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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운동, '성공주의 신화'에 망치를 휘두르다권영석 목사 칼럼 "미투 운동이 드러낸 섹시즘의 민낯: "성공주의" 신화"
미투운동 <YTN 갈무리>

미투 운동을 바로 이해하려면, 그리고 이 운동이 의미있는 열매를 맺히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 저변에 작용하고 있는 의식의 지각 변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사건이나 현상에만 초점을 맞춘 채로, 몇 몇 일탈한 변태성 스캔들로 축소하는 것은 고백에 동참한 여성들의 절절한 아픔과 절박한 용기를 다시 또 모욕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미투 운동을 촉발시키고 또 이 운동을 계속 떠받치고 있는 의식의 변화는 크게 두 축으로 요약해 볼 수 있겠습니다. (1)하나는 [여성] 외부에 대한 자각, 곧 갑-을 관계 구도의 허상에 대한 자각이라 한다면, (2)나머지 하나는 [여성] 내부에 대한 자각 곧 자신[의 성]의 소중함에 대한 새로운 각성으로 이해해 볼 수 있겠습니다. 

1. 전자는 소위 "성공주의"의 외적인 폐단으로서, 모든 것을 성공이란 잣대로 줄세우기 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신종 계급-구조 내지 계층-구조의 문제입니다. 경제권력, 정치권력, 문화권력, 교육권력 등 소위 힘을 거머쥔 것으로 보이던 이들이 영역을 막론하고 줄줄이 미투의 도마 위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연일 터져 나오는 성추행과 성폭력 사례들이 상황은 저마다 다르지만 한 가지 빠짐없이 들어가 있는 공통 요소로 '힘'의 불균형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불균형 여부를 평가하는 '불균형적인'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성공주의'가 아닌가 합니다. 이런 구조 하에서는 소위 성공한 이들의 성추행은 성추행이 아닌 것으로 덮여지기 십상이었던 셈이지요. 

성공 자체가 잘 못된 것이거나, 성공한 사람들을 다 성공주의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성공주의자들이 다 성공할 수 있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문제는 성공하게 된 것이 무슨 큰 유세할 일이나 되는 것처럼 나아가서 다른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 위에 군림할 수 있는 면허라도 받은 것처럼 행세할 수 있게 된 데서부터 성공주의는 부패와 그로 인한 패망의 요소를 이미 배태하고 있었다 하겠습니다. 열심히 하다 보면 남보다 더 잘 될 수도 있고, 더 빨리 돈을 모으기도 하며, 반대로 열심히 했음에도 남보다 뒤쳐지기도 합니다. 또 타고난 재주가 워낙 월등하거나 물려받은 유산이 많아서 조금 덜 노력했음에도 좋은 성적이나 업적을 거두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경제/돈의 영역이든, 권력의 영역이든, 지식의 영역이든, 예술이나 연예계이든 매한가지로 앞서 성공하는 자들이 있게 마련이고, 또 그 이면에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다수가 있게 마련일 것입니다. 

문제는 그 성공이란 것이 '쓸데없이' 과한 대접을 받게 된 데에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독식하고 반대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는 그릇된 인식과 그에 기초한 강박이 편만하게 각인 되어 있는 승자독식의 사회 속에서 '성공주의'는 무소불위의 규칙이나 도덕율로 통용되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에 기반한 산업 혁명으로 모든 것의 大량화가 가능하게 되면서 인간 사회에서 성공과 실패의 간극 역시 그만큼 급속도로 벌어지기 시작하였으며, 그 결과 大기업, 大학, 大형 빌딩 심지어 大교회까지 선호하게 된 현대인들의 의식은 어느 새 '큰 것이 더 좋은 것이며' '큼이 곧 힘'으로 통용되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공고해지게 되었습니다. 성공한 사람도 스스로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있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또 스스로를 평가절하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공한 사람은 점점 더 성공을 굴리고 축적하기가 쉽고, 성공하지 못한 사람은 점점 더 성공하기가 쉽지 않은 <실상은 기울어진 경쟁인데, 자유경쟁으로 불려지는> 사회 구조 문제 역시 별도로 다루어야 하겠습니다만]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더욱 성공을 열망하게 되고, 그럴수록 성공이 더 커 보이고 또 성공한 자들의 세도는 그만큼 더 크게 대접받는 식의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성공주의 신화라는 '괴물'이 아니겠습니까? 

성공한 사람들을 부러 깎아 내리자든가, 성공 자체를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과소평가하자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성공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여 성공을 마치 유일한 정의와 진리(옳음)의 기준으로 내면화하여 통용하고 강화하게 된 것이 작금의 성공주의의 왜곡 지점이 되었던 게 아니었을까요? 이 성공주의의 적폐가 이렇게도 추하고도 흉악한 것이었던지, 이제는 더 이상 덮고 넘어갈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하게 되면서, 인식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자각의 촛불이 켜지게 된 셈이라 하겠습니다. 일인 촛불이 이인 촛불이 되고, 또 너도 나도 촛불을 켜면서 #미투 혁명이 시작되었다 하겠습니다. 

'이건 확실히 아닌 거였구나'하는 각성의 출발이 [하나님의 걸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 섹스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좀은 아이러니해 보이고 당황스럽긴 합니다만, 실은 [누구든 성공하고 힘있는 자들은 힘없는 자들의] 섹스까지도 노리개의 하나로 여기는 이런 기고만장하고 추악한 왜곡이 어쩌면 마지막 마지노선이었던 셈이며, 결코 건드려서는 안되는 역린이었던 셈이 아닐까 싶습니다. 성공했다고 해서 남의 [자아의] 경계선을 함부로 범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성공하지 못했다고 해서 자신의 경계선을 함부로 내어주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섹시즘(성차별주의)이란 이런 성공주의의 잣대로 남성과 여성 전체를 재단한 것이라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남성과 여성의 서로 다름을 태생적인 차이가 아니라 남성중심적인 성공의 잣대를 기준으로 우열 곧 성공 대 비성공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 섹시즘의 핵심이라 하겠습니다. 한 마디로 남-여의 차이를 남-여 우열 곧 차별로 보는 것이지요. 물리적인 근육의 힘이 중요한 생존 수단이었던 원시사회에서는 두 말 할 여지없이 남성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을 것이며, 가정이나 사회의 구성 원리나 기준 역시 '자연스레' 남성중심적으로 형성되었던 것이 아니겠습니까? 따라서 여성은 남성과 다른 정도가 아니라, 여성은 남성보다 열등하고, 남성은 여성보다 우월한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던 것이지요. 역할과 기능이 존재를 대체하는 왜곡이 발생하게 된 지점이지요. 성공한 자는 소중한/위대한 존재이고 성공하지 못한 자들은 위대하지도/소중하지도 않은 존재로 여기는 것이 성공주의가 가져온 폐단이라면, 남성은 소중한/위대한 존재이고, 여성은 위대하지도/소중하지도 않은 존재로 여기게 된 것이 섹시즘이라 하겠습니다. 미투 운동의 저변에 작용하는 의식의 변화는 무엇보다 이 성공주의에 기반한 섹시즘의 허구에 대한 자각이자 저항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2. 이 연장선 상에서 두 번째로(어쩌면 이것이 먼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성공주의"의 횡포에 대한 불가피한 내적 방어기제로서, '성공주의'의 허구와 한계를 알면서도 [여성] 자신들 안에 스스로 이 프레임을 내면화하고 거기에 편승 내지 타협해 왔던 것을 스스로 각성하게 된 점입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성을 포함한 모든 것을 희생해 가면서까지 이루어내고자 했던 그 성공, 그것은 결코 진짜 성공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지금 이 만큼의 용기를 낼 수 있게 된 것이 그나마 지금까지 모든 것을 바치면서 이루어 낸 '성공' 곧 힘의 축적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당사자의 인생은 성공과는 정 반대 방향으로 끊임없는 희생을 강요당했으며, 자아는 산산히 부서져서 다시 아물어 붙을 것 같지도 않은 지경에 이르고 말지 않았습니까? 사실은, 이런 껍데기 인생을 후배들에게 더 이상 물려주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절박감이 미투 운동을 견인하는 한 축이 되었다 하겠습니다.

게다가 본인은 물론 가족의 안전이나 안녕을 위협받으면서도 커밍아웃을 한다는 일은 결코 생각만큼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식이 '조폭적' 위계에 최적화되어 있는 이상, 더구나 여전히 남성 카르텔의 견고한 성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이상 '연약한' 여성이 아무리 소리쳐 봐야 왕따의 골만 더욱 깊어갈 뿐이며 안전의 확보는 더더욱 어렵게 될 뿐이었으니 말입니다. 사실, "성추행"이나 "성폭행" 또는 "스캔들" 등의 표현들도 남성중심적인 관점에서 나온 용어들일 뿐, 여성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 용어들 자체가 이미 불균형적이며 어쩌면 폭력적이라 해야할 것입니다. 가해 남성의 쾌락 욕구를 충족하고자 했던 일시적인 행위가 피해 여성에게는 일생의 삶을 망가뜨리고 가족들에게까지 일생 회복될 수 없는 아픔과 슬픔을 안겨주었으니, 그 크기와 깊이와 높이는 가히 죽음에 방불한 것이었으며, 이 점에서 성적인 범죄는 살인에 버금가는 폭력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생각하면 할수록 참으로 참담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이 무슨 반상의 구분이 엄연하던 조선 시대도 아니고, 종군위안부란 굴욕을 견뎌야 했던 일제 시대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예 성을 생존 수단으로 삼기로 작정하고 나선 홍등가도 아닌데, 함부로 정조를 유린당하고, 더구나 그 기막히고 억울한 사연을 호소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 대명천지 문명사회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라면, 도대체 이 문명은 무엇을 위한 문명이며, 그런 성공은 누구를 위한 성공이었단 말입니까? 성공이 아무리 대단하고 거창하다 해도 그것은 결코 우리의 '존재'/자아를 대체할 수는 없습니다. 성공을 포기하더라도 자아 전체를 파괴하고 유린하는 그런 모욕은 결코 감수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진작에 이런 용기있는 여성들의 연대가 가능했었더라면 여성들의 희생을 훨씬 최소화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한가한 생각을 뒤늦게 해 봅니다만, 다른 한편 그만큼 성공주의 신화에 기반하여 우리가 만들어 놓은 이 세상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그래서 힘 가진 남성이 군림하는 조폭 사회에 다름 아니었음을 재차 확인하게 됩니다. 지금껏 남성들의 폭력적 위용에 눌려 밖으로 터져 나올 수 없었던 여성들의 자성의 목소리들이 용기있는 선각자들에 의해 다시 촉발되었고 거기에다 SNS를 통한 연대가 가능하게 되면서 #MeToo가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어찌 성공하지 못한 것이 부끄러워해야 할 만큼 크게 잘못된 것이며 죄송스러운 것이겠습니까? 성공하지 못했지만 여전히 나는 [성공보다는 훨씬] 소중한 존재이며, [성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나를 함부로 취급하는 것을 감내할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감내해서도 안 되는 그런 독립적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성공하지 못한 사람도 성공한 사람 못지 않게 소중히 여김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하물며 어찌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수치와 모욕을 감수해야할 만큼 큰 잘못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인간을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기로 하셨기에, 남자가 귀하다면 여자도 그만큼 귀한 것이니, 여성은 적어도 남성만큼은 소중히 여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성]이란 본래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의 성은 그의 존재 자체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제유(提喩)라 하겠습니다. 꽃으로도 때려서는 안 되는 것이 사람인데, 그 사람의 자아를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성을 함부로 유린하고 강제로 [침]범한다는 것은 인간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자,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것이며, 야만도 그런 야만은 없을 것입니다. '금수보다 못한 인간'이란 바로 이런 자들을 두고 생겨난 표현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짐승도 생식을 위한 목적이 아니면 함부로 교미를, 더구나 그것도 강제로 유린하거나 착취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만시지탄으로 터져 나오는 [성공한] 남성들의 성추행과 성폭행의 대부분은 성공주의의 드러난 부작용이 사회구조적으로 고착되면서 벌어지는 현상으로서 말하자면 소위 성공한 자들의 갑질에서 빚어진 것이라 하겠습니다. [일부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성접대를 하는 경우가 더러 있을지 모르지만 이는 예외적인 경우로서 논외로 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여성들의 소극적인 반작용 역시 내면화한 성공주의의 프레임으로 인해 생겨난 두려움이나 공포심에 포섭된 강요된 침묵에 다름 아니었기에, "하필 왜 지금인가?" "진작 커밍아웃 했어야지?" 하는 등속의 말들은 공허하기 짝이 없으며 위로가 되기보다는 자칫하면 또 다른 폭력으로 비치기 십상이라 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힘은 우리의 자아 내부에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힘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존재하게 된 것 자체가 곧 힘입니다. 성공이 아무리 대단해 보여도 우리의 존재를 대신할 수는 없으며,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둔 사람이라 해도 그의 존재가 더 커지거나 대단해지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공을] 염려함으로 [존재의] 키를 한 뼘이라도 더 할 순 없는 법입니다.' 해서 진정한 힘은 우리의 존재/자아의 내부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더불어 살아야 하는 우리 인간은 서로의 존재 가치를 함부로 폄하하거나 훼손해서는 안되며, 더구나 성공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로 전락시킨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만든 하나님도 우리를 함부로 훼손하거나 유린하시지 않으시거늘 감히 누가 우리를 그리 함부로 [취급]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인간의 성적인 욕구는 생식을 위한 기능까지 겸하도록 만들어져 있기에 다분히 본능적이자 동물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그것을 통제하지 못하여 상대방은 물론 자신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망가뜨리고 본말이 전도되는 어리석은 지경에 이를 정도로 자신의 고상함을 저버리는 자들은 어쩌면 인간으로서 기본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해야 할 것이며, 인간이기를 포기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반상의 구별이 뚜렷하던 시대의 남성중심적 전통과 관습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온 선조들이 경우에는 혹 예외적인 참작의 여지를 둘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높은 교육열과 한류의 문화적 수준을 자랑하는 현대 한국인들이 이런 천박한 수준의 성관념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여성이 절반인 사회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불가불 역지사지할 수 있는 거울 효과를 제공할 수밖에 없을 터, '잠재적 교육과정'이 제대로만 작동하였던들 이 정도는 아니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무튼 이 점에서 우리 모두는(여성은 물론 남성 역시) 성공주의 프레임에 갇히게 되면서 매한가지로 손상을 입은 셈이며, 일종의 하향평준화하게 되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만일 지금까지의 논의가 의미있는 분석이라면, '성공주의' 프레임 내지 성공주의 신화가 우리를 얼마나 어리석게 만들었는지 섬뜩함이 느껴지며, 동시에 섹스에 대한 [성공주의적] 왜곡된 관념 내지 무개념이 인간의 소중함과 고상함을 일거에 저락시키고 표피적인 쾌락에 매몰되게 만들었는지 자괴감을 넘어 경악할 정도의 모멸감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해서, 아직은 한 참은 더 진행형일 것으로 보이는 #MeToo의 흐름이 일시적인 유행처럼 시간이 지나면 묻히고 말 여느 뉴스거리와는 달리 전지구적이고 전영역적인 휘발성을 지닌 거대한 불길로 타오를 것으로, 아니 타올라야 할 것으로 보고자 합니다. 비유컨대 천동설이 지배적이던 당시 그리고 그 천동설의 적폐가 극에 달했던 시점에 지동설이 대두되면서 문예혁명(르네상스)과 같은 새로운 자각의 흐름이 생겨났듯이 미투가 가져올 혁명의 여파를 설레임으로 기대해 봅니다. 다시 말하면, 미투 혁명은 섣불리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아마도 문예 혁명에 버금갈 정도로 크고 깊게 우리 인간을 고양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 봅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힘있는] 가해자가 아니라 [힘없는] 피해자들의 처절하고 절박한 단계에서 터져 나온 문제 제기가 이런 반전의 시작을 예고하는 데자뷰로 보이는 것이 어찌 우연이겠습니까?! 성공의 기세에 눌려서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지 못하던 '여[민]초'들이 '아하, 이게 아니었구나' 하는 자각과 더불어 깨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성공을 빙자하여 자신들의 실력과 지위를 함부로 휘두르던 남성들이 추풍낙엽처럼 스스로 휘두르던 칼날에 맥없이 스러져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SNS 덕분에 이번엔 그들이 대대적으로 연대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전쟁에서 보급만 충분하다면 장기전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듯이, 운동의 지속가능성까지도 확보했다는 반증이 아니겠습니까? 

마치 3.1 항일운동을 통해 피식민지였던 우리 민족의 주체성에 대한 자각이 [반상을 무론하고] 대대적으로 일어났던 것과 매한가지로, 나라의 주인은 독재자 일당이 아니라 바로 우리 국민이라고 하는 민주의식이 5.18 광주항쟁을 거쳐 6.10으로 이어지면서 마침내 촛불 혁명을 통해 민족사의 대반전을 이루어 내었듯이, 이제 인류의 절반이나 되는 여성들이 기울어진 남-여 성차별의 적폐가 극에 달하자 '이건 정말 아니다' 하는 저항으로 용솟음친 것이 미투 운동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저항의식은 한 번 일깨워지면 다시 잠들게 할 수 없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르네상스 이후의 인류를 다시 중세로 돌아가게 할 수 없듯이, 촛불 이후의 대한민국을 촛불 이전으로 되돌릴 수 없듯이, 미투 이후의 인류를 미투 이전으로 다시 돌아가게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1)우리 사회에 당분간은 여전히 잔존하고 있을 갑-을의 계급 구조가 불가피할진대, 그것이 우리의 존재/자아 자체를 범하지 못하도록 여하히 통제하고 제한할 것인가 하는 과제를 두고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며, (2)성에 대한 천박한 이해 내지 이해 부재의 문제를 여하히 바루고 강화해야 할지 담론의 장을 확대하고 다음 세대를 계도하기 위한 성교육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그 출발점을 마련하기 위해 우리는 일단 성공주의의 신화를 걷어내고, 성공하지 못해도 괜찮은, 나아가서 성공이 아니라 존재에 기반하여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면서 더불어 사는' 고상함을 회복하여야 하겠습니다. MeToo에 이어 WithYou에 동참하는 이들이 불어나고 있는 것에서 우리는 벌써 희망의 싹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성공해야만 존재로서 대접을 받을 수 있기에, 너도 나도 '성공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궁극적인 해답이 아니라, '성공 못해도 괜찮아' '나보다 네가 더 성공하여 기쁘다'고 할 수 있는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샬롬으로 초청받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사명이 아니겠습니까?! 성공할 수 있으면 물론 좋습니다. 그러나 성공 못해도 여전히 우리는 소중하고 고상한 존재입니다!! 존재에 비하면 성공은 정말 사소한 것에 불과하며, 성공하지 못해도 우리 인생의 [행복의] 대세에는 크게 지장이 없습니다. #MeToo는 무엇보다 삐뚤어진 성공주의의 민낯을 들춰내고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씁쓸달콤한(bittersweet) 역설적인 현상이며, 동시에 성공주의의 큰 줄기인 섹시즘의 적폐를 걷어내기 위해 불가불 짚고 넘어가야 할 인류의 중대 과제라 여겨집니다. 

권영석  youngseokwo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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