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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만 잘 하는 교회삶은 없고 종교가 판친다

한국교회는 전세계에서 가장 예배가 많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개신교 역사상 가장 부패한 교회라는 말을 동시에 듣고 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예배와 예배주의

저는 예수께서 제자들과 모여서 별도로 '예식적인 예배'를 드렸다는 표현을 본 기억이 없습니다. 다만 매주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셔서 성경을 가르치시거나 병고치시거나 전도하셨다는 기록만이 있습니다(눅4:44).

성경에는 '예배'라는 단어가 자주 나오기는 하지만 오늘날 우리가 시행하고 있는 '종교적 의식으로서의 예배'를 의미하거나 강조하는 구절은 별로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욥1:20)"처럼 이 구절에서 말하는 예배는 어떤 종교적 예식이 아니라 그냥 '경배'의 의미로 쓰여졌습니다. 다른 여러 구절들도 대부분 비슷합니다.

구약이야 본래 제사 시대니까 논외로 하더라도, 신약에서조차 집회를 예식적인 예배로 표현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매우 주목할 만한 사실입니다. 사도행전의 오순절 사건에서도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행2:1)"라고 표현되어 있지,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서 예배하였더니"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행2:46)." 여기도 모이기를 힘썼지 예배를 힘썼다는 표현은 없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도 '회당의 모임'이라고 되어 있지, '회당의 예배'라는 표현은 없습니다(행13:43)." 성경의 초기 교회는 집회를 무조건 예배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요즘 한국교회 일부 '예배주의자'들의 뜨거운 주장처럼 공적 예배 행위가 그토록 엄중하게 우리 삶의 중심이 되어야 옳다면 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작금의 한국교회처럼 한주일 내내 주일예배, 저녁예배, 수요예배, 금요예배, 구역예배, 그리고 새벽예배를 열심히 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을까요 .

사실 초기 교회처럼 그냥 모임이나 집회라고 하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의 어느 교단은 지금도 교회 건물을 예배당이라 하지 않고 단지 '홀(Hall)'이라고 합니다.

교회 집회의 변질

교회 집회의 명칭이나 성격을 변질시킨 전형적인 예가 바로 중세 교회의 미사입니다. 그들은 집회를 제사화했습니다. 사제라는 용어 자체가 제사장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사제가 미사를 주도한다는 것은 이미 그들의 미사가 제사임을 반증하고 있습니다.

가톨릭대사전에는 "미사(초기 원시교회에서는 ‘빵 나눔’, 2-3세기에는 ‘감사 기도, 감사’, 4세기에는 ‘제사, 봉헌, 성무, 집회’ 등으로 불려왔다)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Missa'에서 유래됐으며, 중국어나 한국어로 그 발음을 딴 것이다. 이 용어는 5세기부터 서방 라틴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제사를 재현하며 최후만찬의 양식으로 그리스도 친히 당신 교회안에 물려 준 가톨릭 교회의 유일한 만찬 제사를 지칭하는 말로 통용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4세기라는 시점입니다. 적어도 초기 200년 간의 교회 집회는 단순히 '빵 나눔'이나 '감사 기도' 정도의 소박한 모임이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게 기독교 공인 이후 교회가 태평성대를 누리면서부터 점차 변태하여 '만찬 형태의 제사'로 둔갑한 것입니다.

이것은 심각한 변질의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미 단번에 구약 제사를 완결하셨습니다(히7:27). 그런데 중세 교회는 또 다시 주일마다 헛된 제사를 계속 반복한 것입니다.

개혁자 칼뱅은 이에 대해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으로 만족하지 않고 감히 그를 새로이 제물로 바치노라고 한 자들의 조작은 더욱 가증하다. 교황파는 매일 이 짓을 시도하며 미사에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바치노라고 생각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이처럼 중세 교회의 본격적인 변질은 집회의 변질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또 다시 과거 구약의 유대교처럼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다른 중간자인 사제가 들어선 것입니다.

중세 미사의 부활

그럼 오늘날의 집회인 현대 예배는 어떨까요. 상당수 주류 교회들은 '예배'와 '직분자'와 '건물'을 지나치게 포장하여 신성시하고 우상화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주 심할 경우 예배가 돈 바치는 제사가 되고, 설교자가 복을 비는 무당이 되고, 예배당이 만사형통을 비는 제단이나 성황당이 되었다는 따거운 비판을 듣기도 합니다.

더구나 일방적인 극장식 예배는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하고 있습니다. 회당 집회는 자유롭게 묻고 답하는 소통과 토론이 있었지만, 대다수 작금의 예배는 오직 일방적인 선포만이 있을 뿐입니다.

초기 종교개혁자들이 외쳤던 "만인제사장" 정신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교인들은 또 다시 중세 교인들처럼 아무런 군소리 없이 예배 관객의 자리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예배에서 중세 미사의 부활이 느껴지지는 않는지요.  

우리가 교회에 출석하는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예배 참석자'가 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배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삶이 예배고, 삶이 기도고, 삶이 선교고, 삶이 봉헌이고, 그리고 일상의 삶이 제사였습니다(롬12:1).

구약의 성전은 인간이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유대 백성들은 성전 제사와 절기만 잘 지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여기며 하나님의 임재를 성전 속에 가두고, 정작 사생활에서는 제멋대로 방종하거나 우상을 섬기며 산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땅에 최초의 성전을 건축한 지혜의 왕 솔로몬조차 이방의 신당을 허용했습니다. 엄숙한 제사는 있었지만 바른 삶이 없었습니다. 화려한 성전은 있었지만 진리가 없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 또한 상황은 비슷했습니다. 그들은 성전에서 날마다 무고한 양들을 잡아죽이면서 그게 율법을 잘 지키며 하나님을 잘 섬기는 일로 착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성전 밖으로 나가서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악행을 저질렀습니다(눅20:47).

우리는 하나님을 오해해선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짐승의 피를 좋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제사에 목마른 분이 아닙니다. 도리어 성경을 보면 헛된 제사보다는 차라리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다고까지 말씀하셨습니다(말1:10)."

사랑보다 더 거룩한 예배는 없다

요즘 많은 예배를 보면 제사장 가운 입기를 좋아하고, 나눔보다는 바침을 강조하고, 기복을 노래하고, 그리고 봉헌과 축도를 열심히 합니다. '복'이라는 단어가 없으면 아예 설교가 안 될 정도입니다. 물론 바침이나 봉헌이나 축도 자체가 나쁜 건 아닙니다. 다만 이 모두가 과거에 사제에게만 특권화했던 중세 교회의 제사적 요소들인 게 문제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그 제사의 모든 것을 온전하게 다 이루셨는데, 우리는 왜 아직도 그런 기복적 초보 신앙에 머물며 그 철 지난 제사의 틀에 여전히 집착하려 하는지 꼭 묻고 싶은 것입니다. 시골 산구석까지 교회당은 빈틈없이 들어섰건만, 왜 개신교의 사회적 신뢰도는 갈수록 바닥을 치고 세인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있냐는 겁니다.

사도들의 초기 교회 집회는 단순했습니다. 예배라는 종교 수사학적 용어조차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단지 모여서 기도하고, 찬송하고,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들었을 뿐입니다.

그런 소박한 집회를 온갖 성화와 촛불로 장식된 화려한 건물 속에서 거창한 제사 의식으로 바꾼 것은 타락한 중세 교회의 오류였습니다. 그리고 상당수의 현대 교회들은 또 다시 그 허망한 길을 넘보고 있습니다.

'교회의 예배'와 '일상의 삶'이 서로 일치하지 못하고 그저 예배만 잘 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교회의 예배가 교인의 삶을 제대로 바꾸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은 없고 종교만 남았습니다. 신령과 진리 대신에 위선과 맹신이 난무합니다. 예배 잘 드리고 나가서 헌금을 도적질합니다. 예배 잘 드리고 나가서 뇌물을 주고 받습니다. 예배 잘 드리고 나가서 교회를 세습합니다. 그리고 예배 잘 드리고 나가서 직장 동료를 미워합니다.

이제 헛된 제사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의 집회는 제사가 아닙니다. 예배는 무당굿이 아닙니다. 제사는 예수님이 다 이루셨습니다. 성도의 모임을 또 다시 교권이나 제사의 틀로 속박하면 안 될 것입니다.

참된 예배는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교회당 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사랑을 실천하는 것보다 더 거룩한 예배는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그것이 하나님의 계명이며 진정한 예배입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랑이지, 제사가 아니다. 불살라 바치는 제사보다는 너희가 나 하나님을 알기를 더 바란다(호6:6, 새번역)."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신성남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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