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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백성이 누구이냐?[방영민의 책숲산책] 화종부 목사의 '산상설교'

하나님 나라가 무엇이고 그 나라의 백성은 누구이며 그 나라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것이 산상설교의 핵심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여러 가지 의미와 정의가 있겠지만 단순히 죽어서 가는 곳을 넘어 이곳에 실제적인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고 주님의 뜻이 이루지는 곳, 참 평안과 영혼의 자유와 구원이 이루어지는 현장입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 가는 누구나 그리워하는 영원한 고향이 하나님 나라지만 이 땅에서도 주님이 주시는 영적인 복을 누리며 사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산상설교/화종부/복있는사람

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누구입니까? 교회에서 주는 세례를 받았다고 다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진실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본성을 따라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님의 능력으로 거듭나 새 사람이 된 영혼입니다. 나의 목표와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으로 변화된 사람입니다. 이전에는 나만을 위해서 살았는데 이제는 삶의 목적과 방향이 수정되었습니다.

그리고 산상설교는 그 나라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구체적인 특징도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고 예수님의 제자라면 반드시 이런 특징과 삶이 있어야합니다. 말만 하나님의 백성이고 입으로만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달라야하고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이런 내용이 있어야하며 이러한 삶의 원리로 살아야한다는 것이 산상설교의 말씀입니다.

실제 이 말씀을 받는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방신을 섬기는 이방인과 달라야하고 전통과 선민주의에 사로잡힌 유대인과도 달라야하며 서기관의 구변과 바리새인의 위선과도 구별되어야 했습니다. 동일하게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도 교회를 벗어나 있는 사람들과 구별된 것이 있어야하고 반드시 달라야합니다. 물론 그들과 화목하게 지내고 공공선을 위하고 평화를 이루며 살아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들과 다른 독특한 성품이 있습니다. 형식적인 신자와도 달라야하고 맹목적인 신자와 구별되어야 하는 분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이 책은 저자께서 본 교회를 섬기며 주일 낮에 선포했던 33편의 산상설교의 말씀을 거의 그대로 묶어 놓은 것입니다. 필자는 영혼이 곤고하거나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워질 때 저자의 설교를 듣곤 했는데 책을 보며 그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설교를 듣노라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목자의 심정이 전달되어지고 복음을 제대로 깊이 경험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는 전해야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이고 그것을 성도들에게 안타까워하고 눈물로 호소하며 외치는 설교자입니다.

이 책(산상설교)을 통해 나타나는 선명한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신자의 실존에 대한 두 가지의 고찰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얼마나 무가치하고 철저한 죄인이라는 것을 설명합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부정하며 자기중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마음 중심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고 이웃을 위한 섬김보다 자기를 위해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역사적으로 원죄를 아무리 부정하려는 시도들이 있어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인간은 죄로 물든 심각한 죄인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깊이 경험한 사람과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과 삶의 태도가 다릅니다. 자신의 부패함과 비겁함과 왜곡된 자아를 보면 탄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울처럼 이 곤고한 영혼을 향해 자비의 손을 뻗어달라고 울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죄인됨과 죄의식이 있어야만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런 경험 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이 병든 자아를 발견하여 치유 받고 이 의식을 여전히 경험하며 사는 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 비참한 죄인됨과 함께 신자가 가지는 놀라운 복을 설명합니다. 신자는 이러한 죄인이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예정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과 성령님의 내주하심으로 큰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가 가진 복은 세상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의 복은 물질의 복, 자녀의 복, 사업의 복, 건강의 복 등 눈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에게 주어지는 복은 결코 이런 것과 비교당할 수 없는 신령한 복입니다.

세상의 복은 물질적이고 육체적이며 현재적이고 감각적입니다. 그러나 신자의 복은 영적이고 인격적이며 종말론적이고 내재적입니다. 신자는 죄인이지만 바로 이러한 신령하고 신비한 복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방식과 가치관을 따르지 않습니다. 세상의 어떤 파도가 그를 향해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믿음의 길을 걸어갑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속한 복을 소유했고 그 복이 오늘도 그에게 가득하게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저자는 분명한 기독교의 목표를 설명합니다. 기독교는 이 땅에서 기독교 왕국을 건설하지 않고 우리를 종교적인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저자도 책에서 말하는데 산상수훈을 포함한 성경의 가르침이 그리스도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인류 보편적인 말씀이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저자의 오랜 목회 경력 가운데 지경이 넓어진 부분이고 산상수훈을 더 깊고 넓게 전하게 된 원인이라 생각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저자가 산상수훈을 도덕 윤리 차원으로 약하게 전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진리입니다. 기독교는 한 영혼이 존재적으로 변화를 받아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 살게 만듭니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내고 거룩한 뜻을 이 땅에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기독교는 땅의 가치에 함몰되지 않고 하늘을 향해 살아가도록 도와줍니다. 땅에서 묶인 것을 풀어주어 하늘의 복을 현재 살아가는 땅에 이루어주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타 종교와 분명히 다릅니다. 기독교는 지금 여기서 잘 살고 행복하게 도와준다고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영원한 것과 쇠하지 않는 것과 가치 있는 것에 마음을 쏟으며 살게 해줍니다. 기독교는 결코 고지론과 번영신학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세워지고 펼쳐지는 기독교는 세상의 지위와 권력과 명예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처럼 하늘의 영광을 경험하며 치유와 회복의 길을 걸어가게 합니다.

세 번째로는 기독교의 중심과 가치가 무엇인지 분명히 드러납니다.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자기의 행복이 소유와 명예와 성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도 자기를 도와주는 수호신 정도로 이해합니다. 천지에 주인이시고 만물의 통치자 되신 분을 한 낯 이방신 정도로 취급해 버립니다. 마치 전쟁의 승리를 위해 법궤를 전쟁터로 끌고 왔던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존재가 자기의 꿈과 행복을 위해 존재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중심과 가치는 결코 이기적이고 인본적이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중심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정신을 가지고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겁니다. 기독교의 가치는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는 것이고, 자기를 의지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벗고 예수님을 더욱 의지하고 소중히 여기며 순종하는 마음을 입는 것입니다. 세상에서의 어떤 성취와 성공보다 예수님과 그분의 말씀에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을 보며 우리가 얼마나 예수님 중심에서 멀어져 살고 있는지 회개하게 됩니다. 천하를 얻고 세상의 권세를 얻었다 한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잃는다면 헛된 것들인데 기독교의 정신이 약해지고 예수님 사랑이 희미해져서 우리의 사랑이 변질되고 우리의 행복이 왜곡되었습니다. 진정한 복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이고 그분으로부터 충만한 사랑을 공급받아 사는 것입니다. 이 책은 바로 그곳으로 인도하고 우리의 가슴을 다시 뜨겁게 해줍니다.

네 번째는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참과 거짓의 분별입니다. 책에는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분별이 나오고 지혜로운 사람인지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인지 분별하는 기준을 제시합니다. 전자에서 거짓선지자는 종교적인 형식과 특징이 분명히 있으나 신앙의 열매가 없습니다. 기도하고 예배하고 귀신도 내쫓는데 그리스도를 깊이 경험한 흔적이 없고 양의 털과 고기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열정은 있는데 자기와 부와 명예를 위한 열정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안다하고 교회도 사랑한다하며 뛰어난 은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모른다고 하십니다. 교회와 성도를 위해 귀하게 쓰임받는데 결국은 버림받고 멸망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은사와 특징이 분명히 있는데 그들은 내면이 전혀 변화받지 못했습니다. 양의 옷을 입고 화려하게 위장은 했으나 내면은 썩었고 마귀의 앞잡이입니다. 그들은 가르침과 삶이 일치하지 않고 종교적이고 위선적이며 권위적입니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종교적인 형식이 약해도 신앙적인 열매가 선명합니다. 그들의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결코 자기의 명예와 이름을 위해 사역하지 않습니다. 제도와 체제와 계획보다 한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는 전하고 가르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변화되기를 힘쓰는 사람이고 먼저 기도에 깊이 젖어 있어 예수님 사랑으로 물든 사람입니다.

그리고 미련하고 어리석은 신자는 회개와 변화의 삶이 없습니다. 교회에 다니고 주님의 이름도 부르고 신앙고백도 하는데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실제적인 주님과의 동행이 없이 교회생활과 행위와 공로로 자기를 드러내고 정체성을 유지합니다. 신앙은 취미가 아니고 신앙생활은 소풍가듯 할 수 없는데 그들에게 신앙은 교양일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비참한 존재로 발견되어지는 것을 불편해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자신을 부정하고 십자가로 향하는 자들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지 않고 남들을 대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자본주의와 약육강식에 따르지 않고 세상을 거스르고 뛰어넘는 주님의 정신과 믿음의 논리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들의 행복은 물질과 명예와 권력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과 동행하고 주님의 말씀으로 인생의 집을 세워가는 것에 만족과 기쁨이 있습니다.

산상수훈에 대한 책을 마무리하며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메시지가 제일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길은 누구나 쉽고 편하게 갈 수 있는 제국의 길이고 영광과 축제의 비단길이 아닙니다. 이 길은 고난과 눈물과 아픔이 있습니다. 자기를 부정하고 자아의 깨어짐과 기도 없이는 결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이러한 성화와 변화와 성장 없이는 흉내도 낼 수 없는 길입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이 좁은 길이 눈물도 없고 기도도 없이 갈 수 있는 것처럼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깊이 사랑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흔적을 지녀야만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있는데 이제는 세상도 사랑하고 자기 십자가도 버리고 예수님의 흔적 없이도 갈 수 있다고 서로 합의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이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길을 따라가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고난과 눈물과 기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산상수훈은 우리를 좁은 문으로 인도합니다. 이 길은 세상의 논리와 방법으로는 결코 갈 수 없습니다. 애매한 고난도 있고 거친 저항과 핍박도 있습니다. 원수도 사랑하고 자기의 것을 다 버리고 아낌없이 희생도 해야하는 길입니다. 부패한 유대교와 종교지도자와 성전을 고치기 위해 ‘자신을 죽여라’고 하신 주님처럼 자신을 죽여야만 갈 수 있는 길입니다.

그렇습니다. 산상수훈은 우리를 좁은 문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그 길이 생명의 길이고 영광의 길이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길입니다. 그 길이 당연히 어렵고 힘겹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자신을 부정하며 십자가의 길을 따라오는 자에게 한없는 사랑과 하늘의 복을 부어주십니다. 그래서 산상설교는 그를 통해 이 땅에 말씀으로 펼쳐집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읽고 듣고 실천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방영민  newsnjoy@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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