북단이다.

반대로 브엘세바는 당시 이스라엘의 최남단이다. 그 아래는 네게브 사막이다. 말하자면 브엘세바는 사람이 살만한, 그래도 물 구경은 할 수 있는 가장 남쪽 지역이다. 따라서 ‘단에서 브엘세바’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전 영토를 의미한다.

식수저장소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 규모가 엄청나다.

브엘세바는 그 뜻부터 물이다. 브엘은 우물, 세바는 맹세라는 뜻이다. 맹세의 우물이 브엘세바다. 창세기 21장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우물을 놓고 서로 맹세한 데서 연유한 듯하다. 아브라함이나 이삭 당시 이 곳에서 우물은 곧 생명이고 돈이고 최고의 자산이다. 그래서인지 이삭은 브엘세바와 근처 그랄에 우물을 판다. 창세기 26장에서만 우물 파는 장면이 6번 나온다.

이삭은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조상도 아니고 야곱처럼 열국의 아버지도 아니다. 화끈하지도, 카리스마도 없지만 대단한 인품의 소유자로 보인다. 6개의 우물을 파는 과정이 그렇다. 이삭이 우물을 파면 블레셋 사람들이 와서 시비를 붙고 약탈한다. 마음씨 좋은 이삭은 다투려고 하지 않는다. 대신 장소를 옮겨서 우물을 파고 또 파고 6번이나 우물을 판다. 이삭은 지극히 온유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부자가 된 이유가 따로 없는 것 같다. 하나님이 이러한 이삭을 사랑했기 때문이 아닐까. 예수님의 산상수훈이 떠오른다.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태복음 5장 5절)

브엘세바는 텔 브엘세바라고도 한다. 텔은 주변의 지역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또 성곽이 있어서 외부의 침입을 막을 수 있는 곳을 지칭한다. 이러한 텔에는 반드시 우물이 있다. 적에 포위되어도 식수는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우물은 샘물이나 지하수라기보다는 강이나 시냇물을 끌어 모아 저장해 두는 곳이다. 영어로 Cistern이라고 한다. 이 우물은 우리가 상상하는 우물과는 완전히 다르다. 규모도 크고 그 깊이가 몇 층 건물 정도는 된다. 이스라엘 최후의 항전지 마사다나 므깃도에 가면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우물을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우물은 생명이고 구원이다.

버스는 브엘세바를 출발해서 남쪽으로 향한다. 자연분화구가 있는 마크테쉬 라몬을 거쳐 아라비아반도 쪽 홍해 바다에 이르는 동안 우리가 본 것은 온통 갈색 흙과 돌. 건기인 까닭에 바짝 메마른 계절천(와디)이 넓게 펼쳐져 있다. 평평하지도 않다. 돌투성이 높은 산들이 들쭉날쭉하다.

신광야: 성경에는 2개의 서로 다른 신광야가 나온다. 출애굽기 16장에 물이 없다고 원망했던 첫 번째 신광야는 SIN 광야로 시내산과 가까운 곳. 민수기 20장에서 미리암이 죽은 지역의 신광야는 ZIN 광야로 현재의 이스라엘 남쪽 사막 지역이다. 우리 일행이 지난 신광야는 ZIN광야다.

풀포기 하나 없는 산들이다. 성경에 나오는 신광야(Zin)와 바란광야의 모습이었다. 가도 가도 사막이다. 말 그대로 씨도 먹히지 않는 땅, 버려진 땅이다. 사람이 살 수 있는 여건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다. 생명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하나님은 왜 이 버려진 땅에 당신이 선택한 백성을 40년간 뺑뺑이 돌렸을까. 이 질문보다는 ‘아니 어떻게 이 척박한 사막에서 40년간 버텼을까’라는 질문이 훨씬 현실적이었다. 일행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우리 같았으면 하루도 이 광야에서 살 수 없다고. 사실 냉방시설이 있는 버스가 아니면 단 1시간도 버티기 힘든 곳이 광야였다.

홍해: 현재 이스라엘의 최남단은 에일랏이라는 
도시다. 홍해가 맞닿아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민족이 건넜던 홍해는 수에즈만쪽이고, 에일랏
의 홍해는 아라바만으로 동쪽으로 사우디아라
비아와 요르단이 위치해 있다. 사진의 유람선
뒷쪽으로 요르단이 보인다.

출애굽기와 민수기를 읽을 때마다 드는 질문이 있었다. 홍해가 갈라지고 바위에서 샘물이 솟아나는 기적을 보고, 또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고도 어떻게 하나님께 반역하며 종살이 하던 애굽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나님께 불평을 할 수 있을까. 보는 것이 믿는 것, 광야를 둘러보며 불평불만을 터트리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슬며시 감정이입이 되고 있었다. 정말 광야는 사람 살 곳이 아니었다.

이 광야에도 뿌리를 내리는 유일한 나무가 있었다. 한국 들녘에서 흔히 보는 아카시아다. 과수원길이라는 동요에 나오듯이 동심과 낭만의 아카시아, 광야에서 본 아카시아는 그 의미가 사뭇 달랐다. 번식력이 뛰어나고 빠르게 자라는 수종이지만 재목으로는 별로 쓸모가 없다.

하나님은 그 아카시아를 당신의 말씀을 위해서 사용하셨다. 법궤의 재목인 조각목이 바로 아카시아나무다. 이 아카시아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은 광야 40년, 다윗, 솔로몬을 거쳐 예루살렘 성전에 입성한다. 그 예쁜 꽃잎 때문이 아니라 광야에서도 살아남은 끈질긴 생명력 때문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은 것은 아닐까. 별로 쓸모는 없더라도 믿음을 지키고 살아남으면 하나님이 쓰지 않을까. 이사야서의 말씀이 떠올랐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이사야 40장 8절)

 

최긍렬 집사  newsnjoy@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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