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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혼전순결을 지켜야 하나요?[권영석의 복문단답] 순결과 신앙

Q. 꼭 혼전순결을 지켜야 하나요?

A. 대답을 용이하기 위해 우선 몇 가지 개념 정리부터 하고 들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1)'혼전'이라고 했는데, 과연 결혼이란 무엇이며 또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그 전후를 나눌 수 있는 걸까요? 두 사람이 결혼을 약속하는 시점을 혼인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결혼예식을 올리는 시점을 혼인으로 볼 것인가? 만일 전자라면 결혼 예식은 [아직] 올리지 않았지만 실상 혼인 관계의 핵심요건을 갖추었다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2)'순결'이란 무엇이며,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과연 무엇일까요? 이 질문에서 순결이란 일차적으로 성적 순결을 지칭할텐데, 신체적/문자적 순결만 생각해 보더라도, 어디까지를 순결하다고 할 것인가에 따라 그 기준은 사뭇 달라질 것입니다. 키스하는 것은 순결로 치고, 그 이상의 애무는 순결이 아니라고 할 것입니까? 아니면 애무는 뭐든 다 괜찮으며, 삽입만 하지 않는다면 순결로 칠 것입니까? 만일 절대적인 기준을 정할 수 없는 문제라고 한다면, 결국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아야 한다거나 서로가 합의하면 괜찮다는 상대적인 기준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3)게다가 성적 순결이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복잡한 여성/남성 편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성적인 결벽증 탓에 신체적 성만 '순결'하다면 순결한 것일까요? 보다 근본적으로는, 성관계란 건 대체 무엇이길래 순결이 필요하다는 걸까요? 성이란 마음을 상징하는 것이며, 성관계란 곧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임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행위라고 한다면, 성적 순결이란 곧 마음의 순결을 의미할텐데, 그렇다면 "혼전 순결을 꼭 지켜야 하나요?"라는 질문은 "결혼 전에 꼭 [한 사람에 대한] 마음을 지켜야 하나요?"라는 생뚱맞은 질문이 되고 말 것입니다. 

게다가 우리의 신앙고백대로 하자면, 성교란 혼인을 통한 두 사람의 결합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진대, 첫날밤의 성적인 결합은 몸으로 하는 결혼식이나 다름없을 터, "꼭 혼전순결을 지켜야 하나요?"라는 질문은 "결혼식 전에 결혼식을 [미리] 하는 것은 안되나여?"식의 해괴한 질문이 되고 말 것입니다. [만일 동일한 대상과 결혼식을 두 번 한다고 한다면 그나마 크게 문제 삼을 것이 없겠지만, 만일 대상이 각각 다르다고 한다면, 이는 전혀 다른 차원의 질문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순결에 대한 질문의 핵심은 결국 순결의 대상에 초점이 맞추어질 것입니다. 즉 결혼의 유일한 대상인 상대방(재혼의 경우에도 전혼이 완전히 정리가 된 이후라면 매한가지로 유일한 대상이라 해야 할 것이며, 그 사람과는 [또 다시] 처음하는 결혼이라 해야할 것입니다)에게[만] 오로지 온 몸과 온 마음을 다 바치는 것이 순결일 것입니다. 즉 순결의 문제란 한 마디로 그 대상이 한 사람 곧 유일한 대상인가, 아니면 마음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옮겨 다녀서 순전하지 않은 마음인가[, 또 그러다보니 몸까지도 여러 사람에게 '주게' 되었던 것인가] 하는 문제로 재진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혼전순결" 문제의 가장 핵심이자 본질은 바로 마음을 주기로 한 대상과 관련하여 짚어야 할 문제라고 하겠습니다. 만일 혼전 관계와 혼후 관계의 대상이 피차 동일한 대상이라면, 순결의 문제는 크게 대두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연애하고 결혼으로 들어가는 과정에 '진도'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두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임의로 조정해 가면 될 문제일 뿐이며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의견차나 밀땅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정도의 차이를 굳이 혼전과 혼후로 나누어서 크게 문제 삼을 것까지는 없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순결이란 본질적으로는 성적인 문제라기보다 대상의 문제요 결혼관계의 성격과 연관된 문제라 하겠습니다. 

고신대 총여학생회의 '혼전순결' 캠페인 포스터(사진:고신대 총여학생회 페이스북)

즉 순결이란 일차적으로는 스킨십 내지 성관계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두 사람의 관계 구도에 관한 문제입니다. 혼전 스킨십의 진도나 성관계 유무 자체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어떤 관계 구도에서 그런 관계를 맺느냐 하는 것입니다. 결혼 관계를 전제로 하지 않은 채 성관계부터 맺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지, 결혼관계를 전제로 한다면, 성이 결혼의 상징인 바에야, 혼전관계 유무의 차이는 [그렇게] 부각시키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물론, 굳이 결혼식까지 기다리지 못할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결혼식을 통한 축복과 더불어 '초례'를 치르는 것이 결혼의 기쁨을 충만하게 한다는 데에는 이의가 있을 수 없겠습니다만.]

그러나 우리네 인생살이가 그렇게 한 방향으로 흐르지마는 않을 수 있다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교제하는 사람과 결혼까지 연결될 수 있을 것인지 100% 장담할 수가 없다는 데서 여러 복잡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결혼 관계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교호작용을 하는 가운데 성립하고 유지할 수 있는 것이기에, 잘하면 윈-윈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고 윈-루스 내지 루스-윈 또는 나아가서 루스-루스로 귀결될 수 있음을 감안하고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물론, 두 사람이 마음을 정하기에 따라서 어떤 난관이나 역경이든지 극복하고 나갈 수 있는 에너지가 생기는 것이 사실입니다. 인간의 마음/의지만큼 강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우리의 판단력의 결핍 또는 의지력의 한계 내지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그것만큼 지키기가 어려운 것도 없기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 4:23)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변수들을 고려할 때 성적인 접촉은, 결혼을 공인하기까지는 유보함으로 성적 순결을 유지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하는 원론적 처방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유효하다 하겠습니다. 

이 때문에 데이트 단계에서 결혼을 약속하는 단계('프로포즈'를 통해)로 넘어가는 분기점을 기준으로 관계의 성격이나 차원이 확연히 달라지게 된다고 보는 견해가 논리적으로나 실용적으로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물론 모든 연애 관계가 결혼 관계로 귀결되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 결혼을 약속하기 이전과 이후의 마음가짐이나 의지적인 헌신의 정도는 확연히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어느 정도의 충분한 데이트 기간이 있고 나서도 이 분기점을 넘어서지 못한 채 [어정정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서로에게 긴장만 야기할 뿐이기 때문에 [두 사람 다] 마음의 대결단이 요구되는 시점이 있다 하겠습니다. 상대방을 일생의 반려자로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하던지, 아니면 그동안 좋은 데이트의 상대였지만 결혼할 대상은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관계를 정리하기로 하던지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한 번 데이트를 시작하면 끝까지 가야 한다는 '신화'는 어디까지나 '남여 7세 부동석' 시대의 유물에 불과합니다. 데이트 단계가 필요한 것은 사실 두 사람이 서로를 일생의 반려자의 대상으로서 얼마나 잘 맞추어 갈 수 있을지를 헤아려 보는 탐색을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탐색기를 생략한 채] '첫 눈에 반한다'는 것 역시 현실에서는 성공가능성이 아주 낮은 신화에 불과하다 하겠습니다. 성공적인 데이트가 성공적인 결혼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습니다. 이 때문에 프로포즈 이전의 데이트 단계를 일종의 안전장치와 같은 기간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겠습니다. 이 단계는 서로가 서로를 구속하거나 배타적인 관계를 서로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서로를 알아가고 우정을 배양해 보는 기간이라 할 수 있을 텐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로가 이런 '데이트'의 개념에 대한 동일한 이해에서 출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데이트 단계를 넘어서서 결혼을 약속하는 단계로 들어서기로 마음을 정한 다음에는 관계의 배타성 내지 성실성을 확실하게 지킬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결혼이란 사실 서로를 향해 거의 절대적이라 할 수 있는 충성과 헌신의 마음을 결단하고 성실하게 지켜나가는 것에 다름 아니라 하겠습니다. [고래로 임향한 '일편단심'이 제반 인간관계의 기강을 지탱해 온 버팀목이었던 충(임금)-효(부모)-절개(부부)-신의(친구)의 가치를 함축하는 표현으로 통용되었던 것은 바로 이런 연유라 하겠습니다.] 따라서 프로포즈 이전과 이후의 단계를 확연히 다른 차원의 관계로 서로가 이해/설정하고 피차의 마음[의 경계선]을 지키고 존중할 수 있어야 성공적인 결혼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데이트'라고 하는 이런 안전장치가 현대 사회가 개발한 유용한 도구이긴 하지만, 이것이 제 역할을 하려면 여기에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즉 결혼을 약속하기로 하는 마음의 '대결단'이 있기 전에는 서로의 몸[의 경계선]을 함부로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하는 전제조건이 확보되어야 합니다. [우리 몸의 자극은 일단 시작되면 마음과 상관없이 제 나름으로 반응하도록 고안되어 있음에 유념하고 또 유념하여야 합니다. (아마도 이는 인간의 성기가 종족번식을 위한 출산의 역할도 겸하도록 프로그램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요약건대, 1)"꼭 혼전순결을 지켜야 하나요"란 질문이 만일 결혼을 약속한 두 사람의 스킨십과 연관한 물음이라면, 이는 '더 좋은 것'을 취하기 위해 두 사람이 알아서 결정할 문제라고 대답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2)"꼭 혼전순결을 지켜야 하나요"란 질문이 결혼을 약속하기 이전 단계의 데이트 관계에서 '순결'의 필요성을 묻는 물음이라면, 그 답은 언제나 '그렇다'여야 할 것입니다. 이는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도, 상대방의 안전을 위해서도, 그리고 현재는 물론 [두 사람 모두의] 미래의 결혼관계를 위해서도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라 하겠습니다. 

안전장치가 해제된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행해지는 데이트 관계는 서로의 인격을 고양하고 성숙하게 하기는커녕 자유라는 미명하에 방종으로 흐르게 하여 결국은 관계의 진전을 방해함은 물론 서로의 인격에 손상을 가할 것입니다. 순결이 전제되지 않은 데이트 관계는 결국은 파탄을 초래할 것이며, 나아가서 결혼과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병들게 할 것입니다. 혼전순결은 육체의 문제이기 이전에 먼저는 마음의 문제입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마음을 순결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몸도 순결할 것입니다. 또한 몸의 순결을 유지하지 않는다면 마음의 순결을 유지하기란 더욱 어려워질 것입니다. 데이트 관계에서 혼전순결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그리고 결혼을 약속한 관계에서도 그것은 여전히 최상의 선택이라 하겠습니다.

사족: 최상의 선택을 하지 못했던 '과거'와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별도로 다루어야 할 큰 주제라 하겠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시며, 순결하지 못한 우리의 마음을 [언제든] 다시 깨끗하게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심을 기억하십시오.

권영석  newsnjoy@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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