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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까닭으로 예수를 믿는가?현재 우리의 신앙은 어느 수준인가?
Leon Bonnat, Job(1880) ⓒ Leon Bonnat

하나님도 인정한 동방의 경건한 의인 욥에 대해 어느 날, 사단은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라고 반론을 제기한다. 이에 하나님은 사단에게 욥의 신앙에서 까닭이 될 만한 모든 것들을 빼앗아도 좋다는 허락을 내리신다. 하루아침에 자녀들이 몰살당하며 아내도 떠나가고, 심지어 욥의 몸 전체에 악창이 퍼져 거지신세에다 외로움, 그리고 추악한 몰골과 몸의 재앙까지 받게 되었다. 어디 그 뿐인가! 전에는 아주 친했던 세 친구들마저 위로한답시고 찾아와서는 "네가 하나님을 어떻게 믿었기에 이 모양 이 꼴이냐? 필시 너의 믿음은 가짜였을 것이다"라며 욥을 정죄하고 비난하기에만 급급하니 이처럼 극한과 비탄의 상황이 어디 있을까.

욥기는 학자들도 어려워하는 성경이다. 욥기는 헤아리고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은 게 사실이다. 허나 욥을 향해 던진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는가?"라는 사단의 말에서 오늘날 우리는 무슨 까닭으로 예수를 믿고 있는지 되물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천국가기 때문에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미 마음에 천국이 이뤄졌기 때문에 그렇고, 우리 중에 누구라도 가보지 못한 천국을 마구 떠벌이는 건 마치 '가상현실'을 내세워 쓸 데 없는 신앙을 부추기는 것과 같다고 여겨지기에 그렇다. 오해는 하지 마시라. 성경에 묘사된 천국의 모습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니까. 오히려 성경에 나타난 천국은 지금 여기서부터 이뤄야 할 종말론적 현실이라고 보는 입장이다.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말할 때, 우리는 단정적이고 단말적인 개념을 들이댈 때가 많지만, 신앙의 발달 단계 다른 말로 하면 신앙의 성숙 단계를 언급하는 게 먼저다. 처음 예수를 믿을 땐, 어린 아이처럼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며 원하는 것을 받아야만 하나님을 믿을 수밖에 없는 단계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인간이 발달하듯, 우리의 신앙도 발전, 성숙해야함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다. 어린 아이 신앙을 벗어나 성숙한 어른의 신앙이 되라든지(고전 13장), 어린 아이처럼 젖만 먹지 말고 단단한 식물, 곧 '의의 말씀'을 경험하며 지각을 사용하여 연단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신앙이 되어야함을 말이다(히 5: 12-14). 우리 각자가 "무슨 까닭으로 예수를 믿는지" 깊이 생각해야 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본다. 예수는 어떤 분 이시길래 그분을 믿고 따르려 하는지. 그리고 현재 우리의 신앙은 어떤 수준인지.

욥기의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겠는가?"라는 질문은 믿음의 현실성이 뭔지 그 지혜를 던져주는 것 같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는 히브리서의 말씀도 이를 뒷받침 한다. 우리의 실존적인 필요(물질, 건강, 지식 등)가 신앙의 초기단계나 매 단계마다 절실한 신앙의 이유가 된다 해도, 육신을 위한 필요를 넘어서 하나님 나라와 의가 이 땅에 이뤄지도록 분투해야 하는 것이 성경이 요구하는 신앙이라는 걸 말이다.

욥기 42장에서 얻은 통찰은 첫째, 하나님은 신학이론에 갇힌 분이 아니라, 삶에서 경험되는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옳음과 그름, 사랑과 미움, 희망과 절망, 선과 악, 평등과 불평등한 현재의 삶에서 경험한 하나님을 말해야지,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일명 '영적'이라고 퉁치는 듯 하나님만 읊어대는 건 뜬구름 잡는 신앙타령일 뿐이다. 연세대 신학과 김학철 교수가 페이스북 담벼락 글에서 "진리는 명제나 교리가 아니라, 사건이다"라고 한 말은 명언이다. 한국교회 주류가 보여준 신앙이 천박하고 조야한 것은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내세워 믿음과 천국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막말로 이건희는 하나님 안 믿어도 우리나라 최고 부자 아니던가. 또한 천국에선 돈과 권력이 필요 없지 않은가.

둘째, 하나님은 맹목적인 인정보다는, 묻고 들으면서 하나님과 대화하는 자발적이고 인격적인 인정을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물어보며 듣는 '지혜를 구하는 신앙'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성경을 정독하며 신학지식과 인문학적 소양을 위해 공부해야 할 것 같다. 셋째, 하나님을 경험한 자는 자신의 무지와 비참을 깨닫고 성찰하는 신앙이라는 것이다. 우리 주위에 자칭 믿음이 좋다고 자랑하는 자들 중에 자기 성찰과 반성이 없는 자가 있다면, 그들의 신앙을 한 번 의심해보는 것도 맹목적 신앙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글쓴이 강호숙 박사는, 진정한 여성됨을 여성 스스로 찾는 교회와 세상을 위해 애쓰고 있다.

강호숙  hosuk996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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옳습니다 (121.XXX.XXX.189)
2017-10-21 21:08:53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귀한말씀에 진정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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