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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상은 '밥상', 꿈꾸는 일상은 '통일'[인터뷰] 킹덤 컨퍼런스에서 만난 주부 이다솜 씨

“누군가 저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주저 없이 이야기할 수 있어요. 한 달만이라도 통일이 된 한반도에서 살다가 죽고 싶어요.” 

[미주뉴스앤조이 (뉴욕) = 경소영 기자] 2016 킹덤 컨퍼런스 순서 중 ‘일상’에 대한 토크 콘서트에서 만난 40대 주부 이다솜 씨의 말이다. 일상이라는 주제를 두고 다양한 세대, 직업을 가진 6명이 모여 자신의 삶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킹덤은 일상을 싣고'라는 주제로 토크 콘서트가 열린 가운데, 이다솜 씨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미주뉴스앤조이> 유영

토크 초반에 이다솜 씨는 “일상은 ‘밥상’이다”라고 간단히 정의했다.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이 하루의 반, 나머지 반은 다른 꿈을 꾸고...”라고 말끝을 흐렸다. 토크 시간 내내 마음 한 켠에 그가 말한 ‘다른 꿈’에 대한 궁금증이 자리하고 있었다. 결국 의문이 풀렸다. 토크가 거의 끝나갈 때 다솜 씨는 나직이 통일에 대한 꿈을 읊조렸다. 목소리는 떨렸고, 청중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저는 통일을 꿈꾸어요. 한반도가 많이 아프잖아요. 아픈 조국을 품고 잘 살아내려면 우리 모두 건강해야 하니까 누구든 잘 먹이고 싶어요. 누군가 저를 봤을 때 ‘밥과 복음’이 생각나는 아줌마로 늙고 싶어요.”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기자의 눈앞도 함께 흐려졌다. 통일에 대한 염원은 그동안 많이 있었지만, 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통일에 대한 자기 고백을 들어본 적이 있었던가. 다솜 씨는 토크 시간 내내 유쾌한 입담으로 청중에게 웃음을 주었다.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와서 고생한 이야기를 맛깔나게 들려주며 공감을 이끌어 냈다. 그런데, 남편의 직장이 집과 가까워서 삼시 세끼 밥상을 차려야 한다는 그저 평범한 주부의 일상이 느닷없는 ‘통일’ 이야기로 전환된 것이다.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는 통일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품은 동시에, 일상을 특별하게 해석해내고 있었다. 통일에 대한 소망이 일상이 된 다솜 씨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야 했다. 한 시간여의 토크를 마치고 단상에서 내려온 그에게 다가갔다. 눈물을 훔치고 인사를 했지만, 다솜 씨의 얼굴을 보자마자 또다시 눈앞이 흐려진 것을 보니 그의 이야기에 단단히 홀렸다. 자신은 평범한 주부일 뿐이라며 손사래 치는 그를 겨우 잡았다. 

대체 당신의 일상에 ‘통일’이라는 화두는 어떻게 침투한 것인지, 한국에서도 이미 통일은 식상한 소원이 되어버렸을 뿐인데, 미국에 사는 당신에게 통일은 어떤 의미인지 자초지종을 들어보기로 했다. 다음은 이다솜 씨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통일이 된 한반도에서 살고 싶다는 고백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렸다. 한국에서도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조차 잘 부르지 않는다. 통일에 대한 특별한 소망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는가.

고등학교 다닐 때 예수님을 믿었다. 선교사로 헌신하고 싶어서 세계를 여행했다. 어느 나라가 나의 민족인지 알아야 하니까 단기 선교를 계속 다닐 수밖에 없었다. 안 가본 나라가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에 확 와 닿는 나라가 없었다.

친한 언니가 일본에 선교사로 가 있었다. 사실 일본도 그리 가고 싶은 나라는 아니었지만, 기도를 하고 일본에 갔다. 어떤 일본 교회에서 성경학교를 해서 도왔다. 농아인 부서에서 봉사했다. 난 사회복지를 전공한 터라 수화는 어느 정도 가능했다. 그래서 농아인 어르신들과 교제를 하며 대화를 할 수 있었다. 

나에게 질문 세례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모든 질문이 ‘북한’에 대한 것이었다. ‘남북정상회담은 어떻게 이루어진 건지, 북한에 지하교회가 있다는데 정말인지’ 등 구체적으로 질문했다. 내가 아는 한 열심히 대답했다. 실제로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을 때는 가족과 함께 울면서 기뻐했던 기억이 있다.

일본인 농아인 어르신들께 ‘북한에 대해 왜 그렇게 궁금해하세요?’라고 물었다. 교회 농아인 모임에 도움을 주었던 분이 한국 선교사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 선교사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북한을 위해 계속 기도해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언어 장애가 있다보니 북한에 대한 정보를 얻기도 어려워 잘 알지 못하다가,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그렇게 질문을 한 것이다.

그분들이 사랑에 빚을 갚는 마음에 감동을 받았다. 북한에 지하교회도 있고 앞으로 희망이 있을 거라고 말씀드렸다. 내 얘길 듣더니 그분들이 수화로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북한에도 희망이 있다니까 매우 기쁜 마음으로 박수를 치던 농아인 어르신들을 보고 회개를 했다. 내가 가기 싫었던 일본에서, 일본인들을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통일에 대한 마음을 주신 것이다. 그동안 북한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던 것을 회개하고, 남북한 통일을 위해 평생 기도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사실 일본 교회 농아인 모임에 있던 어르신들은 세상에서 존재감이 거의 없는 분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분들을 통해 아주 거세게 역사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 나라, 작은 자들의 나라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농아인 어르신들이 한국 선교사에게 사랑의 빚을 진 것처럼 나 역시 그분들께 빚을 졌다. 그래서 그때부터 통일에 대해 공부도 하고 기도 모임을 하기 시작했다.

이다솜 씨는 일본에서 만난 농아인 어르신들과의 만남을 통해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소망을 품고 기도하게 됐다고 말한다. ⓒ<미주뉴스앤조이> 유영

정말 특별한 경험을 했다. 그렇게 통일을 위한 노력을 하다가, 돌연 미국으로 떠나왔다. 어떻게 미국에서 정착하게 된 건지 궁금하다. 

미국 유학을 앞두고 있던 남편을 만났기 때문에 미국에 오게 됐다. 많이 사랑해서 결혼까지 했다. 내 모든 기반은 한국에 있었는데 뿌리째 뽑혀서 미국에 온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초반에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외로움 때문에 우울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예상했고, 어느 정도 각오를 했다. 그래도 힘들었다. 몇 년이 지나고 미국 생활에 익숙해져 살다 보니, 미국행이 잘못된 건 아니라는 확신을 하나님이 주셨다. 지금도 여전히 힘들다. 극복하는 과정 가운데 있을 뿐이다.

언어에 대한 장벽이 컸다. 그러니 남편에게 계속 의존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존재감, 독립심에 상처를 입었다. 대학원에서 북한학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었는데 미국에 오면서 관계가 거의 끊겼다. 내가 꿈꾸던 통일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가 미국에 와서 실질적으로 한국에 도움되는 일을 못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매우 답답하고 혼란스러웠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일을 통해 내 존재를 입증하고 해석했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내가 그저 집에서 밥하는 사람이 되어 있더라. 불러주는 곳이 없으면 나갈 수도 없으니 남편만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러한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기 싫었다. 그런데 적응하며 살아야 하니 억지로 미국 생활에 나를 맞춘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내면이 다 부서지고 망가졌다. 툭하면 울고, 우울증도 왔다.

그 힘든 과정을 어떻게 극복하게 되었나. 

사실 지금도 극복 못 하고 있다. (웃음) 살면서 조금씩 소소하게 미국 생활에 익숙해지긴 하더라. 사람과의 관계를 새롭게 맺어가는 것이 가장 좋은 극복 방법이었다. 내가 살았던 조지아 주는 시골이었다. 그곳에서 내가 미국에 온 이유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깊은 숲속에 크리스천 평화 공동체가 있었다. 난민 사역을 하는 곳인데, 여러 나라에서 온 난민을 미국에서 잘 살 수 있도록 훈련하며 도움을 주는 일을 하는 공동체다. 그뿐 아니라, 미국 핵 문제, 사형 제도 등 세계의 많은 문제에 대해 토론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북한에 집 짓는 사역도 하고, 나와 매우 잘 맞는 공동체를 만난 것이다. 30년간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해온 미국 할머니와도 교제하며 점차 그곳이 ‘나의 공동체’가 되었다. 미국에서의 친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공동체를 만났다고 해서 내면의 모든 문제가 갑자기 해결되지는 않았다. 자신과의 투쟁은 계속되고 있었지만, 그곳에서 놀라운 경험들을 많이 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였다. 그때 우리 부부는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그 시기에 예배하러 공동체에 갔는데 그분들의 첫 마디가 “괜찮아요? 괜찮지 않겠지...”였다. 모두 함께 울었다. 둘러보니 곳곳에 전 세계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모든 정보가 붙어있었는데, 세월호 사건도 그중 하나였다. 

많이 배웠다. 난민이라는 ‘불쌍한’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고, 그저 함께 밥을 먹고 농사짓는 일이 그 공동체의 역할이었다. 이전에 나는 거품 속에서 신앙생활을 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는 세상에서 결코 주목할 만한 거창한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경험했다. 

공동체 안에서 사람을 만나며 나의 일상은 회복되기 시작했다. 나도 어느새 배고프고 굶주린 사람에게 밥을 해 먹이는 것이 행복했다. 특별한 고기반찬이 없더라도 함께 나누고 먹을 때 음식이 너무 맛있었다. 밥상이 나를 만들어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참 어리석었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거룩함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거룩이라는 것은 대단하고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거룩함은 일상성을 회복해야 한다. 거룩함을 일상화 해야한다는 것이다. 가끔 외국인 선교사를 만날 때가 있다. 그분들이 말하는 선교는 굉장히 일상적이다. 

그런데 나에게 선교는 일상을 벗어난 하나의 ‘일탈’이고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그 선교사들은 그저 주어진 장소에서 현지인과 함께 산 것뿐이었다. ‘선교사로 살아가는 것이 좋은 선택이었다’라고 말할 정도의 의미다. 엄청난 비장함은 없다. 선교사로 살다가 실패해도 괜찮은 것이다. 단지 내가 선택한 일상, 그것이 선교라는 것이다. 이러한 것들을 차츰차츰 하나씩 깨달아 나가며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나는 지금도 그 과정에 있다.

이다솜 씨는 공동체를 통해 그동안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됐고, 일상도 조금씩 회복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미주뉴스앤조이> 유영

공동체를 통해 일상을 회복하면서, 통일에 대한 고민도 새롭게 해나갔을 것 같다. 통일에 대한 열망을 품고 살아가는 기독교인으로서 한국 교회에 말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한국 정치나 통일 이슈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곧 역사의식의 부재를 뜻한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문제다. 통전적으로 하나님 관점에서 보지 못하기 때문에 통일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다.

한반도가 아픈 가장 큰 이유는 한국 교회다. 신사 참배에서 시작된 죄악에 대한 반성, 자기 쇄신을 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본다. 어떤 사람들은 ‘그래도 교회에서 북한 돕기도 많이 하고, 대다수는 개독교라는 말 듣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잘하고 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구차한 변명일 뿐이다. 한국 교회를 정말 사랑하는지 의문이다. 

학생이 잘못을 해서 부모가 학교에 불려 가면 ‘제가 잘못 키워서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하지 않나. 교회도 마찬가지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크리스천이라면 한국 기독교를 비판하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 ‘기독교인인 우리가 정말 잘못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잘못했다. 변화하도록 애를 쓰겠다’라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지적을 받으면 바로 주저앉아서 회개를 해야 한다. 그럴 때 은혜가 시작된다.

한국 교회가 건강하고, 역사의식이 충만할 때 통일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시작될 수 있다. 교회에서 통일 담론을 이끌어 가려면, 통일에 대한 비용, 걱정 등에 대한 말이 나오더라도 ‘그래도 우리 교회가 다 감당하겠습니다. 통일이 되면 좋아질 것입니다’라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희생정신이다. 어떤 신부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교회의 존재 이유를 잘 설명하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이 정의를 원하면 교회는 외쳐야 하고, 세상이 희생을 원하면 교회는 죽어야 한다.”

미국에 사는 한인으로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까.

남북이 막혀 있을수록 미국에 사는 한인의 몫은 점점 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거에도 해외에서 조국을 위한 일들이 많이 이루어졌다. 현재 남북관계는 매우 냉랭하다. 그럴수록 해외에 있는 한인의 역할이 커질 것이다. 시민권이 있다면 북한 방문도 가능하니, 현 상황을 정확히 볼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전에 미국에서 자란 한인 3세 아이들이 북한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북한에 대한 편견이 없다. 북한에서 만난 또래들에 대해 친구처럼 생각하며 밝게 이야기했다. 

통일된 한반도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늘 품고 산다. 이러한 꿈조차 잃어버린 세대에게 함께 꿈꾸자고 말하고 싶다. 내가 통일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신기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북한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도 아직 많이 있다. 숨겨진 의인은 항상 있다. 다음 세대에게 통일을 이야기하고 함께 공부하고 무언가 해보자고 제안하며 애쓰는 사람이 있다. 희망이 있다는 말이다.

나는 젊은 청년들에게 마음 깊이 미안하다. 통일에 대한 꿈을 가르쳐 주지도 못하고, 이 힘든 세상에 살게 해서 미안하다. 좋은 세상을 만들지 못한 채 청년들이 그런 세상에 나가도록 해서 미안하다. 잘 가르쳐 주지도 못했고, 살 만한 세상을 만들어 주지도 못했는데도 촛불을 밝히는 젊은 친구들에게 고맙다. ‘나를 비롯해 나이가 조금 든 어른들이 어떻게든 조금이라도 더 노력해 볼게요. 한국 교회 청년들이 통일에 대해 고민을 하고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몸부림쳐 볼게요’라고 말해주고 싶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 보듬고 격려하면 가능할 것 같다. 서로 먹여주고 기뻐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멀리 미국에 있지만, 주말 촛불 집회 있으면 나는 뉴스를 보며 금식하고 기도한다. 살아있는 청년을 보면 희망이 보이고 행복하다.

경소영  soyoung@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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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om (108.XXX.XXX.145)
2017-01-04 10:02:39
찬성:0 | 반대:0 찬성하기 반대하기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김다솜씨의 깨달음에 크게 공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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