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7.11.23 목 08:28
상단여백
HOME 칼럼·오피니언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제가 기존의 교회의 틀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걷게 된 것은 예수님이 전하신 복음의 핵심이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전 기존의 교회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어떤 설교도 듣지 못했습니다. 요즈음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책도 나오고 일종의 트렌드가 되었지만 이십 년 전만 해도 천국이나 하늘나라가 아닌 하나님 나라라는 단어는 매우 생소한 것이었고, 더구나 하나님 나라가 복음의 핵심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복음의 핵심이 하나님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가장 먼저 부각된 것은 공동체라는 단어였습니다. 공동체라는 단어 역시 기존의 교회 안에서는 거의 들어보지 못한 단어였습니다. 심지어 신학교에서도 공동체라는 단어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생소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를 알게 되면서 교회가 공동체이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때맞추어 윤공부 목사님이 계시던 '그 나라 공동체'라는 곳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과 함께 그곳에 가서 그곳 공동체 식구들과 같이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대표기도자가 없이 기도를 드리는 기도 시간에 한 어린 아이가 자발적으로 일어나 기도하는 것을 보고 정말 신기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자유로운 예배지만 무언가 살아 있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는 그 예배는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감동적이었던 것은 점심식사 후 가진 나눔의 시간이었습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였는데, 공동체의 한 분이 공동체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하루에도 몇 번씩 뛰쳐나가고 싶지만 예수님이 좋아서 떠날 수 없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분의 눈물에 모두가 숙연해졌지만 그 자리에 있는 모두의 마음이 열렸습니다. 나눔의 시간을 마치고 함께 손을 잡고 기도를 할 때는 말로 할 수 없는 감동에 모두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울다가 웃다가 그렇게 우리의 모임은 끝났지만 예수님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함께 모여 사는 분들이 있다는 사실은 기존의 교회만을 알고 있던 저를 포함한 우리 교인들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이후로도 몇 번 함께 예배를 드렸고 그때마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공동체라는 단어가 점점 더진하게 각인되었습니다. 그리고 공동체를 향한 우리의 여정 역시 시작되어 저희 교회의 목표는 '성령공동체를 이루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 목표가 생긴 후 저희 교회는 더 이상 다른 목표를 세우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영원히 지향해야 할 교회의 모습이며 다른 모든 것은 부차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브루더호프 공동체(사진:브루더호프 공동체 홈페이지)

복음의 삶은 공동체 없이 불가능하다

부르더호프 공동체의 창시자 에버하르트 아놀드는 공동체의 필요성을 이렇게 말합니다.

공동체 삶은 우리에게 필요 불가결한 것입니다. 우리가 행동하고 사고하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절대로 필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삶의 방식을 선택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우리의 선한 의도나 노력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를 강권했던 것은 어떤 확신이었습니다. 이 확신은 만물의 근원자에게서 나오는 것이었고, 우리는 그 근원자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공동체로 살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체는 공동체적인 질서 속에 존재하며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공동체의 삶이 필요불가결한 것이라 말하며 그 출발점이 근원자이신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체는 공동체적인 질서 속에 존재하며 공동체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가 공동체를 이루려는 것은 우리의 선한 의도나 노력에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성령에 이끌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면 우리는 세상의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서,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 새로운 사회, 새로운 공동체를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서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보였던 복음의 삶을 실제로 살기 시작합니다. 복음의 삶은 개인으로서는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면 그 불가능이 상당부분 해결됩니다. 공동체의 관심과 지원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복음의 삶은 애초에 공동체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물론 공동체가 불가능한 복음의 삶을 백퍼센트 가능하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구성원들 하나, 하나가 온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함께 기도하며 성령의 이끄심을 바라보는 성령공동체가 되면 인간인 구성원들의 노력에 더해 성령의 도우심이 주어지기에 그 불가능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사랑하게 된 하나님의 가족들이 상호복종과 섬김을 통해 복음을 살아나갈 때 성령은 그들의 '불성곽'이 되어 공동체를 보호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이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살아갈 때 개인으로서는 엄두가 나지 않던 복음의 삶을 실제로 실천할 수 있게 됩니다. 즉,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인정해 주고, 잘못된 것을 비추어주는 거울의 역할을 감당하면서 복음의 삶에서 벗어나지 않게 해주고 다시 세상의 삶으로 이끌리는 지체들에게 충고해 주고. 정도가 심할 때에는 치리라는 일시적인 단절을 선언함으로써 중심을 잃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 그들은 재산과 소유물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대로 나누어주었다. 그리고 날마다 한 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집집이 돌아가면서 빵을 떼며, 순전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서 호감을 샀다. 주님께서는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여 주셨다."(행2:44-47)

초기교회의 이 모습은 단지 그 시대만의 특별한 한시적인 교회의 모습이 아닙니다.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 진정으로 참되게 믿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와 같은 모습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른 면이 가감되었지만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모임인 교회는 기본적으로 이와 거의 같은 모습의, 유무상통하며 자신들의 공동체를 넘어 이웃을 섬기는 공동체로 존재하였고, 지금도 그런 모습으로 곳곳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공동체의 모습 혹은 기원을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서 얻은 사람들

"아브람은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재산과 거기에서 얻은 사람들을 거느리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길을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창12:5)

이 말씀을 주목해 보면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날 때 갈대아를 떠날 때는 없었던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아버지 데라는 하란에 계속 머묾으로써 이들의 일행에 합류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새롭게 아브라함과 합류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서는 이들에 대한 아무 설명이나 해설 없이 거기, 즉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이 하란을 떠나는 아브라함 일행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 대해 주목하지 않고 지나치거나, 대수롭지 않게 하란에서 얻은 노예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유대 전승에 따르면 이들은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아브라함과 사라가 하란에서 보여준 믿음을 보고 유일신이신 하나님을 믿게 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아브라함과 사라 일행이 전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유대 전승이 이 사람들을 그렇게 보는 이유는 '언다'로 번역된 히브리 단어 '아사'의 본래 의미가 '만들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원문을 직역하면 '거기에서 얻은 사람들'은 '하란에서 만든 사람들'이 됩니다. 아브라함과 하라가 만든 사람들이란 의미는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을 이들에게 전해 같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 그들을 자유인으로 보는 다른 이유는 사람들이라는 단어로 사용된 '네페슈' 때문입니다. 창세기에 사용된 노예나 종이라는 단어는 '에베드', '야릴드', '나아르'입니다. 만일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이 노예였다면 당연히 이런 단어들을 사용했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사용된 '네페슈'라는 단어는 '영혼', 혹은 '사람'이라는 의미이기에 유대 전승에서 이들을 자유인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공동체

아브라함과 사라 일행은 가족들이 아닌 이들과 함께 하란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란에 머물며 허송세월을 보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믿음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길벗들을 얻어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오래도록 성서를 읽으며 이 사실을 간과해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사실이 눈에 들어오자 어두운 방에 갑자기 불이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새삼 김근주 교수님이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가 아니라고 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날 수는 있어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로마서에서 유대인들이 원가지이며 결국에는 유대인들이 돌아올 것임을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이 공동체와 더불어 시작하고 있다는 사실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구약 역시 신약과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지금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이곳에서도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여정은 어떤 개인이나 그의 가족들만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믿음의 공동체와 더불어 시작됩니다. 우리가 앞으로도 확인하게 될 것이지만 성서는 어느 한 가지도 의미 없는 것을 기록하지 않습니다. 또 의미가 없는 것은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여정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의식 했건 하지 못했건 간에 먼저 공동체를 구성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여정의 위험을 극복하려는 인간적인 노력이 아니라 믿음의 여정의 본질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적지가 드러나기도 전 가장 먼저 아브라함 공동체가 이루어졌습니다.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시가 하나 있습니다. 함석헌님의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입니다.

만 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말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예전에는 시에서 말하는 그 사람이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공동체를 알게 된 이후에는 그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시에서 말하는 그 사람은 우리 자신을 포함해서 우리와 함께 믿음의 여정에 들어선 동료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가 바로 서로에게 시에서 말하는 그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여정은 공동체와 더불어 시작하는 것이며 공동체가 없다면 복음의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공동체

저는 기회가 날 때마다 가나안 성도들이 함께 모여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왔습니다. 그것은 다시 교회를 시작하라는 말이 아니라 성령에 이끌리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를 이루라는 것이며 그래야 참된 복음의 삶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공동체는 단순히 새로운 교회나 개혁이나 쇄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가나안 공동체는 성령에 이끌리는 하나님 나라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강령에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입니다. 그곳은 참된 의미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며, 그리스도가 주님이신 사람들의 모임이며, 하나님 나라의 통치강령인 산상수훈에 따라 치열한 현재적 삶을 살아가는 '산위에 있는 동네'(마5:14)입니다.

그곳에서 가나안 성도들은 자신의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사람들이 가나안 성도들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입니다.(마5:16참조) 이것이 제가 말씀드리는 가나안 공동체입니다. 산위의 동네가 되어 세상의 빛으로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인 가나안 공동체가 꼭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최태선  tschoi45@hanmail.net

<저작권자 © M 뉴스앤조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태선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의견나누기(0개)
코드를 입력하세요!   
0 / 최대 3200바이트 (한글 1600자)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상세보기]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