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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쇄적인 섹스관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권영석의 복문단답] 성희롱과 미투운동

Q. 성희롱 문화, 어떻게 생각하세요?

A. "성희롱"(sexual harassing)과 "성폭행"(sexual assault)이라고 하는 말은 성에 대한 남성중심적 관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성을 인격의 상징물이 아니라 희롱의 대상 내지 오락이나 여흥을 위한 노리개로 생각하는 천박한 생각이 성-희롱과 성-폭행이라는 이 두 단어에 축약되어 있다 하겠습니다. 이런 생각이 남자들의 섹스관으로 고착되면서 결국 인류의 절반인 여성의 존재는 "힘"있는 남성의 희롱 대상으로 전락하게 되었고, 수많은 여성들의 삶이 실제로 부서지고 망가진 채로 희생되고 방치되어 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남성은 여성의 성을 가지고 [함부로] 장난쳐도 되고, 여성은 남성에게 성희롱과 성폭력을 당하면서도 [찍]소리 해서는 안되는 구조, 이 불편부당한 구조가 바로 섹스즘(Sexism)이라고 하는 성차별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런 갑-을 관계가 우리의 상식이 되고 관습이 되어 통용되는 사회/문화를 성희롱 사회/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미국에서 아카데미 수상 경력에 빛나던 헐리우드의 영화제작자 와인스타인의 쉬쉬해오던 성희롱 사건들이 불거지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Me-Too 켐페인은 성희롱을 당하고도 대항은커녕 도리어 함구하고 있어야 했던 여성들의 '커밍아웃'을 촉발하면서, 영화계만 아니라 전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계와 언론계는 물론 각계 각층에서 남성의 섹스-갑질 사례들이 속속 공개되고 있습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들풀처럼 마구 번지고 있는 이런 '반동적'인 현상이 과연 그 간의 [도착된] '성-문화'에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하는 불씨가 될 수 있을지 목하 귀추가 주목된다 하겠습니다.

어쩌다가 인간의 성이 이 '지경'이 되었단 말입니까? 아니 사실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이렇게 망가지게 되었단 말입니까? [여성의] 성이 입에 담기조차 부끄럽고 기괴한 희롱의 대상이 되고, 폭력과 강탈의 대상이 된 사회, 다시 말하면 인류의 절반인 [여]성을 놀잇감이나 먹잇감으로 전락시킨 사회는 분명 비인간적인/야만적인 사회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성 문제의 본질은 아이러니하게도 남성 문제인 셈입니다.] 이 문제는 모든 여성들이 '미투'라는 해쉬태그를 중심으로 꽁꽁 뭉친다고 해도, 또 일부 남성들이 [친히] 여성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캠페인에 앞장선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 해결까지는 그리 쉬울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어쩌면 그 동안 인간의 섹스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왜곡되고 도착된 인식으로 점철되어 왔던 인류 역사의 장구한 기간을 생각하면, 그만큼 더 전격적이고 대대적인 정화와 개혁의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밀레니엄의 첨단 문명을 자랑하는 인류가 아직도 이런 남-녀 불평등과 도착된 성관념을 교정하지 못한 채 여성은 남성의 노리개 정도로 치부되는 수모를 참고 견뎌야 할진대, 대체 만물의 영장으로서 우리가 쌓아 놓은 찬란한 문화란 게 과연 무엇이 그리도 찬란하다는 것인지 자괴감을 금할 수 없다 하겠습니다. 남성의 한 사람으로서 고백하건대, 참으로 함께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며, 여성들 앞에서 낯을 들 수조차 없을 만큼 백배 천배 사죄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답니다.

이 사태의 원인은, 따라서 궁극적인 해결의 관건 역시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찾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나는 1)힘의 불균형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2)섹스에 대한 인식 내지 개념 곧 섹스관의 문제입니다. 

1)'성폭력'이란 말이 시사하듯이, <인간의 '성' + '폭력/폭행'>은 결코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라 하겠습니다. 나아가서 <"폭력/폭행" + "인간"(존재 자체)>이란 것 역시 결단코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라 하겠습니다. 약육강식하는 짐승들도 아무 때나 함부로 힘자랑을 하거나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으며, 오직 시장기가 있을 때만 사냥을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인간이 인간을 대하여 함부로 힘자랑을 하고, 힘으로 상대방의 의지를 굴복시키고 부끄러운 굴종을 강요한다고 하면, 이것보다 더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남성이 여성보다 [신체적인] 힘이 더 세다고 하여 여성을 함부로 한다면, 또는 남성이 높은 직급을 이용하여, 또는 경제적인 우위를 이용하여, 낮은 직급의 여성을 함부로 대한다면, 이는 힘있고 용기있는 행동이기는커녕 참으로 저열하고 찌질한 행동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런 힘/소유/지위/학벌 등의 우열을 잣대로 하여 한 쪽은 지배하고 다른 쪽은 복종하는 불평등한 관계가 되면서, 인간은 금수보다 도리어 못한 괴물 같은 존재가 되었고 인간 사회는 정글보다 더 무서운 가혹한 세상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비열하고 찌질한 사회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정부가 있고 경찰과 군대가 있는 셈이며, 성경의 권리장전(갈 3:28)과 유사한 조항이 헌법의 기본권으로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때로는 부패한 정부나 공권력이 바로 이 저열하고 찌질함의 주체가 되어 사회 전체가 조폭집단처럼 변하기도 하기 때문에 투표를 통한 민의가 권력의 최종 원천이 되도록 하는 것을 제도화한 것이 민주주의 이상인 셈이구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열하고 찌질한 줄도 모른 채 완력과 폭력을 휘둘러서라도 소기의 '성공'만 쟁취하면 그만인 것으로 간주하는 폭력 야만사회의 가치를 내면화하여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갑-을 그리고 을-병의 먹이사슬로 촘촘하게 구조화되어 있는 이런 폭력사회에서는 같은 편이 아니면 다 적으로 간주되며, 내가 먼저 죽이지 않으면 도리어 죽는다는 논리에 사로잡혀 있어서 자유-평등을 포함한 인간의 기본 권리는 언제나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이며 호시탐탐 인간을 억압하고 무시하며 유린하고 학대하려는 위험-사회이자 위협-사회로서 평화의 길이 아니라 전쟁/이전투구의 길로, 생명의 길이 아니라 사망의 길로 가고 있다 하겠습니다. 

성폭력 또한 매한가지여서, 대개는 개인적이고 은밀하게 행해지기 때문에 그만큼 더 근절하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겠지만, 이런 폭력사회의 극단적인 증상의 하나에 해당한다 하겠습니다. 따라서 소외, 무관심, 적대감으로 서로 철저히 단절되어 있는 상태에서 오로지 힘/폭력의 소유를 향한 성공이 최상의 가치가 되어 있는 폭력 사회를 지향하던 데서 [근본적으로] 돌이키지 않는 이상 성폭력 문제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작금의 미국에서 재치있고 유능한 상원의원, 아카데미 영화상을 휩쓸던 헐리우드 영화 제작자, 잘 나가는 앵커, 스타 코미디언 등등 유력한 식자층에 의해 이런 성폭력 사태가 버젓이 저질러져 왔다는 사실은 성폭력의 본질이 일차적으로는 성이 아니라 폭력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 하겠습니다. [일본군 종군 위안부 사례나, 베트남전에서 저지른 강간 사례 역시 성폭행이 단지 성의 문제가 아니라 힘 곧 폭력의 문제임을 확증해주는 두말할 여지없는 증거라 하겠습니다.]

2)게다가 '성희롱'이란 말이 시사하듯, 인간의 성은 희롱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결코 안 되며, 희롱당해서는 더더욱 안 될 것입니다. <'성' + '희롱'>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조합이라 하겠습니다. 인간의 신체 일부를 두고 희롱한다고 해도 견딜 수 없는 일이거늘 어떻게 한 개인의 인격 전체, 자아 전체의 상징에 해당하는 성을 희롱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것(성+희롱)이 얼마나 생뚱맞고도 병신스럽기 짝이 없는 결합인지는, 남성들이 한 번이라도 제대로 역지사지를 해본다면 간단히 입증될 수 있다고 봅니다. 만일 뭇 여성들이 남자인 나를 그저 성적인 대상으로 훑어보고 함부로 뒷담화를 하고 히히덕거림의 소재로 삼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나아가서 함부로 만지고 장난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여성들의 성적 특징상, 이는 결코 자연스럽지 않을 것이며 현실가능성이 없는 얘기입니다만...] 참으로 끔찍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실제로 남성들은 여성들을 이런 시각으로 바라보고 또 [함부로] 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뭔가 조종할 수 있거나 힘있는 위치에 올라가기만 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어떻게든 '해보기' 위해 걸떡거리는 남성들, 이것이 뭇 여성들이 생각하고 있는 "남성"의 이미지라는 것을 정작 본인들만 모르고 있다면 이 얼마나 부끄럽고 어리석은 일이겠습니까?

이처럼 성과 희롱, 성과 오락의 결합이란 차마 입에 담아서도 안될 만큼 야만적이고 천박한 생각이라 하겠습니다. 어떻게 성이 희롱과 오락의 대상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인간의 인간됨을 일거에 저락시키고 인간 이하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줄도 모른 채, 마치 무슨 영웅이라도 된 양 성희롱/성폭행의 성공담이나 음담패설을 줄줄 꿰고 있는 남자들이야말로 어쩌면 [아직] 인간이 되지 못한 자들이며(de-humanized), 인간다운 품위를 지닌 존재(decent)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여성들은 그런 '늑대/괴물'들에게 당하지 않기 위해 방어기제와 [남성을 향한] 적대감으로 뭉쳐진 채로 늘 긴장 가운데 살아가게 되었으니 [더러는 남성들의 이런 속성을 십분 이용하여 조종하기까지 하고 있으니], 이런 적대적인 관계에서 어떻게 상호 존중과 상호 보완이 가능한 샬롬의 이상향(理想鄕)인 하나님의 나라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섹스의 의미와 가치를 잘못 자리매김한 결과 인간에게 초래된 재앙은 참으로 끔찍하다 하겠습니다. 모든 것을 힘/폭력의 논리, 경제 논리로 환원하기 시작한 인간은 '성'마저도 함부로 희롱하고 소비할 수 있는 오락의 품목으로 삼으려 했지만 그 부메랑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으니 인간의 존재 자체를 천박하게 만들고 비인간적/야만적이 되게 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어쩌면 인간은 [잘못된] 섹스로 시작하여 섹스로 망해가는 중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듯싶습니다. 

만시지탄이겠지만, 이런 남성 우위 내지 가부장적인 성관념, 곧 편벽되고 왜곡된 섹스관을 전면적으로 재고해 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창세기 2장의 메타포적 이야기가 단적으로 일러주듯이 부부간의 완전한 결합(곧 결혼 관계)을 상징하는 인간의 섹스는 결혼 관계라는 문맥과 상관없이 쾌락 자체가 종착역인 오락으로 환원시켜서는 결코 아니 될 것입니다. 심지어 짐승들조차도 이런 여흥과 오락의 일환으로 교미(섹스라고 할 수는 없겠습니다만)를 하지는 않는답니다. 적어도 그들은 생산을 위한 '거룩한' 목적으로 교미를 하지 않습니까? 하물며 인간이 되어 가지고 '원나잇 스탠드'로 대변되는 오락거리로 성을 남용/오용한다면야, 어떻게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는 인간의 고매함과 이런 천박하고 게다가 폭력적이기까지 한 섹스관념을 서로 조화시킬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성적 쾌감 자체를 무시하거나 거부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섹스의 의미나 역할을 다시 조명하고 재정립하자는 것입니다. 섹스 = 쾌감이라는 의미부여가 전부라고 한다면, 인간의 성은 쾌감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흘러갈 것이며, 그 결과 오늘 우리가 보는 섹스 = 오락이라는 성관념과 성희롱 문화를 태동시켰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섹스 =\= 쾌감이란 얘기를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섹스에 쾌락적이고 관능적인 요소가 전혀 없다거나 없어야한다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사실, 영-육을 구분하는 이원론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는 섹스 = 쾌락의 세속적 성관념에 대한 반작용으로 섹스 =\= 쾌감이라는 [반대] 극단적인 입장을 취해 왔고, 오랜 세월, 섹스 = 출산이라는 성관념을 마치 유일한 성경적인 [대안] 교리처럼 교조적으로 가르쳐왔다고 하겠습니다. 단적으로 바티칸에서는 아직도 피임약 사용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을 생각하면, 섹스 = 출산이라는 카톨릭의 도그마 역시 인간을, 특히 여성을 비인간적으로 억압하는 프레임에 가두어 왔다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1)섹스 = 쾌감/오락의 섹스관이나 2)섹스 = 출산; 섹스 =\= 쾌락이라는 섹스관보다 더 나은 대안은 없는 것일까요? 성경의 섹스관은 한 마디로 이 양극단을 다 배격하면서도 또한 다 아우르고 있다 하겠습니다. 성적 합일의 아름다움과 여흥을 노래한 구약의 아가서는 물론, 신약에서 남편과 아내가 피차 성적인 의무를 다할 것을 언급한 바울(고전 7:3-4)에 이르기까지 성경은 결혼 관계 안에서 부부의 성생활을 당연한 창조 질서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결혼이라는 맥락 안에서 누릴 수 있는 배타적이자 유일무이한 관계상의 특권인 동시에 의무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성경적인 섹스관이 또 다른 도그마가 아니라 인간의 인간됨을 담지하는 [유일한] 참 지혜임을 입증하는 데는 좀 더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인류 역사가 경험한 시행착오들을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반성할 수만 있다면, 1)섹스 = 쾌감/오락의 프리섹스의 관점이나 2)섹스 = 출산; 섹스 =\= 쾌락이라는 중세 암흑기의 폐쇄적인 섹스관으로는 오늘처럼 인터넷을 타고 떠다니는 포르노물과 성범죄의 홍수 속에서 진정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제] 충분히 도달할 수 있으리라 봅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남여의 성 반응 차이와 같은 생리적인 측면의 연구는 물론 남여 관계의 사회-심리적인 측면의 연구와, 섹스 산업이라고 불릴 정도로 거대한 힘을 가지게 된 포르노-소비주의에 대한 비판과 저항, 나아가서 무엇보다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함으로 일부일처제를 기반으로 하는 결혼과 가정이라는 이상적인 제도/구조를 구상한 창조주의 설계도를 찾는 다양한 인문학적 재조명 작업을 포함하는 다면적이고도 통합적인 반성과 반추가 전제되어야 할 것입니다.

섹스 문제 그리고 섹시즘의 문제를 극복하려면, 이처럼 섹스의 신학 내지 철학을 정립하고 그것을 각 개인과 사회가 공개적이고도 비판적으로 내재화하도록 교육하는 일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줄 압니다. 근자의 성희롱 문화에 대한 저항과 비판, 자성의 목소리들이 인류역사 속에 해묵은 재앙의 원천인 섹스에 대한 복된 소식을 일깨우는 참된 부흥(Renaissance)의 시작점이 되기를 소망하며 또 기도하여야겠습니다. 그리고 이 때야말로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솔선하여 섹스를 설계하신 하나님의 설계도를 따라 스스로 자유함을 누림으로 모범을 보이고 나아가서 어두운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는 기회로 십분 활용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성희롱 문화 우리가 바꿀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꾸면 됩니다.

권영석  newsnjoy@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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