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스탈린의 딸이었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이 마침내 구속되었다. 전두환 노태우에 이어 구속된 세 번째 전직 대통령이다. 전두환 노태우의 구속은 광주 시민에 대한 피해보상과 명예회복이 어느 정도 이루어진 후에 일어난 일이었다. 거기다가 김대중 전대통령의 '화해와 용서' 제스처에 따라 사면을 받았다. 반면 박근혜에 대한 조사는 이제 막 시작이라는 점에서 사면은 불가능해 보인다. 꽤나 오래 감옥에 머무를 전망이다. 

​아버지의 신화도 함께 묻어버린 딸이라는 냉소적 평가도 함께 회자된다. 심리학에서는 아버지에게 특별한 영향을 받은 딸을 ‘아버지의 딸(father's daughter)’이라고 표현한다. 박근혜가 취임했을 때 타임지가 '독재자의 딸( The Strongman's Daughter)'이라고 표현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심리적으로 문제가 생긴 딸의 상태를 그리스 비극에서 따온 용어를 빌어 '엘렉트라 콤플렉스(Electra Complex)라고 불렀다. 딸이 아버지에 대해 강한 소유욕적인 애정을 품고, 어머니에 대한 강한 경쟁의식을 가지는 상태를 가리킨다. 융에 따르면 애인과 함께 아버지를 살해한 친모에 대해 엘렉트라가 가졌던 증오의 실체는 아버지와의 근친상간의 욕구 때문이었다.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대칭되는 개념이다.

박근혜는 박정희 기념 사업에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지만 어머니 육영수에 대한 추모 사업에는 무관심했던 사실도 이런 심리에 기인한다. 육 여사의 소록도 방문을 기념해서 한센병 환자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소록도 추모비와 충북 옥천의 생가 보존 정도가 육여사에 대한 추모 사업의 전부다. 옥천군은 해마다 육 여사 생일(11월 29일)과 사망일(8월 15일)에 맞춰 열던 탄신제(숭모제)와 추모제를 열어 왔는데 두 행사는 순수 민간차원에서 시작돼 2010년과 2014년부터 군비를 지원받고 있다. 2016년에는 탄신제에 700만원, 추모제에 253만원이 지원됐다. 거의 1800억에 달하는 박정희 추모 사업비용과 견줄 수 없는 수준이다. 

지난 해 12월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박근혜 퇴진 집회에서 '박정희 18년 아직도 계속되냐'라는 시국회의 현수막이 눈길을 끈다

대통령 부인이라는 자리가 공직은 아니기 때문에 국가 예산을 동원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4년간의 행적을 볼 때 마음만 있었다면(최순실의 능력이라면) 얼마든지 예산을 투입할 수 있었다. 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2015년 말에서야 뒤늦게 육여사의 추모상 건립위원회를 조직했던 이경재 전의원은 주간 조선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육 여사 추모상 건립 건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본인과 직접 연관된 일이기도 하고 대통령이란 자리가 행동을 조심스럽게 만들겠죠."

이경재의 분석은 틀렸다. 박근혜는 아버지에 대해서는 본인과 직접 연관된 일임에도 국회의원 시절부터 이미 최순실까지 동원해서 일을 벌였고, 전혀 행동을 조심하지 않았다. 박근혜에게 육영수는 어머니라기 보다 아버지를 잘 보필하지 못하고 오히려 한센병 환자 같은 약자들이나 돌보는 유약한 여성이었다. 육여사가 즐겨 하던 올림머리를 고집하는 박근혜의 심리 속 육여사는 어머니가 아니라 박정희의 아내로 각인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박근혜는 박정희의 딸인 동시에 육영수 사후 아내의 역할도 맡았다. 박정희 정권 시절 박정희의 '난봉기'를 문제 삼던 육영수에게 박정희가 재떨이를 던졌다든가 하는 '괴담'들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처럼 은밀하게 이야기 되었었다. 아내의 역할을 떠맡은 박근혜에게 아버지는 더 애틋한 대상이었을지도 모른다.  5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홀로된 아버지가 벌이던 주지육림의 밤들은 부도덕한 삶의 단면이 아니라 당연한 일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남성적 세계관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었다.

20대 중반의 여성이 모든 것을 다 소유한 50대 남성이 탐닉하는 세계를 '이해'했다면 심리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결국 아버지가 소유하지 못 한 유일한 것, 즉 '영적' 능력을 소유한 60대 남성에게 빠져들고 만다.

예쁘게 사랑을 했었어야 할 나이다. 사랑에 반대하는 아버지와 맞서 싸우기도 하면서 정상적인 성장을 해야 하는데 박근혜는 사랑보다는 '아내 역할 놀이'에 너무 깊이 빠져들고 말았다. 대한민국과 결혼했다던 그녀는 결국 국가기관인 교도소의 혜택을 받게 되었다.

지난 2012년 대선과정에서 박근혜 후보가 봉하마을 노무현 대통령 묘역을 방문했을 때 걸린 현수막

​심리학 용어를 빌리자면 아버지와 딸 사이에 미해결 과제(unfinished business)가 남아 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박정희의 부정적인 영향이 박근혜에게 남아있어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는 박정희가 자신에게 끼친 영향들을 긍정화시키면서 난해한 심리상태를 가지게 되었다. 난해한 심리상태는 자신과 아버지, 대한민국에 큰 해악을 끼치고 공적 삶(1998~2016)을 마감하는 비극으로 귀결되었다. 공교롭게도 아버지의 재임기간과 딸이 국회의원이 되어서 권한행사가 정지된 국회 탄핵의결일(2016년 12월 9일) 까지의 기간이 모두 18년이었다.

이제 감옥에서 미해결 과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면서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1926~2011)가 생전에  남긴 “스탈린이 내 인생을 망쳤다. 어딜 가던 나는 아버지의 이름 아래 언제까지나 정치범으로 남을 것”이라는 말을 곱씹기를 바란다.  아직도 잘못이 없다고 강변한다는 언론들의 보도를 보면 물론 쉽지는 않아 보인다.

스베틀라나의 “아버지는 독재자였고 딸로서 침묵한 나도 공범자다. 이제 아버지는 세상에 없으니 내가 그 잘못을 안고 가겠다”라는 말을 재판정에 선 박근혜에게 기대하는 것은 너무 무리한 요구일까?

김기대 편집장 / <NEWS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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