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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직 여검사 성추행 사건에 드리워진 십자가의 그늘현직 여검사 성추행 가해자, 회개와 죄용서 간증하고 다녀

[미주뉴스앤조이=마이클 오 기자] 왜 부패한 권력과 욕망은 늘 기독교 신앙의 그늘 밑으로 숨는 것일까? 지난 29일 (한국시간) 검찰내 현직 여검사 성추행 사건에 관한 JTBC 인터뷰를 시청하던 중, 내장 깊숙한 곳에서부터 역류한 거북한 질문이다. 

서지현 검사 JTBC 인터뷰 <출처: JTBC 뉴스 갈무리>

성추행하는 검찰

미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미투(MeToo) 운동에서 용기를 얻은 현직 여검사가, 8년전 상관으로부터 당한 성추행 사실을 검찰 내부 통신망에 폭로하였다. 

충격적인 내용 만큼이나 그 후폭풍도 거세다. 발빠른 JTBC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언론과 방송에서는 사건 내용과 폭로 과정 등을 상세히 다루고 있으며, 하루가 지난 오늘까지도 다수의 온라인 검색 사이트에서는 이번 사건 연관 검색어들이 실시간 검색 순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종 사회관계망 서비스에서는 사건 관계자들에 대한 비난과 검찰 조직에 대한 비판, 그리고 피해자를 향한 위로와 격려가 끊이지 않고 있다. 

JTBC 인터뷰에서 증언한 사건과 이후 피해자가 감내해야했던 시간들은, 듣는 사람에게 조차 쉽지 않은 경험일만큼 끔찍하고 비현실적인 것이었다.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던 손석희 앵커는 인터뷰 도중 쉽게 말을 잊지 못하거나, 질문하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피해자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의 사건과 그 경험은 마치 가위눌린 사람처럼 도저히 꼼짝할수도 없지만 동시에 너무나도 끔찍해서 현실감이 없는 느낌이었다고 한다. 술에 취한 가해자는 직속 상관과 후배 검사들이 함께 앉아있는 상황에서도, 피해자의 몸을 계속 더듬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시 피해자의 주변에 있었던 누구도 그러한 상황을 제지하지 않았고, 가해자는 피해자의 지속적인 거부에도 추행을 계속 이어갔다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이후 피해자가 겪게 된 조직적 은폐와 어처구니 없는 인사 불이익은 과연 이 집단이 법과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집단인지 의문이 들게 하였다. 

사건 이후 피해자는 당시의 직속 상관들과 사건에 대해 논의하는 과정에서 직접적인 고소나 공론화 보다는 중재를 통해 간접적으로 사과를 받을 것에 합의하였다. 하지만 이후 피해자는 어떠한 사과나 사건 해결에 대한 조치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우수한 업무능력으로 2차례나 법무부장관 표창을 받은 피해자를 직무감사를 통해 직무능력을 폄하하고, 이를 근거로 인사와 징계 관례를 무시한 인사조치를 취했다고 한다. 

네티즌의 뜨거운 반응 <출처: 트위트 갈무리>

 

부패한 권력의 자아

무엇보다도 이번 사건이 충격적인 것은, 부패한 권력과 욕망이 단지 조직 외부만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조직 내부 구성원까지도 갉아먹는, 근친.패륜적 욕망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는데 있다. 

이런 욕망의 중심에는 타인을 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한 대상으로 여기고, 자신 속으로 삼켜버림으로서 자신을 확인하고 확장시키는 괴물과 같은 폐쇄적인 자아가 있다. 이러한 자아는 모든 관계를 대상화시키고 욕망의 교환만을 갈망하는 주체로서, 그에게는 한줌의 영혼도 찾을수가 없다. 

이러한 비인격적이고 타자화된 주체들이 모여 권력집단을 이루게 되면, 더이상 권력은 공공의 선이나 정의 같은 본질적인 가치를 추구할수 없게 된다. 물론 이러한 집단도 언제나 그리고 더욱 극렬하게 공적 가치에 대해 떠벌리게 되지만, 실상은 그들의 욕망을 은폐시키고, 타락한 권력구조를 더욱 공고하게 다지기 위한 선전 이상의 어떠한 의미도 가질수 없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의 시민들이 너무나도 많은 순간에 타락한 권력과 관료조직에 기만당하는 이유인 것이다. 그들이 국가와 관료 조직으로부터 자신의 권리를 양도하여 약속받은 것은 정의와 공의지만, 실상 손에 거머쥔 것은 부도수표라는 것이다.  

이러한 권력집단의 타락 앞에 파편화된 개인은 필연적으로 희생당할수 밖에 없다. 설사 그 개인이 권력 집단 내부에 위치해 있다 하더라도, 눈먼 욕망은 제 살점조차 뜯어먹을 만큼 광기에 취해 있는 것이다.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하는 사건 <출처: 다음 포털사이트 갈무리>

 

저렴한 구원, 키치 신앙

피해자가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머뭇거리며 남긴 말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최근에 종교에 귀의를 해서 회개하고 구원을 받았다고 간증을 하고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회개는 피해자들에게 직접해야 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라고 전하였다. 

이 낯 뜨거운 증언은 오늘날 기독교가 처한 위기를 가장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영화 ‘밀양’에서 처럼 저 파렴치한 가해자는 자신의 부패한 욕망이 만들어낸 악취나는 과거를 그대로 남겨둔채 주님의 품에 안겼다. 피해자에게 진심어린 사과나 잘못에 대한 책임도 지지 않고, 또 피해자의 용서도 없이, 회개와 죄 용서를 받은 것이다. 

과연 이런 회개와 죄용서, 그리고 구원이 가능한 것인가? 자신이 만들어낸 지옥에 여전히 허우적대는 피해자를 외면한 채 얻는 구원과 천국의 소망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들에게 구원과 천국은 너무나도 쉽다. 어쩌면 이들에게 기독교의 구원과 천국은 원래부터 그런것일지도 모를 일이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이 어떠하든간에, 문제는 현실의 기독교 신앙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값싸고 손쉬운 것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나아가 그것은 부패한 욕망과 권력, 그리고 이데올로기를 거룩하게 포장하고, 억압과 부조리를 은폐하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영화 ‘밀양’을 한낮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알지도 못하는 자의 불경한 불평이라고 무시할수 없는 이유이다.

 

신앙이라는 엉성한 그물

이런 기독교가 가능한 이유는 그 신앙이 너무나도 관념적이고도 피상적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쯤은 적당히 가리고 피해갈수 있을 만큼 기독교의 회개와 용서, 그리고 구원은 엉성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천문학적인 규모의 경제사범이었던 재벌총수가 가벼운 발걸음과 함께 성경책을 품고 교도소를 나오며, 나라를 위기에 빠뜨리고 그 잘못을 숨기는데 최선을 다한 관료가 퇴임후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간증을 하고, 아내를 끔찍한 폭력과 억압으로 짖누르면서도 거룩한 소명을 받고 버젖이 교회를 차릴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 이렇듯 관념적이고 피상적일때, 현실의 모순과 부조리는 그 신앙의 그물에 포착되지 못하고 모조리 빠져나가고 만다. 그리고 결국 그 그물에 초라하게 걸려 남은 것이라고는 강박적인 율법과 신경질적인 도덕, 그리고 외부를 향한 두려움 뿐이다. 

이러한 엉성한 그물로서의 기독교는 현실의 세계앞에 무기력할수 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회개와 돌이킴이 없는 권력과 부조리에 면죄부를 주고 새생명을 부여함으로서, 그들로 인한 모순과 고통을 증가시키고 악화시키는 결과를 일으킨다. 이런 식의 회개와 죄용서가 많아질수록, 세상은 천국이 아니라 더욱 지옥이 되어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기독교 신앙은 결국 약자와 소외받은 자들의 고통과 슬픔, 그리고 분노를 더욱 가중시킨다. 인터뷰 내내 고통스런 증언을 하는 여검사의 모습은 이러한 부조리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상징이라고 할수 있다. 

여검사는 인터뷰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끝날때까지, 단 한순간도 자신의 시선을 붙들지 못하고 산만한 허공과 텅빈 책상위에서 헤메어야 했다. 끔찍한 순간들을 다시금 되새김질 할 때마다 그녀의 목소리는 파랗게 떨리고 있었고, 붉어지는 눈시울과 쏟구쳐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는 일은 너무나도 가혹해 보였다. 

그녀가 당한 성추행은 8년전 그 순간으로 끝난것이 아니라 시작된 것이었으며, 한순간도 쉬지않고 계속 되풀이 되고 있었으며, 그녀 안에서 지옥을 확장 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 신앙이 조금만 더 촘촘하게 세계와 현실을 담아내고 그 현실위에 회개와 용서와 구원을 이야기할수 있었다면, 어쩌면 저 가해자들은 이토록 쉽게 피해자들을 지나쳐 새로운 삶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대신 저들은 자신들이 만든 지옥과 그 속에 갖힌 피해자들에게 한줌의 양심과 죄책감을 가지고 그들을 찾아갈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례받는 가해자 <출처:http://factbomb.tistory.com/101>

 

누구의 십자가인가?

십자가는 피해자의 몫이 아니다. 기독교 신앙은 수치, 두려움과 불안, 그리고 분노와 억울함이라는 못에 박힌 여검사를 십자가의 형틀에서 풀어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독교 신앙은 피해자와 약자를 십자가에 못박는 종교가 아니라, 그들을 해방시키고, 치유하고 회복시키며, 온전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복음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의와 공의로 위로와 치유, 그리고 회복 받아야 하며, 초인적인 용기에 찬사와 존경을 받아야 하는 존귀한 존재이다. 

십자가는 가해자의 몫이다. 기독교 신앙은 가해자에게 진정한 회개를 통하여 피해자의 회복과 화해를 위해 자신이 짊어져야할 십자가를 기꺼이 질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 십자가는 피해자를 향하고, 그 앞에서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이며, 피해자의 진정한 회복과 용서, 그리고 화해에까지 이르러야 하는 십자가이다. 그리고 이러한 십자가를 짊어 짐으로서 가해자는 비로소 회개를 실천하고, 진정한 죄사함과 구원의 소망을 품을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의 기독교 신앙 또한 십자가를 다시 져야 할것이다. 그 동안에 교회의 십자가 그늘에 가리워진 고통과 슬픔은 너무나도 커져 버렸고, 그 그늘 아래 기생하는 권력과 뒤틀린 욕망은 너무나도 당당해져 버렸다. 기독교 신앙은 이렇듯 위태로워진 세상을 향해 온전한 십자가의 복음과 사랑, 그리고 회복과 화해를 이루기 위해, 그동안 안주하였던 울타리를 벗어나서, 진정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에 목마른 이들을 찾아나서고 그들과 함께 하는 십자가를 져야 할것이다.

마이클 오  michaeloh@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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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108.XXX.XXX.42)
2018-01-31 01:41:30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북부 Flushing Northern Blvd 근방에 있는 잘나가는 ㅁ 목사가 떠오르네
안타까운 뉴욕 교회 들 모습 아닌가........
리플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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