뉘른베르크 나치 전범 재판이 던져주는 함의... 엄정한 사법처리만이 답

헌법재판소의 파면(탄핵인용) 선고 후 이틀만인 지난 12일 오후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 서울 강남구 삼성동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 밝게 웃으며 차에서 내린 박 전 대통령이 자유한국당 의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 출처 = 오마이뉴스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 12일 저녁 청와대를 나와 서울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가면서 밝힌 입장이다. 최순실 국정개입은 박 전 대통령의 정치 생명을 끝냈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헌정사에 쉽게 씻기 힘든 수치를 남겨 놓았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을 인용한 주된 이유도 대통령의 헌법수호 및 헌법준수의무 위반이었다.

박 전 대통령이 우리 헌정사에 남긴 생채기는 그만큼 깊다. 그러나 삼성동 자택으로 돌아가며 지지자들에게 보였던 환한 미소, 그리고 진실 운운하는 발언을 보건데 박 전 대통령은 도무지 그 어떤 죄의식도 없어 보인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과연 박 전 대통령만 그랬을까? 유대인을 학살하고 전세계를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었던 나치 수뇌부 역시 죄의식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연합국은 독일 바이에른주에 위치한 뉘른베르크에 전범재판소를 설치했다. 뉘른베르크는 여러모로 상징적이었다. 나치의 전당대회가 열렸고, 독일인과 타민족의 결혼을 금지하는 '인종상간법'이 집행되던 곳이 바로 뉘른베르크였기 때문이었다.

나치는 뉘른베르크에 '특별 법원'을 설치하고 정부 비판자를 내란혐의로 재판에 회부하는가 하면, 인종상간법 위반 혐의자를 일렬로 세워놓고 총살했다. 바로 그곳에 국제전범재판이 열린 것이다. 나치의 2인자였던 헤르만 괴링을 비롯, 부총통 루돌프 헤스, 히틀러의 측근이자 군수장관을 지낸 알베르트 슈페르, 유대인 혐오 잡지 <데어 슈튀르머> 편집장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등 나치 수뇌부 등은 줄줄이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소 법정에 서야 했다.

전범재판에서는 1945년 11월부터 1946년 10월까지 거의 1년에 걸쳐 총 203회의 심리가 이뤄졌다. 재판 기록만 해도 1만 6천 쪽, 400만 단어에 달했다. 증거 규모 또한 방대했다. 검찰 측은 2300여 개, 변호인 측은 2700여 개의 증거물을 내놓았다.

끝까지 진실 외면한 나치 전범들 

헤르만 괴링, 루돌프 헤스 등 나치 1급 전범들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정에 섰다. 이들은 최후 진술까지 자신들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 출처 = 밀리터리닷컴

재판이 마무리 국면에 이르렀을 무렵, 나치 수뇌부들에겐 최후 진술 기회가 주어졌다. 이들의 최후 진술은 독일은 물론 전 세계에 나치라는 한 시대를 담당했던 고위층으로서 자신들의 행위에 사과의 뜻을 밝힐 기회였기에, 역사적 의미는 남달랐다. 그러나 나치 수뇌부들은 최후 진술의 순간까지 자기 정당화로 일관했다. 나치 전범들의 주요 발언을 들어보자.

"검찰은 내가 제국의 2인자라는 사실이 곧 내가 모든 사건을 알고 있었다는 틀림없는 증거라고 했다. 검찰은 이에 대한 확실한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나는 맹세코 그러한 범죄를 알고 있지도 않았으며 명령한 적도 없다. '총통의 후계자인 괴링이 몰랐다면 누가 그 일을 알고 있었겠느냐'는 논리는 한갖 주장에 불과하거나 그저 추측일 뿐이다. 이 법정은 우리가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다음 그것을 은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는 그 말뜻조차 이해할 수 없으며, 그런 가공할 만한 대량학살이 실제로 있었다면 나 역시 최고형을 내렸을 거라고 여기서 장담할 수 없다."
- 헤르만 괴링 

"나는 독일 국민에 대한 의무를 다했으며, 독일인으로서, 국가사회주의 당원으로서, 총통 각하의 충실한 부하로서 의무를 다한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 루돌프 헤스 

"첫째, 대량학살은 히틀러 총통 각하의 명령을 받지 않고 저질러진 독자적인 사건이다. 둘째, 대량학살은 독일 국민 모르게 비밀 경찰 대장 히믈러의 독단에 의해서 철저히 비밀리에 저질러졌다."
- 율리우스 슈트라이허 

이들의 변명에서는 그 어떤 죄의식도, 역사에 대한 전향적인 인식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재판부는 이들의 항변에 중형으로 답했다. 괴링 등 12명의 피고인에겐 사형이, 루돌프 헤스를 비롯한 10명의 피고에겐 무기징역 형이 내려졌다. 이들의 말로는 비참 그 자체였다. 괴링은 사형 집행이 임박해 자살했다. 무기징역을 받은 루돌프 헤스 역시 1987년 수감 중인 감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재판부가 나치 수뇌부에게 적용한 혐의는 1) 평화에 대한 범죄 2) 전쟁 범죄 3) 반인류 범죄 등 세 가지였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 침공 명령을 내리면서 시작됐다. 그런데 이에 앞서 독일은 1928년 '브리앙 조약'이라고 불리는 부전(不戰)조약에 서명했었다. '국제분쟁을 무력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는게 부전조약의 뼈대였다. 재판부는 나치의 침략행위가 부전조약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대한 논란이 없지만은 않았다. 조약 등 국제법은 국민 개개인이 아닌 국가가 준수해야 하는 법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국민 보호를 이유로 일으키는 침략전쟁에 대해 국제법은 마땅히 제재할 수단이 없다. 히틀러 역시 전쟁을 일으키면서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런 논란에 대해 재판부는 국가가 아니라 각 개인도 국제법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즉, "국제법을 위반하는 자는 추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고, 그런 범죄자를 처벌해야만 국제법의 위신이 선다"는 말이다.

재판부는 '명령을 수행했을 뿐이다'는 피고측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 이 같이 명시했다.

"국제법을 어기고 살육하라는 명령을 받았다는 피고인의 주장은 변명이 될 수 없다. (중략) 대다수 국가의 형법이 사뭇 다르다고는 하지만 어디에나 통하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다. 즉, 인간은 무조건적으로 명령에 복종하기 이전에 윤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은 일정 수준 '승자의 법정'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엄격한 법리 적용을 통해 끝까지 발뺌으로 일관하는 1급 나치 전범들이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분명히 밝혀 놓았다. 뉘른베르크의 판례가 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국제분쟁 해결의 모범으로 자리잡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엄정한 사법처리만이 답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재임 기간 저지른 과오의 경중을 나치 전범들과 동일선상에서 따질 수는 없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이 현재 13가지 혐의를 받고 있으며, 이 혐의들이 거의 예외 없이 대한민국 헌정질서의 기반을 흔들고 있다는 점에서 박 전 대통령의 죄과는 실로 위중하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전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모양새다. 자택으로 돌아가면서 '진실'을 입에 올리며 불복을 선언해 가뜩이나 국론 분열로 혼란한 사회를 더욱 교란시키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런 '불순한' 의도를 무력화시키는 방법은 딱 하나, 한 치의 관용도 없는 준엄한 사법절차 진행이다.

이에 검찰의 박 전 대통령 수사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만에 하나 검찰이 박 전 대통령의 과오를 바로잡지 못하면, 가까운 미래에 박 전 대통령의 친위세력들이 명예회복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마침 15일 검찰은 오는 21일 오전 박 전 대통령을 소환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검찰은 정권유지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박 전 대통령 수사는 검찰의 명예회복을 위한 절호의 기회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 수사를 제대로 하는지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할 일이다.

지유석 기자 / <NEWS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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