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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주면 목회 누군 못 하나설교는 '은사'다

최근 어느 목회자께서 "성경에 있고 없고로 따지면 자비량 목사도 없어요. 목사 자체가 성경에 없으니까요."라고 하셨다. 아울러 "예수님이 돈을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고 하시며 시대와 상황에 따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물론 전체적인 맥락에서 그리 말씀하신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며 균형 있는 노력을 보여주신 점에 깊히 감사를 드린다. 다만 그 논리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기에 다소 안타까움이 있다.

성경의 정신

그동안 대부분의 교회는 "십일조가 성경에 있으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주일 예배 참석도 성경을 있는 대로 다 동원해서 열심히 강조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급 전임 목사 제도는 성경에 없지만 해도 된다"고 한다. 대체 이게 무슨 논리일까? 성경에 있어도 하고 없어도 하고, 결국은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도 된다는 거 아닌가.

사실 개신교 일각에 이런 논리가 처음은 아니다. 어떤 교회는 "성경에 세습하지 말라"는 구절이 없으니 세습해도 된다고 한다. 이는 마치 성경에 "주일 헌금 횡령하지 말라"는 직접적인 구절이 없으니 "헌금 횡령해도 좋다"는 궤변적 논리와 유사하다. '성경의 정신'을 지킬 생각은 안 하고 문자적 말장난으로 궁색한 논리를 펼친다.

과연 성경에 있고 없고 따지는 게 불필요한 것일까. 성경의 정신이 시대에 따라 변하는 걸까. 언제부터인가 온라인 공간에서 '성경적'이란 말을 삼가하자는 게 대세인 모양이다. 물론 그 말이 의도하는 바는 나도 어느 정도 공감한다. 성경을 함부로 적용하거나 남발하지 말라는 뜻이다. 나도 상식으로 해도 될 문제까지 성경적 운운하는 건 반대한다.

그럼에도 간단한 판단이 어려운 사안에 대해서는 결국 그게 성경적인지 검토해야 옳다고 본다. 성경이 유일한 기준이니 하는 말이다. 우리가 불경적이나 코란적으로 해석하고 판단할 수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성경에 있는 것조차 제대로 안 하면서, 도리어 성경에 없는 걸 더 열심히 하고 있다면 그걸 정상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래서 다시 강조하는데 '유급 전임 목회'의 근거가 성경 어디에 있는지 난 잘 모른다. 그러나 '자비량 목회'는 분명히 성경에 있다. 바로 신약성경의 거의 절반을 쓴 사도바울의 사역이다.

그런데 중대형 교회들에서 사도의 정신으로 자비량 목회를 하는 담임목사를 별로 본 기억이 없다. 절반은 커녕 거의 다 '한결같이' 유급 전임 사역이다. 도대체 요즘 목회자들이 사도바울보다 얼마나 더 바쁘고 중요한 사역을 하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는 그런 일방적인 현상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교회는 은사 영업장이 아니다

아무튼 자비량 사역과 관련하여 내가 꼭 논하고 싶은 것 중에 하나가 설교다. 설교는 은사다. 예언과 방언과 병고침과 가르치는 것도 은사다. 병원에서 병 고치면 돈 받아도 된다. 그건 영업이다. 학원에서 공부 가르치면 돈 받아도 된다. 그것도 영업이다.

그런데 교회에서 병 고치고 돈 받으면 욕먹는다. 교회에서 예언하고 돈 받아도 욕 먹는다. 교회에서 전도하고 돈 받아도 욕 먹는다. 교회에서 하나님 말씀 가르치고 돈 받아도 욕먹는다. 왜냐하면 교회는 영업을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의 설교는 은사지 생업이 아니다.

같은 의사라도 병원에서 치료하면 돈 받아도 되지만 그 의사가 교회에서 치료하고 돈 받으면 욕 먹는다.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하면 돈 받아도 되지만 그 가수가 성가대에서 찬양하고 돈 받으면 욕 먹는다. 교수가 신학대학에서 성경 가르치면 돈 받아도 된다. 하지만 그 교수가 교회에서 성경 가르치고 돈 받으면 욕 먹는다. 왜 그럴까.

설사 같은 은사라도 사회에서는 돈 받아도 되지만 교회에서 돈 받으면 욕 먹는다. 그 이유는 교회가 무슨 은사 영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단순한 접대나 간소한 사례까지 해선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니니 달리 오해가 없으시기 바란다.  

일부에서는 목회도 성속 구분 없이 정당한 노동이기에 다른 직종처럼 임금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주장이 있다. 좋은 발상이기는 하다. 하지만 만일 그런 논리가 옳다면 그럼 왜 함께 동역하고 노동하는 다른 시무 장로, 재정 집사, 교회학교 교사, 안내자, 주방봉사자, 성가대원, 부서장, 구역장에게는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나. 교회가 무슨 노동 차별하는가.

나는 지금 유급 목회자 개인을 비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나는 적은 연봉으로 수고하고 있는 목회자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현재의 유급 목회 현실도 충분히 이해하며 인정한다. 일꾼이 품삯을 받을 권리도 존중한다. 따라서 기존 목회자들에게 자비량 사역을 하자고 제안하는 게 아니다. 자비량 사역의 주체는 직업과 소명을 지닌 평신도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교회에 30대 이하의 젊은 층이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그들에게는 기복 목회와 무속 목회가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예배당의 작은 모순도 결코 참지 않는다. 또한 그들은 굳이 수입 십분의 일까지 바치며 교회에 충성하지 않는다. 목회자가 특권 의식을 갖거나 고정 관념에 안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바울로 살아내는 목회자

사실 요즘 같이 힘든 세상에 월급 제대로 주면 목회 못 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목회해서 처자식 모두 먹여살리고 자녀를 대학이나 대학원까지 공부시킬 수 있다면 아마 개나 소나 설교를 '표절'해서라도 기어이 목회할 것이다. 게다가 은퇴 후에는 원로 목사가 되어 노후까지 든든히 보장 받고, 추가로 자식이나 사위에게 교회 세습하면 대대로 평생 가업이 된다. 이보다 더 좋은 꿈의 직장이 어디 있나.

현재도 전국에 널린 수많은 신학교들이 목회 지원자들을 반기고 있다. 게다가 이들을 적절히 검증할 정화장치가 고장난지는 아주 오래되었다. 요즘 줄줄이 터지는 대형 교회 목회자들의 파렴치한 목회 비리들이 그 생생한 증거다.   

물론 대다수 목회자는 순수한 소명을 받고 목회한다. 하지만 대부분 교단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고 있다. 가짜가 진짜를 밀어내고 주도권을 장악한다. 이게 그동안 유급 전임 목회제가 한국교회의 부패로 연결된 은밀한 메커니즘이다. 즉 제도적 악이 되었다는 거다. 반면에 파트타임 사역자는 교권을 흔들 수 없다. 그러므로 특정 직분자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이 '목회 독점'과 '설교 독점'의 낡은 틀을 깨지 못 한다면 교회 회복은 단지 헛된 망상이 될 뿐이다.

원칙적으로 '자비량 공동 목회'는 현재 생업에 종사하는 평신도를 위한 파트타임 사역이다. 설교는 은사이기에 반드시 목사 안수를 받아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 소명을 받은 교인들 중에 신학을 공부하고 자원 봉사로 목회하는 평신도 설교자가 크게 늘어나기를 소원한다. 평신도가 깨어있는 교회는 언제나 희망이 있다.

개혁 교회는 평신도 동역이라는 미명 아래 교인들에게 만날 주방 설거지나 주차안내만 시키지 말고, 이제 새로운 시대에는 '평신도 제사장(벧전2:9)'들에게도 목회와 설교의 기회를 균등하게 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근자에 어느 성도가 "바울을 설교하는 목회자는 많은데 바울로 살아내는 목회자는 드문 듯 하다"고 지적한 것에 마음 아프게 공감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12:8-11)."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신성남  freesurfer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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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현 (222.XXX.XXX.156)
2017-01-07 02:56:06
찬성:23 | 반대:9 찬성하기 반대하기
유급 전임 목회가 성경적인지 아닌지 하는 문제와 유급 전임 목회가 현재 개신교회에 필수적인데 아닌지의 문제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목회자의 권위주의적이고 폐쇄적인 목회운용의 문제점과도 다르게 다뤄져야 할 문제입니다.
설교믄 은사인가? 그렇습니다. 그러면 아무 준비와 노력, 전문성 없이도 예배와 설교의 실행은 가능한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자비량 평신도 목회가 가능할까요? 충분히 가능할 겁니다. 제가 평신도중심의 신앙공동체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조직의 운영과 관리가 복잡해지고 업무가 가중되면 전담자가 필요하게 됩니다. 자비량 봉사자만으로는 꾸려질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자원봉사조직도 조직의 규모가 커지면 전임자를 두게 됩니다. 비영리 단체도 그런 후원을 받아 운영됩니다. 단지 동호회나 연합회 활동 정도로 생각한다면 별도의 전임자 없이도 관심과 취향이 맞는 분들이라 조직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게 충분히 의미있게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저는 당위적인 말씀이 아니라 실용적이고 실제적인 말씀을 짚어 드리고자 하는 겁니다. 단지 취향과 기호를 함께 나눌 단체를 운영하는 것이 아니고 삶과 실존을 내어맡기는 신앙적 헌신이 관계된 문제이기에 그럴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전문성"은 그래서 형성되는 것이고 위임되는 것입니다. 물론 믿을 만한 신뢰성과 정직성과 투명성이 확보되어야 위임과 공동체 형성이 가능하겠지요.
스스로 알아보고 스스로 문제해결 할 수 있습니다. 근대적 주체이고 시민인 우리가 주체적으로 그러할 수 있다는 의식은 중요합니다. 전문가 집단이 시민사회와 분리되어 자신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할 때 그 사회는 위험사회의 징후를 보입니다. 원자력발전소는 핵물리학자들의 손에만 맡길 수 없는 사회적 명운의 문제이고 지구생태계 전체와 관계된 문제입니다.
병이 들면 병원의 의사에게 몸을 맡기지만 의료 행위는 의사에게만 귀속되는 행위는 아닐 겁니다. 의료사고로 발생하면 공론적인 검수가 필요하고 단순히 의사의 전문적 기능만의 문제가 아닌 사람과 생명, 법적 윤리적 문제제기가 따르니까요.
제가 말씀드리면서 요점은 이겁니다. 의료도 법도 정치도 봉사도 교육도 언론도 다 시민 개인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습니다.선의와 열정만으는. 충족되지 않는 영역이 있습니다. 음악이 좋아서 취미로 할 수는 있지만 어느 순간 자신의 전 존재를 음악에 헌신하고 싶은 경우가 생긴다면, 음악을 하면서 다른 무엇이 아닌 그곡만 으로 생계가 보장 되는 그런 전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미 근대 사회를 살고 있는 겁니다. 원시 공동체 사회가 아닙니다. 추장이 정치도 하고 주술도 하고 의술도 하는 그런 사회가 아닙니다. 법과 행정이 나뉘고 교육과 예술이 전문화된 사회를 살고 있습니다. 직업으로서의 소명이라는 말은 그저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저 특화된 은사라고 하기에 이미 교회의 목회적 직임도 복잡한 업무들로 분화되고 전문화된 발전과 진화를 거듭한 사회인 겁니다. 기독교교육을 전문으로 감당할 사역자가 필요하고 상담과 돌봄, 교회음악도 그러합니다. 기독교윤리적 변증의 과제도 날로 심대해져가고 성서에 대한 해석의 깊이도 더해져 갑니다.
한마디로 전문가가 필요하고 그래서 신학교가 있고 신학전문대학원도 있는 겁니다. 물론 법에 관심이 있으면 법학전문대학원에 가서 공부하고 법적인 변론의 봉사를 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변호사나 의사나 법을 다루든 의료행위를 하든 전문적인 자격과 그 자격의 취득을 엄격한 과정으로 제한하는 이유는 그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비전문가들에게 배타적인 특권이 된다면 시민사회가 그에 대한 감시와 통제의 시선을 엄격히 하면 될 일입니다. 그렇지만 환자를 살리기 위해 매스를 드는 일이나 법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일이나 단순한 지적 호기심이나 취향으로 달성될 성질의 덕이 아님은 자명합니다. 정말 소임을 다하는 충실성에서라면 아무나 함부로 다룰 수 없는 일이라는 존중감이 자연스러운 것이 아닐까요?
그런 생각도 듭니다. 얼마나 현재의 목회자들이 못났으면, 전문가에 대한 경외감 마저 들게 하지는 못할 망정 그럴 바에야 개나소나 나도 하겠다고 할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러니 전직 조폭이나 대도라 불린 사람도 신분 세탁삼아 목사 안수를 받는 것이겠죠.
그러나 조금 억울한 마음도 듭니다. 신학교 간다고 서원하고 공동체의 기도와 후원으로 신학교 입학하여 20대의 젊음을 다 투신하여 신학의 길을 걸었는데... 30대의 가정의 생계마저 배우자에게 의탁하며 목회자의 길에 들어 안수받고 목회를 고민하며 모색하고 있는데... 아직도 성서를 해석하고 시대에 응답하고 성도를 감기며 하나님의 뜻을 살아내는 일은 어렵기만 한데... 내가 어렵게 선택하고 힘들게 걸어 온 길... 지금도 번민과 고뇌의 찬 이 길이 단지 "월급 주면 누군들 못하는" 그런 정도의 것이었던가?
내가 이러려고 목사가 됐나 하는 자괴감마저 드는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가수 그거 그저 노래 잘하는 재능 타고 났으면 누구나 하는 것이고 법률가 그거 그저 머리 조금 똑똑하면 그저 로스쿨 나와 하면 되는 것인가요? 그처럼 아니 그것만도 못하게 목사 그거 그냥 돈 준다면 아무나 배워 할 수 있는 그런 건가요? 커피 좋아하면 아무나 브랜딩하고 조금 배우면 커피내리고 바리스타하고 카페 차리듯 그렇게 신학하고 안수받고 교회 개척하는 그런 정도인가요?
그냥 머리 깍고 불경 외면 스님이지 스님이 별거냐 하면 그보다 더한 불경과 모독이 어디 있겠나요? 신부님 그거 그냥 수절하고 사제복 두르면 신부님이지 별거 있냐 하면 교황청이 가만 있을까요? 아, 그렇듯 한국 개신교가 개독이라 욕 먹고 먹사라고 조롱 당하니 그래도 싼 그런 것인지요? 그래도 그래도 그런 게 현재 우리 사회 분위기라도 알만한 분들이 개혁교회 운운하는 기독언론의 장에서 그런 모독적 언사는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불경인 줄 아는 자정의식이 있어야 하는 곳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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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요 (24.XXX.XXX.94)
2017-01-08 12:53:00
찬성:18 | 반대:8 찬성하기 반대하기
갈 수록 신집사님 말씀이 과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1. 설교표절해서 하면 된다? - 해보세요. 바로 걸려서 옷 벗어야 합니다.
2. 은퇴 후 원로목사되어서 떵떵거린다? - 인근에 그런 분 계신가 한번 찾아보세요. 도대체 몇 분이나 되는 원로목사가 있는지. 그리고 그분들이 떵떵거리는 지. 제가 사는 지역에서는 단 한명도 안 계십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지역.
3. 세습해서 가업이 된다? 지금 대부분의 한국 교단들이 세습금지를 법으로 만들었습니다. 세습 못 합니다. 몇몇 교단들은 아직 세습금지법을 만들지 않았지만, 조만간 다 만들겁니다.
신집사님의 글에 동의하는 바도 많습니다. 그러나, 너무 과하세요. 극단적인 이야기를 일반화하시면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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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KC (47.XXX.XXX.32)
2017-01-08 07:52:49
찬성:17 | 반대:8 찬성하기 반대하기
목사들 돈주기 싫어하는 도둑놈 심보네요. 장로들이 교회 출퇴근합니까? 새벽기도 때마다 일찍 나와서 교회 문 열고, 히터 키고, 다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불끄고 가나요? 교회 문제 생기면 다른 교회 다닌다고 나가버리면 그냥이면서. 대문 기사에 이랜드 사원들 시급 안챙겨준다고 욕할 때는 언제고 목사들 월급 주는 거 아까워서 이딴 글이나 쓰고 있나요? 일부 대형 교회 목사들 이야기구만 전체 목사들 싸잡아 월급 주면 목회 누군 못 하냐고요? 뉴조 격떨어지게 하는 이 분 글 자꾸 실는 거 보면 이분한테 뭐 약점이라도 잡히셨나요? 바울처럼 살라고요? 당신은 그럼 스데반 집사처럼 교회를 위해 돌 맞으실 준비 되셨나요? 내가 볼 땐 연필들고 제일 먼저 도망갈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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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잠하라 (60.XXX.XXX.148)
2017-01-08 04:23:09
찬성:12 | 반대:6 찬성하기 반대하기
칼빈은 디모데전서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

"다시 바울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는 특별히 가르치는 일에 종사하고 있는 목사들에게 생계를 조달해야 한다는 점을 명하고 있다. 요컨대 세상의 배은망덕이 어느 정도이든지 말씀의 사역자를 부양하는 데 있어서는 도무지 관심이 없으며, 사단은 이것을 많은 사람들을 가난과 궁핍의 공포로 위협함으로써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박탈하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그 결과 그들은 이 짐을 짊어지는 데 있어서 자발적이 아니다."

5:18 곡식을 밟아 떠는 소.
"여기서 사람은 말할 나위도 없지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땀흘리는 가축을 배고프게 내버려두는 자들은 잔인하고 형평의 모든 주장을 망각하는 자들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하물며 그들을 위해서 도저히 값으로 되갚을 수 없는 일을 하는 목사들에게 생계를 거절하는 자들의 배은망덕이 어떻게 용납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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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사역자 (122.XXX.XXX.53)
2017-01-06 16:17:03
찬성:7 | 반대:7 찬성하기 반대하기
모두가 눈감고 외면하거나 혹여는 무지하여 할수없는 지적들을 외로이 꾸준히 어필해주시는 신집사님 말씀에 늘 공감합니다.
말씀 사역자라고 보아야 할듯 한데요 사례를 한다해도 대학강의를 하는 강사등 현실적인 고려가 될만한 근거들이 있을텐데 '목회자'라고해서 지금의 설교자들에 대한 처우는 너무 지나칩니다
현실이라고 말들은 하지만 일반 성도들의 삶의 현실과 동떨어져 있습니다.
어떤경우는 돈을 넘어 교회권력의 전권을 휘두르며 독재자와 별반 다를게 없어보이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가톨릭과 다른 개별적 등록이 가능한 개신교 특유의 구조이기 때문이겠지요.
종교를 테마로한 개인사업 구조처럼 보일때도 있습니다.
자비량도 좋고 사례도 반대할 사람이 있겠습니까만 지나치다는 점에서 이런 문제제기가
나오는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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