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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그리스도인, 화해할수 없나?권영석의 복문단답: 돈과 신앙

Q. 돈을 모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노후가 걱정입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는 건가요?

A. 돈을 모을 수 없는 상황, 더 나아가서 돈이 떨어진 상황, 이보다 더 황당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돈을 밝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돈이란 곧 물건이나 상품의 가치를 숫자로 매기기 용이하게 해주는 매개물이며, 물질(흙)로 만들어진 인간에게 물건이나 상품은 곧 생존이자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꼭 돈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자기 인생을 철저히 자기 혼자서 책임져야 하는 개인주의적 인간에게, 더구나 모든 것을 돈(화폐 가치)으로 환산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는 현대인에게, 그래서 앉으나 서나 돈을 의식하면서 살 수밖에 없도록 최적화되어 있는 우리에게 돈은 생존 내지 안전과 직결되어 있기에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우선순위를 차지할 수밖에 없겠지요.

너무나 오랜 세월 우리는 신앙이란 이름으로 돈을 천시하는, 그러면서도 은밀하게 숭상하는 좋지 않은 이분법적 프레임으로 지나왔던 것 같습니다. 물론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같은 선상에서 얘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일생 동안 돈 걱정하지 않을만큼 충분한 재화가 확보되어 있는데도 여전히 돈을 탐한다면 이는 부끄러운 일이자 어리석은 일일 것입니다. 어거스틴의 말처럼 사람이 돈을 사용해야지, 돈이 사람을 사용하도록 해서는 안될 말입니다.

"돈이란 결코 천시할 대상이 아니라 고마워야할 대상"

그러나 돈이 없어서 생존에 필요한 수단을 구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돈이란 결코 천시할 대상이 아니라 고마워야할 대상일 것입니다. 사실 현대사회가 화폐를 매개로 하는 교환시스템을 만들어 놓은 것 그 자체를 나쁜 것이라 할 수는 결코 없을 것입니다. 어차피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는 없으며, 그래서 서로 서로 의지하면서 더불어 [공동체로] 살아가도록 창조된 이상 피차에게 필요한 것을 서로 채워주고 교환하지 않고선 살 수가 없으며, 이런 교류와 교환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조개든 쌀이든, 아니면 금이든 뭔가 매개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매개물은 이왕이면 저렴하고 지니고 다니기에 용이한 것일수록 더욱 유용하다 할 것이니, 아마도 화폐는 인간이 발명한 유용한 발명품 가운데 으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현대 사회에서 돈이란 이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며, 서로 서로 필요한 것을 채우고 나누고 소통 내지 유통이 가능하도록 하는 윤활유라 하겠습니다.

이렇게 보면 돈이란 결국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물질을 상징화한 상징물이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매개하는 매개물로서, 우리는 사실 한 시도 돈 없이(자기 돈이든, 남의 돈이든) 살 수는 없다 하겠습니다. 그야말로 사람이 [사람답게] 움직이려면 돈이 들며,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있는 곳에 돈이 결부되게 마련인 셈입니다. 돈이란 이처럼 우리 인간의 실존과 불가분리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여기까지가 돈에 대한 예찬이 가능한 지점입니다. 문제는 이제, 이런 매개물 자체를 목적시하거나, 그리하여 그 돈이란 매개물이 상징하는 바인 물건이나 상품과 상관없이 돈이란 매개물을 절대시하거나, 더우기 그 물질을 통해 추구하려는 인간의 존재 의미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 등등도 다 수단시하려 드는 천박한 물질주의의 늪에 빠지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리되면 소위 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하고 종이 주인을 쫓아내듯이, 돈이 인간을 도리어 피폐(疲斃)하게 만드는 꼴불견이 벌어지고 말지요. 게다가 매개물이 가벼운 종이다발 내지 손가락 한 번 까딱하는 것으로도 쉽게 조종 가능한 통장의 숫자에 불과하다 보니, 그야말로 광속의 효율성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다 보니 순탕(순간에 한탕)에 대한 욕동을 이기지 못하여 각종 피싱(phishing)이 난무하고, 자칫하면 한 순간에 패가망신할 위험성이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무섭고 두려운 세상이 되어 버린 것이 아닐까요?! 심지어 국가 차원에서조차 실질적인 경제 성장이나 생산 규모와 상관없이 화폐를 과다발행함으로써 인플레를 유발하고 경제질서를 교란하면서까지 자국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국제 현실을 마주하노라면, 참으로 주객이 뒤바뀐 "맘몬"-이즘 내지 '캐피탈'-이즘의 '돈세상'이라 하겠습니다.

"돈, 인간의 삶을 위축시키고 관계를 파괴하는... 역설적인 취약성"

사태가 이러하다 보니 어느새 돈은 인간의 삶을 고양하고 관계를 증진하는 순기능보다는 인간의 삶을 위축시키고 관계를 파괴하는 역기능을 하기 쉬운 이중적이고 역설적인 취약성을 지니게 되었다 할 수 있겠지요. 돈 때문에 도움의 손길과 함께 훈훈한 정감이 유통되어 활짝 웃기도 하지만, 돈 때문에 마음을 다치거나 원한을 맺어 한평생 피눈물을 흘리기도 하지요. 돈은 사람을 유쾌하고 기쁘게도 하지만, 불쾌하고 슬프게 만들기도 하지요. 돈이 있어서 좋기도 하지만 돈이 너무 많으면 도리어 문제가 더 많아지기도 하지요.

돈의 이런 순기능과 역기능을 가르는 분수령을 결코 단순 획일적인 방식으로 설정할 순 없겠지만, 돈이 사람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지는 정도라면 이는 이미 도를 넘었다 하겠습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내의 개인주의형 인간에게 사실 돈은 까딱하면 사람보다 더 귀중한 존재로 부각되기 일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돈이 내 생존권을 지켜주는 것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생존권을 빼앗는 수단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서로 상대방을 먼저 위하고 챙겨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보다는 내 생존권을 먼저 챙기려는 정글의 에토스를 걷어내지 않는 이상, 돈이란 언제나 솔선수범하여 악역을 떠맡을 수밖에 없는 법이지요. [아마도 이 때문에 돈은 뭔가 부도덕하다는 인상이 각인된 듯하며, 이는 돈의 처지에서 보면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일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돈이란 것도 결국 우리가 마음을 어떻게 쓰고 우리의 믿음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선과 악이 갈리고 축복과 저주가 엇갈리는 종속 변수에 불과한 것이며, 궁극적인 것은 결국 인간의 마음과 생각에 달려있다 할 것입니다. 매사에 그렇듯이, 종속변수를 상수로 둔갑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자 위험한 발상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돈은 가히 신적인 무소불능의 파우어를 참칭하는 괴물이 되기 십상이며, 이 때문에 주님께서는 맘몬을 숭상하는 것을 신성모독적인 우상숭배로 규정하셨던 것입니다.

애초의 질문으로 돌아가 봅시다. 돈을 모을 수 없어서 노후가 걱정이 된다구요? 돈을 모으십시오. 돈을 모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또 할 수 있는 대로 노후가 걱정되지 않을 만큼은 돈을 모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돈은 역시 돈입니다: 1)돈이 다른 소중한 것을 망치거나 뭉갤 정도로 우선적일 수는 없습니다; 2)돈은 모으려고 애쓴다고 해서 생각만큼 잘 모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모든 돈은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돈이 상징하는 바 물질이 다 하나님에 의해 그리고 하나님을 위해 창조된 것이며, 본래 우리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도리어 우리 자신마저도 실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돈을 신으로 착각하거나 둔갑시키는 사람은 저주를 받아 돈의 노예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3)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항상 과감하게 용단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돈이 소중한 것이지만, 더 소중한 것을 위해서라면 덜 소중한 것은 언제든지 또 기쁘게 포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 가운데 이런 믿음의 배수진을 칠 배짱있는 사람이, 고위 공직자 청문회만 보더라도, 의외로 드문 것이 우리의 엄연한 현실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역사"(행동하는 신앙)에는 몇 가지 선행 요건이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1) 돈의 위상에 관한 지식이나 관점을 정립하고 있어야 합니다. 쌀이 돈에서 나오는 줄로 착각하는 현대인들은 이런 기초적인 지식마저도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더러 있는 줄로 압니다. 밥은 결코 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쌀나무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 나무는 농부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수고한 덕분에 쌀을 내는 것이며, 궁극적으로 이 나무는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시는 태양 에너지의 연장에 다름 아닙니다. 돈이란 이 쌀을 용이하게 분배하고 교환하기 위한 매개물로 고안된 것입니다.

2) 돈보다 더 소중한 것을 위해 기꺼이 돈을 내어 놓을 수 있기 위해서는 삶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확신과 궁극적으로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서 화폐 가치를 넘어서서 서로 아끼고 지켜주고 위해주는 공동체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적어도 내가 대접을 받고자하는 대로 타인을 대접하면, 타인도 나를 자기처럼 대접하리라고 믿을 수 있는 공동체(관계망)에 속해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까지 돈에 집착하거나 인색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피차가 서로 서로 안전을 지켜주는 가운데, 삶의 수단을 확보하느라 지나치게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삶의 목적과 본질적인 소명에 더 집중하면서 의미있고 유여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 사는 개인주의형 현대인으로서 이런 의식을 회복하기란 사실 그리 녹녹치 않으며, 우리는 이 면에서 영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대안들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3) 돈되는 일만 열심히 쫓아다니다가 쓸데 없이 좌절하거나 반대로 얍삽한 자만심에 빠져서 인생을 허비하기보다는 진정으로 의미있고 보람있는 일을 성실히 감당하려다 보니 [결과적으로] 돈도 벌리고 저축도 하게 되는 인생을 추구한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흩어 구제하여 사람을 살리고 친구를 만들기 위해 도리어 돈을 유용하게 사용할 줄 아는 인생을 산다면, 실제 은행 잔고가 얼마든 상관없이 우리는 노후를 크게 걱정하지 않고도 만년[에 주님]을 맞이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인생의 근본적인 내러티브를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달려있다"

믿음으로 노후를 대비한다고 하는 것이 각 사람의 처한 처지에 따라 다양한 적용점을 지니겠지만, 그 공통분모는 역시 돈에 대한 우리의 태도와 돈의 궁극적인 주인이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 그리고 우리 인생의 소중한 가치와 우선순위를 어떻게 잡을 것인지 등등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내러티브를 어떻게 형성하느냐에 달려있다 해야 할 것입니다. 할 수 있는 대로 부지런히 일하십시오. 그리고 할 수 있는 대로 낭비를 막고 저축하십시오. 당신의 노후/안녕을 위해서 그리고 당신이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들의 안녕/노후를 위해서...!! 그리하면 가오가 있고 배짱이 두둑한 인생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친히 알게 될 것입니다.

권영석  youngseokwo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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