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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교회의 지배자가 아니다개신교에 특권 직분이란 없다

근자에 미국 ANC 온누리교회는 그 교회를 개척하고 대형 교회로 성장시킨 유진소 목사를 떠나 보냈다. 그리고 그 자리에 2명의 목사를 새로운 담임으로 세웠다. 팀사역 또는 공동 목회의 시작이다.

100주년기념교회 또한 공동 목회를 추진한다. 이재철 목사는 지난 5월 14일 주일예배 시간에 "청빙위는 후임 담임목사의 업무를 4개의 전문 분야로 나누어, 4명의 목사로 하여금 공동 담임 목회를 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분야는 영성, 교회학교, 목회, 그리고 대외 업무 총괄로 나눈다.

이재철 목사(사진:양화진 문화원)

종교인들의 놀이터

여기서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이재철 목사의 설명이다. 그는 이같은 결론이 나오게 된 배경을 '제왕적 목회의 폐해'라고 지적했다. 이는 매우 정확하고 분별력이 있는 상황 인식이다.

그런데 다른 목회자들은 왜 이런 생각을 못 할까. 이처럼 명확하고 심각한 문제점을 보면서도 대다수의 목회자들은 딴청을 부린다. 그들은 현재의 담임목사 제도를 매우 당연시한다. 그건 교회의 오랜 전통이니 아예 비판조차 필요없다는 태도다. 불과 수백 년 전 제네바의 한 개혁자 칼뱅이 만든 담임목사 제도를 마치 신성불가침의 영역이라도 되는 양 절대시한다.

하지만 이런 무비판적인 맹종이야말로 가장 칼뱅주의자답지 않은 행동임을 알아야 한다. 칼뱅은 일찍이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개혁은 단지 교회의 유전이나 전통을 수호함으로 성취되는 게 아니라 끈임없이 자기 성찰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선배 개혁자들의 제도를 무조건 고수하는 게 개혁은 아니다.

그럼에도 상당수 목회자들이 여전히 제왕적 담임목사 제도를 선호하거나 지지하는 진정한 이유는 교회의 세속화에 있다. 가장 거룩하고 순결해야 할 교회가 일부 기득권 종교인들을 위한 그들만의 놀이터나 밥상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개신교 역사에 지금처럼 목회자들이 양극화하여 빈자와 부자로 분리된 적이 없다. 지금처럼 목사 위에 목사가 자리하여 성직을 계급화한 적이 없다. 지금처럼 교인을 맹신화하여 돈 바치는 자판기로 만든 적도 없다.

작금의 정치와 문화는 봉건적 권위주의를 탈피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하고 있건만 교회는 아직도 시대착오적 성직주의의 단꿈에서 헤어나오지 못 하고 있다. 교회가 시대의 변화를 전혀 못 따라간다.

모든 신자가 동역자

나는 앞으로 모든 중대형 교회들이 100주년기념교회처럼 공동 목회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새시대의 교회는 특정인의 개인기에 의존하던 권위주의적 카리스마 목회가 아니라 동역 시스템에 의해 사역하는 목회가 바람직하다.

요즘 멀쩡하던 교회도 담임목사 하나 잘못 세우고 고생하는 교회가 얼마나 많은가. 강남과 분당의 일부 대형 교회들이 그 대표적인 예다. 수십 년 동안 존중을 받던 교회들이 졸지에 회칠한 무덤같은 강도의 소굴이 되었다.  

만일 그래도 굳이 담임목사제를 선호한다면 차라리 '담임목사'도 5-6년마다 투표해서 번갈아 선출하면 좋겠다. 물론 한번 쉬면 나중에 다시 담임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교회 내의 모든 부목사가 후보자다. 나이와 경력을 다 내려놓고 이를 한번 실천해보면 좋겠다. 대통령도 꼭 나이가 많아야 잘하는 거 아니다. 담임목사보다 설교 잘하는 부목사는 곧 쫓겨나야 하는 그런 더러운 목회 구조는 반드시 바꾸어야 마땅하다.

공교회가 특정 개인의 소유가 아닐진데 이렇게 못 할 이유가 뭔가. 담임직이 수직적 계급이 아니라면 동료 목회자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담당하는 게 더 옳다고 본다. 생활비도 극심한 격차를 줄이고 균형있게 재조정해야 한다. 사실 나이가 적어도 설교와 목회를 잘하는 부목사들이 많다. 더구나 교회의 사역에는 귀천이 없다. 미래에는 한국교회에서 젊은 설교 목사와 나이드신 교육 목사를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공동 목회는 비단 목사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장로와 집사 등 다른 직분자들도 모두 함께 사역하는 목회자다. 예배와 설교만 목회가 아니다. 교회 안과 밖의 모든 사역이 다 목회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보자면 사실상 모든 신자가 다 동역자라는 깊은 자각이 있어야 한다.

아주 값비싼 우상

우리는 단지 500년 역사의 목사라는 직분에 대하여 너무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 목사도 장로나 집사처럼 교회를 섬기는 여러 은사의 한 부분일 뿐이다. 개신교 목사는 무슨 특권을 지닌 유별난 직분이 아니다. 교회의 예배는 제사가 아니고, 목사는 제사장이 아니다. 본질상 목사는 '가르치는 장로'의 직분이다. 따라서 교사가 지배자가 아닌 것처럼 목사도 지배자가 아니다. 중세적 무당 목사나 종교 귀족은 이방 신당에서나 필요한 것이다.

교회 사유화의 원흉 역활을 해온 제왕적 담임 목회는 이제 개선되어야 한다. 지금은 칼뱅의 시대가 아니다. 종교 개혁 당시의 개혁자들은 중세 교회의 위협에 칼날을 들고 싸워야 했다. 스위스의 개혁자 쯔빙글리도 전쟁터에서 죽었다. 그래서 그때는 강력한 교권력의 담임목사 제도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게 만고의 진리는 아니다.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많은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아주 값비싼 우상이 되었다. 교회 돈을 터무니없이 많이 가져간다. 개인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불의한 교권으로 교회를 뒤흔든다. 겸비해야 할 종들이 자기 본분을 넘어 교황의 자리에 앉았다. 성상이나 성물만이 우상이 아니다. 건물이나 사람도 우상이 된다. 가장 사악한 우상은 언제나 가장 거룩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개혁 교회는 건물 우상화와 성직 우상화를 타파해야 한다. 세계적 기독교 미래학자인 레너드 스윗 교수는 "한국 개신교에는 악마가 서식한다"고 경고했다. 한국교회가 개신교 역사상 가장 부패한 교회가 된 이유를 빤히 알고서도 이걸 그대로 방치한다면 그건 중대한 범죄다.

그동안 개신교는 만날 잡초만 잘랐다. 그러나 그건 시간 낭비다. 이제는 그 뿌리를 뽑아야 할 때다.

"지금 성전에는 화상과 우상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불결하고 더러운 것들을 세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쏟아부었습니까?" - 쯔빙글리(Ulrich Zwingli, 1484-1531)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신성남  canavillage@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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