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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이 불리는 호칭, 그 모호함
김홍도, 서당

얼마 전에 딸아이와 대화중에 있던 일이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관계가 ‘친구’로 설정되어 서로 편하게 이름을 부르는 반면, 한국에서는 매우 다양한 ‘관계’들이 있고 많은 경우 나이가 많은 사람이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한다는 말을 했다. “Older people have more say in their relationship, in many cases." Why? Why? 딸아이의 얼굴이 거의 백지가 된 듯 멍한 표정,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미국에 산지 20년이 넘었지만 어릴 적부터 몸에 익은 이러한 관계역학은 한국어 문화권 안에서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런 관계역학을 가능케 할뿐 아니라 강화시키는 것이 한국어에 있는, 독특한 "호칭"인 것 같다. 내가 낮 시간의 대부분을 보내는 회사는 영어로 이루어지는 공간인데, 회사와 회사 밖을 드나드는 경험은 언어의 경계를 경험하는 것이기도 하다.

내 상사는 나보다 두 살 많지만, 50대 전후인 다른 부서장(Section head)도 많다. 다 이름을 부른다. 심지어 얼마 전에 은퇴한 디렉터한테도 다들 이름을 불렀다. 물론 내가 대화하는 상대방의 위치에 대한 인식은 있고, 그래서 특히나 직급이 위인 사람한테는 좀 더 부드럽게 말하지만, 상대방의 이름 대신 직급을 부르며 시작하는 대화보다는 훨씬 부드럽고 수평적이다.

이런 수평적인 관계가 편안하기도 하고 더 많은 수평적인 관계를 원하기도 하지만, 위계질서로 이루어진 관계에 아직도 익숙해서인지 어딘가 어색하기도 하다. 몇 달 전에 내 working meeting에 들어온 위 위 매니저가 자기 의견을 마구 개진할 때는, 참석자의 일원이 내는 의견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니면 상사의 ‘은근한 지시’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좀 난감했다. 이건 꼭 내가 한국/미국 문화 사이 어디쯤 있어서이기만 한건 아니겠지만, 내가 좀 유난스럽게 불편하게 받아들이긴 했다. 나의 불편함은, 그 매니저를 참석자중 한 사람으로 보지 못한 데서 기인하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컨트랙터로 같은 프로젝트에 일하게 된 한 분은 교수이다. 만난 지는 몇 달이 지났는데 난 아직도 그의 성 앞에 Professor를 붙이고 있다. 이름을 불러도 괜찮다고 본인이 말했건만 나보다 나이 많은 '교수님'의 이름을 부르자니 좀처럼 입밖에 나오질 않는다.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해본적은 없지만, 한국 이민사회 안에서 호칭문화가 한국과 뭐 그리 다르겠는가. 교수님, 사장님, 목사님, 집사님, 변호사님, 전도사님, 사모님 등. 아니면 나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단어(선배/후배 등)들, 혹은 ㅁㅁ엄마, ㅁㅁ아빠처럼 그들의 역할을 규정하는 표현 등이 있다. 언니, 오빠 같은 호칭은 관계의 주체들 사이에 친밀감이 전제된 경우에만 쓰이긴 하지만, 역시 위계질서를 못 박는 호칭임은 마찬가지이다. 직업/직분을 부르기가 어색하거나 친밀도가 강하지 않은 경우에 쓰는 호칭도 따로 있다. ‘선생님’, 자매님, 형제님 같은 표현이 그것이다.

한국어로 빚어지는 관계에서 "이름"은, 지극히 제한적인 관계망 안에서만 불려진다. 꽃도 이름을 불러줘야 내게 와서 의미가 있어진다고 하는데, 왜 우리는 남의 직업을, 직분을, 역할을 부르고 있나 새삼스럽다. 서로를 부르는 호칭에 이름이 없다는 것은 우선 그 많은 “이름”에게도 미안한 일이지만, 그 언어 안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의 한계도 보이기에 좀 안타깝다.

그런데 이게 불편하다고 해서 어쩌겠는가? 한국어로 빚어지는 문화 안에서는 나도 계속 저런 호칭을 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불편하고 어색할 것이다. 내가 취할 수 있는, 나를 위한 작은 몸짓은 무엇일까? '호칭'과 나의 'authenticity'(확실성)가 충돌된다고 느낄 때 나의 authenticity를 포기하지 않고 정중하게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인 듯하다. 문화와 언어의 경계에 살면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문화의 흐름을 그 정도는 거스를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 아닐까 싶다.

 

글쓴이 최소연은, 카운티정부 공무원으로 일하는 1.5세 직장맘이다.

최소연  newsnjoy@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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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m (108.XXX.XXX.217)
2017-11-01 05:06:26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호칭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가급적 영어 문장이나 단어 등을 괄호 처리하여 번역하여 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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