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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예수님과 함께두 청년의 좌충우돌 노숙자 사역 분투기
랭캐스터 토요일 노숙자 모임 <사진제공: Street Company>

[미주뉴스앤조이=마이클 오 기자] 분주했던 평일을 겨우 빠져나온 토요일 오전은 달콤한 시간이다. 사람들은 모처럼 밀린 늦잠을 자거나 친구들이나 가족과 나들이를 떠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토요일의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고 아침부터 분주히 움직이는 두 청년이 있다. 제법 익숙한 솜씨로 불고기와 밥을 만들어 포장을 하는 동안, 다른 청년은 테이블, 그릇, 음료수 등을 챙겨 약속장소로 나간다. 

엘에이에서 랭캐스터까지는 한시간 남짓, 두 청년은 갓태어난 둘째, 직장, 결혼 계획 등 한 주동안 각자의 자리에서 쌓아두었던 이야기를 다 풀어놓지도 못하고 공원에 도착한다. 주말마다 만나는 노숙자 친구들과의 모임을 준비하는 두 청년의 토요일, 그 첫 장면이다. 

존재의 외부로 밀려나와 살아가는 노숙자과 함께 시간과 삶을 나눠온 청년들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민폐를 무릅쓰고 동행해보았다. 

 

만남과 시작

모임은 음악을 하는 이용석 형제에 의해 시작되었다. 노숙자들을 위해 노래 몇곡을 부탁받게 되었다. 막상 지도위에 랭케스터를 보니 만만치 않은 거리에다, 모임도 생소하였다고 한다. 결국 떠밀려 나가는 봉사처럼 한번의 만남이라 생각하고 공원으로 향했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진실한 만남은 운명같은 심연을 품고 있는 것일까? 그들과의 마주침은 마음속에서 작은 소용돌이가 되어 청년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차마 떨쳐버릴수 없는 얼굴들이 그의 마음과 머리속에서 계속 맴돌게 되었다고 한다. 

갑자기 교회에서 사역을 중단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새로 부임한 담임목사의 목회 방침과 방향에 맞추어 사역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노숙자 사역이 제외되었다는 것이다.

교회가 떠난 덩그란 공원에 노숙자들은 남겨졌고, 고단한 삶은 여전히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교회는 떠났지만, 그들을 지키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평소에도 노숙자들을 위해 봉사하는 교회보다는 노숙자들의 교회가 필요하단 생각을 해왔던 터라, 모임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노숙자들에게 사랑을 전한다 하지만, '그들은 사역의 대상이고, 프로그램의 방문자 일 뿐, 교회의 구성원은 되지 못하고 있구나' 란 안타까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돕는이" 와 "도움을 받는이" 의 명확한 구조적 괴리속에서, 노숙자들이 자신들의 존귀함을 깨닫기가 힘들다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얼마동안이나 가능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소한 그들을 떠나지 않고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계속 만남을 이어갔다고 한다. 

그로부터 9년이 흘렀고, 지금은 이원섭 형제도 함께 합류하여 외롭지 않은 주말 나들이를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랭캐스터 토요일 노숙자 모임 <사진제공: Street Company>

 

토요일 모임

차가 공원에 도착하자 서너명의 노숙인들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짐은 이들의 몫이다. 누가 뭐랄것도 없이 각자가 차지한 역할에 따라 익숙하게 트렁크를 열어 음식을 옮기고, 테이블을 준비하고, 베너를 꽃는다. 일사분란하게 보이기까지 하는 이들의 뒷모습에 자부심이 느껴지는것 같았다. 

모임을 위한 테이블과 음식이 준비되는 동안, 공원 사방에서 하나 둘씩 노숙인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이들은 도착하자 마자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도울일이 없을까 테이블 주변을 서성이면서 모임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숙인 급식이라기 보다는 친구들의 모임에 더욱 가까운 것처럼 보였다. 거리의 삶으로 인해서 남루하고 초췌한 모습을 하고는 있었지만, 이들은 이 순간을 즐기고 누리고 있었다. 투박한 공원 테이블 주변으로 잡은 자리에 정성스럽게 준비된 음식이 놓여지고, 함께 마실 음료수도 선택하여 제공받았다. 

노숙인들의 테이블에 음식을 가져다주고 선택한 음료를 나누는 일은 함께 모임에 나온 노숙인들이 자발적으로 나서기도 하지만, 이제 막 노숙생활에서 벗어난 이들도 참여하였다.

어쩌면 지긋지긋할수도 있는 노숙생활을 벗어난 이들이 잊지 않고 계속 토요일 모임에 나오는 것이다. 그들이 이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 모임이 그들의 모임이며, 그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저 묻어버리고 떠나와야할 곳이 아니라, 다시 돌아가 돌보고 함께 일어서야 할 친구와 가족이 있는 그들의 보금자리이기 때문인 것이다. 바로 그들이 이 모임의 주인인 것이다. 

 

예수님도 노숙자

장로님이라는 별명을 가진 초로의 흑인이 있었다. 오랜 노숙생활을 청산하고, 이제는 거리를 다니며 노숙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신앙을 전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라고 한다. 음식과 함께 한바탕 수다가 끝을 보일 무렵, 장로님이 일어나 함께 손을 잡고 모이자고 제안을 한다. 그러면 아주 익숙한듯 모두들 테이블에서 나와 손을 맞잡고 원을 이루게 된다. 그간의 삶에 대해서 각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인 것이다. 

이날도 거리의 생활로 인해 날로 악화되는 건강에 대한 걱정, 약물 중독을 벗어나려는 친구를 향한 안타까움, 거리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맞닥뜨려야 할 두려움 등 각자의 마음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어색할 사이도 없이 쏟아내었다. 

장로님은 마음을 담은 이야기들이 모아지자 함께 기도할 것을 제안하였다.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생각나는 대로 기도하자는 것이었다. 그러자 투박하고 짧지만 진심을 담은 기도가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위로와 격려, 그리고 애틋한 간구의 기도였다. 

장로님이 마지막 한마디를 더하였다.

‘나는 예수님이 이 땅에 계셨을때 노숙자 였다는 것을 항상 기억합니다. 그리고 노숙자들과 함께 계셨다는 것도요. 그분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겁니다.’ 

장로님 (왼쪽 두번째 배낭)과  토요일 노숙자 모임 <사진제공: Street Company>

 

9년 동안

청년에게 물어보았다. 9년이란 시간동안 좌절이나 절망 같은 것을 느껴본적은 없었는지. 물론 많았다고 한다. 형제처럼 지낸 노숙인을 거리로부터 벗어나게 하려고 집에 함께 살기도 하고 직업을 찾아주기도 했지만 번번히 거리로 돌아가버린 경험, 자신의 진심을 오해하고 두려움으로 숨어버린 경험 등등 순탄치 않았던 세월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은 자신이 변화시켜야할 대상이라기보다는 가족이며 친구라고 한다.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전제라는 것이다. 물론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고, 하루빨리 거리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간절하다. 하지만 성과나 변화의 양이 관계를 변화시켜서는 안돼며, 그럴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이땅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이로 9년의 세월을 보냈으며, 그 시간만큼 하나의 삶을 만들어왔다고 한다. 이제는 그들에게 이 함께하는 하나의 삶은 서로의 삶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 

 

Serving the servers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Serving the servers를 소개해 주었다. 그동안 자신들을 섬겨주었던 자원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을 초대하여, 노숙자들이 섬기는 시간을 마련한 것이다. 

수년간 이들을 보아왔지만 그때만큼 유쾌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고 한다. 

받기만 했던 세월만큼 부담감과 무기력함도 함께 쌓여왔던 것이었다. 비로소 자신들이 받았던 것들에 대해 감사를 할수 있다는 사실과 자신들도 누군가를 섬길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것, 그 자체가 그들에게는 행복이었고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마냥 챙겨주기만 해야 했던 이들에게 따뜻한 정성이 담긴 음식과 선물로 섬김을 받았던 이들도 눈물을 멈출수가 없었다고 한다. 자리를 바꾸는 것 만으로도 그들의 처지를 더욱 절절히 느낄수 있었고, 또 그들이 무언가 기쁨으로 생동하는 것을 목격하는것도 가슴 벅찬 경험이었다고 한다.  

누군가를 섬기고 또 사랑한다는 것 만큼 사람에게 희망과 생기를 불어넣는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커피 내리는 마르코 <사진제공: Street Company>

 

절망과 희망의 사이에서

두 청년의 묵묵하고도 변함없는 헌신과 서로를 의지하며 견뎌온 시간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발견한 삶의 희망이 조금씩 이들에게 빛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 그들 스스로 자신들의 삶을 위해 무언가 해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난 것이다. 

마약과 알콜에 의지하던 자신의 삶을 되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이들도 생겨나고, 또 새로운 일거리를 찾아보기 위해 단장을 하고 이곳저곳 부지런히 다니는 친구들도 생겨났다고 한다. 

마르코는 초기부터 함께 해왔던 노숙인이다. 여러번의 재기 시도에도 불구하고 번번히 실패하고 주저앉은 경험으로 두려움만 더욱 커져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더 진지하고 용기있는 모습으로 커피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커피 사업을 하시는 분의 도움으로 몇달간 드립커피 교육도 받았고, 이제는 토요일 모임의 바리스타로 제법 괜찮은 커피를 내려 사람들에게 새로운 커피의 세계를 알리기도 한다.

 

함께 꾸는 꿈

이렇게 조금씩 자신의 동굴에서 발걸음을 내딪는 마르코와 함께 두 청년은 조심스레 꿈을 꾸기 시작했다. 

마르코가 이렇게 한 걸음씩 내딪어 정식 바리스타가 되고, 또 다른 노숙자들도 그처럼 될수 있다면, 그들을 위한 카페를 만들어보는 것이다. 이들에게 스스로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일터를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사람들을 섬기고 삶을 나눌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려는 꿈이다. 

미리 이름도 정하였다. 스트릿 컴퍼니 (Street Company), 거리위의 사람들을 위한 공간,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는 벗(Company) 이라는 뜻이다. 

갈길이 멀고 할일도 많다. 하지만 그 길의 시작점에 서로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서 있는 이들의 뒷모습은 벌써부터 명랑해 보였다. 

 

희망과 절망의 변증법

희망을 쉽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삶의 밑바닥으로 내려가면 갈수록 그 빛은 더욱 희미해진다. 그리고 세상의 끝으로 밀려난 사람들에게 희망은 고통이 되어 다가온다. 희망을 품는 순간 절망과 두려움의 독이 퍼지기 때문이다. 

수많은 정책과 원조, 그리고 봉사 프로그램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삶의 밖에서 쏟아붙는 어떠한 노력도 그들의 삶을 더욱 무기력하고 절망적인 것으로 만들뿐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가능한 희망의 형태는 무엇인가? 희망이 없는 이들에게 가능한 삶의 형태는 도대체 무엇인가?

이 두 청년의 작지만 끈질긴 시간이 그 희망과 삶의 형태를 보여준다. 그것은 어떠한 물질이나 프로그램으로도 이룰수 없는, 함께 있음, 함께 살아가는 희망이자 삶이다. 

이들이 만들어낸 시간이 그것을 증명한다. 9년의 시간만큼 이들에게는 서로를 향하는 믿음과 신뢰가 생겼고, 그 믿음과 신뢰만큼 노숙자들은 자신의 동굴에서 걸어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발걸음의 길이가 희망은 아닐것이다. 그 희망은 또 절망으로 바뀔 것이고, 두려움에 휩쌓일 것이기 때문이다.

희망은 함께 함이다. 이 함께 하는 삶이 까맣게 타버린 절망의 잿더미 가운데 희망을 다시 소환 할 것이며, 그 끊임없이 솟아나는 희망 가운데 생명은 다시 꽃 필 것이다. 

이들의 작은 희망이 사라지지 않을것이라 믿는다. 그 희망이 성과나 변화가 아닌 부인할수 없는 서로의 존재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 존재들이 서로 마주치고 만나 또 다른 존재가 되는 한, 그들의 희망은 끊임없이 불타오를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 희망의 발걸음을 응원하고 또 동참하기를 바란다. 결국 희망이란 함께 함이며, 함께 살아감의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가운데 그분이 그러하신 것처럼 말이다. 

* 문의처: 이용석 (Jesse) 213.703.2934, 이원섭 (Kevin) 818.862.6643 

마이클 오  michaeloh@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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