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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은 구원받을 수 있지만 자살은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다.”...!?self-회개는 면죄부가 아니다.
사진출처: 예레미야이단연구소

“살인은 물론 중죄이지만,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죄를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으로 용서받을 수 있다. 그러나 회개할 수 없는 자살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거짓신앙이 기독교인을 자처하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마치 ‘그리스도 신앙의 진실’인 양 널리 통용되고 있다. 이유인즉, “살인한 자는 죄를 범한 후에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있지만 자살한 사람은 회개하지 못한 상태에서 죽기 때문에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오래 전에 매우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다. 생활고를 비관하며 어린 두 아이를 강에 던져 죽인 비정한 아버지가 아이들만 죽이고 자신은 죽지 않은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생활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이들은 죽일 수 있었지만 나는 아이들과 함께 죽을 수 없었다.”며, 기독교인인 자신은 “자살하면 용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덤덤히 말했다.

이처럼 특별한 경우를 섣불리 일반화할 수 없다. 그럼에도 살인과 자살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왜곡된 의식과 믿음은 전혀 낯설지 않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살인은 용서받을 수 있어도 자살은 용서받을 수 없다는 허튼 주장은 사랑과 정의가 요체인 그리스도 신앙에서 결코 용인될 수 없다. 특별한 이론 없이 받아들여졌던 “회개할 수 있기 때문에 살인은 용서 받을 수 있다”는 주장에 내가 새삼스레 반론을 제기하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분명히 거짓명제이며, 거기에 숨어있는 가증한 ‘은닉죄’에 주목해야 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싸구려 복음’의 회개만능주의가 의식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다.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면서 회개를 마치 ‘면죄부’처럼 악용하는 참담한 외식, 그것은 “회심하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한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라고 주장하는 ‘구원파적 거짓복음’과 본질상 다름이 없다.

물론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구원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회심)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명백한 진리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회개의 절대가치를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회개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는 거짓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하나님이 받아들일 수 있는 진정한 회개일 때 비로소 구원의 능력을 지닌 회개의 가치와 의미가 있을 뿐,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회개는 단지 회개를 빙자한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회개의 세례를 받으러 요단강을 찾았던 무리에게 요한은 세례를 받기 전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보이라”고 요구했다. 거짓회개는 ‘독사의 자식들’이 즐기는 ‘입술의 신앙’, 이른바 ‘외식’일 뿐 결코 진정한 회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고한 사람을 죽이며 회개의 기회조차 빼앗은 살인범이 자신은 살겠다고 회개(?)하는 추한 ‘탐욕’과 거짓을 과연 그리스도 신앙의 회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요컨대 너나없이 ‘회개’라고 쉬이 말하지만 그렇게 말한다고 모두 회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구약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신약시대에도 회개는 결코 하나님과 둘이서 ‘담판’하는 밀담이 아니며, 가벼이 죄를 회피하려는 구실은 더더욱 아니다. 예수는, “제사를 드리려다가 – 다시 말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려다가 – 형제에게 잘못한 일이 생각나거든 그 형제와 ‘화목해진’ 다음에 제사를 드리라고 하셨다. 이를 간단히 설명하면, 하나님 앞에서 용서를 구하기 전에 피해자에게 먼저 용서를 받으라는 준엄한 명령이다.

또한, “잘못을 저지른 형제는 교회에서 공적으로 죄를 고백하고 교회의 용서를 받으라.”고 하시면서, 교회에서 공적인 고백을 하지 않는 자는 “이방인이나 죄인처럼 여기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경우이든, 내가 회개하고 내가 용서받는 ‘self-회개’가 아니라 ‘공의’에 부응할 때 비로소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살인과 자살의 죄를 자의적으로 구별했던 본론으로 돌아간다. 살인범은 살아있는 동안에 회개할 시간이 있어서 용서를 받을 수 있는 반면에, 삶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한 사람은 회개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없다는 주장은 결국 회개를 명분 삼아 인간의 소중한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망언이다. 요컨대, ‘이타적인’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을 전면 부정하는 치명적인 일탈이며, 추악한 이기심이 깃든 가증한 이단 신앙이다.

살인범은 다른 사람을 죽이고 자신은 살아서 회개할 ‘은혜의 시간’이 있는지 모르지만, 살해당한 사람은 아무런 죄도 없이, 더욱이 부지불식간에 살해당해 회개할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죽었기 때문에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실로 부당하기 이를 데 없는 억지가 아닌가. 만약에 그럴 수 있다면..., 살인범은 사람을 죽이고도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고, 살해당한 사람은 억울하게 죽었으면서도 회개하지 못했기 때문에 영벌의 저주를 받는다는 불의가 과연 사랑과 정의를 강조하는 그리스도 신앙에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끊는 자살도 살인이며, 다른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살해도 명백한 살인이다. 그리고 살인은 성경이 지목하는 가장 중한 죄악이다. 예컨대 초대교회는 살인과 우상숭배, 간음을 회개하더라도 용서받지 못하는 ‘3대 중죄’로 단정했다. 반면에 중세 가톨릭에서는 7가지 죄에 대한 ‘중죄의 목록’은 있었을망정, ‘관용주의’가 교회권력의 전면에 등장하면서 ‘성령을 훼방하는 죄’를 제외하고는 ‘회개해도 용서받지 못하는’ 중죄의 항목은 없어졌다.

살인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고, 또는 자살은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죄인’의 자리에 있는 우리는 자신이 마치 ‘심판자’인 양 섣불리 죄의 용서에 대해 단정할 자격이 없다. 어떤 죄이든 죄를 용서하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다. 자신이 회개했다고 입으로, 그리고 마음으로 주장한다고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그 회개의 진실성을 낱낱이 간파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따라 결정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감히 죄를 심판할 수 없을망정,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묻고 성찰하는 그리스도인이다. 다시 말해, 살인하고도 회개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고 믿는 자, 이를테면 다른 사람의 소중한 생명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은 영원한 생명을 바라는 자, 이처럼 죄를 범하고도 극단의 이기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의 순간적인 ‘뉘우침’을 과연 예수께서 회개로 받아들이고 그의 죄를 용서하실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명제는 그분의 뜻에 합당한 믿음을 지킨다는 것을 전제한다. ‘사랑하라!’는 계명을 주신 예수께서, 그리고 ‘죄인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바치며 희생하신 예수께서 과연 무고한 사람을 죽이며 구원까지 가로막은 자가 영생을 누리기 위해서 회개한들, 정녕 그의 회개를 받아들이시겠는가.

다른 사람을 죽이는 살인은 용서받을 수 있다면서, 그와 구별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자살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는 날선 주장에는 그리스도 신앙을 가장한 거짓신앙의 치명적인 오류를 담고 있다.

첫째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생명을 경시하는 윤리적인 오류이다. 하나님이 용서하실 수 있을망정, 회개하면 살인도 용서받을 수 있다 감히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둘째는, 자살을 용서받을 수 없는 중죄로 단정하는 자들의 신앙적 오류이다. 그들에게 냉철한 이성의 신앙은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종교주의’에 사로잡혀 그들은 정작 ‘사랑과 정의’의 신앙은 뒤로 한 채, 자살한 사람들의 처절한 고통에 함께 아파하는 따뜻한 감성의 신앙이 없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살인과 자살은 모두 “살인하지 말라”는 제6계명을 어긴 참람한 중죄이다. 그럼에도 모세와 다윗의 예를 들면서 살인이 용서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려면, 자살 역시 용서받을 수 있다고 말해야 되며, 역으로 자살이 용서받을 수 없다면 살인 또한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다고 말해야 된다.

회개를 빌미로 살인과 자살을 허투루 차별하는 오류, “살인은 회개할 수 있어서 구원받을 수 있지만 자살은 회개할 수 없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없다”면서 회개를 면죄부로 제시하는 왜곡된 믿음,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듯이” 세상에 죄가 없는 사람은 없어도,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는다는 자력구원의 이기적 믿음...

이는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서” 다만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한국교회 주류신학의 치명적인 오류와 함께..., ‘자기를 위한, 자기에 의한, 자기의 믿음’에 지나지 않는 자기중심주의 신앙이며, 그것이 한국교회와 교인들을 배교의 길로 이끌고 있다는 암울한 현실을 직시하라.

다시 강조하지만, 결코 나는 살인을 정죄하거나 자살을 동정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리스도 신앙을 왜곡한 ‘회개만능주의’를 고발하려는 것이다. 또한, 자살이 분명히 중죄일망정 죄의 심판은 오롯이 주께 맡기고 우리는 다만 ‘Com-Passion’의 마음으로, 고통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버린 자를 섣불리 정죄하지 말자는 것이다.

강만원  mw144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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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 (218.XXX.XXX.251)
2018-05-21 08:33:45
찬성:3 | 반대:10 찬성하기 반대하기
You should have practiced... (NIV)
C'est ceci qu'il fallait(La Bible)
영역 성경과 불역, 독역 성경에서 완료형이나 과거형으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이 문장은 예수께서 "화있을진저!"라며 바리새인들에게 하셨던 질책이었습니다. 예수 제자들에게 십일조를 하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종교행위는 하되 하나님의 의를 지키지 않는 <외식>을 질타한 겁니다. 요즘 한국교회, 한인교회 목사들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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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라 (60.XXX.XXX.148)
2018-05-17 12:50:35
찬성:13 | 반대:3 찬성하기 반대하기
다시 묻겠습니다.
그러면 이건 어떻게 설명하시렵니까? These are the things you should do. And you should also continue to do those other things.(ERV) 계속해야 된다잖아요. should also continue to do!!! 그만하라는 게 아니라. These you should practice, without neglecting the others.(GNT) 십일조 행위든 정신이든 무시하지 말라잖아요. 현재형으로. it is right for you to do these... (NIRT) 그게 옳다잖아요. 현재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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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 (218.XXX.XXX.251)
2018-05-21 08:58:54
찬성:5 | 반대:9 찬성하기 반대하기
같은 댓글을 세 번이나 반복해서 올리는 것을 보니, 이 댓글이 그리 자신만만한가 보군요. 시제가 '미완료'이니까 현재형이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합니까? 미완료라는 말은, "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았다"는 의미일 뿐, 하지 않았으니 지금이라도 하라는 의미가 전혀 아닙니다. '완료형'인 걸 뻔히 보면서 현재형으로 번역하는 건... <자의적인 해석>의 전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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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 (218.XXX.XXX.251)
2018-05-21 00:13:06
찬성:3 | 반대:11 찬성하기 반대하기
완료형으로 번역한 역본들은 가리고 현재형으로 번역한 역본만 제시하면서 현재형이니, 심지어 진행형이니 말하는게 낯 뜨겁지 않습니까? 정작 중요한 건, 예수께서 <누구에게> 말씀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십일조를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외식하는 자>라며 질책하신 문장입니다. 예수께서 현재진행형으로 십일조를 명령하셨다는 자의적인 해석... 듣도보도 못한 궤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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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라 (60.XXX.XXX.148)
2018-05-16 11:22:58
찬성:15 | 반대:4 찬성하기 반대하기
중요한 것은 헬라어 시제가 미완료라는 것입니다. 마 23:23, 눅 11:42에 사용된 미완료 동사 에데이(εδει, edei)는 시간과는 무관하게 현재를 넘어 영원히 지켜져야 하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래서 멕케이는 “의무 미완료” 에 속한다고 했고 포터는 '비과거 미완료'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정의 긍휼 믿음이 영원히 지켜야 할 계명이라면 십일조도 영원한 계명으로 지켜야 합니다. NIV 역본의 현재완료에 얽매일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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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라 (60.XXX.XXX.148)
2018-05-16 11:24:55
찬성:15 | 반대:4 찬성하기 반대하기
덧붙여...
신출귀몰한 신학이라고 비아냥 거릴 게 아니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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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라 (60.XXX.XXX.148)
2018-05-16 11:38:10
찬성:14 | 반대:3 찬성하기 반대하기
덧붙여 2
These are the things you should do. And you should also continue to do those other things.(ERV) 계속해야 된다잖아요. should also continue to do!!! 그만하라는 게 아니라. These you should practice, without neglecting the others.(GNT) 십일조 행위든 정신이든 무시하지 말라잖아요. 현재형으로. it is right for you to do these... (NIRT) 그게 옳다잖아요. 현재형으로. 즉 계속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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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 (218.XXX.XXX.251)
2018-05-21 00:16:45
찬성:3 | 반대:10 찬성하기 반대하기
<현재진행형이며 예수께서 계속해서 십일조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내용으로 칼럼을 한 번 써보시지요. <현대판 율법주의자>로 탁월한 명성을 얻을 것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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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0.XXX.XXX.148)
2018-05-16 11:18:27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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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0.XXX.XXX.148)
2018-05-16 11:16:33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본인에 의해 삭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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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라 (60.XXX.XXX.148)
2018-05-13 06:10:18
찬성:20 | 반대:10 찬성하기 반대하기
강만원 님, 지난 번 님이 쓰신 <십일조의 허와 실>은 명백한 논리적 오류가 있었습니다. 댓글에도 있지만 시제 적시의 오류로(미완료를 과거완료로) 성경의 진의가 왜곡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적절한 해명이나 답변도 없이 새로운 글을 쓴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십일조의 허와 실>의 잘못을 인정하시고 독자들에게 사과하고 글을 내리시는 게 우선인 듯합니다. 그게 독자들에 대한 예의죠.
님의 글의 또 어떤 논리적 모순과 잘못과 진의의 왜곡이 있을지 심의 염려되어 드리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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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 (118.XXX.XXX.246)
2018-05-14 08:21:42
찬성:7 | 반대:20 찬성하기 반대하기
미완료? '시제'(time)에서 정작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사어의 문법적인 용어가 아니라 실제로 사용되는 '용례의 시점'입니다. 그렇다면 '미완료'의 시점은 언제입니까? 미래입니까? 아니면, 과거, 또는 현재입니까? 현대어에서 사용하지 않는 문법은 죽은 문법입니다. 영어, 불어...모든 언어에서 '완료 시제'로 사용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기 바랍니다. 세계적인 성경학자들의 실력이 님보다 부족해서 그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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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 (118.XXX.XXX.246)
2018-05-14 08:27:20
찬성:7 | 반대:19 찬성하기 반대하기
덧붙여..., 님이 말하듯이 "성경의 진의가 왜곡"되었다면 님이 생각하는 성경의 진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밝히고, <십일조의 허와 살>의 잘못이 있다면 그 잘못이 무엇인지 밝히기 바랍니다. 제대로 근거조차 밝히지 못하면서 <독자에게 사과하라>거나, <글을 내리라>는 요구는 매우 부적절한 태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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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라 (60.XXX.XXX.148)
2018-05-15 05:19:31
찬성:20 | 반대:5 찬성하기 반대하기
전형적인 물타기 글로 논점을 벗어난 부적절한 태도군요. 현대에 사어가 됐다해도 예수님 당시에 미완료 시제는 중요하죠. 십일조의 행위와 정신의 지속성을 의미하기 때문이죠. 그것이 성경의 진의-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죠. 헌데 강만원님은 과거완료라고 하면서 십일조 행위의 무효를 주장했습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자선단체 강령으로 왜곡했죠. 자신의 성경을 버려야할 분은 강만원님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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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 (118.XXX.XXX.246)
2018-05-15 08:01:32
찬성:5 | 반대:17 찬성하기 반대하기
미완료로 십일조 행위의 지속성을 주장했다는 말은 난생 처음 들어보는 신출귀몰한 신학(?)입니다. 오늘날 모든 언어가 완료시제(have practiced or had practiced)로 번역한 글을 혼자 미완료시제라고 주장하는데... 그렇다면 그 글을 한글이든 영어이든 어떤 언어이든, 무슨 뜻인지 '현대어'로 번역해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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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라 (60.XXX.XXX.148)
2018-05-15 16:36:03
찬성:17 | 반대:4 찬성하기 반대하기
현재완료와 과거완료는 차이가 있죠. 한데 묶어서 물타기? 현대 문법으로 미완료를 나타낼 수 없기에 현재완료(계속적 용법)으로 표기한 것이죠. 그래서 다른 번역본들에서는 아예 현재로 번역했죠. These you should practice, without neglecting the others.(GNT)
These are the things you should do. And you should also continue to do those other things.(ERV)
but it is right for you to do these... (NI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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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 (118.XXX.XXX.246)
2018-05-16 09:24:36
찬성:4 | 반대:15 찬성하기 반대하기
시간상 '과거 시제'라는 점에 주목하다보니 제가 과거완료를 강조했군요. 그러나 현재완료 역시, <현재 시점을 기준으로 이미 완료된 상태>를 말합니다. 완료형은 이미 <완료된> 상태로서 끝난 것이며, 님이 말하듯이 <계속용법>일 수 없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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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라 (60.XXX.XXX.148)
2018-05-16 13:51:06
찬성:14 | 반대:3 찬성하기 반대하기
줄기차게 '과거완료시제'에 '주목'해 달라더니 웬 과거? 이제 과오를 인정하신 건가요?
특히 should have + pp는 '했어야 하는데 못했다'는 의미이지 '종결됐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따라서 '이제부터 잘 하라'는 뜻이 담겨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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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 (118.XXX.XXX.246)
2018-05-17 00:17:31
찬성:3 | 반대:13 찬성하기 반대하기
그만 하고 싶은데, 참 집요하군요. 이 몸글은 십일조에 관한 글이 아닌데도 여기까지 찾아와서 ㅠ 마지막으로... "했어야 했는데 하지 못했다"는 '과거의 일에 대한 유감'을 말하는 것일 뿐, "이제부터 잘 하라"는 현재형이 아니외다! 제멋대로 문법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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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라 (60.XXX.XXX.148)
2018-05-17 04:19:36
찬성:14 | 반대:3 찬성하기 반대하기
집요하다니요? 님이 질문한 것에 대한 답으로 현재형으로 번역된 역본들 제시했고, 학자들의 의견도 달았는데 '제멋대로 문법'이라니요? 그 역본들도 제멋대로고 학자들도 제멋대로란 이야긴데.. 맥케이와 포터는 헬라어 문법의 대가들입니다. 과오를 인정하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자세입니다. 그만 글 내리시죠? 그리고 제 질문에 대한 답변은? 구제 십일조 만큼 하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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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라 (60.XXX.XXX.148)
2018-05-17 04:22:48
찬성:15 | 반대:4 찬성하기 반대하기
덧붙여...
아르케 처치에 전념하시고, 그냥 잠잠히 계시길 바랍니다. 목사와 헌금에 무슨 원수를 졌는지 매번 그럽니까? 그건 개혁도 아니고 사랑도 아니고, 참... 정의와 긍휼과 자비는 더더욱 아닐터.. 제가 보기엔 증오로 밖에. 글 접고 아르케 처치를 개혁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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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 (118.XXX.XXX.246)
2018-05-17 08:02:13
찬성:3 | 반대:15 찬성하기 반대하기
댁을 보니 전형적인 한인교회 목사이군요. 이리저리 말을 돌리면서 자기 말을 합리화시키는... 내가 현대어로 번역해보라고 한 것은 번역본을 베끼라는 말이 아니라 댁이 한글로 번역해보라는 말이요. 완료형 시제를 한글로 번역하는 댁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리고 글을 접거나 마는 것은 댁이 건방지게 나설 일이 아니외다. 차라리 댁이 글을 써보는게 어떨지? 나도 그 글에 악플이나 즐기는 재미 좀 누려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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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라 (60.XXX.XXX.148)
2018-05-17 19:12:28
찬성:13 | 반대:2 찬성하기 반대하기
악플이라는 말에 한 마디 하겠습니다.
잘못된 것을 가르쳐주면 감사하게 여기고 배우려고 해야지, 악플이라고 매도하니 댁의 수준을 알 만합니다. 그런 태도로 무슨 칼럼을 쓰고 말씀을 논합니까? 자격 없습니다.
리플달기
잠잠하라 (60.XXX.XXX.148)
2018-05-17 19:00:03
찬성:13 | 반대:4 찬성하기 반대하기
악플 단다는 말에 한 마디 하겠습니다.
잘못된 것을 가르쳐주면 감사하게 여겨야지 악플이라고 하니 할 말이 없습니다. 더이상 상대할 가치가 없군요.
리플달기
잠잠하라 (60.XXX.XXX.148)
2018-05-17 12:45:16
찬성:14 | 반대:5 찬성하기 반대하기
이리 저리 말을 돌리며 논점을 흐리고 물타기 한 것은 댁님.
이제 밑천이 딸리나 보죠? 내가 드린 질문에 전혀 답을 못하시네..
십일조하는 성도들 더이상 모독하지 마시고, 목사를 성직으로 삼고 평생을 달려가시는 그분들을 욕되게 하지 말고, 그냥 잠잠히 신앙생활하세요.
앞으로 두고 보겠습니다.
성서의 진의도 모르고 영문법에 매달린 그대에게 주님의 자비가!
리플달기
잠잠하라 (60.XXX.XXX.148)
2018-05-17 12:49:13
찬성:13 | 반대:4 찬성하기 반대하기
진의가 왜곡된 글은 내리는 것이 당연하거늘 건방지다고 하니...
질문애 답은 안하고, 번역본 내밀에도 해명도 없고..
한인목사니 뭐고 떠드니 논지는 온데 간데 없고
이건 뭐 토론이고 논쟁의 대상도 못되는 군요. 알겠습니다. 댁의 수준을.
리플달기
잠잠하라 (60.XXX.XXX.148)
2018-05-16 11:04:11
찬성:15 | 반대:5 찬성하기 반대하기
그러면 이건 어떻게 설명하시렵니까? These are the things you should do. And you should also continue to do those other things.(ERV) 계속해야 된다잖아요. should also continue to do!!! 그만하라는 게 아니라. These you should practice, without neglecting the others.(GNT) 십일조 행위든 정신이든 무시하지 말라잖아요. 현재형으로. it is right for you to do these... (NIRT) 그게 옳다잖아요. 현재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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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 (180.XXX.XXX.27)
2018-05-15 20:07:31
찬성:5 | 반대:18 찬성하기 반대하기
You should have practiced... (NIV)
C'est ceci qu'il fallait(La Bible)
영역 대표성경들과 불역, 독역 성경에서 모두 과거형으로 표현했을 뿐만 아니라, 이 문장은 예수께서 "화있을진저!"라며 유대인들에게 하셨던 심판이었습니다. 예수 제자들에게 십일조를 하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십일조를 빙자하며 하나님의 의를 지키지 않는 <외식>을 질타한 겁니다. 마치 요즘 한국교회, 한인교회 목사들에게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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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라 (60.XXX.XXX.148)
2018-05-16 03:53:14
찬성:17 | 반대:6 찬성하기 반대하기
이건 뭐...도통 논점을 흐리는건 어쩔 수 없네요. 미완료의 미묘한 의미를 '현대어'로 번역해 달라고 하셔서 이미 현재 시제로 번역이 된 예를 들어드렸는데도 연신 과거형만 내미시니.. These are the things you should do. And you should also continue to do those other things.(ERV) 계속해야 된다는 의미잖아요. 그만하라는 게 아니라.. 그리고 갑자기 웬 목사탓 타령입니까? 이것도 논점을 흐리는 물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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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라 (60.XXX.XXX.148)
2018-05-15 16:39:42
찬성:17 | 반대:9 찬성하기 반대하기
덧붙여서...
십일조가 싫으면 그냥 조용히 하지 마세요. 이런 저런 주장하면서 글 써가면서 선동하지 마시고. 과연 십일조 만큼 소득의 10분읩을 구제에 사용하는지도 의심스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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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케 (180.XXX.XXX.27)
2018-05-15 20:10:06
찬성:7 | 반대:15 찬성하기 반대하기
십일조가 걷히지 않을까 무척 걱정되십니까? 쓸데없는 걱정하기 전에 구습인 십일조를 걷을 생각을 당연히 하지 말아야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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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라 (60.XXX.XXX.148)
2018-05-16 03:57:04
찬성:17 | 반대:7 찬성하기 반대하기
한 가지 묻겠습니다. 님은 십일조 만큼되는 소득의 일부를 정의와 긍휼과 자비를 위한 구제에 사용하십니까? 어떻게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를 '쓸데없다'하고 '걷는다'는 천박한 생각을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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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60.XXX.XXX.148)
2018-05-13 06:06:50
찬성:1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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