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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없이 구원 없다...!교회의 성경적인 정의(1) : 교회는 성도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매체를 주홍빛으로 물들이는 목사들의 참담한 비리는 한국교회의 타락상을 가장 뚜렷이 드러내는 현상이다. 그럼에도 목사의 비리가 교회를 타락시킨 원인이 아니라 결과이며, 본질에서 벗어난 교회가 목사를 비롯한 교인들을 타락시킨 원인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된다. 다시 말해 한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반석’ 위에 굳게 서있었다면, 그리고 성경적인 교회로서 믿음이 ‘정상’이었다면 한국교회의 목사 또한 지금처럼 반성경적인 타락의 길을 질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교회개혁이 나름의 성공을 거두려면, 가시적인 현상에 대한 비판에 앞서 원인을 밝혀야 된다. 그리고 근본적인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는 “교회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어야 된다. 예컨대, 지금의 한국교회처럼 ‘목사가 지배하는 종교집단’으로 교회를 정의할 수 있다면, 그런 종교집단의 교주인 목사의 전횡에 대해 당당히 비난할 수 있는 명분이 없을 것이다. 성경적인 교회는 분명 그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타락한 한국교회를 비판하며 불의한 목사를 응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란 무엇이며, 진정한 교회개혁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개혁해야 되는가?” 당연한 지적이겠지만, 한국교회의 타락은 결국 ‘성경적인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났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리와 제도, 조직과 외형의 종교적·신학적인 관점을 넘어 성경적인 관점에서 교회에 대한 바른 기원과 의미, 그리고 정의를 통해 교회가 지향해야 되는 본래의 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승천하신 뒤, 오순절 날에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제자들에게 성령이 ‘불의 혀처럼’ 나타나신 순간을 ‘최초의 교회’, 또는 ‘교회의 태동’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정설이다. 하지만 교회의 구체적인 모습을 처음 드러냈다는 점에서 오순절의 ‘다락방 교회’가 사도들이 세운 ‘초대교회’의 시작일 수 있지만, 원형적인 의미에서 교회의 기원은 사도시대 이전의 예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즉, ‘교회의 원형’은 예수께서 대속과 부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직접’ 말씀하신 ‘내 교회’(My Church)에서 비롯된다.

구약성경에는 전무하며 신약성경에만 112번 등장하는 ‘교회’는 모름지기 신약시대 그리스도 신앙의 핵심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사역, 그리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록한 4복음서를 통틀어 마태복음(16장과 18장)에만 유일하게 ‘교회’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를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그에 상관없이 우리는 마태복음에 기록된 ‘교회’를 통해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교회, 이른바 성경적인 교회로서 ‘예수교회’의 원형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6:18)

1) 교회는 ‘성도’이다.

성경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교회’는 마태복음 16장 18절의 “내 교회를 세우리라”이다. 여기에서 ‘교회’는 헬라어 ‘에크’(밖)와 ‘칼레오’(불러내다)의 합성어로 구성된 ‘에클레시아’의 번역이다. 즉, ‘밖으로 불러 모으다’는 의미에서 시작해서 에클레시아는 신약시대에 이르러 성도, 다시 말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무리’로서 ‘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처럼 성도가 ‘부르심을 받은 무리’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교회가 성도’라는 성경적인 정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구원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가 교회라면 결국 “교회 없이 구원 없다”는 결론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든 성도가 신약시대의 성도로서 교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가 성도라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에 답하려면 성도의 의미를 분명히 정립하는 것이 우선이다.

이른바 교회로서 성도는 일반적인 의미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무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유일신인 하나님을 믿는 모든 백성들, 예컨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도, 나아가 이슬람의 무슬림도 일반적인 관점에서 분명 ‘부르심을 받은’ 성도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교회로서 성도’라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교회는 신약시대의 교회이며, 예수께서 말씀하신 교회 역시 ‘내 교회’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도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흔히 생각하듯이 성도는 성직자가 아닌 평신도를 지칭하는 차별적인 개념 또한 아니다. 이를테면 ‘교회로서 성도’는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모든 신자를 가리키는 보편적인 이름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3:16-17)

본문에서 우리는 ‘그를 믿는 자마다’(whoever believes in Jesus)에 주목한다. 신약시대는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이 ‘차별 없이’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얻을 수 있으며, 예수를 주로 영접하며 구원의 부르심을 받은 모든 신자가 거룩한 성도이다. 따라서 ‘교회가 성도’라는 말은 빈부귀천, 남녀노소, 국가와 인종에 차별 없이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모든 사람이 성도이며, 그것이 바로 교회라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 자마다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수 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아무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예컨대 예수를 믿어야 되며, 예수를 믿되 바르게 믿을 때 비로소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달리 표현하면,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영적인 성도는 단지 입으로 주여, 주여 하는 종교적인 교인과 같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께서 일반명사로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시지 않고 고유명사로 ‘내 교회’, 즉 “예수교회를 세우겠다.”고 말씀하신 것은 교회에 관한 본질적인 의미를 지닌다. 예수를 믿는 성도는 신약시대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이다. 이를테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는 모세를 따르는 율법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예수시대 ‘새 언약의 백성’이다.

성도의 정의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교회로서 성도는 ‘오직 예수’를 믿는다. 성도는 중세가톨릭의 교황을 믿는 교황교인이 아니며 개신교 개교회의 목사를 추종하는 목사교인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다. 요컨대 성도는 신약시대 ‘새 언약의 백성’인 동시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우리가 말하는 성도는 신약시대, 그리고 예수를 믿는 성도로 범위를 한정한다.

그렇다면 성도는 ‘무엇을’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가? 간단한 질문 같지만 민감한 내용을 담고 있다. 예를 들면, 예수 그리스도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믿어 세상의 복을 얻고자 하는 교인은 ‘기복신앙’을 믿는 것이다. 반면에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소망하는 성도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을 믿는다. 요약하면, 신약시대의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구원을 얻는 거룩한 무리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마가복음1:1)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마가복음1:14-15)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1:17)

“복음을 믿으라.”

새 언약을 통한 구원의 백성, 이를테면 성도가 예수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이나 초월적 존재를 숭배하는 종교주의적인 신앙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영적인 믿음, 이른바 ‘성경적인 믿음’을 의미한다. 교회가 성도라는 것, 다시 말해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거룩한 성도가 되는 것은 십자가의 대속과 부활의 복음을 온전히 믿는 것을 가리킨다.

본문은 예수를 믿는 것이 다름 아닌 ‘복음을 믿는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문제는, 복음을 믿는다는 말에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복음을 예수의 탄생과 공생애 사역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리스도의 계명을 중시하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에 주목하는 구원론적인 해석이 있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오직 은혜에 따를 뿐 인간의 행위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는 예정론이 있고, 믿음의 결단을 강조하는 행위구원론의 다른 해석이 있다. 이들 모두 이신칭의의 교리로 개신교의 제일공리지만, 우리는 교회의 성경적인 정의와 역할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며 타락한 한국교회의 주류신학으로 자리 잡은 ‘극단적인 예정론’에 주목한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이신칭의’의 배타적인 교리는 ‘구원과 교회의 관계’에서 개인의 신앙이 구원의 유일한 조건인 반면에 교회는 구원에 있어서 사실상 무의미해진다. 그리고 ‘교회 무용론’은 결국 한국교회가 타락하게 되는 근본적인 원인이 된다.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개인적인 신앙이 중요할 뿐 교회는 사실상 ‘장식’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며, 장식으로 전락한 한국교회는 구원의 능력을 상실한 ‘종교적인 집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적인 관점에서 교회는 성도이며 성도가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교회 없는 구원’은 그 자체가 모순이 된다. 요컨대 신학적인 구원론에 매몰당한 교회는 종교적인 교회일 수 있지만 결코 성경적인 교회로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 교회’일 수 없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 신앙은 본질상 이타적인 사랑과 섬김을 실천하는 공동체적인 신앙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교회를 배제한 채 “내가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내가복음’의 치명적인 오류일 뿐, 결코 그리스도의 복음일 수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구원을 얻으려면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되는가? 믿음에 대한 새로운 정의, 이를테면 타락의 절정에 달했던 중세 가톨릭에 맞서 반작용으로 등장한 개신교의 교리 이전에 그리스도 신앙을 가장 원형적으로 보전한 초대교회의 구원론에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본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교회가 성도라면 우리는 종교개혁 운동가들의 ‘오직 믿음’의 좁은 관점을 넘어 교회를 중시했던 초대교회에서 주장했던 ‘회심의 3B’, 이를테면 믿음(Belief)·교회에 속함(Belonging)·행동(Behavior)의 통전적인 관점에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요컨대 복음을 믿는 개인들이 모여 교회를 이루며, 교회를 통해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 구원에 이르는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이다.

(6월 2일과 4일, LA 캘리포니아 인터내셔널 대학교(C.I.U) 소강당에서 개최되는 강연과 포럼의 일부 내용을 발췌한 글임을 밝힌다. -편집자 주-)

 

강만원  mw144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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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두기 (75.XXX.XXX.141)
2018-06-15 10:47:33
찬성:0 | 반대:1 찬성하기 반대하기
좋은 기사인데 저같은 사람은 그래도 알기 쉬운 글이 더 좋습니다.
저는 주위에 아무 교회에도 속해있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기독교인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을 좀 봤습니다. 그분들 진실로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사름들이라면 좋은 교회를 찾아 예배드리는데 힘써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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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39.XXX.XXX.187)
2018-05-30 22:09:29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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