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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헤프너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플레이보이지 대표 휴 헤프너의 죽음을 바라보는 다른 시각들
<플레이보이> 맨션 앞에서 바니걸과 함께 있는 휴 헤프너

[미주뉴스앤조이=편집부] 세계 최고의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의 창업자인 휴 헤프너가 27일(수)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헤프너의 ‘아방궁’으로 불렸던 ‘플레이보이 맨션'에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봤던 아들 쿠퍼 헤프너는 “아버지는 언론의 자유, 시민권, 성적 자유를 지지하며 우리 시대의 사회와 문화를 선도하는 목소리를 냈다"고 애도의 뜻을 밝혔다.

쿠퍼 헤프너의 주장처럼 <플레이보이>는 단순히 마린린 먼로의 누드로부터 시작해 ‘버니'(토끼) 복장의 선정적 여성들을 앞세운 도색잡지 만은 아니었다.

휴 헤프너는 지미 카터나 피델 카스트로 등과의 인터뷰를 게재했으며,  레이 브레드버리, 이안 플레밍 등의 저명 작가의 글을 싣기도 했다. 1950년대에 <플레이보이> 방송에 흑인을 출연시켜 인종차별에 대항했으며, 낙태금지법과 외설법에 대항하는 등 미국 문화의 선도적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27살의 나이에 마린린 먼로의 나체 사진을 창간호 특집으로 편성해 5만부 이상을 매진시키는 수완을 발휘했으며, 이후 여성을 상품화해 연간 10억달러를 벌어들인 점이 조명을 받으며 그의 일상은 수많은 미디어들의 가십의 소재가 되었다.   

‘1000명의 여성과 동침했다'는 성적 과시로부터 시작해 2012년 ‘60세 연하와 세번째 결혼하다' 등의 자극적 스캔들은 ‘문화 선구자'가 아닌 ‘섹스 중독자'의 이미지를 공고히 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기독교 지도자들의 ‘반 헤프너' 정서가 팽배한 것은 당연할 수도 있다.

실제로, 헤프너의 임종 소식을 접한 교계 지도자들은 그의 사망을 ‘비극'이라고 표현하며 ‘회심'(conversion)없이 임종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반어적으로 표현했다.

LA지역의 교계 지도자들은 한결같이 “포르노 산업의 대부가 포르노 산업의 아방궁에서 회심하는 장면을 그려왔다. 그의 회심을 보지 못한 것은 교계의 ‘비극'이다"고 입을 모았다.  

자유수호연맹(Alliance Defending Freedom)의 창업자이자 레이건 정부 시절 포르노 관련 위원회의 멤버였던 앨런 시어스는 “마지막까지 수많은 여성들을 탐닉해 왔던 헤프너의 회심을 위해 수천명의 사람들이 진심으로 기도했지만, 임종때까지 회심했다는 어떤 증거가 없다는 점이 가장 슬프다"고 전했다.

“교회는 왜 다른 세상을 보여주지 못했을까?”

일부에선 헤프너의 임종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의 삶을 좀더 깊이 들여다보며 교회가 자성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칼럼니스트인 제니터 프레이스는 “최근 아마존(Amazon)을 통해 <아메리칸 플레이보이:휴 헤프너 이야기>를 볼 수 있었다. 다큐멘터리는 어린시절 당한 감정적, 종교적 상처와 함께, 평생을 신의 존재를 찾기위해 보낸 헤프너의 삶을 담담히 그리고 있었다"고 전했다.

휴 헤프너는 어린시절 엄격한 감리교 신앙을 유지해 온 교회와 어머니로부터 종교적 양육을 강요당했다는 사실은 인터뷰를 통해 밝히기도 했다. 당시 그는 어머니로부터 ‘부부관계란 오직 생식을 위한 것이며, 그 외의 것을 믿는 사람들은 죄인이다’ 식의 엄격한 신앙 훈련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어린시절에 어머니는 ‘술 금지', ‘춤 금지', 가족들끼리 ‘포옹과 키스 금지' 등의 청교도적 삶을 강요했다. 그녀는 독실하고 모범적인 신앙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며, 언제나 나에게 차갑게 대하셨다"고 회생했다.

이러한 어린시절의 경험은 헤프너로 하여금 제도 교회에 대한 불신을 갖게 했으며, 평생을 교회에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한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 속엔 늘 절대자에 대한 신앙을 놓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말년의 그의 침대 곁에는 릭 워렌 목사의 ‘목적이 이끄는 삶'이 놓여 있었으며, 포르노중독 치유 목회를 해온 크레익 그로스 목사와 최근까지 친밀한 교제를 나눠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그로스 목사는 플레이보이 맨션의 침실까지 초대받은 몇 안되는 인물들 중 한 명으로 알려졌다.

그로스 목사는 당시 헤프너와 나눈 대화의 중심 주제가 ‘사랑'과 ‘신'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헤프너가 기독교인이 되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는 과거의 상처와 사랑, 하나님에 대한 진실한 대화를 원했고, 우린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가지게 된 종교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전했다.   

칼럼니스트 제니스 프레이스는 최근 교계에서 회자되고 있는 ‘헤프너의 지옥행'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며 교회의 자성을 촉구했다.

프레이스는 헤프너의 ‘지옥행'에 대해 확신에 차있는 교계 지도자들에게 “교회가 그에게 돌을 던질 자격이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녀는 “만일 교회가 어린 헤프너에게 징벌과 두려움이 아닌 환대와 기쁨의 예수를 가르쳤다면 지금 그가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미쳤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라며 “그의 임종을 맞아 교회는 ‘최후의 심판'과 ‘지옥'을 운운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친절한 예수를 가르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고 전했다.

미주뉴스앤조이  newsnjoy@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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