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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교회 분규, 100억 원 합의가 좋은 결말인가?광성교회 분규 조정 결과를 접한 전 교인의 심정
기자는 광성교회 분규를 교인으로 경험하고 지켜보았다. 30년 가까이 속했던 교회를 떠난 지는 이제 3년 정도 되었다. 흔히 이탈 측이라고 불리던 담임목사 측에 있었다. 표현이나 여러 관점에 이러한 경험에 한계를 두고 있으며, 이탈 측 교회를 향한 이야기라는 사실도 밝혀둔다. - 기자 말-  

[미주뉴스앤조이 (뉴욕) = 유영 기자] 지난 18일, 서울에 있는 광성교회의 13년 분규가 끝났다는 기사를 보았다. 감회가 남달랐다. 13년 중 10년을 그곳에서 지냈다. 흔히 ‘모 교회’라고 부르는 교회다. 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교회학교, 찬양대, 청년부 등에서 열심히 섬겼다. 그 안에서 함께한 이들을 무척 사랑했다. 사랑했던 교회의 분규가 끝났다는 소식이 반가워야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렇지가 않았다.

교회 재산 주도권 싸움이 결국 돈으로 끝났다. 단순하게 이야기할 사안은 아니지만, 분쟁으로 1년에 8억 원씩을 얻은 꼴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교회를 떠난 교인이지만, 30년 가까이 몸담았던 이로써 '헌금으로 소송하고, 앞으로 걷어야 할 헌금을 담보로 합의한 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 목사와 장로, 연루자들은 전원 사임하고 교회를 떠나야 한다. 가급적 교회도 해산하라고 하고 싶다.(이건 가급적 양측 모두 실행하기를 바란다.)

뻔히 보였던 결말을 위해 억지로 싸워왔던가. 13년 전, 돈으로 해결하자고 이야기가 나왔을 때, 돈으로 해결했으면 빠르게 해결될 일이었다. 당시 소송에서 불리했던 원로목사 측이 교회가 소유한 영신학원과 40여 억 원으로 합의하자고 했다. 그렇게 합의했으면 더 저렴하게 끝날 싸움이었다. 결국, 영신학원도 원로목사 측이 가져갔다. 결과만 보자면 법원이 중재했다는 것을 빼고 무에 다른가.

당시 교회 입구는 철제 담장으로 막혔다. 담장을 하나 뜯어 교인들이 오가도록 했다. 물론 교인이 맞는지 검사하는 건 몇몇 교인과 용역의 몫이었다. 컨테이너 박스로 교회를 둘러쌓아 출입을 막았던 적도 있다. 교회 분류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 중 하나다.

대의명분도 초라하다. 원로목사 독재에 부역했던 담임목사와 장로들이 주도권을 쥐려 개혁을 내걸었을 뿐이다. 이번 싸움으로 잃은 것이 자리와 명예가 전부인 인사들 말이다. 이성곤 담임목사는 사임했고, 김창인 원로목사는 모든 명예를 잃은 정도다. 물론 두 목회자 모두 돈은 두둑하게 챙겼다. 십수 년 전 연봉이 1억 5000만 원 가까웠고, 자녀 유학도 모두 교회 재정으로 보냈으니 말이다. 책임은 상처투성이 남은 자 몫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모두 가지려고 한 담임목사 측의 욕심이 이런 사단을 불러왔다. 처음, 유리한 고자에 있을 때, 합의하자는 상대방 요청에 응했어야 했다. 돌아보라, 결국 소송으로 날린 돈이 얼마나 될까. 13년 동안 변호사 좋은 일만 했다. 헌금을 소송 비용과 합의금으로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광성교회는 경험한 것이다. 그걸 은혜와 진리를 위한 싸움이라고 불렀으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여길 테다.

물론 나도 열심히 부역한 교인이었다. 벌써 십수 년 전 일이다. 독재자였던 원로목사가 주도한 청빙을 용납할 수 없었다. 담임목사를 반대했다. 하지만 싸움이 났을 땐 담임목사가 있던 예배당에 남았다. 이성곤 담임목사의 욕망이 보였지만, 김창인 원로목사의 독재를 다시 보는 게 더 싫었다. 그 누구도 지지하지 않는다는 명목을 내세웠다. 교회를 지킨다는 표현도 사용했던 시기다.

어제까지 함께 예배했던 이들이 서로 멱살을 잡고 욕설로 서로를 비난하는 사이가 됐다. 언제든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원로목사의 독재는 상당했다. 흔히 그 세대 목회자들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카리스마’로 교회를 이끌었다. 당회가 원로목사 의견대로 돌아가는 건 기본이었다. 찍소리도 못한다는 표현은 이럴 때 써야 한다. 영신학원 교장에 큰 사위를 앉힐 때도 그의 힘이 작용했다. 막을 사람이 없었다. 이로 인해 큰 사위는 40대 초반에 장로가 되었다. 이 역시 주변 반대는 신경 쓸 일이 아니다. 설교 시간에 마음에 들지 않는 장로와 권사를 비판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사례비도 생각해 볼 부분이 많다. 김창인 원로목사가 은퇴한 건 2000년대 초반 일이다. 당시 그의 월 사례비는 1200만 원 수준이었다. 교회의 한 장로는 사례비가 너무 많다고 불만을 표한 내게 “2만여 명이 모이는 교회를 이룬 공로가 크다”며, 성과에 타당한 급여를 이유로 들어 설득했다. 공과금과 활동비, 도서비 등 부수적인 수당도 많았다. 잠실에 있는 비싼 아파트도 사택으로 제공했다. 

고용관계에 있는 부목사들에게도 권위주의는 그대로 발현됐다. 원로목사가 퇴근할 때면 20명이 조금 안 되는 부목사들이 일렬로 도열했다. 원로목사가 타고 가는 자동차를 향해 몸을 숙여 인사했다. 뭐, 그럴 만 했다. 교회 분규가 있기 전까지 부목사들이 개척하면 지원금이 상당했다. 실제 부목사가 교회를 떠날 때 개척 자금을 양껏 지원하는 교회는 없었다. 물론 오랜 시간 부목사로 지내고, 수석 부목사를 거쳐, 기도원 원목까지 수행해야 한다는 조건이 있다. ‘거룩한빛광성교회’ 정성진 목사도 광성교회 부교역자 출신 목회자로 10억 원의 개척 자금을 지원받았다. 

분쟁 당시 교회가 소유한 영신학원 앞에서 시위하는 담임목사 측 교인들. 열심히 활동했지만, 영신학원은 결국 원로목사 측이 가져갔다. 실제 영신학원이 분쟁의 원이이 되었다는 분석이 교회 내부에서 다분했다.

청년부를 담당하던 부목사는 이를 지적하는 청년들에게 치기 어린 지적이라며, 이렇게 설명했다. 

“부목사들이 전부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존경해서 하는 자발적인 행동이다. 청년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바라볼 필요가 전혀 없다.” 

이의를 제기한 청년들이 이 이야기에 수긍할 수 있었을까. 집에서 아버지에게 그렇게 깍듯하게 인사하는 이가 없었던 탓인지 몰라도, 아무도 받아들이지 못했다. 회사 생활하는 회장님과 직원들을 떠올릴 뿐이었다. 

후임 담임목사를 청빙할 때도 그의 입김은 법, 그 자체였다. 청빙위원회가 구성되었지만, 청빙을 위한 포장에 불과했다. 청빙위와 상관없이 김 목사는 이성곤 목사를 담임 후보로 추천했다. 결국 별도의 승인 없이 이 목사는 공동의회에 최종 의결을 받았다. 그리고 이러한 전횡은 이 목사를 담임에서 면직할 때, 좋은 구실과 수단이 되었다. 원로목사가 이성곤 목사를 청빙한 이유를 많은 교인이 '세습'에 있다고 보았던 지점이다. 

담임목사의 욕망도 너무 뻔히 보였다. 광성교회에서 자란 목회자였다. 전도사 생활도, 목사 안수도, 부목사 생활도 전부 광성교회에서만 했다. 지하철역 수로 일곱 정거장 떨어진 곳 담임으로 떠났다. 그 교회에서 광성교회로 떠나올 때, 새로운 담임을 청빙할 시간을 주지도 않고 갑작스럽게 왔다. 당시 이 목사가 담임했던 한 교회 교인은 “광성교회 방향으로 소변도 보지 않는다”며, 아무 말도 없이 교인들을 배반한 그를 비판했다. 그리고 그는 교회 담임 자리를 지키려고 원로목사 등에 비수를 꽂았다.

소송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교인들은 교회에 동원되는 깡패와 폭력을 목도해야 했다. 그렇게 서로를 미워하게 되었다. 가족처럼 지내던(실제로 그러했던) 사이와 하루아침에 갈라섰다. 지난주까지 함께 기도하며, 사랑한다고 고백했던 이들이 멱살을 잡고 욕설로 서로를 비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서로 지지하는 목사가 달랐던 한 부부는 이혼 위기를 맞기도했다. 교회를 지킨다는 명목에 속아 교인들은 거짓의 앞잡이가 되었다. 

교회가 소유했던 영신학원은 영신여고와 영신여상 두 학교가 있었다. 분쟁이 심화하던 당시, 몇몇 교인들이 학교 앞에 가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교회 분규와 주도권 다툼이 영신학원 운영권 등에서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교회 내에서 자주 들을 수 있었다.

그때 교회를 떠나지 않아 청년부에서 소중한 아내를 만났지만, 돌이켜 보면 떠났어야 했다. 떠나지 못해 어그러진 교회가 잘 유지되도록 도운 부역자로 기억과 역사에 남게 되었으니 안타깝기만 하다. 실제로 청년회로 규모를 제한한다면 꽤 큰 죄인이기도 하다.

당시 교회를 생각하며 누구보다 많은 눈물을 쏟았다. 사랑하는 교회가 싸우는 걸 맨정신으로 견딜 이가 몇이나 될까. 이 분쟁에 당위성을 부여한 이들도 교인들 앞에서 눈물은 흘렸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눈물이 자기 위로를 위한 눈물이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교회를 떠난 지 4년이 지났다. 원로목사는 지금도 용납할 수 없다. 담임목사의 파렴치한 행동도 마찬가지다. 장모님과 남은 후배들에게 가끔 떠나라고 말한다. 그게 한국교회와 광성교회를 위한 일이며, 악의 체제를 유지하게 한 내 소박한 속죄라고 여긴다.

마지막으로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기억한다. 돈으로 끝내지 말고, 회복할 수 있는 결말을 위해 함께 기도하며, 실천하기를 권하고 싶다. 돈으로 이별할 것이라면 해산하는 게 낫다. 무엇이 잘못이었고, 누구의 어리석음이었는지 잘 헤아려야 한다. 원인을 찾고, 회복하기 위한 진심어린 사죄와 회개, 새로운 교제를 시작할 때다. 

덧말) 함께했던 후배들과 친구들에게 이러한 글이 많이 상처로 남을 것 같다. ‘그날의 우리’는 분명 같이 예배하며 기뻐하고 즐거워 했다. 그리고 그 예배를 준비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쏟았다. 청년회 하나를 유지하고 지켜내기 위해서도 모두 노력했다. 하지만, 당시의 우리는 교회가 마주한 ‘악’의 문제에 눈을 두지 않는 잘못을 했다. 함께 인정하고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한 교회 개혁에 목소리를 내주면 좋겠다. 

유영  young2@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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