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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보다 월요일이 더 아름다운 성도들LA 선한청지기교회 송병주 목사 인터뷰

[미주뉴스앤조이=양재영 기자] 지난 8년의 사역을 마치고 2기 사역을 시작한 LA 선한청지기교회 송병주 목사가 최근 명성교회 세습철회를 위한 한인교회 목회자와 성도들의 성명서를 발표하고 서명을 받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성명서를 통해 명성교회 세습은 대형교회 불패론이라는 나쁜 학습효과를 공고히 한다고 지적하며 “당신들로 인해 부끄럽고,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전했다.  

송병주 목사는 LA 동부지역에서 가장 안정되고, 견실하게 성장하고 있는 중대형교회인 선한청지기교회를 담임하면서 최근 ‘주일이 아닌 월요일이 아름다운 성도가 되자'는 구호와 함께 미셔널처치를 꿈꾸며 새로운 사역을 시작했다.

또한,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강의하는 설교학을 소개하며 ‘상품화된 설교'에 대한 한인교회의 현주소를 진단하며,  로이드 존스 목사가 말한 ‘설교의 영광을 회복할 것'을 주문하고 나섰다.

<미주뉴스앤조이>는 대형교회 청빙과 세습의 문제, 미셔널처치를 통한 교회론의 재정립, 올바른 설교론 등에 대해 송병주 목사와 나눈 대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 최근 근황을 소개해 달라.

8년 사역 마치고 2기 사역으로 들어왔다. 교회가 어떻게 하면 미셔널처치(Missional Church, 선교적 교회)로 성도들이 어떻게 하면 일상화된 현장을 선교적 현장으로 보게 하는 가에 모든 관심이 있다.

또 최근에 미주장로회신학교에서 설교학 강의를 하고 있다. 학생들과 저는 그냥 설교’설’이라고 부른다. 개인적으로 경험했던 ‘설'을 풀겠다는 것이다. 몇학기째 재미있게 하고 있다.

최근엔 명성교회를 고민하다, 세습반대 성명을 만들었고 서명을 받고 있다.

 

- 언급한 것처럼 최근 명성교회 세습과 관련해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렇다. 그동안 대형교회 세습과 관련한 여러 사례들이 있었는데, 이번 케이스는 유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형교회 불패론이 거의 정점을 보이고 있었다.

지금까지 대형교회는 때로는 편법, 잘못된 선택과 결정을 해도 괜찮다는 학습효과가 축적되어 왔다. 노회와 총회도 대형교회를 건드리지 못했고, 언론에서 떠들어봐야 금방 잠잠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그들에게 있다.

대형교회들은 정치적, 금권적 파워가 있으니 결국 해낼 것이라는 자심감이 있다. 소위 ‘대마는 죽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배하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하나님 앞에서 고민보다는 세상적 논리가 완전히 자리를 잡고, 폭발해서 터진 것이다.

 

- 성명서를 보면 이번 사태에서 가장 우려하는 점을 지적했는데...

‘명성교회는 여러분들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듣고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하면 된다는 것이다. 저도 그들이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른 선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나중에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더 무섭다.

한국사회의 잘못된 학습효과가 그대로 교회에 자리잡은 것이다. 세상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논리가 깨져가고 있는데, 교회는 그렇지 않다. ‘우리교회에 유익하다'면 옆에서 뭐라 해도 그대로 간다.

어떤 분은 이번 성명서를 보면서 ‘힘이 센 원수’가 하나 더 생길 수가 있다며 만류하는 분이 계셨다. 그때 이미 우리 안에 뭔가 잘못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틈에 우리도 세상과 똑같아 졌다.

신앙이라는 것은 나의 것을 다 버리고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잘못 살았던 것은 다 내려놓고 예수님께로 간다고 하면서, 교회의 잘못을 보면서 왜 다 내려놓지 못하는가?  이번 사태는  가지치기 몇개 한다고 될 사안이 아니다.

 

- 명성교회 사태가 한인교회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 보는가?  

이민교회는 사실 대형교회 불패론이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국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이민교회의 세습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우스개 소리가 있다. 2세가 1세 교회를  맡아서 세습하겠다면 오히려 상줘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교회를 누가 감히 건드려?’ 하는 부정적 학습효과는 있을 것 같다.


- 특별히 이번 성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는가?  

‘얼마나 바꿀 수 있겠나?’라는 회의도 있지만, 옳지 않다는 것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자포자기 상태로 있게 하지 말자는 의도도 있었다.

저희 같은 목사가 이야기 한다고 얼마나 영향을 주겠나? 하지만, “당신들 때문에  힘들어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송병주 목사 ⓒ <미주뉴스앤조이>

“월요일이 더 아름다운 성도들"

- 미셔널처치를 최근 사역의 우선순위로 든 이유가 있는가?

미셔널처치는 단기선교나 해외선교를 많이하자는 것은 아니다. 해외선교에 사회참여를 더해  내 삶의 일상 속에 선교적 참여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주일날이 중심이 아니라, 월요일이 더 아름다운 성도들이 되게 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전통적 교회는 ‘어떻게 하면 주일날 교인들을 많이 불러 모을 수 있는가?’에 중점을 둔다면, 미셔널처치는 ‘어떻게하면 교인들을 자신의 삶의 현장 속으로 파송받게 할 것인가?’에 포커스를 둔다. 그래서 ‘선교사 몇 명 보냈다’, ‘교회를 몇개 세웠다’, ‘선교지에 교인들이 몇명이 되었다’ 등의 측정가능한 열매들이 없다. 마치 한밤중에 공중에 사격하는 느낌이다.

이민사회 속에서 교회 생태계에 묶여 있는 많은 분들에게 자신의 일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생태계를 살아가게 하자는 것이 미셔널처치의 취지이다.

 

- 미셔널처치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한다.

미셔널처치의 제일 중요한 것은 ‘being’으로 출발한다. ‘과업'이 중심이 아닌 우리 일상과 가정에서 ‘being’이 중심이 되어 서게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구호만 있고 열매는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미셔널처치에는 ‘being’과 ‘doing’을 분리할 수는 없다. ‘doing’을 통해 선교적 제자도를 일상화시키는 것이 미셔널처치이다. 선교적 제자도가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우리 교회 이름이더라.

내 일상 속에서 ‘선한청지기'로 사는 것이 선교적 제자도이다.

성경을 보면 주인이 다른 나라에 가 있는 동안에 청지기에게 종들을 맡겼다. 주인은 청지기에게 잘 먹이고, 잘 재우고, 월급 제때에 주고, 그리고 일도 잘하게 하라고 부탁하고 다른 나라에 갔다. 그런데, 청지기는 주인이 늦게 올거라 생각하고 파티하고 갑질을 행했다. 주인은 이런 청지기에게 ‘너 같은 놈은 필요없다'고 내치셨다.

거기서 포인트는 ‘하나님에게 얼마나 잘했는가?’가 아니라, ‘사람에게 어떻게 했는가?’가 청지기의 가치를 결정했다. 사람을 섬기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들에게 소홀하면서 하나님에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미셔널처치는 올바른 청지기정신의 회복이다.

그렇다고 담임목사의 철학을 무조건 따르라는 것은 아니다. 미셔널처치는 선교적 여정이다. 저는 그런 그림과 질문을 던지고 성도들이 답을 찾아가는 것이다.

 

- 이를 위해 실제적으로 진행되는 사역이 있는가?

우리 교회에서는 ‘마중물 프로젝트’라고 다른 교회에서 시행한 것을 벤치마킹해 진행하고 있다. 이를테면 교인들에게 100불 씩 줘서 ‘내가 어떻게 하면 우리 주변을 위해 쓸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했다. 이후 목장별로 보고를 받고, 계속하고 싶은 분들을 대상으로 계속 지원하고 있다.

현재 10여개 사역이 진행되고 있다. 새벽에 목장 식구들이 개똥줍기 사역을 하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홈디포에 가서 매주 가서 옷이나 도넛 커피 나눠주며 친구되기 사역을 한다. 목장 안에서 피자나누기를 하기도 하고, 장애인 사역도 한다.

중요한 것은 교회가 프로그램을 만들어 ‘여러분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런 사역이 있다는 것을 제안하고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사역들을 찾아가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도 그렇게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설교의 영광을 회복하라"

- 앞에서 설교’설'을 가르친다고 했다. 강의의 중심 메시지는 무엇인가?

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는데, 이는 설교자(메신저)를 향한 말이었다고 본다. 설교는 영화배우들의 연기가 아니다. 설교자는 하나님과의 관계 앞에서 서 있는 모습이 중요하다. 이는 도덕성을 더 갖춰라는 수준이 아니다. 설교자는 삶이 녹아있는 장인이 되어져가는 과정이 있을 때 진정한 작품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메시지를 전하기 전에 ‘내가 말씀 앞에서 누구입니까?’를 묻는 것이다.

설교는 객관적 계시를 주관화시키는 작업이다. 성경이라는 객관적 계시가 설교자에게 주관적 계시가 되어야 한다. 그 주관적 계시가 성도들에게 또다시 주관적 계시가 되게 하는 작업이다. 주관적 계시가 되지 않은 설교는 설교가 아니다. 그럴바에는 성경을 읽는게 낫다.

 

- 최근 설교가 너무 상품화된 것 같다는 비판이 많다.

설교의 상품화는 큰 문제이지만 예배에서 설교가 없이 갈 수는 없다. 말씀이 가지고 있는 힘의 독특성이다.

저는 ‘상품으로서의 설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설교’를 다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로이드 존스 목사는 그 많은 설교의 홍수의 시대를 보면서 설교 무용론을 들고 나온 게 아니라, 오히려 더 진정한 설교를 찾아다녔다. 로이드 존스 목사가 “설교의 영광을 회복하라”고 말했던 것은 지나친 상품화된 설교가 홍수를 이루던 시대였기 때문에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한다. 이 시대는 설교를 약화시키는 게 답이 아니라 참된 설교를 찾아야 할 때이다.

그래서 저는 성도들에게 분별력을 이야기하고 싶다. 듣기 좋게 만들어 놓은 설교를 성도들이 배제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는 목회자들의 설교관을 재정립하고, 둘째는 성도들의 설교관을 재정립할 시기이다. 상품화된 설교가 설자리가 없게 하는 일은 목사 뿐 아니라 교인들도 해야 한다.

양재영  jyyang@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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