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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 대신 화관을' 찬양 다시 불러보기성대한 잔치의 주인공이 될 것을 노래하다
'재를 머리에 쓴다'는 것은 죽음을 격렬하게 슬퍼하는 표현이고, '화관을 머리에 쓴다'는 것은 잔치집 귀인이 되는 것을 뜻했다.

한국 기독교인들이 아주 경쾌하게 부르는 노래 가운데, ‘재 대신 화관을’으로 시작하는 찬양이 있다. 그런데 이 찬양이 기쁜 노래인 것은 분명한데, 무슨 뜻일까 생각해본 적이 있을까? 이 시의 원저자인 이사야는 어떤 느낌으로 이 시를 노래했을까?

잘 안 다가오는 구절 앞에서는 잠시 멈춰서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이 묵상의 한 방법일 수 있다. 이 시를 천천히 다시 읽어보자.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사야 61:3)

뜻을 생각하며 다시 읽어보자. 고대 이집트인들은 물론 고대 중근동 사람들은 죽음을 애도할 때 재를 머리에 뒤집어 썼다. 그것은 깊은 애도의 뜻도 있고, 사람의 운명이 재(티끌) 같은 존재임을 고백하는 의식의 하나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잔치 자리에서는 머리에 화관을 썼다. 여기서 말하는 (화)관은 왕관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화관은 향유가 담긴 통이다. 그것은 다른 표현으로는 ‘머리에 기름을 바른다’는 것이었고, ‘존귀로 관을 쓴다’고도 표현했다. 잔치에 초대받았거나, 잔치의 주인공이 되면, 그의 머리에, 잔치 내내 향을 뿜어내는, 향유가 가득 담긴 모자(?)를 머리에 썼다. .

이 뜻과 비슷한 성경 다시 읽기를 해보자. 이 본문과 비슷한 표현은 아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시 8:5)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시 133:2)

이제 어떤 느낌으로 이 시들이, 노래가 다가오는가? 오늘날 상황에 맞춰서 이 시에 담긴 뜻을 살려서 다시 노래한다면 어떤 노래가 가능할까? 어떤 표현이 적절한 표현일까? 화관을 쓴다는 것에 걸 맞는 표현으로 ‘레드 카펫을 밟는 날이 올 것이다 라고 표현해도 적절할까?

김동문  yahiy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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