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것이 정통 언론이고 어느 것이 사이비 언론인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방송 출연이 막혀 있었던 배우 문성근이 SBS드라마 '조작'을 통해 8년 만에 복귀했다. 현재 조작의 시청률은 12% 대. 그리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동시간대 다른 드라마와 비교해서는 현저하게 높은 수치다.

'조작'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권력의 비리에 얽히게 된  유도 선수 출신의 한무영(남궁민 분)이 '애국신문'이라는 군소 매체에서 기자 생활을 하면서 거대한 언론 권력 대한일보와 맞서는 이야기다. 대한일보는 자타가 공인하는 일등신문인데 이곳의 상무 구태원(문성근 분- 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과는 다르게 악역이 잘 어울린다. 영화 '실종'에서도 그랬다)은 권력자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사건이라면 모두 조작을 지시한다. 그 뒤에 있는 거대권력은 드라마의 전개단계인 현재로서 드러나지 않고 있다.

애국신문은 사건 보도를 넘어 사건의 해결에도 뛰어 든다. 한무영은 지난 정권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단순 보도를 뛰어 넘어 깊은 속까지 파헤쳤던 '비정통 언론인'(?)들인 김어준 주진우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이다. 세월호, 부정선거, 십알단, 사대강, 박근혜 조카 피살사건에서부터 현재는 최순실 재산 추적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언론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음모론적 분석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고 실제로 사실관계에 있어서 그런 비판을 받기에 충분한 부분도 있었다. 그러나 거대 언론이 여론을 조작해 온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을 향한 등가적 비판에는 지나친 면이 없지 않다. 어느 언론이든 지고선은 없는 법, 거대 언론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지고선이어야 하고 정확한 사실(이란 게 있기는 하나?)에 근거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극중에서도 한무영은 좌충우돌하며 실수를 연발하지만 검찰도 못 믿고 기성언론도 못 믿기에 자신이 스스로 사건을 재구성한다. 대한일보가 조작의 상징이라면 애국신문은 재구성의 상징이다. 둘 모두 언론의 기본적인 기능은 아니지만 하나는 진실을 숨기는 것이고 하나는 진실을 다시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그나마 어느 것이 옳으냐고 시청자들의 판단을 묻는다.

그렇다면 '대한일보'는 어떤 신문인가? 영화 '내부자'에서 조작을 일삼는 언론은 '조국일보'다. 조선일보를 암시하는 작명이다. 대한일보 역시 조중동 즉 메이저 언론을 겨냥하고 있다. 그런데 조국일보가 완전히 창작된 이름이라면 대한일보는 70년대까지 실재했던 매체였다. 메이저 언론급은 아니었지만 덕수궁 근처 알짜배기 땅에 2층 사옥을 가지고 있던 꽤 유명한 신문이었다. '조작'의 연출과 작가가 이를 알고 이름을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극의 흐름에 따라 대한일보 이름 사용 금지 가처분 신청이 나올지도 모른다. 신문은 없어졌지만 대한일보의 사주 가족이 아직 건재하기 때문이다.  

대한일보의 사주는 한양대학교 창립자이자 작곡가인 김연준이다. 한양재단은 1960년 10월 '평화신문'을 인수한 후 1961년 2월부터 제호를 ‘대한일보’로 바꾸었다. 박정희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김연준을 데리고 놀았다. 특혜를 주는가 하면 때로는 엄청난 제재로 대한일보사와 한양대학교를 쥐락 펴락했다. 

김연준은 박정희의 측근이었던 김성곤, 윤필용과 가까웠는데 나중에 김성곤과 윤필용이 박정희에게 숙청당한 것을 보면 박정희는 일찌감치 이 두 사람을 못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들과 가까운 김연준에게도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주었다. 쌍용그룹 창업주이자 공화당의 요직을 두루 거쳤던 김성곤은 유신선포 1년 전인 1971년 박정희에게 항명했다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콧수염을 뽑히는 수모끝에 정계를 은퇴한다.

당시 A급 언론이었던 김경환 임재경 등을 스카우트 해서 일등신문을 꿈꾸던 대한일보는 이 명망있는 기자들로 편집 데스크를 꾸민 지 얼마 되지 않은 1973년 5월 자진 폐간한다. 폐간의 이유를 당시 대한일보 소속이었던 원로 언론인 임재경은 이렇게 회고 한다.  

 

내가 간 지 두 달 반 만에 대한일보는 문을 닫았다. 사장 김연준이 72년 홍수 때 독자들로부터 거둔 수재의연금을 횡령•착복한 혐의로 검찰에 끌려가 심문을 받고 신문등록을 자진 철회하는 형식을 취했다. 한국 최대의 사학(私學) 부호인 김연준이 무엇이 모자라 하찮은 규모의 수재의연금을 잘라먹었을까. ‘대한’ 쪽 관계자들의 설명을 종합하면 각 신문사가 모집 캠페인을 벌이는 수재의연금은 일정한 금액에 이르기까지 은행에 예치해 놓았다가 한꺼번에 재해대책본부에 전달하는 것이 관례라는 것. 예치기간에 잠시 인출했다가 재예치한 것을 횡령죄로 뒤집어씌운 것은 박정희의 미움을 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폐간과 관련하여 흥미 있는 사연이 들렸다.

육사 8기로서 베트남 파병 맹호사단장을 거쳐 수도경비사령관이 된 윤필용은 청와대 비서실장, 경호실장, 중앙정보부장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박정희의 측근 실세로 꼽혔다. 이런 그가 박정희를 빗대 “노망 운운”한 사석의 말이 도청•보고됐다. 73년 4월 군법회의는 육군 소장 윤필용을 일등병으로 강등시키고 징역 15년이라는 중형에 처했다. 그런데 김연준이 윤필용과 친히 지내며 자신이 소유한 시청 앞의 ‘프레지던트’ 슈트룸 하나를 공짜로 빌려주었다는 것이다.

 

당대 권력자인 김성곤과 윤필용에게 줄을 대었던 김연준은 절대 권력자인 박정희의 미움을 받아 일등 언론의 꿈을 접어야 했다. 본래 작곡가였던 김연준은 이 때의 충격으로 이후 작곡 활동에만 매진했다. 그가 작곡한 명곡 '청산에 살으리랐다'도 이때 작곡된 곡이다. 권력의 무상함을 맛본 김연준은 청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노래에 담았던 것이다.

드라마에서 권력의 편에 서서 조작을 일삼는 대한일보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실재했던 대한일보처럼 폐간 수순을 밟을까? 아니면 일등신문으로 거듭날까?

문재인 정부 출범 3개월여, 권력을 놓친 조중동의 힘겨운 몸부림과 새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한겨레의 헛발질이 교차하고 있다. 그들의 몸부림과 헛발질이 계속되는 한 애국일보 같은 비정통 언론의 지평은 그만큼 더 넓어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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