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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의 향후#미투(METOO)운동에 거는 기대와 전망
타임지 선정 올해의 인물 Silence Breakers <유투브 갈무리>

#미투의 향후를 생각해 봅니다.

 

타임지(Time Magazine)는 이 해의 인물로 "침묵을 깬 이들"(Silence Breakers)을 뽑았습니다. "미투-캠페인"이 미국만이 아니라, 전지구적으로 확산하는 작금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 주었다 하겠습니다. 이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은 아직은 크게 두 가지로 엇갈리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는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는 여성들을 공감하고 함께 분노하는 고무적인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이로 인해 사회 전반에 불신의 분위기가 조장되어서 또 다른 분열과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성문제만 아니라 그동안 남성 주도적으로 축적해 왔던 문화 전반에 대한 폄하와 냉소주의 분위기가 만연할 것에 대한 우려의 시각입니다. 예컨대 자녀양육이나 교육의 측면만 생각해 보더라도, 미투 이후 세대들은 이제 남성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태생적으로 품은 채 어른이 될 수밖에 없는 교육환경이 [자연스럽게] 마련된 셈이지요.

 

따라서 향후 이 운동의 성패는 이 상반되는 두 시각을 여하히 통합하고 승화해 나갈 것인가에 달려 있다 할 것입니다. 

 

우선, 여성들의 자인식이 이제서야 그나마 제 자리 매김을 하고 무게 중심을 잡겠다는 각오와 함께, 여전히 기울어져 있는 운동장의 열악한 상황을 감내하더라도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결기가 분출되어 터져나온 "미투"의 목소리는 만시지탄이며 칭찬받고 격려받아야 마땅합니다. 마침내 용기를 낸 여성들이 삼삼오오 동참하면서 이제 이 목소리는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함성이 되었다 하겠습니다. 여성 "미투"에 동조하는 남성들은 늘어나고 있지만, 그에 공개적으로 대항하려는 남성들의 움직임은 [찌질하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방해 세력 말고] 딱히 감지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이제는/드디어 '시대가 바뀐' 게 아닌가 싶습니다. 남성들의 삐뚤어진 성관념(만지면 [자기처럼] 좋아하리라고 하는 어이없는 착각)과 여성을 함부로 대해도 되는 "을"로 규정해 오던 '성차별적' 프레임은, 비록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하겠지만, 이제 그 설 자리를 점차 잃어갈 것이며 아마도 다시 돌이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실은 그런 성관념과 차별 인식이 남성들에게도 부메랑 효과를 가져왔던 셈이니, 남성은 여성을 '여성'으로, 즉 그 '충만한 분량'으로 바라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해 왔던 것이고 그래서 [인격의 깊은 차원에서 주고받을 수 있는] 격려나 도움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또 제대로 감사/감상하지도(appreciate) 못해 왔던 셈이 아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그저] 사람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남자와 여자를 만드신 것은 인간이 바로 이런 파트너(配匹)를 이루어서 서로가 서로를 객관화하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고, 서로가 서로를 보완해 주고, 서로가 서로를 "짝"으로 인식하여 소위 호상성(mutuality)의 관계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셨던 것인데, 남성은 여성을 자신들보다 못한 존재 곧 함부로 여겨도 괜찮은 대상으로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인간은 이런 호상성의 블리스를 통째로 상실하고 만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런 상실의 여파는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에게도 매한가지로 미쳤으니, 비록 남성이 가해자의 역할을 해왔고, 여성이 피해자의 위치에 있어 왔지만, 남여 모두 대체불능의 결핍과 손상을 겪어야만 했던 것이지요. 

피해자인 여성의 관점으로 보자면, 가해자인 남성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다는 시각은 지극히 정당한 항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남성의 피상적인 성관념과 성차별적인 전횡이 여성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과 혼란을 야기해 왔는지를 생각하면 변명의 여지가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여성들 스스로의 자인식 고양과 또한 남성들을 일깨우는 각성 효과를 위해서도, 분노의 불쏘시개가 당분간은 더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누군가 말했듯이 모든 의미있는 변화와 개혁은 '분노의 에너지'에 의해 촉발되어 왔으며, 분노할 줄도 모르는 사람은 진정한 인간이 될 수 없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성 혐오"에 대한 반작용 내지 반발로 무조건적인 "남성 혐오"의 극단으로 치닫는다면 이 역시 해묵은 한계에 부딪치고 말 것입니다. 이는 서로 처지만 바뀌었을 뿐 매한가지로 구도/프레임, 곧 적대구도를 강화할 뿐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남성과 여성은 [인간이라는] 한 배를 타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결핍을 경험하게 되면 남성 역시 매한가지로 결핍을 맛보게 될 것이며, 여성이 상실을 맛보게 되면 남성 역시 동일한 상실로 인해 고통을 당하도록 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남자는 다 늑대요 도둑놈들'이라고 하는 경구가 세상에 회자한지 오래지만, [남성에게나 여성에게나] 아무 것도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을 보면, 그런 시각만으론 '뭔가 문제'라는 경각심 차원을 넘어서 실제적인 자성을 촉구하고 경도된 성관념이나 차별의 문제를 해소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지요!?

아마도 당분간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루기 위해 여성들의 피해 호소와 분노어린 정죄의 목소리가 계속 터져 나올 것이며 또 나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까지만으론 한계가 있습니다. 분노를 넘어 긍휼로 승화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긍휼에 기초한 포용이 아니라 분노에 기반한 배제로 끝나버린다면 결국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인류 역사의 시계추는 작용-반작용의 양 극단을 왔다 갔다 하였던 셈이고, 작금의 #미투는 그 진폭이 어마무시할 정도로 크고 강렬했던 것으로 기록되겠지만, 그런 평가 정도에 머무르고 만다면 인류 역사에 큰 진전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남성은 [힘으로] 지배하고, 여성은 [간교함으로] 지배받지 않기 위해 조종하려는 가운데 그 동안의 인류 역사는 끊임없이 [여혐과 남혐으로] 서로를 착취와 혐오의 대상으로 간주하고 이해해 왔던 셈입니다. 이런 삐뚤어진 논리와 메카니즘이 저간의 인종차별이나, 빈부차별이나, 지역차별이나, 성차별을 막론하고 모든 차별과 배제에 동일하게 작용해 오지 않았던가요? 

"힘" "권위" 등의 개념이 '지배하고 군림하기 위한' 목적으로 오남용되어 온 것을 마치 정상이자 기준처럼 인식하고 있는 현실, 이에 대해 그 누구도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는 현실, 포용이 아니라 배제가 마치 정당한 것이자 곧 선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피상적이고 천박한 작금의 인식을 넘어서서, 세상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말 인간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새롭게 정립하는 절호의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르쳐 주시고 친히 모범을 보이신 대로, 배제가 아니라 포용을 위해 사용하는 "힘" "권세"의 모양새는 지금의 현실 세계에서 우리가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양상을 띨 것입니다. 분노어린 정죄의 돌무더기를 만들고 마는 것이 아니라,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신 긍휼과 용서의 손을 내미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가해자인 남성의 위치에 서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저 하기 쉬운 립서비스처럼 보일까 두렵고 민망하지만, #미투의 향후를 위해 나아가서 성차별의 진정한 해결과 지속가능성의 확보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일말이나마 거들고 싶을 따름입니다. 운동의 시작은 [부당하게도] 여성들의 몫이었지만 이 과제야말로 사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남성들이 결자해지의 마땅한 책임을 져야하지 않겠습니까?! 

권영석  youngseokwon@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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